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해져서 놀러왔다-56화 (56/227)

56화

“어이구.”

그리고 주변에 시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차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곧장 똥뱃살에게 명령했다.

“어서 가.”

“헤헤 쉽군요.”

똥뱃살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각귀는 찌증난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그를 꾸짖었다.

“멍청한 새끼. 이 몇 초를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데 쉽단 소리가 나와. 그러니 니가 똥뱃살 소리 밖에 못 듣는 거다!”

사람도 CCTV도 없는 납치 최적 지점을 찾아 작전 결행 타이밍을 결정하기까지 대단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걸 빼고서 몇 초만에 성공한 일이라고 쉽다 말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발언이라 할 수 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머쓱한 얼굴로

듣기 싫다는 듯 각귀가 명령했다.

“잡소리 말고 얼른 가!”

“네.”

아반떼가 부릉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각귀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옆을 바라봤다. 거기엔 억지로 이 일에 참여한 한성질이 무뚝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직 손발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근성으로 버티는 걸 보면 전설적인 깡패였다는게 허명만은 아니었단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감탄은 감탄.

사업은 사업이다.

“준비는 다 되어 있지요?”

한성질은 각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거기 가면 다 마련되어 있어.”

“알겠습니다.”

아반떼는 한성질이 마련한 작업장소로 조용히 옮겨갔다.

***

강민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 왔어.”

에이리가 돌아온 모양이다.

강민은 소파에서 일어나 문으로 가 그녀를 맞았다.

“돌아왔어? 어땠어?”

“괜찮았어.”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슬쩍 에이리의 표정이 탐색했다. 밝아보이는게 빈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표정을 보니 정말 그랬던 모양이군.”

“후후, 이런 걸로 농담할 이유는 없지. 특히 생각 외로 보수가 좋던걸.”

강민은 에이리가 한 말에서 다른 것 보다 보수가 좋은 것이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하는게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봐.”

ㅤㅔㅇ이리는 품에서 자랑하듯이 종이를 꺼내 강민에게 내밀었다. 꽤 두툼해 보였다. 강민이 슬쩍 안을 보자 오만권권으로 십여장을 족히 넘게 들어가 있었다.

“와, 상당한데.”

“나는 이 일을 잘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받는진 모르지만, 태도로 봐선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럴 것 같아.”

강민도 모델 한번 하고 얼마 받는진 모르지만 모델은 스포츠 선수나 영화배우처럼 무명과 유명배우 시절 사이의 가격 차이가 어마어마 하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리라 싶었다. 만일 저런 보수를 신입 시절부터 받을 수 있다면 연예인 지망생보다 모델 지망생이 훨씬 많을 테고 말이다.

에이리는 안심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쭉 네 신세만 지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잘 됐어. 이렇게 호구지책이 생겼으니.”

“뭐, 계속할 거야?”

강민이 좀 놀란 표정이 돼서 물었다.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하기엔 괜찮지 않아?”

에이리가 잘하는 건 무엇보다 검이다.

진짜 그녀는 어마어마한 검의 고수다.

하지만 그 검술 실력으로 여기서 먹고 살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물론 가능이야 할 거다.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에 여러 가지 굉장히 커다란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어차피 원래 세계에서도 못먹고 못 살던 것도 아닌데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모델은 확실히 몸만 가지고 돈벌이가 되니까 좋은 방법이다 싶은 측면이 있긴 했다.

“그런 면에서 괜찮긴 한데... 사람들 눈에 너무 띄잖아.”

그러나 모델 역시 사람들의 주먹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에이리의 검 솜씨만큼이야 화제가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에이리의 아름다움과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몸매를 생각하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건 마찬가지로 그녀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아주!

“아, 그건 그렇네.”

강민이 무얼 걱정하는지 눈치챈 에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미 네가 모델일 하는데 동의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 주변이 시끄럽게 되는 건 딱 피하고 싶으니까.”

강민은 에이리가 유명해 지는걸 즐기겠다면 그걸 막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강민 자신과 자기 집이 거기 휘말려 평온을 잃게 되는건 곤란했다.

“응. 그건 주의할게.”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델이라는 일에 흥미를 느끼긴 했고, 자신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뽐낼 수 있을 기회가 된다는데 기대도 됐지만 강민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다 소용없는 짓일 뿐이다.

강민이 물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

“좋아. 그럼 내가 만들어 주지.”

빙그레 웃으며 강민이 주방으로 향했다. 기특한 듯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리가 물었다.

“그 신기한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드는 거야?”

신기한 조미료!

그것만 있으면 에이리도 일류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요리만 만들면 독극물이 되고, 너무 맛이 없어서 환상 마법으로 맛을 개조했다 어떤 괴물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모험자 파티를 몰살시킬 뻔 했던 무서운 위업을 달성할 뻔 했던 고 어이없는 계집애도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을 정도였다.

‘그건 무린가?’

하지만 처참하다 싶은 계집애의 요리실력을 생각하며 에이리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잘난 마법도 실패했는데 아무리 조미료가 좋아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강민은 냄비에 물을 담으며 답했다.

“그렇긴 하지. 한국에 왔다면 꼭 먹어볼 필요가 있는 음식 중 하나기도 하고.”

“대표음식이야? 기대되는데. 그 동안 요리 공부도 많이 했나 보네?”

“그런 건 아니지만...”

강민은 장난스레 웃었다.

그가 대접하려는 것은 바로 라면!

원래 일본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한국인이야말로 일년에 가장 많은 라면을 소비하는 민족! 가히 대표음식이라 할만했다. 더구나 그 맛의 비밀 역시 듬뿍 들어간 MSG의 힘이니 에이리가 원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민이 물을 끓이기 전에 스마트폰이 흔들렸다. 그는 폰을 켜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금세 변했다.

“어라?”

폰에 표시된 내용은 이지연이라는 소녀가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그간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시간에 이 소녀는 버스를 타고 재래시장 쪽으로 가야한다.

강민은 도청기를 켰다.

부우웅.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언제 도착하지?

-3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지직거리는 와중에 그런 대화도 섞여 들렸다. 나이든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상황을 수비게 짐작할 수 있었던 강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나.”

강민은 아쉬운 얼굴로 부엌을 빠져나왔다.

그는 곧장 에이리에세 사과했다.

“미안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오늘은 힘들 것 같아.”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에이리가 물었다.

살짝 웃으면서 강민은 답했다.

“응. 정확히 그런 일이 생겼지.”

“무슨 일이길래?”

강민이 방금 보여준 미소를 보고 에이리는 큰 흥미를 느꼈다. 지금 강민이 보여준 눈빛은 과거 모험 도중 격전을 예감하거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움직이면서 보였던 것과 같았다.

“벌레가 드디어 미끼를 문 것 같거든. 움직여 줘야지.”

“호오?”

벌레에 미끼.

한층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이리가 흥미진진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강민이 즉각 나서서 막았다.

“너는 안 돼.”

“너보다 강해.”

에이리는 허리를 꼿꼿히 펴고는 말했다.

강민은 머리를 긁었다. 지금 강민보다 에이리가 강하다는 것,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녀는 강민과 달리 시간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발생하게 되는 육체변이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강민보다 육체에 이미 축적된 힘의 양이 훨씬 많았다. 이곳의 마나가 굉장히 적긴 하지만 잠시 정도라면 에이리는 체내의 힘만으로도 원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전력으로서 이 이상 가는 동료는 없다.

그러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순 없었다.

에이리는 눈에 너무 띈다.

“그렇긴 하지만 말했잖아. 눈에 띄면 안 좋다고. 특히 이건 크게 벌일 거라서 너처럼 인상이 강렬한 사람은 함께 일하기엔 최악이야.”

“뭐 범죄라도 저지르는 거야?”

실망한 얼굴로 에이리가 물었다.

“아니, 그 반대지.”

단호하게 답했다가, 강민은 잠시 자신 없는 표정이 되어 헤헤 웃었다.

“음, 뭐 일을 해결하려다 보면 범죄적인 요소가 끼어들긴 하겠지만.”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덕분에 큰 돈을 얻었다. 하지만 그 돈은 기지 운영비 얼마 정도 남겨 둔 걸 제외하면 다 좋은데 썼다.

알만하다는 듯 에이리가 웃었다.

“영웅놀이 하러 가는구나?”

“어허, 놀이라니. 나는 직업이 영웅이었던 사람이라고!”

강민은 자부심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좋든 싫든 사실이라 에이리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마그누스.

그런 절대존칭은 아무나 얻을 수 없다. 세계 전체가 그를 영웅이라 인정할때야만 그런 칭호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허락되는 법이다.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시끄러운건 싫다고 하지 않았어?”

강민은 소파 근처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장갑맨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영상이 떠돌 당시의 복장과 마스크, 그리고 장갑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이걸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준비를 하는 거지. 모름지기 영웅이면서 눈앞의 어려움에 처한 이를 일신상의 사정을 핑계로 어찌 돕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무작정 도우면 내 휴가가 박살나니까 밑준비가 필요한 거야.”

“피곤하네.”

에이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좋은 일 하려는데도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한다니. 여긴 살기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더 큰 피곤함을 피하기 위한 거니 별 수 없어.”

“그럼 잘 해.”

에이리가 별 수 없다 생각하고 이번은 양보하기로 했다.

“물론이지! 배고프면 뭐든 하나 시켜 먹던가. 기회있을 때 이세계의 맛을 실컷 즐겨 둬!”

강민은 자신만만하게 말하고선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강민이 나간 집에 혼자 남아 에이리는 소파 근처에 던져진 상가 소개 책자를 바라봤다. 지난번 강민의 기지에 가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는 걸 구경한 적이 있기 때문에 주문을 문제없이 해낼 자신이 있었다. 에이리는 저기서 소개된 것 중 어떤 신기한 음식을 먹으면 좋을까 내심 기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