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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42화 (42/227)

42화

콘서트 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처음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로 돌아갔다. 거기서 강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후우.”

“왜 그렇게 급히 빠져나온 거야?”

이끌려 빠져나오긴 했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혜경이 물었다.

강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수한 거 같아서 말이죠.”

“무슨 실수? 노래 잘 불렀잖아. 정말 놀랐어. 네가 그렇게 잘 부른다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투로 혜경은 말했다.

강민은 이벤트에 나가 노래를 불렀고, 정말 잘 불렀다. 많은 이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했을 정도였다. 어디서도 문제가 될 만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에겐 그게 문제였다.

“그게 실수죠.”

“그게 왜 실수야?”

역시 알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하며 혜경은 물었다.

“그냥 부른 건데 다들 너무 열렬히 반응하잖아요.”

“그게 그냥 부른 거라고?”

“그렇죠. 별생각 없이 부른 건데…….”

경악하는 혜경에게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평범하게 강민이 목소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성량이 풍부하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강민은 육체 자체가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통 사람이 한 옥타브 올리기도 힘들다면, 강민은 4~5옥타브 이상 올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그러면서 또 듣는 이가 배 속이 울릴 정도로 크게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은 이계에서도 지구에서도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훌륭한 노랫소리로 들릴지는 상상도 못했다.

혜경이 얼른 말했다.

“너…… 공부하지 마.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좋겠다. 정말 잘 부르던데!”

“아니, 무슨 소릴 해요. 그것 때문에 당황한 건 도리어 난데. 그리고 정말 그런 재능이 있어도 나는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예요.”

강민은 사람 놀리냐는 어조로 말했다.

혜경은 답답했다.

“왜?”

“그냥 조용히 사는 게 좋으니까 그렇죠.”

명예와 부, 어느 것이든 강민은 세상의 정점에 서 봤다. 이제 와서 굳이 또 그런 걸 힘들여 추구할 이유가 없다.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손안에 쥘 수 있는 싸구려 장난감과 다를 바가 없다.

“조용히?”

혜경은 한층 놀란 표정이 됐다.

하지만 강민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요. 사람들 주목 받고 그런 거 안 좋아한단 말이에요.”

“아…… 그래서 당황했던 거구나.”

이제야 이해한 듯이 혜경은 말했다. 강민은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렇게까지 호응을 얻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정말 아깝다.”

미련이 남은 어조로 혜경이 말했다.

그러나 강민은 단호했다.

“그건 됐어요.”

“그러니.”

강민이 뛰어나다는 건 과외를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지금도 알 수 있었다. 좋은 대학도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혜경은 선생님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강민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게 아쉬웠다.

그러나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란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강민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혜경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인터넷에 내 얼굴이 뜬다거나 할 일은 없겠죠?”

“솔직히 말하면…… 포기하는 게 좋다고 봐.”

혜경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SNS와 스마트폰의 시대! 화제가 될 만한 일이 있으면 급속도로 대한민국 어디로든 전파된다. 강민이 콘서트 장에서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그 범주에 들어갈 만한 일이었다.

“으으…….”

“네가 바라든 바리지 않든 한동안 주변에선 시끄러울지도 몰라.”

혜경은 약간 심술궂게 말했다.

남들은 저런 능력이 없어서 좌절하는데 다 갖추고도 조용히 살겠다고 말하는 강민이 얄미워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지만…… 그렇게 된다면 한동안 꾹 참고 지내는 수밖에 없겠군요.”

강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인터넷을 타고 오늘 있었던 일이 전국 각지에 전달되는 것은 필연적이라 쳐도, 생각보다 크게 화제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기획사 연습생의 짜고 치는 데뷔 쇼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으니 여론이 그쪽으로 몰리면 다들 그렇게 생각해 줄 가능성도 있고, 그러면 큰 화제는 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핼 못하겠네. 그렇게 노래 잘 부르면서…….”

“삶의 지향점이 좀 다르다고 생각해 줘요.”

“응, 그렇게 알아두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혜경은 역시 아쉬웠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강민에 대해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걸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거기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내다가 강민은 이제 가야겠다 생각하고 혜경과 함께 도로로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가 차를 타는 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응, 오늘 즐거웠어.”

“저도요.”

강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경은 택시의 문을 닫으려다가 잠시 멈추고 강민을 향해 말했다.

“다음에 또…… 같이 놀자.”

“물론이죠.”

강민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혜경은 약간 가슴이 뛰었다.

*

공연이 끝났다.

땀에 젖은 소녀들이 휴게실에 들어섰다.

리더인 효린이 모두를 향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수고했어.”

“네!”

“고생했어요, 언니.”

모두 함께 밝은 얼굴로 답했다. 각자 의자에서 몸을 축 늘어뜨리면서 피로를 호소했다.

“아, 힘들었어.”

“그래도 좋은 무대 아니었니?”

“응, 굉장히 좋았던 거 같아.”

힘들어하는 한편 모두들 얼굴에는 흡족한 기색이 뚜렷했다. 오늘 공연은 트러블이라면 트러블이라 할 만한 것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굉장히 잘 진행된 편이었고, 관객 호응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뷰티걸의 멤버 중 하나가 수란에게 눈길을 돌렸다. 다른 멤버들의 시선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수란에게 모였다.

“유리 너, 걔는 누구였어?”

“그냥, 친구야.”

깜짝 놀라면서 수란은 서둘러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은 두 사람의 의혹을 한층 키웠을 뿐이었다. 이벤트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냥 친구라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디 연습생 아냐?”

“연습생은 무슨. 그냥 학생이야.”

“근데 정말 잘 부르던데. 굉장히 연습 많이 한 것 같아.”

“그래. 그 정도면 가창력 있다는 선배들이랑 비교해도 전혀 안 꿀려. 어쩌면 윗줄일지도. 진짜 네 말처럼 일반인이면 충격이다. 가수로서의 프라이드가 다 망가지는 느낌이야.”

투덜거리며 가혜가 말했다.

수란도 가혜 정도는 아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은 편이었다.

“나도 깜짝 놀랐어. 걔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니.”

“그리고 비주얼도 좋은 편이고.”

끼어들 듯이 효린이 말했다. 가혜가 방긋 웃는 얼굴로 거기 맞장구를 쳤다.

“응. 괜찮지? 특히 분위기가 좋았어. 자신만만해 보여서 남자답다 해야 하나.”

수란은 강민이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긴 했지만 또 살짝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다. 이런 걸 뭐라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민 옆에 있던 여자를 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기도 했다.

“근데 걔 꽤 화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겠지? 그렇게 주목을 받았으니까.”

“그럼 어디 기획사 같은 데서 스카우트해서 데뷔하는 거 아닐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른 멤버들은 강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모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비주얼에 그만한 노래 솜씨라면 인재에 목마른 기획사에서 눈독 들이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응, 그럴 수도 있겠다.”

“아~ 그러면 우리 기획사면 좋겠다. 친하게 지내게.”

“얘는 엉큼하게.”

“꺄르르르!”

뷰티걸의 멤버들은 깔깔 웃었다.

수란도 함께 그 대화를 하며 웃고 있는 중에 스마트폰이 웅 떨었다. 수란은 뭔가 하고 휴대전화를 잡아 확인했다.

-돌아오면 내 방에 좀 와 보렴.

수란이 소속되어 있는 소속사의 사장 김경길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방 안의 책상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는 고개를 들고 문을 바라봤다.

“들어오렴.”

“안녕하세요.”

덜컥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소녀가 들어왔다. 유리였다.

앉아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오, 유리 왔구나. 아니, 수란이지?”

“어느 쪽이든 마음대로 부르세요. 저도 요즘 유리라 불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쪽이 더 익숙할 지경이니까.”

수란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하! 그건 좋은 일이지. 예명의 인지도가 높단 말은 그만큼 네가 인기가 있다는 말이니까.”

“네. 사장님하고, 도움 주시는 다른 분들 덕분이죠.”

사장님.

수란은 눈앞의 남자를 그렇게 불렀다.

그가 바로 수란이 소속된 RK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김경길이었다. 그는 수란이 한 답에 환하게 웃었다.

“역시 모범생다운 답이구나.”

“그, 그런가요.”

수란은 조금 창피한 듯 말했다. 모범생 같은 성격은 연예인으로서는 끼가 없다는 평가를 듣기 좋은 것이라서 수란에게는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김경길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너한텐 그게 더 좋으니까.”

“네.”

수란은 안도했다.

그 사이 김경길은 책상 앞의 소파에 앉고는 손짓으로 수란을 불렀다. 수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김경길의 맞은편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이번에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네.”

“그 콘서트 때 네가 불러낸 학생 있지 않니?”

“아, 네. 강민이요?”

수란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 걔가 강민이구나. 그래. 그 학생 혹시 어디 소속된 연습생이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곤혹스럽게 수란이 답했다. 김경길은 기대하는 얼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걔가 올라와서 노래 부른 건 정말로 그냥 친구라서?”

“네. 강민이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아이돌 하려고 노래 연습한단 소리 같은 것도 들어본 적도 없고요. 하지만 저도 학교에 못 다녀서 아주 잘 아는 건 아니라서 잘 몰라요. 사실은 어디 소속되어 있던 걸지도…….”

수란은 그렇게 설명했다.

강민의 노래를 듣고 가장 놀란 사람 중 하나는 수란 본인이었다. 그냥 호의를 가지고 있던 같은 학교 친구 정도였던 강민의 노래 솜씨가 그렇게 압도적이라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사실 그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면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라도 화제가 되었어야 할 텐데 그런 일도 없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나요?”

수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경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수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닌데, 혹시 그 애가 생각이 있다면 우리 회사에 소속되도록 이야기 좀 해 주지 않겠니?”

“강민이를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수란이 반문했다.

“그래. 요즘 보기 드물게 정말로 노래를 잘하는 애더구나. 촬영된 영상을 보고 소름이 돋더라.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랄까. 그런 사람들은 팍 느껴지는 게 있거든. 걔한텐 그게 있었지.”

감격한 듯한 표정으로 김경길은 말했다.

김경길. 그는 현재 한국 연예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그런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그의 안목 때문이다. 그는 발굴되지 않은 보석을 누구보다 정확히 캐치해 내는 능력이 있었고, 그 안목에 힘입어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예 기획사인 RK 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강민은 하늘이 내린 스타 그 자체였다.

자본이 지배하기 시작한 지 오래인 지금의 연예계에서 스타란 사실 개인의 능력보다는 기획된 상품이다. 김경길 역시 그런 현실을 인정해 받아들였고, 거기 순응한 전략으로 박리다매 같은 연예인이란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천성이 프로듀서인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틀을 가진 스타가 한국에서 또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임을.

마케팅이나 인맥에 상관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분위기만으로 모든 걸 압도하는 슈퍼스타가 등장할 것임을.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강민을 보고 느꼈다.

그래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강민이가…….”

“부탁한다. 이야기 좀 해 주렴.”

간절한 표정으로 김경길은 수란에게 말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장의 표정을 보고 약간 놀라면서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번 물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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