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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40화 (40/227)

40화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여름임에도 해가 뜨지 않았고, 주변이 어두워 보일 정도의 이른 아침. 한적한 도로를 버스가 달렸다.

부우웅!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고 달린 버스가 한 정거장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내린 사람들 중에는 강민이 있었다.

도로변에 멈춰 선 그는 우선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강민이 사는 동네보다 약간 덜 도시화 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도시라 불릴 만한 곳이긴 해서 도시라는 곳이 가지는 번잡한 느낌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여기란 말이지…….”

한 번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강민은 중얼거렸다.

그가 도착한 이곳은 서류에 적힌 신상명세서에 따르면 이지연이란 소녀가 사는 곳이었다.

오늘 강민은 그 소녀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기와 도청기를 설치하기 위해 온 참이었다.

도착해 보니 도심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른 시간을 택해 움직였지만 도심에는 잠들지 않는 눈들이 아주 많아서 혹시 모를 위험이 항상 있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사람 눈만 피하면 거의 들킬 리는 없어 보였다.

예감이 좋아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강민은 소녀의 거처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

“아, 저기다.”

빠른 걸음으로 주소지를 찾아 걸은 지 15분 정도 지나서 강민은 서류에 기재되어 있던 주소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 강민은 약간 놀란 얼굴이 되어 있었다.

도착한 주변은 모두 허름하고 낡은 집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TV 같은 데서 간혹 이야기하는 판잣집촌 같은 곳이었다.

‘이런 애가 왜?’

여기 사는 아이가 조폭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폭은 결국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똥파리다. 무언가 얻어먹을 구석이 있는 곳으로만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곳에 사는 여자애한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있다고 치면 용모가 아름다우니 몸을 팔게 한다든가 하는 것밖에.

‘…….’

생각해 보고 기분이 나빠져서 강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있던 이계에서도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현대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인 일이기도 했다.

일단 이지연이란 소녀가 악당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는 틀림없는 사실이니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다. 그녀를 노리는 이유가 무엇이든 일이 터지고 나서는 늦다.

강민은 그 지역의 집들을 뒤져 결국 소녀가 사는 곳을 발견했다. 이 일대에 있는 다른 모든 집과 마찬가지로 허름하고 낡은 곳이었다.

강민은 소리도 내지 않고 담장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는 숨조차 쉬지 않고 움직였다.

스윽.

그 순간부터 강민은 기척 자체가 사라졌다.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강민은 먼저 집 주변의 창문 근처로 가서 집 안을 살폈다.

‘여기 있군.’

창문 너머 희미한 어둠에서 쌕쌕 잠들어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잠든 소녀의 모습은 사진처럼 아름답고 조용해 보였다.

강민은 창문을 손으로 잡고 천천히 열었다.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아서 쉽게 열렸다. 하지만 소리를 전혀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강민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 창문을 열었다.

창문이 열린 좁은 공간을 통해 강민은 온몸의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서서 바닥에 착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강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곧 방 안을 살피는 그의 동공이 커졌다.

‘찾았다.’

낡은 피처폰이었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피처폰 자체도 오래된 것이었다. 꽤 여러 해 동안 사용해 온 것 같았다.

처음 집을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꽤 어렵게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민은 조폭 놈들이 정말 이 소녀의 몸이라도 노리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들어 케이스를 분해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타났다.

강민은 품에서 준비해 온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꺼내 얼마 없는 휴대전화의 틈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것들이 워낙 소형이라 문제없이 딱 달라붙었다.

‘됐다.’

두 가지를 모두 붙이고 활성화 시키는 데 성공한 강민은 만족해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전화를 원래 형태로 맞추고는 놓아두고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가 빠져나가는 과정은 이곳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용해서,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조차 듣지 못할 정도였다.

이후 그는 창문을 닫았고, 왔던 길을 따라서 낡은 마을을 빠져나갔다.

***

소녀가 일어난 것은 그러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졸린 표정으로 눈을 뜬 그녀는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고, 더듬거리며 방을 뒤져 휴대전화를 손에 잡고는 화면을 켰다.

화면에 나타난 날짜와 시간을 보고, 그녀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분위기에 낡은 차림이었지만 어둠 가운데 하품하며 사지를 쭉 펴는 그녀는 놀랍게 아름다웠다.

*

강민은 문화회관의 밖에 있는 작은 정원 나무 그늘 아래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그 대상이 왔다.

“오래 기다렸어?”

“지금 왔어요.”

강민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혜경이었다.

오늘은 바로 뷰티걸의 콘서트 날. 강민은 이 자리에서 혜경과 만나 함께 안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호호, 그 대답 너무 티 난다.”

“그래야 의미가 있죠.”

“하긴 그것도 그런가. 그래야 늦은 쪽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낄 테니까.”

강민은 그 말이 옳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 혜경을 바라봤다.

평소와는 차림이 달렸다. 과외 때는 담백한 인상인데 오늘은 꽤나 화려한 여대생이란 느낌이었다. 옷도 감각적이고 화려했고, 화장도 평소보다 진한 편이었다.

본바탕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꾸민 혜경의 모습은 브라운관의 아이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예뻐 보였다.

“그런데 평소에도 그렇다 생각은 했는데…… 오늘은 정말 예쁜데요. 특별히 꾸몄어요?”

“흥! 네가 뭐라고 굳이 그렇게 꾸밀까. 평소에도 외출할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니는 거야.”

코웃음을 치며 혜경은 그렇게 말했다. 강민은 아쉬워하면서도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그래요? 음! 어쨌든 진짜 멋져요.”

“마음에 들어?”

혜경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민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굉장히.”

“호호! 그럼 뭐 과외 때도 이렇게 입고 나와 줄 수도 있지.”

“으음. 질풍노도의 청소년을 괴롭히는 건 선생님으로서 좋은 태도가 아닌데…….”

뻐기면서 혜경이 하는 말에 강민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혜경은 강민의 태도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엉큼한 생각을!”

“하하.”

못 이기는 척 맞아주며 강민은 혜경과 함께 회관 앞줄을 서는 곳으로 갔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긴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족히 천 명은 벌써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혜경이 놀란 듯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인기구나. 의외로 여자도 많고.”

“그런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보니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이 여자들한테도 호응을 얻는다든가? 그래서 여자 팬도 꽤 있다더군요.”

뷰티걸은 남성 팬들에게는 연인으로 삼고 싶은 여인이라는 이미지로 마케팅하지만, 여성들에 대해서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란 이미지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노래나 안무 역시 그런 이미지에 맞춘 것들로 주로 발표했다.

덕분에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물론 남성 아이돌 그룹의 팬인 여자들에게는 그저 자기 오빠들 인기를 깎아먹는 적일 뿐이지만.

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 남성향 그룹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을 고쳐야겠네.”

“그래도 뭐 남자가 메인 타깃 인 건 틀림없죠.”

줄을 선 이들 가운에 10명 중 7명은 남자니 그것도 틀림없었다.

줄을 서고 기다리는 동안 혜경이 물었다.

“그런데 저 아이들 중에 네 친구가 누구니?”

“저기 있죠. 쟤예요.”

강민은 문화회관 건물 전체를 덮듯이 커다란 광고 포스터가 붙은 것을 보고 그 가운데에 있는 수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유리?”

“맞아요. 본명은 수란이죠.”

“유리 쟤가 요즘 부쩍 인기 있다더니. 대단한 인연인데?”

혜경이 놀라서 말했다. 유리는 요즘 뷰티걸의 대표 멤버로 인식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하하! 그냥 운 좋게 아이돌 되기 전부터 친구였던 것뿐이죠. 뭐, 물론 그 전부터 학교에선 아이돌 대접 받았어요.”

강민은 멋쩍게 웃었다. 지금이야 그냥 예쁜 소녀구나, 생각하는 정도지만 이계로 건너가기 전에는 확실히 짝사랑을 했었다.

“그럴 만했겠다. 예쁘니까.”

“예쁜 것도 예쁘지만 공부도 잘했어요. 아이돌 안 했으면 누나 후배 됐을걸요.”

“그건 제법인데.”

혜경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서울대학생이다. 어지간히 공부 잘해서는 혜경의 후배가 되었을 거라 말할 수 없다. 오죽하면 전교 일등 자랑을 하는 이가 바보 소리를 듣는 곳일까.

“그렇죠? 요즘도 학교 와서 시험 치고 하는데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성적 좋아요.”

“너보다?”

“살짝 분하지만.”

강민은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혜경은 방금 전보다 더 놀랐다는 얼굴이 됐다.

“정말? 그건 못 믿겠는데. 너희 학교 무슨 특수학교야?”

강민은 정말로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혜경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강민보다 뛰어나다면 전국 석차로 등수를 내도 세 자리를 안 넘어갈 수준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기말 시험 이후로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이 좀 많이 오른 거예요.”

“그렇구나. 그래도 너보다 성적이 좋았으면 굉장하네.”

“그렇죠. 진짜 뭐 만화에서나 나올 거 같은 애였어요.”

“이제는 먼 나라의 공주님 수준이고.”

“그 비슷하게 된 거죠. 아이돌이니까.”

“후후, 뭘 그렇게 아쉬워해. 이런 미인 선생님을 곁에 두고.”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혜경이 옆구리를 쿡 지르면서 말했다.

강민은 별로 아쉽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리 보였나 생각하면서 혜경에게 말했다.

“자기 스스로 미인이라 하는 건 안창피해요?”

“사실이잖아.”

혜경은 얼굴을 붉히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강민도 인정하는 바였다.

“사실이긴 해도 말이죠.”

“호호, 자 그러면 영광으로 알고 잘 에스코트해야지.”

혜경이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때 앞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린 모양이다.

“그러죠. 그럼 함께 가실까요.”

강민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혜경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주변의 많은 남자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냈고, 어떤 남자는 저런 여자 친구가 있는 놈이 왜 아이돌 콘서트 같은 걸 보러 오나, 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

유리는 의상실에 있었다. 막 메이크업을 끝내고, 공연이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멤버들이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그녀와 마찬가지로 긴장을 떨치려 했다.

오늘 보러 와 줬을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수란은 그런 생각을 했다.

강민에게 티켓을 보냈고, 오늘 오겠다는 문자는 받았지만, 정말 올지는 모를 일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강민은 별로 이런걸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거울 앞에 놔둔 스마트폰이 웅 떨렸다.

수란은 얼른 쥐어 화면을 봤다.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보러 왔어. 힘내!

보낸 이는 강민이었다.

마음에 들어차 있던 불안 하나가 녹아 사라졌다.

-응.

수란은 얼른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문이 벌컥 열리고 무대 관리자가 들어왔다.

“시간 됐습니다.”

“네.”

리더를 맡고 있는 효린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자, 얘들아 나가자.”

“응.”

모두 부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문자를 한 번 보고 싱긋 웃고 폰을 가방에 넣어두려 했다.

그런데 그녀의 등 뒤에서 멤버 중 하나인 가혜가 까치발로 고개를 들고 화면을 몰래 훔쳐봤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친구가 왔다고 해서.”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수란은 얼른 답했다.

“어머 그래? 그럼 더 좋은 무대 보여줘야겠네?”

“응.”

가혜가 하는 말에 웃으면서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오늘 공연은 특히 기합을 넣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 수란의 모습을 보고 가혜가 수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얘는 되게 좋아하네. 혹시 몰래 사귀는 남자 친구 아냐?”

“나, 남자는 무슨…….”

수란은 당황했다. 사실을 말하는 건데도 가슴이 뛰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호호, 당황하는 게 더 수상한데?”

“무대를 앞두고 친구까지 와서 긴장한 것뿐이야.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가자.”

“치이.”

수란은 애써 평정을 유지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먼저 걸어 나갔다. 가혜는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수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땅. 따당!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둡던 콘서트 홀이 갑자기 확 밝아지고, 커다란 소리가 나며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홀을 메운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열광적인 환호는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콘서트 무대의 중앙이 갈라지고 그 위로 천천히 무대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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