57화
“택시!”
도로변에 나간 강민은 손을 들어 택시를 불렀다.
길을 달리던 택시 중 빈 차가 강민 앞에 멈췄다. 강민은 거기 얼른 올라탔다. 택시 운전수는 강민이 올라타는 것을 백미러로 보며 사무적으로 물었다.
“어디가지 가시겠습니까?”
“여기 쫓아가 주세요.”
강민은 신호를 받아 이지연의 위치를 계속 나타내고 있는 스마트폰을 운전사에게 넘겼다. 운전사는 아리송하단 얼굴로 물었다.
“이건...”
“친구랑 지금 게임 하고 있거든요. 몰래 추적해서 훼방을 놓아야 할 일이 있거든요.”
강민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동아리 활동 하나봐?”
“그런거죠.”
변명을 만들기도 귀찮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거기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택시 운전사는 부러운 듯이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방학 때 이런 것도 하고 참 좋아졌네.”
강민은 그 말을 능청스레 받았다.
“저도 제 자식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어휴.”
“하하하.”
강민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택시 운전사는 호탕하게 웃고는 강민이 내민 스마트폰의 지도를 따라 움직엿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빨리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노력해보지.”
택시가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
포장이 좋지 않은 산길에 차량이 들어섰다. 차는 아반떼였다. 주변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차가 좀 더 움직이니 공터가 있는 것이 드러났다.
부우웅.
차는 그 공터 안으로 들어가 멈췄다.
멈춘 차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비대한 인상의 뚱뚱한 남자였다. 뒷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나온 건 총 세 사람이었다.
팔다리가 성치 않은 덩치 큰 남자와 호리호리한 남자, 호리호리한 남자에게 업혀있는 소녀였다.
각귀, 한성질, 똥뱃살, 그리고 이들에게 납치된 이지연이었다.
각귀는 이지연을 얻은 채로 한성질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맞소?”
“맞아.”
하성질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보는 곳으로 산길의 대로에 난 소로가 보였다. 그족으로 가면 깊은 숲속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똥뱃살이 말했다.
“딱 작업하기 좋은 동네처럼 생기긴 했습니다.”
“그렇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공간.
확실히 범죄에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이라 할 곳이었다. 한성질은 찌푸린 얼굴로 설명을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버려진 별장이 하나 있다. 혹시 작업할 때 서먹을 수 있을까 하고 눈 봐둔 곳이야.”
“무댓포도?”
각귀가 물었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쓸 무댓포였다. 그냥 죽이기만 하면 된다면 이런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 미리 가 있다.”
“알겠소. 얼른 갑시다. 혹시 사람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그들은 함께 산길에서 움직였다.
***
주변에 산지가 펼쳐진 한적한 도로에서 택시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거기서 강민이 내렸다. 그는 택시비를 지불하며 운전사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재밌게 놀라고.”
“네.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강민의 인사를 받고 택시 운전사는 차를 몰아 멀어졌다. 강민은 고개를 들어 주변 산지를 살피고선 스마트폰을 켜 상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디보자...”
여기서 보이는 산 중 한 곳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신호는 10분 정도 전부터 매우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산을 타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행이었다.
신호의 움직임을 보고 강민 자신이 직접 움지여 대응하기엔 느릴 것 같은 경우엔 경찰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둘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여유롭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산길이라면 강민의 이동 속도는 어지간한 차를 넘어설 수 있다.
“기다려라.”
타오르는 얼굴로 빙그레 웃으면서 양손을 꾹 쥐었다.
우두둑,
곧 있을 축제에 기뻐하며 그의 단단한 손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
탁. 탁.
쓰린 감촉을 느끼면서 이지연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흉악한 남자들의 시선이었다. 모두 네 사람이었다.
“악!”
이지연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묶여 있었다. 밧줄이 손과 발에 묶어 놓고 못 움직이도록 하고 있었다. 이지연은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이지연을 보면서 각퀴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이제 정신을 차렸군.”
“누, 누구세요! 왜 이런 짓을...!”
바들바들 떨면서 이지연이 물었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저 매일매일 힘들게 살아가는 여고생일 뿐인데. 집도 가난했다.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 이지연은 공포 가운데 그럴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지연은 자신이 여자이며 아름다운 편이란걸 자각하고 있었다.
“글쎄.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서.”
각퀴는 벌벌 떨며 이지연이 묻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옆에 와서 똥뱃살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말했다.
“헤헤, 참 고운데요.”
“새끼, 껄떡대긴.”
각귀가 똥뱃살의 머리를 때렸다.
그들의 대화와 눈빛을 보면서 이제 이지연은 알았다.
강간당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TV를 볼 때면 자주 보던 기사들이 연달아 폭포처럼 쏟아져 그녀의 뇌리를 채웠다.
많은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죽었다는 기사들.
죽지 않아도 강간을 당할거란건 분명해 보였다. 강간을 하더라도 기껏 징역 1~2년이면 나오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강간마들이 강간을 시도하고, 심지어 출옥 3개월 만에 반복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도 기억났다.
이들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게 아니라도 무슨 상관일까. 이지연은 진심으로 한국을 원망했다. 이런 악맏르이 거리에 버젓이 돌아다니도록 하는 나라에.
“아, 아악!”
공포에 이지연은 비명을 질렀다.
각귀가 즉각 반응했다.
“조용히 못해!”
그는 이지연의 배를 걷어찼다.
“아악!”
배를 걷어차인 이지연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굽혔다. 각귀의 구타는 계속 이어졌다. 얼굴은 일부러 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손댈 때 맛이 없어지니까.
“아... 아아...”
곧 고통에 신음하면서 이지연은 힘없이 널브러졌다. 각귀는 즐거운 표정으로 이지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용 없어. 여긴 깊은 산속이라 아무리 니가 비명을 질러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고.”
“흑흑흑...”
이지연은 울었다. 그리고 각귀는 본격적으로 제 욕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 너도 처녀로 죽긴 아깝겠지.”
그는 상의를 벗었다.
“아아아...”
이지연은 그의 옷 벗는 소리를 공포스럽게 들으면서 고개를 획 돌렸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왜 이런 일이...
내게 왜 이런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항상 힘들게만 살았다. 어머니는 아파 병원비가 다급했고. 집은 가난해서 매월의 식비를 조달하기도 어려웠다. 겨우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어 있지만 지원으로 들어오는 돈은 무척 적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면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인 지금은 매일이 아르바이트나 마찬가지였다.
삶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투덜거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살았다. 그런데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다니. 신이 있다면 저주하고 싶었다.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잠깐 주목.”
억지로 뒤튼 듯한 목소리였다. 모두 흠칫 놀란 표정이 됐다. 특히 범죄자 넷이 그랬다. 그들은 소리가 난 방향을 험상궂은 표정으로 돌아봤다. 각귀는 이미 반사적으로 품에서 칼을 꺼내 쥐고 있었다.
별장의 창문을 열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바로 이지연을 추적해 온 강민이었다.
당황한 깡패들이 중얼거렸다.
“뭐야?”
“넌...”
깡패들 가운데 한성질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지금 보고 있는 저 마스크는 잊을 수 없는 자였다. 바로 지금 한성질을 이꼴로 만든 원흉이었으니까!
마스크를 쓴 강민 역시 한성질을 알아봤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오. 알고 있는 얼굴이 있네.”
한성질은 덜덜 떨면서 뒤로 주춤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강민은 열린 창문을 통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
“이 새끼!”
똥뱃살과 각귀가 즉각 반응했다.
먼저 달려든 것은 똥뱃살이었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강민에게 주먹을 날렸다. 강민은 체격만을 믿고 날리는 그 어설픈 펀치에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무식한 새끼들.”
강민은 가볍게 피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이 똥뱃살의 배에 꽂혀 들어갔다.
“억!”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떴다. 거대한 똥뱃살의 몸이 약간 공중에 떴다.
강민은 이어서 팔에 힘을 줬다. 그의 주먹에 걸려 똥뱃살의 몸이 허공에 높게 붕 떴다. 그리고 곧 젓가락에 꽂힌 삶은 감자마냥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당!
“아악!”
자기 무게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똥뱃살은 비명을 내질렀다. 먼저 하나를 정리한 강민은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깡패들을 향해 주먹을 내밀면서 말했다.
“장갑맨 몰라? 내가 장갑맨이다.”
각퀴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갑맨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뉴스에 나왔던 장갑맨의 모습과 흡사한 것 같았다.
더구나 한성질이 저렇게 무서워하는 걸 보면 확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각귀는 일이 더럽게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물러나려야 그럴 수가 없게 됐다고 봐야 하겠지만.
“어디서 이게 개소리를...”
각귀는 현실을 부정하고 칼을 잡았다.
장갑맨인지 개새낀지 하는 놈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주먹만 가지고 싸웠을 대의 이야기고 이족은 칼이 있으니 이야기가 다르다고 각귀는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얼굴을 가린 복면 안에서 강민은 피식 웃었다.
“개소린지 아닌지는 몸으로 확인해!”
그는 각귀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비호처럼 그의 몸이 움직여 각귀와의 거리를 좁혔다. 각귀가 두 눈을 부릎떴다.
‘빠르다!’
각귀는 많은 실전 경험이 있다. 몸이 빠른 놈도 물론 많이 상대해 봤다.
한데 이제까지 상대한 놈들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속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각귀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질러 장갑맨을 찌르려 했다.
슉!
예리하게 칼날이 날았다.
하지만 강민은 간단히 그걸 피하고 각귀와의 거리를 좁혔다. 주먹을 내질렀다.
퍽!
각귀가 배를 얻어 맞았다.
“컥!”
똥뱃살에 비해 훨씬 가벼운 그의 몸은 상당히 높아 몸이 붕 떴다. 하지만 물론 이 정도로 강민이 끝낼 생각은 없었다. 슬쩍 지나가듯이 강민의 눈길이 바닥에 쓰러진 이지연의 모습이 보였다. 절망적으로 울던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본 장면만 해도 강간하려던 도중이 틀림 없었다.
‘개새끼.’
이런 놈에겐 적합한 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