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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46화 (46/227)

46화

“휴우.”

강민은 한숨을 쉬며 집으로 들어왔다.

혜경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변 눈이 있어 근처에서 내려주는 정도에서 그쳤다. 강민은 고맙다고 계속 손을 흔들는걸 얼른 들어가라고 잔소리하고서야 돌아왔다.

‘술에 세지도 않으면서 원...’

어쩌다가 저런 상황이 됐는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뻔히 싫어하면서도 권하니까 어쩔 수 없이 들이키다가 결국 큰 대자로 뻗을 정도로 마시게 된 것이리라.

‘나중에 잔소리를 좀 해야지.’

잔소리에 더불어서 과외비도 좀 깎아 받도록 할까 하고 생각하며 강민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늦은 시각이지만 별로 잠은 오지 않았다. 뉴스나 볼까 싶었다.

TV가 커졌다. 늦은 뉴스는 아직 하고 있었다.

느긋한 눈길로 강민은 그 뉴스를 봤다. 오늘도 대한민국은 소란스러웠다. 사기, 강도, 자동차, 정치싸움, 재벌의 횡포, 자살. 사건이 많기도 했다.

그런 중에 아나운서가 특이한 뉴스를 보고했다.

“고등학생 3명이 ‘장갑맨’을 자처하며 장난을 치다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고가 오늘 낮에 발생했습니다.”

“헉!”

강민은 경악했다.

뉴스의 내용은 이랬다. 세 사람의 고등학생이 장갑맨이랍시고 복잡을 갖춰 입고 학교에서 돌아다니면서 계단 타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잘못 착지해 연속으로 같은 꼴이 되어 그만 심하게 다쳤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정도.

“멍청한 것들.”

강민은 혀를 찼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나 돼서 저런걸 따라하다 다치는 놈들이 나오다니, 장갑맨이 생각 외로 인터넷 상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맨날 해괴한 사고만 터지는 한국에서 시원시원한 영웅상이 갑자기 나타난 셈이다. 갑갑하고 우울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고등학생이 혹해서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몰랐다.

강민은 계속 뉴스를 봤다.

강민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그의 방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남성의 복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나왔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에이리였다.

그녀는 강민이 소파에 앉은 것을 보고 짓궂게 웃더니 조심스레 걸어 왔다.

강민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에이리는 강민의 옆 자리에 앉더니 몸을 옆에 슬쩍 기대며 말했다.

“여자 냄새가 나는데.”

“헉!”

강민은 경악해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펄쩍 뛰어 올라 전투 자세를 잡고 내려 앉았다.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고는 얼빠진 얼굴을 했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옆에 나타난 여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에, 에이리?”

“안녕.”

에이리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강민은 현대 강민의 옷을 입고 있는 에이리에게서 이계에서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강민은 서둘러 물었다.

“네, 네가 여기에 왜?”

에이리는 이계의 강자다. 강민을 제외하면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검실력을 지녔다. 세간에선 그래서 그녀를 검후라 불렀을 정도다. 그런 만큼 그 지위와 영향력도 대단히 높아서 어지간한 소국의 국왕 따위는 비웃어 줄 수 있을 정도였다.

강민의 물음에 뭐 뻔한걸 묻느냐는 태도로 에이리는 답했다.

“그야 널 쫓아서 온 거지.”

“나를?”

강민은 황당하단 얼굴로 물었다.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보낼 거라 생각했어?”

이어 에이리는 얼굴을 지푸렸다.

“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여자 냄새가 몸에서 묻어나는데.”

강민은 당황했다. 혜경의 체취가 몸에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다 술에 취해 있어서 옮긴다고 직접 들어 움직여야 했으니 몸에 전체적으로 체취가 많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둘러 변명했다.

“아니 이건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란 항상 있는 법이지.”

에이리는 물론 코웃음을 쳤다.

“그, 그렇긴 한데 이건 진짜야.”

강민은 억울해서 말했다. 하지만 전과가 많았기 때문에 말하면서도 강민은 에이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에이리는 피식 웃으며 전혀 믿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한다면 일단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 어떻게 온 거야?”

억울함을 꾹 참고 강민은 물었다.

에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한 대로야.”

“개가 널 그냥 보내 줬어?”

강민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강민은 이계에서 두 여성을 사귀었다. 에이리는 그 중 한 명이다. 한데 두 사람은 보통 한 남자를 둔 여성들이 그리하듯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한 쪽은 검, 한쪽은 마법을 대표하는 시대의 강자라는게 문제였다.

사사건건 싸워댔다.

정말 사사건건!

아무리 세다지만 강민은 둘 다 데리고 다니는건 아무리 두 여인이 강력해도 도리어 전력을 깎아 먹는 짓이 아닌가 모험 중 진지하게 고려해 봤을 정도였다.

그러니 절대 한쪽이 오는데 한쪽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물론 공정한 승부를 해서 내가 이겨서 온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뻐기는 표정으로 에이리가 말했다.

“공정한 승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강민이 중얼거렸다.

과거 둘은 강민이 있을 당시에도 여러차례 싸웠는데 산을 깎고 바다를 가르는 와중 치졸하고 옹졸하기도 세계최강급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공정한 싸움이라니. 믿기지 않을 수밖에.

강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 베스트 프렌드가 공증을 섰지.”

“하기야...”

그제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리가 강민의 위아래를 바라보며 다가가 물었다.

“너는 그런데 어려진 것 같네?”

“응. 어려졌지. 원래 나이보다 한 10살 정도.”

“흐응.”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강민을 뚫어저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강하게 느끼면서 강민이 물었다.

“부러워?”

“약간.”

에이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리 정도면 별로 늙은 것도 아닌데다 아름답기로는 짝을 찾기 어려울 지경인데 그래도 젋은게 부러운 모양이라 강민은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하하, 하지만 넌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몸이 변하거나 할 일은 없지. 그리고 꼭 부러워 할 건 아냐. 몸이 바뀌면 쌓은 힘도 사라지게 되니까.”

“바뀌지 않아도 사라진 것 같은데?”

에이리가 의아하게 말했다.

이곳에 도착해서 맨 처음 그녀가 느낀 것은 거대한 공허감이었다. 온 몸을 항상 채우던 막대한 힘이 일거에 텅비고 한 줌 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런 감각.

“내 경우는 정말 바닥을 쳤다고.”

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힘이 많이 줄어 들거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세계와 지구는 대기에 함유된 마나의 양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강민의 경우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예전의 육체로 돌아갔기 때문에 모험 와중 얻었던 무수한 힘의 대다수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곳간이 털린데다가 한 번 더 홍수가 나서 쓸려버린 셈이다.

에이리도 힘을 많이 잃긴 했겠지만 강민에게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에이리는 자신이 접근할 당시 강민의 모습을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예 눈치를 못 채더라.”

그렇게 말한 다음 에이리는 후후 웃었다.

강민은 불쾌한 표정이 됐다.

“뭘 좋아하고 있어.”

“좋아한다기 보다... 그냥 옛날 꿈이 이상하게 이뤄진 게 우습잖아.”

에이리는 심술궂게 말했다.

과거 에이리의 목표.

그것은 강민보다 강해지는 것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대결로 시작됐다. 그 대결에서 강민이 승리함으로써 더 마그누스의 전설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에이리는 오래도록 강민을 넘어서는 걸 목표로 했다. 그와 동료가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서 그 목표는 얼마간 무뎌지기는 했으되 결코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쳇.”

“삐졌어?”

불쾌해하는 강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에이리가 물었다.

“나를 뭘로 보고. 그런걸로 안 삐져.”

“후후. 나도 이런 상황에서 너보다 강해진 걸로 좋아하진 않아.”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민보다 강해지는 것!

그것은 정말 그녀에게 오래도록 중요한 문제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 강해진 것은 실제로 의미가 없었다.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일 때 강민보다 더한 강자가 되는 것. 그것이 진실로 강민을 넘어서는 것 일테니까.

“그런데 정말 약해진 것 같더라.”

“그래도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데는 아무 문제 없어. 그리고 너, 방금 그렇게 등장하는건 내가 아니라 이 지구상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 할걸. 강력한 레이다 같은 거나 될까.”

강민이 말했다.

에이리는 알 수 없는 말이 끼어든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레이다?”

“숨어 있는걸 발견하는 기계 같은 거야.”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긴 이상한 기계가 많은 곳이라고 했지. 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그건 확실히 알겠더라. 마법도 아닌데 마음대로 불이 들어왔다 꺼지는 것도 그렇고, 이런 좋은 천으로 된 옷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도 그렇고.”

이계에서는 마법으로나 만들 수 있는 천이었다. 그리고 가구들의 디자인도 공들여 장인들이 만든 것 같이 훌륭했다.

하지만 강민에게서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가 부자라는 말은 없었다. 이 집도 좁았고. 그러니 평범하거나 약간 잘사는 정도일 텐데 이계에서라면 큰 부자나 가질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만큼 기술 격차가 심하단 뜻이었다.

“디자인은 해괴하지만.”

에이리는 자신의 옷을 손으로 잡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게 불만이었다. 여기 옷들은 재질은 좋은데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해괴한지 생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 보기엔 그쪽이 해괴해.”

강민은 간단히 에이리의 의문에 답했다.

이어 에이리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네가 이곳에서 괴롭힘 당하는 입장이었단 말 듣고 믿지 않았는데 와 보니 정말 같군. 상상 이상으로 힘이 약한 곳이야.”

“뭐 대신에 다른게 발달했으니까.”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계에 강민이 소환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재질 때문이다. 세상에 자살하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강민이 소환될 수 있겠는가.

그건 강민의 마나에 대한 재질이 유례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마나란게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런 재질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다 왕따에 처하고, 못 견뎌 자살을 하게 된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렸다.

그래서 강민이 자신이 살던 세상 이야기를 하면 강민의 동료들은 대체로 못 믿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중 가장 못 믿는 것이 강민이 왕따로 괴롭힘 당하고 지내던 피해자였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나가 없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것이 발달할 수 있고 지금 문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악마도 없고. 좋고 나쁨을 말한다면 강민 개인의 입장으론 손해가 막대 했지만 이쪽이 훨씬 좋은 세상이었다.

에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여기서 신세 좀 지도록 하겠어.”

“으음.”

강민의 표정이 그 말에 굳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게 당연하긴 한데 에이리를 이 곳에 머물게 한다니, 참으로 곤란한 이야기였다.

“표정이 왜 그래?”

“그게 여긴 분명 내 집이긴 하지만...”

강민은 곤란한 얼굴로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딩동.

“헉!”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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