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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49화 (49/227)

49화

“헉, 정말입니까?”

“그, 그러시다면야...!”

모두들 환호하며 에이리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발을 핥으라면 발을 핥고, 죽으라면 그런 시늉이라고 할 것 같은 태도였다.

강민이 곤혹스런 얼굴로 말했다.

“야, 너.”

“뭐 어때? 뜻만 있다면 큰 문제 생길 것도 아니잖아.”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에이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강민도 할 말이 없었다.

에이리의 말대로였으니까.

지금 에이리의 말은 정말 우즈벡 미인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건 아니니 결국 이세계의 소녀들을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가령 에이리 자신이 거느리는 하녀의 숫자만 수백이 넘는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심과 각오, 노력이 수반된다면 에이리가 말한대로 문제 될만한 건 아니었다. 강민 자신도 에이리와 이렇게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긴 안목으로 보아 이 세계에 대해 알려주고 건너갈 각오와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정말로 그런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에이리의 생각이었다.

‘시끄러운 애들이 적지 않기도 하고...’

에이리의 아래에 있는 여자들 중에서도 혼자서 행복한 연애 하지 말고 자기들고 멋진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며 징징대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체면이 걸린 문제기도 하니까, 다들 소개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멋진 남자가 되어야겠지.”

“그런거라면야...!”

“노력해야죠!”

“그렇고 말고요!”

모두 각오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켜보겠어.”

웃으며 에이리가 말하는데 남자들은 모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강민은 옆에서 보고 혀를 내둘렀다. 워낙 세계가 다른 만큼 섞여 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살짝 걱정했는데 섞여드는데 성공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소년들을 전부 자신의 부하처럼 조련시켜는데 성공하다니.

물론 미끼가 아주 훌륭하긴 했지만.

‘에이리, 무서운 아이.’

강민은 과연 기사단장 출신이라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

그리고 일행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들은 점심이 되어 중국집에 짜장면과 우동을 시켜 배달해 먹었다. 값은 일행의 기잡 호성이 지불했다.

이계의 맛을 맛보고 가장 즐거워 한 것은 역시 에이리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짜장면의 맛에 놀라워하는 그녀에게 강민은 ‘MSG’라는 신의 은총 덕분이라 소개했다.

그 말을 들은 에이리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그 기적의 조미료를 가지고 돌아갈 수단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식사를 다 끝내고 난 다음 강민은 마찬가지로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기분 좋게 퍼질러 앉아 있는 재철을 보고 말했다.

“오늘이지?”

“뭐가?”

“뭐긴 뻔한 거 아냐?”

멍청하니 되묻는 재철에게 강민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그제서야 강민이 무얼 말하는지 알아챈 재철이 입을 열었다.

“아, 3학년이랑 싸우는거?”

“그래.”

“응. 별 문제 없을 거야.”

한 학년 위를 상대로 싸우기로 했다는데 아주 느긋한 태도였다. 강민도 그걸 당연시했다. 지구는 마나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에게 가르쳐준 방법으로 초인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재철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자신만만해 하는게 당연했다.

강민은 다른걸 물었다.

“반응은 어때?”

반응이란 3학년 다른 일진 패거리들의 반응이다. 수구와 만수가 얼른 보고했다.

“어이없다는 것 같던데.”

“벌써 찍힌 것 같아.”

“손봐주겠다고 벼르고 있는 놈들도 많다던데.”

강민은 느긋하게 말하는 소년들을 보며 웃었다.

“그런 것 치곤 다들 자신만만한데.”

“헤헤. 네 덕분에 배운게 많이 있으니까.”

“맞아봐야 별로 아프지도 않을테고.”

강민은 혀를 찼다.

물론 단순하게 싸우는 거라면 재철은 물론 수구와 만수 역시 3학년이라 해도 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악에 받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게 인생 막나가는 쓰레기 일진들의 특징이다.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올 수 있고, 심지어 칼로 띠르려 드는 놈이 나올지도 몰랐다.

재철일당은 모두 아주 강해졌지만 그런 것에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건 절대 아니었다.

“아프진 않아도 병원 신센 질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응.”

강민이 무얼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강민은 호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준비해 뒀고?”

“물론.”

호성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학년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얼굴이 곤죽처럼박살이 나서 앞에 엎드려 엉엉 울며 비는 꼴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즐거웠다.

강민 옆에 있던 에이리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흥미를 느낀 듯이 물었다.

“무슨 말들 하는 거야?”

“내가 다니는 학교에 일진이라고 깡패 새끼들이 있거든.”

“일진?”

일진이란 말을 에이리는 모른다.

강민은 간단히 설명했다.

“뭐 애들끼리 모아두면 대장 노릇 하면서 다른 애들 괴롭히고 상납금 받고 하는 것들이 생기잖아. 그거지.”

“아아.”

쉽게 이해가 된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나 그런 놈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에이리가 경험한 중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 에이리가 처음 기사단에 들어갔을 때 나이 많이 먹은 남자놈이 거들먹거리며 텃세를 부린 적이 있다.

그놈은 사지절단 당할뻔 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그런 놈들 청소를 하려고.”

“그런데 왜 굳이?”

에이리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굳이 약해 보이는 애들을 사용해서 싸울 필요가 뭐가 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시시한 쓰레기들 청소하는데 강민 본인이 나서면 아무리 약해졌다지만 금방일 텐데.

굳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약해빠진 아이들을 보낸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민은 에이리의 의문에 답했다.

“시끄러워지는 것도 싫고 이놈들이 그 일진 출신이거든. 강석은 빼고.”

“그랬어?”

강민이 말한 내용에 놀란 표정이 되어 에이리는 소년들을 돌아봤다.

“부, 부끄러운 과거죠.”

“다시는 안 그럴 겁니다!”

“그렇고말고요!”

모두들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일진이랍시고 잘난척 하며 살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지금 돌이켜 보니 참 철없는 짓이었다. 나쁜 짓이기도 했고.

찌푸린 얼굴로 에이리는 엄숙하게 말했다.

“나도 깡패노릇이나 하던 추악한 바보들을 내가 아는 아이들에게 소개시켜 줄 순 없어. 그런 일 없도록 해.”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이리는 아직 의문이 다 풀리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강민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은 해충 같아서 처리해 봐야 또... 아, 알겠다.”

말을 하던 중에 에이리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강민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 녀석들에게 대장 노릇을 시키는 거지.”

“괜찮은 방법인데. 죗값도 치르는 셈이 될 테고.”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뭐 죄값 치르는 거야 이런 걸로는 정말 턱도 없지만.”

강민은 죗값을 치른다는 부분을 말하면서는 무서운 눈을 하고 애철 일당과 호성을 노려봤다. 그들은 단순히 일진이랍시고 더러운 짓을 한게 아니라 강민을 괴롭혔다.

당연히 그 죄의 깊이 역시 평범하게 일진 짓 하며 아이들을 괴롭힌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강민의 눈빛에 영혼이 얼어붙는 느낌을 맛보며 그 말에 옳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들 해.”

“응!”

모두 힘차게 답했다.

***

한성질은 여전히 병원에 누워 있었다.

강민에게 얻어맞은 상처는 깊고 쓰라렸다. 그는 앞으로도 예전처럼 강력한 깡패로서 다른 이들 앞에 군림하는 짓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맡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윗선의 신임도 잃고 후배에게 일을 빼앗겼다. 전국의 웃음거리가 된 데다 세력가지 잃게 된 것이다. 깡패만큼 허세가 중요한 자들은 없다. 그러니 이제 한성질은 모든 걸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헐떡이며 살아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게 되었다. 절망과 분노에 이를 갈며 그는 자신의 병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갑자기 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온 것은 각귀였다. 한성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각퀴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와선 한성질의 침대 옆에 앉았다.

“몸은 어떻소?”

“무슨 일이지?”

“우리 사이에 용건 없으면 오지도 못 하오?”

각귀가 능글맞게 말했다.

한성질은 각귀의 얼굴에 침을 밷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썩을, 용건이나 말해.”

“후후후, 나한테 그럴 입장이 아닐텐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다면 그럴 입장이 아닐텐데 따위의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법이니까.

한성질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물었다.

“무슨 소릴 하려고...”

“기회를 주겠다는 거요.”

“기, 기회?”

한성질이 잠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하며 각귀를 향해 간절한 눈을 보냈다. 지금은 체면 따위 중요한게 아니다. 체면도 다 먹고살고자 중요한 거니까.

“길게 이야기 하면 서로 피곤하기만 하겠고...”

각귀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병실이란걸 생각하면 정말 몰상식한 짓이지만, 한성질은 아무 말도 못했다. 도리어 그가 그윽하게 담배를 피고 난 다음에 하게 될 말을 예언처럼 기다릴 뿐이었다.

“실은 쓸만한 무댓포를 구하질 못했거든.”

“일이 일이니 만큼 쉽게 구할 수 없는게 당연하겠지.”

한성질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각귀가 여기에 왔는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몫 끼워 줄 테니, 한성질 형님, 당신이 좋은 무댓포 하나 구해 주지 않겠소?”

생각했던 대로의 용건이었다.

“무댓포를...”

폭력배가 가장 구하기 힘든 인력이 바로 무댓포다.

단순하게 남자나 여자를 구하는 건 쉽다. 창녀로 쓸 거면 납치하면 되고, 새우잡이 배 같은 곳에 노예로 팔 남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길들이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다. 뒤처리가 좀 피곤할 뿐이다.

그러나 무댓포는 그렇지 않다.

우선 무댓포는 단순하게 이용당하는 처지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들을 이용하는 자들은 이용한다는 것을 들켜선 안 된다.

만일 그런 신뢰를 무댓포에게서 얻지 못한다면 무댓포는 그 순간 쓸모가 없다. 경찰에 잡히면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는 커녕 모조리 불어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속여서 덤터기 씌운다는 식으로 무댓포를 구해 사용하는건 엉터리다.

무댓포는 철저한 이용대상이면서 그 대상이 그렇다는 걸 몰라야 한다.

아주 어려운 조건이다.

이걸 위해 달콤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 하려는 일처럼 무기는 확실하고, 자칫 사형이 나올 수도 있을 만한 범죄에 대해서는 그런 이를 구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사형이나 무기를 감수할 수 있는 무댓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조폭의 세계에서 입지가 굳고 인망과 존경이 있는 깡패에게나 겨우 가능한 일이다.

바로 한성질처럼!

“남은 유일한 기회라 생각하쇼. 날짜가 급하지 않았으면 당신한테 이렇게 다시 오는 일 같은건 절대 없었을 거니까.”

“자금은 대어주겠지?”

한성질이 물었다.

아무리 한성질이 쫄다구들 사이에서 존경을 얻어 무댓포 구하기 좋다곤 해도 역시 당장 줄 수 있는 보상이 적어선 얘기가 안 된다.

“물론. 대신 믿을만한 놈이어야 하오, 만일 그 뒤가 시끄러우면...”

각퀴는 음산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죽여버린다는 뜻이다. 그것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한성질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마쇼. 내가 그런다는게 아니니까. 당신도 이 짓으로 밥벌이 하면서 살았으니 어련히 알 거 아니오.”

“좋아. 받아들이지.”

다른 선택은 있을 수가 없었다.

“잘 됐군. 구하면 연락주쇼. 몸 조리 잘 하고.”

각귀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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