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싸움은 시작하고 나서 1분도 되지 않아 재철이 이기는 걸로 결판났다. 실컷 얻어맞고 상대 일진은 질질 짜면서 재철 아래서 싹싹 빌었다고 한다.
만수와 수구는 그걸 촬영해서 협박 재료로 써먹었다.
“이게 그거지.”
호성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촬영된 영상을 켜서 강민에게 보여줬다. 당시 호성도 그 자리에 있었다.
어두운 밤의 놀이터에 비참한 얼굴의 고등학생이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싹싹 빌고 있었다.
-자, 잘못했어……. 안 그럴게……. 말 잘 들을게…….
-그래. 너는 이제부터 내 셔틀이다. 알겠냐?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하는 거야.
-으, 응.
-만일 병신 같은 생각 하면 두들겨 패는 건 물론이고 이거 촬영한 거 인근 애들한테 전부 다 뿌린다. 그럼 너는 그 순간부터 이 지역 모두의 셔틀이 되는 거야. 알겠냐?
-아, 알겠어.
영상은 거기서 끊겼다.
재철은 뿌듯한 표정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강민이 학교에 돌아온 이후 그의 인생은 암흑이었다. 밟으며 살던 인생이 밟히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오랜만에 재철은 자신이 일진이라는 실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강민에게 말했다.
“그런 놈들은 아무것도 아냐. 방학 개학하고 나면 그놈 밑에서 셔틀질 하던 애들은 전부 해방될 거야. 이제 그놈은 내 셔틀이지.”
“음! 셔틀이라.”
셔틀이란 말을 듣고 강민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재철은 겁먹고 말았다. 이번 일 자체가 강민이 학교에서 셔틀이란 걸 없애려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셔틀로 삼는 자체가 그는 싫은 것 같았다.
재철은 조심스레 물었다.
“아, 안 돼?”
“아니, 그놈은 셔틀로 써도 좋아. 앞으로 때려눕히는 일진이란 새끼들도. 내가 손봐주고 싶긴 한데 귀찮으니 니 선에서 교육 잘 시키고 밟아둬. 졸업할 때까지 그 쉐리들은 네 담당이다. 철저하게 괴롭혀.”
강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재철을 밟았듯이 그놈들도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지만 그래선 숫자가 너무 많다. 차라리 재철이 철저하게 괴롭히는 게 나을 것이다.
재철은 그런 쪽으로 일가견이 있다. 이른바 이독제독이라고나 할까!
“헤헤, 그럴게!”
재철은 강민의 승낙이 떨어지자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일진으로 돌아갔다는 실감에 기쁜 것이다.
호성이 옆에서 강민에게 말했다.
“다른 놈들도 하나하나 정리할 거니까 2학년 통합해서 네가 말한 대로 하는 건 안 어려워. 문제는 말했듯이 3학년이지. 사실 3학년 중에는 1, 2학년 일진이란 것들한테 상납 받고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 상납하고 있는 애들은 일단 맨 뒤에 처리해야 할 거야. 3학년과 싸우기 바로 전에.”
“알겠어. 그건 호성이 너한테 맡기지. 네가 알아서 진행해. 정말 감당 안 될 거 같으면 날 부르고. 그보다, 그럼 오늘부터는 3학년과 싸울 걸 대비해서 무술을 좀 가르쳐 둬야겠지.”
강민이 무관심한 어조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강민이 한 말에 재철 일당과 호성은 동시에 꿀꺽 침을 삼켰다.
“오, 오늘부터?”
“나도 괜찮아?”
“오오오.”
강민에게서 무술을 배운다!
그건 굉장한 일이었다. 그들은 강민이 얼마나 강한지 아니까. 그 강함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러면 평생 먹고사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강민은 기대에 가득 찬 그들의 표정을 둘러보며 말했다.
“좋아만 하지는 마라. 세상이 어디 편하기만 하랴.”
“그 정도야!”
“당연히 견딜 수 있어!”
모두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천하무적의 사나이가 된다고 하면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민은 피식 웃었다. 이런 태도가 과연 얼마나 갈지 싶어서였다.
노력해 보지 않은 놈들이 노력을 우습게 알고, 안 아파 본 놈이 아픈 걸 우습게보는 법이다.
어쨌든 사실 강민은 편리한 도구가 필요했으니 재철 일당과 호성을 단련시키는 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그들에겐 시킬 일이 많다.
도구를 만드는 장인의 심정으로 강민은 눈빛을 매섭게 바꿨다.
“그리고 경고한다. 나한테 배운 걸로 어디서 거들먹거리고 애들 괴롭히다 걸리면 니들은 요단강 익스프레스 편도 티켓을 끊은 거라는 것도 알아둬.”
강민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그들은 바싹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 공포와 더불어 오래도록 얻어맞아 왔던 고통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도저히 강민의 말을 거부할 용기는 들지 않았다.
호랑이 앞의 개꼴이었다.
“으, 응.”
“명심할게.”
“이, 이제 그런 거 안 해. 헤헤.”
“당연하지!”
모두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안심했고, 강민이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한 것을 지킬 줄 한다.
“좋아.”
강민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들을 이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
옥상의 창고 건물이 만드는 그늘 아래에 네 사람의 남학생이 큰 대자로 뻗어 있었다.
“허억, 허억…….”
“케에…….”
“끄르르…….”
“어으…….”
새파랗게 질린 얼굴.
호흡조차 힘겨운 듯한 표정.
덜덜 떨리고 있는 사지.
극심한 운동을 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들 네 사람은 호성과 재철 일당이었다.
그들이 헉헉대는 옆에는 강민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지쳤냐?”
“더, 더 이상은…… 도저…….”
“우엑!”
호성에 이어 재철도 입을 열려다가 결국 못 버티고 바닥에 구토를 시작했다.
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강해지겠다면서 이 정도도 못 버텨서야.”
겨우 30분 만에 뻗은 네 사람을 보는 강민의 눈동자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자로 뻗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네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 그래도 이건…….”
“나, 나도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해…….”
강민이 시킨 무술 훈련은 무술 훈련 자체도 그렇지만 그 전에 몸 이곳저곳을 찌르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단지 찔리면 아프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몸이 굉장히 무겁고 호흡이 어려워져 버린 것이다. 입에는 마스크를 씌우고, 몸에는 30㎏짜리 가방이라도 멘 것 같았다.
그 상태로 강민은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10분 만에 항복 선언을 할 운동을 넷에게 강요했다. 넷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그러면 이 정도로 하고 쉴까.”
“헥, 헥…… 헥, 헥…….”
“케엑, 케엑…….”
“으으…….”
강민의 휴식 선언에 안도하며 그들은 헐떡였다.
부들부들 떨며 호성이 다가와 강민에게 물었다.
“이래서…… 괜찮아?”
“경혈을 열어뒀기 때문에 금방 회복될 거야. 다른 일진 놈이랑 결판 낼 때쯤이면 많이 회복되어 있을 거야.”
그럼 다행이긴 했다.
하지만 호성의 표정은 도리어 이 때문에 어두워졌다.
정말 호성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호성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대로는 몸이 못 버틸 거 같으니 훈련을 조절하고 계획을 재고하자! 라는 거였다.
말 돌려서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겠다는 생각에 비굴하게 웃으면서 호성은 말했다.
“저, 저기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
“당연한 거 아냐?”
선량하게 웃으며 강민은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호성은 물론, 바닥에 뻗어 있던 재철 일당에게도 지금 대답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그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상체를 일으키며 새파란 얼굴로 외쳤다.
“나, 나, 나 강해지는 거 포기할래!”
“안 가르쳐 줘도 좋아!”
“응! 그런 거 됐어! 사람은 역시 태어난 대로…….”
강민은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호성은 헉, 하는 공포에 질린 신음 소리를 냈다.
하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재철 일당은 따라서 하하하, 웃으며 강민이 자비로운 결정을 내리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눈을 부라리며 마왕처럼 이어지는 강민의 선언!
“너희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니들이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거 너희 자신을 위한게 아냐. 다 내가 편하기 위한 거야.”
“헉!”
“으으…….”
“그, 그러면?”
강민이 하려는 말을 눈치채고 재철이 떨면서 물었다.
강민은 악마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너희는 좋든 싫든 앞으로도 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하늘이 노랬다!
***
지옥 같은 훈련을 마치고 다시 기지로 돌아온 재철 일당과 호성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땀을 흘릴 걸 예상했기에 옷도 여분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석은 그들이 파김치가 되어 덜덜 떨며 돌아오는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며 강민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강민은 호성이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방으로 들어오라 말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말리며 호성은 안으로 들어갔다.
“왜?”
“내가 깡패 새끼들 털었을 때 사실 돈만 나온 게 아냐.”
“그래?”
“이런 것도 나왔지.”
말을 굳이 길게 끌 필요가 없다 생각한 강민은 꺼내 뒀던 사진과 서류를 호성에게 내밀었다.
호성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걸 받아선 살폈다.
그는 금세 놀란 표정이 됐다. 사진에 찍힌 소녀가 대단히 아름다워서였다.
“와, 예쁜데. 수란만큼 예쁘다.”
“그렇지?”
강민도 그 점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동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걔 사진하고 신상명세서가 깡패들 금고 안에 있더라고.”
“그게 왜?”
강민의 말에 호성은 아직 왜 이게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널 부른 거지. 왜 그놈들이 이런 걸 안에 넣어 놓은 것 같아?”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니……겠지?”
깡패의 금고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아무래도 무언가 더러운 일의 표적이 되어 있다든가 하는 정도밖에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너한테 도움을 구하려고.”
호성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한 표정이 됐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성은 무슨 도움을 구하는지 알려고 했다.
“음, 말해봐.”
“흥신소 같은 데 부탁해서 이 여자애한테 도청 장치 같은 거 붙여 둔다든가 못 해?”
“뭐? 그건 범죄잖아. 좀…….”
흥신소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하지만 그들도 간판을 세우고 사업자 등록을 해서 하는 일이니만큼 법에 저촉되는 일은 피하려 한다.
“그래도 조폭들이 노리고 있잖아. 보호하려고 하는 건데 수가 없겠냐?”
“으음……. 가서 직접 이야기해 보는 건 어때?”
호성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신뢰를 얻기까지 과정이 피곤해. 그리고 나에 대해 아는 사람 숫자는 최대한 줄여야지. 혹시 이 애가 큰 사건에 휘말려서 경찰을 봐야 한다면 나하고 했던 이야기도 토해낼지도 모르잖아. 그런 건 피해야 해.”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아직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장갑맨의 이야기로 날밤을 새는 인간들이 득실득실하다.
그럼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호성은 떠오른 것이 있어서 퍼뜩 말해봤다.
“경찰에 제보하는 건?”
“뭐라고 설명하려고? 할 수 있으면 네가 해라.”
강민이 혀를 차며 지적했다.
호성은 불가능할 것 있느냔 태도로 말했다.
“음! 그냥 경찰에 이 서류 가지고 금고에 있었더라면서 제보해 버리면 되지 않아?”
“그게 진짜 제보로 보이겠냐, 아니면 장난으로 여겨지겠냐?”
“그건 그런가.”
“그리고 얼마 전에 조선족 새끼한테 여자애 당한 거 못 봤어? 일이 터지고 나면 늦을 수도 있잖아. 이런 일에 경찰은 별로 믿음직한 대상이 아닌 거 같단 말이야.”
경찰은 피해 여학생의 전화를 장난으로 알았다고 한다. 결국 살해된 다음에야 경찰은 도착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만일 조폭들이 그 여자애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거라면 경찰에 기대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싶었다.
호성은 강민의 설명을 들은 다음 쓸 만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얼굴을 찌푸렸다.
“꼭 해야 되겠어?”
“능력이 없으면 모른 척하는 것도 방법이지. 하지만 나는 힘이 있어.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빤히 보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당당하게 강민이 말하는 내용에 호성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을 쳐다보는 호성을 보며 강민은 낄낄대며 물었다.
“호구 돋냐?”
“약간.”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자체가 점점 더 바보짓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강민처럼 당당하게 다른 사람을 도울 거라고 하는, 그리고 지금 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움직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강민의 지금 하려는 일은 ‘호구’ 같은지도 모른다.
호성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멋지다고 생각해.”
호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또 강민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사실 남자치고 어렸을 적에 영웅을 꿈꿔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을까. 그저 머리가 커지면서 꿈을 포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강민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고 그런 능력이 있었다.
같은 남자로서 멋지다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성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하하! 그럼 너도 멋진 거야. 나는 네 도움을 얻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강민이 말한 것에 호성은 흥분됐고 기뻤다.
강민이 말하면 전부 진짜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으면 시시하고 지루한 생활 같은 것과는 완전히 결별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도청기라면…… 구할 수 있어.”
경비대장 아저씨랑 요근래 친해져 있었다. 친구들끼리 노는 데 쓴다고 하면 그 정도는 구해다 줄 수 있으리라.
강민은 반가운 표정으로 이어 물었다.
“위치추적기는?”
“얘기해 볼게.”
“좋아, 부탁한다.”
“그래.”
“기억해 둬. 너는 이걸로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를 구하는 것일지도 몰라.”
강민이 웃으며 부추겼다.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영웅이 된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