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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48화 (48/227)

48화

다음날.

강민과 에이리는 함께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 건물은 강민이 부하들과 함께 사용하는 기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 건물을 높다란 키로 올로 올려다보며 에이리가 물었다.

“여기야?”

“그래. 이곳의 나의 새로운 기지지.”

“벌써 이런 걸 다 만들었네.”

우습다는 듯 쿡 소리를 내고 에이리가 말했다. 강민은 뻐기듯이 가슴을 펼쳤다.

“뭐 내가 워낙 능력있다 보니!”

“어련할까.”

“자 올라가자. 소개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강민이 먼저 앞장섰다. 에이리가 다라 움직이면서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 됐다.

“호, 누구길래?”

“새로 사귄 친구랄까, 부하랄까.”

“여기서도 신나게 살고 있나 보네?”

친구랄까, 부하랄까 라는 말에 상상이 가는 바가 있어서 에이리는 키득 웃었다. 이계에서도 강민은 좀 특별하게 인맥을 만드는 일이 자주 있었다.

가령 악덕 지주나 사채업자를 죽도록 두들겨 패고 3대 더 팬 다음에 말을 듣게 하고, 하나 어길 때 마다 맞은 만큼 더 패서, 결국에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로까지 만드는 것이다.

물론 진짜 악독한 경우엔 산채로 가죽을 뜯어내며 죽는데, 열흘이 걸리도록 한 적도 있었고. 적당히 갱생의 여지가 보이는 경우엔 두들겨 패서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그러려고 온 거니까! 그래도 착한 일만 골라 하고 있어.”

강민은 걸릴 것 없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말했다.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잔혹하다 싶은 짓도 얼마든지 하곤 했지만, 그보다는 영웅답게 선한자를 돕고 악한자를 징벌해 왔다.

그 징벌이 좀 잔혹한 게 문제였을 뿐.

곧 두 사람은 기지 문 앞에 도착했고, 문의 패스워드를 눌러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와 있던 강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민을 맞았다.

“어서와.”

“왔... 헉?!”

강석에 이어 재철 일당과 호성도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민에게 인사를 하려다가 굳어버리고 말았다. 강민과 함께 들어온 여자 때문이다. 나이는 20세 정도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호성이 더듬거리며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물었다.

“누, 누구?”

“아, 다들 인사해. 이쪽은 에이리.”

너무도 생각했던 대로의 반응이 돌아오는데 탐탁지 않아 하면서 강민이 말했다. 에이리가 옆에서 생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안녕. 나는 에이리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나, 나는 강석이라고 해요.”

“나는 재철입니다.”

“수, 수..수수..수..수구라고 합니다.”

“마, 만숩니다. 헤헤.”

남자 넷이 더듬거리며 여자에게 인사하는 광경은 좀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에이리는 어마어마한 미인에다 연상!

단순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나마 호성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인사하는 정도였다.

“호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강민과 에이리는 함께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도 기지 안 다섯 사람의 시선은 에이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야 미인인데다 갑작스레 강민과 나타났다는 의외성까지, 쉽게 관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자 미인이라는 점이겠지만!

호성이 또 한번 모두를 대표해 강민의 옆으로 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건...”

강민이 대충 둘러대려 할 때였다.

옆에서 에이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 녀석 애인.”

돌직구였다.

그렇지 않아도 경악해 있던 아이들은 이번엔 정말로 경악했다.

“애인!”

“말도 안 돼!”

“정말?”

강민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눈길에 질투와 시기, 그리고 부러움이 가득 들어섰다.

모두들 지금이라도 저 미인이 농담이라 말해주길 바라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에게 기회가 오진 않겠지만 혼자만 솔로면 억울하니까!

강민은 한숨을 쉬며 에이리를 노려봤다.

“너...”

“뭐 어때. 결국 알려질 얘기잖아.”

훗 웃으며 에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란 말이었다.

모두들 마음이 쓰렸다. 강민에게 패배감을 맛본 적은 여러차레 있었지만 이번 건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 같았다.

호성이 물었다.

“어, 어떻게?”

“아...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기니까... 지금은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 둬.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해 줄게.”

곤란한 얼굴로 강민이 말했다.

에이리와 알게 된 연유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터무니없게 들리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응.”

“쩝.”

모두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민과 에이리는 함께 소파에 앉았다. 에이리는 방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여기선 뭐 하는 거야?”

“말했잖아. 기지라고. 집결 장소지.”

“그것뿐이야?”

에이리의 반문에 강민은 변명처럼 말했다.

“앞으로 이것저것 많이 할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뭐 공부하고 훈련하고... 그리고 잡다하게 약간 하는 정도.”

강민은 그거면 충분하지 않냐는 듯 답했다.

에이리는 여기 와서 강민이 또 거창하게 무언가 모험이라도 하려는건가 하고 살짝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은 없는 것 같아서 실망했다. 모험이라면 에이리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흐응. 하긴 뭐 그냥 놀러 온 거니까.”

“언제든 와서 사용해.”

“그럴게.”

강민의 제안에 에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걸 호기심어린 눈길로 보던 중 강석이 물었다.

“저기 그런데 한국인 아닌 것 같은데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나는...”

에이리의 표정이 약간 곤혹스러워졌다. 일단 이곳 사람인 척하기로 강민과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나라라는 건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민이 그 순간 퍼뜩 나서서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강석이 맞냐는 뜻으로 되물었고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우즈베키스탄이란 이름을 떠올린건 별 다른 이유가 있어선 아니다. 그냥 어쩐지 에이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였다.

그러자 열광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오오, 그 김태희가 밭 맨다는?”

“한 가인이 아무 데나 돌아다닌다는!”

“그 우즈베키스탄!”

재철, 수구, 만수가 감탄한 듯이 연이어서 외쳤다.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커다란 환상이 존재한다. 거기 가면 미인이 아주아주 많다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곳 출신 아가씨들의 용모를 보고 생긴 한국 남자들의 환상이었다. 사실 강민이 에이리가 그곳 출신이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인터넷상의 환상을 여러 차레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 우즈베키스탄이야. 그렇지?”

“아... 응. 그래 맞아.”

우즈베키스탄이 뭐하는 나라길래 저렇게들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이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단지 신분을 위조하기 편한 나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의 노예가 된 소년들이 우글우글 몰려들어 에이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거기는 그렇게 미인이 많나요?”

“흠 어떤걸 미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침을 꼴깍 삼키며 재철이 하는 질문에 강민을 바라보며 에이리는 말했다. 어떻게 답하면 좋겠냐는 뜻이었다. 강민은 그냥 눈치껏 답하라고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에이리양 정도 수준은...”

재철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많이!

“그럼 없어.”

“아...”

재철은 크게 실망했다.

호성이 혀를 차며 머리를 한때 때리고는 끼어들었다.

“쪼다야! 세게 어딜 가 봐라! 에이리 양 만한 미인이 흔할 리가 있겠어!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헤헤, 그냥 한국에서 미인으로 치는 용모로 봐서 어떤가요?”

호성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호성은 집도 부자고 호성 개인도 용모나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서 다른 소년들처럼 껄떡댈 필요가 없다. 그래도 에이리의 아름다움이 너무 충격적이라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인터넷상의 환상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이 순간 혹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에이리는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 세계에서 자신의 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해 답하기로 했다.

이곳의 미인이 어떤지 상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오면서 광고에 나온 여자들을 많이 봤다. 그것보다 좀 못한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보면 좀 있는 편이지.”

에이리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있던 세계는 사실 남자고 여자고 이곳 기준으론 미남미인이 많은 편이었다.

“우즈벡 만세다!”

재철이 기뻐했다.

그는 진짜로 양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재철만 그런 건 아니었다. 과격한 제스쳐를 보이지 않을 뿐 다른 소년들도 기뻐하긴 마찬가지였다.

“음, 국제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그래. 거기서도 한국 남자들은 신랑감으로 좋아하는 편이라더라.”

그들은 수군수군댔다.

“요새 한국 여자들은 개념이 없기도 하고 말야.”

인터넷상에서 얻은 편견을 가지고 한국 여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민이 그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

“쯧쯧 인터넷에서 또 해괴한 소리나 주워듣곤. 아서라.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한 거지. 그리고 우즈벡 미인들은 눈이 없냐. 한국으로 시집오려는 우즈벡 여자들도 어차피 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걸거 아냐.”

“커흠, 그래도 뭐 좀 더 쉽지 않겠어?”

“맞아 맞아. 개념 비율도 좀 더 높을거고.”

멋쩍은 표정으로 재철 일당은 자신들의 의견을 옹호했다.

그들은 인터넷상에서 주워들은 한국 여자들의 무개념 행태, 이른바 된장녀들이 일으킨 사건에 대한 많은 보고를 접하고 이미 적지 않은 편견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여간 쯧쯧.”

강민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디나 그렇기 마련이지만 눈에 뜨이는 것은 자극적인 사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항상 자극적인 사건만 접하게 된다. 그래서 전체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게 된다.

특히 인터넷은 그런 경향이 짙은 곳이다. 눈에 띄는 사건이 소개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런 자극적인 사건만 쫓아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자주 하면 한국 여자에 대해서 된장녀, 보슬보슬 내리는 비 같은 여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그래도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철 일당이 저런 생각을 가지는 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강민은 봤다!

해괴한 광고들을!

대학 새내기란 계집애가 자기는 지갑이 필요없다며, 선배를 보고 ‘저기 지갑이 걸어간다!’ 며 빌붙는다는 신문 광고!

명품 가방을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장품을 발라 이뻐져서 남친을 만들어 사내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동영상 광고를!

어처구니없는 광고였지만 그딴 게 광고로 만들어질 정도라는 건 많은 여자들이 실제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가 여자들을 된장으로 만드는지, 원래 개념이 없는 애들이 된장이 되는 건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긴 하다만.

‘쯧쯧쯧.’

저절로 혀를 차게 되는 현실이었다. 에이리는 흥분하는 학생들을 흥미로운 듯이 보다가 문득 말했다.

“후후, 소개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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