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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9화 (29/227)

29화

“흠!”

“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사냥하려 들고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재철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고, 그는 이어서 제안했다.

“여기선 솔직히 강민 님이 나서주셔야…….”

“아니야. 그럴 필욘 없다고 봐. 나는 소 잡는 칼이니까. 시끄러워지는 것도 싫고.”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강민 본인이 나서면 그런 정도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한답시고 하는 일이지만 폭력이 섞여드는 만큼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호성이 아쉽게 중얼거렸다.

“그치만 닭 잡는 칼이 없으니…….”

“괜찮아. 내가 몇 수 가르쳐 주지. 그러면 3학년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거야. 호성 너도 마찬가지야.”

강민이 말했다.

모두 헉,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강민에게서 싸움을 배운다니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단순히 짜증 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재철이 이건 사실 엄청난 행운이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호성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물었다.

“그렇지만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게 오래 안 걸려. 기껏 애새끼들 상대하는 정도 가르치는 건데 뭐. 그런 양아치들은 금방 어린애처럼 굴릴 수 있게 될 거다.”

“그런데 2학년한테 졌다고 3학년이 굴복할까요? 자존심 문제가 있다면서 더 빡쳐서 공격할 것 같은데…….”

재철이 조심스레 생각을 밝혔다. 강석도 거기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때는 호성 네 힘이 필요하지.”

강민이 말했다. 호성은 놀란 표정이 됐다.

“저요?”

“너희 집안 힘을 좀 빌리자. 너희 집안 들먹여 윽박질러 버려. 그러면 쫄아서 아무 짓도 못할 거야. 어차피 조폭 똘마니나 짜장 셔틀로 진화할 새끼들 아냐? 너희 집처럼 진짜 권력을 가진 데서 화내면 입 싹 다물걸.”

“으음.”

호성은 약간 생각하는 표정을 보였다.

강민은 그의 근처로 다가가며 친근하게 웃고는 어깨를 툭툭 쳤다.

“주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너도 나한테 몇 수 배울 거니까. 게다가 좋은 일 하는 거잖아. 힘 좀 써 봐. 내 밑에 있는 애들 중에 네가 제일 믿을 만하니까 부탁하는 거야. 나중에 네 공은 다 기억했다가 갚으마.”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호성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이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강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무관하게 호성은 강민이 엄청난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상대가 자신을 높게 평가해 준다면 역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좋아. 그러면 이제 강석!”

“응! 뭐든 말만 해!”

“너도 매일 9시까지 와서 얘네 공부 좀 봐줘라. 빡세게 굴려도 상관없어.”

“히, 힘내 볼게.”

강석은 뭐든 한다곤 했지만 재철 일당의 얼굴을 보니 자신감이 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 왕따 당하며 일진에게 벌벌 떨던 학생이 학내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소문이 있는 일진을 상대로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없을 때 이놈들이 농땡이 부리지 않도록 감시도 좀 해주고. 할 수 있지?”

“응. 그래.”

“절대 배신하면 안 된다.”

강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강석 역시 그 말에 굳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인간 강석! 은인을 배신할 정도로 썩진 않았어!”

각오가 가득한 대답이었다.

상대가 무섭긴 해도 든든하게 받쳐주는 데다가 큰 신세를 졌다. 그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든 것이다.

강민은 그것이 마음에 들어 웃었다.

“그래. 믿는다.”

하지만 강석의 각오가 어떠하든 재철 일당과 함께 남겨두고 공부를 진행시키다 보면 사고를 피하긴 힘들다. 양에게 늑대를 감독하라는 셈이니까.

보험을 들어둘 필요가 있다 싶어 강민은 무서운 얼굴로 으름장을 놨다.

“너희, 엄한짓 했다가 걸리면 기지에 CCTV 설치해 두는 수가 있으니 시키는 대로 잘 해라.”

“으으……. 알겠습니다.”

모두 무서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많이 맞았음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으니 항상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걸로 기지에서의 활동 방침도 정해졌군.”

강민이 하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운데 호성은 강민을 바라보며 놀랍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물론 돌도 부수고 어마어마하게 높이 뛰는 데에서 이미 보통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할 일을 설명하고, 또 그런 것들을 실행해 나가는 모습은 정말 또 다른 의미에서 대단해 보였다.

호성이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마치 강민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지도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오후.

이날은 일요일이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강민은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몇 차례인가 버스 정류장 안내가 있었고, 곧 목적한 정류장에 도착했다.

강민이 내린 정류장은 바로 부모님의 가게가 있는 곳이었다.

‘흠.’

버스에서 내리는 강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모님의 요즘 들어 어둡던 표정.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아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인터넷으로 조사해 봤다. 그만한 맥주맛이면 화제가 되지 않을 리 없고, 실제로 맥주를 맛보고 난 다음 한동안 두 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인터넷으로 좋은 친구와 맥주를 섞어 검색하니 관련 결과가 수천 건 이상 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맥주 맛에 대한 감탄이었고, 또 상당수는 자리가 없다는 불평이었다.

칭찬도 불만도 많았지만 대부분이 맥주 맛의 호평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장사가 얼마나 호황이었던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현재 두 분의 표정이 저렇게 어두운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강민은 좀 더 조사했다.

곧 실체가 드러났다.

어떤 날을 기점으로 불평이 잔뜩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기괴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의 대부분이었다.

좀 까다로운 손님의 경우는 안주가 너무 평범하다든가, 아니면 종업원 교육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그래도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불평이었다.

한데 그 시기를 기준으로 해서 생기는 불평들은 보통 평범한 가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가지 마세요. 위험한 곳입니다.

-진상들만 찾아와요! 이래선 맥주 맛이 아무리 좋아도 곤란하죠.

-추천 안 합니다. 진짜 아까운 가게긴 한데 그 꼴이라서야.

-그 가게 주인 깡패랑 원한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도저히 못 가겠던데.

-멀쩡한 손님은 우연히 들어가기만 해도 쌍욕을 해대면서 시비를 걸어요. 금방 떠나야 하죠. 그런 데서 있을 수 있겠어요?

-줄도 못 서게 하려 한다니까요.

-저거 어떻게 못 하나.

대체로 그런 의견들이었다.

가게에 대한 인터넷 포스팅에 달린 댓글에서도 분위기는 대동소이했다.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오늘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해지는 시내의 거리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괴로운 월요일을 잊기 위해서인 듯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을 즐기러 나와 있었던 것이다.

젊은 커플도 있었고, 중년의 남자들도 많았다. 어쨌든 거리는 완연히 유흥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강민은 부모님의 가게로 찾아갔다.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했다.

‘응?’

가자마자 보게 된 것은 매우 기괴한 광경이었다. 벌써 문은 열린 듯한데 문 앞에 일렬로 길게 줄을 선 남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험상궂은 용모였고, 불량스럽게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길거리에 가래침을 뱉었다.

그 때문인지 ‘좋은 친구’의 주변은 무척 더러워 보였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가게를 아쉬운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남자들의 모습을 보고 옆으로 피해 가기 일쑤였다.

‘저 개새끼들이…….’

강민은 이를 갈았지만 심호흡을 해서 우선은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런 데서 패 봐야 뒷일이 골치 아프다. 진정한 복수와 처벌은 그런 제반 사정을 고려한 다음, 다른 생각을 결코 못하고 지은 죄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콧물과 함께 흘리도록 잘근잘근 밟아주는 데 그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사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강민은 근처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 만한 곳에 들어간 다음 눈을 감고 귀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웅 하고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 전부가 강민의 귀에 잡혔다.

강민은 그것을 심호흡과 함께 정리해서 원하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도록 처리했다.

소리가 하나씩 사라졌고, 강민이 목표로 하는 소리만이 그의 귓가에 남았다.

그것은 바로 ‘좋은 친구’ 내부의 소리였다.

‘여기 맥주 500 하나.’

‘네.’

알바생의 목소리는 겁먹은 것도 같았고, 힘이 없었다.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손님…… 다 드셨으면…….’

‘아, 그래? 맥주 한 잔 줘.’

놀리는 것 같은 주문이었다.

한 잔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리는 게 맞다. 한 잔은 기껏해야 500㏄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른 테이블의 손님은 언성을 높였다.

‘여기 안주! 안주 내놔!’

‘손님, 맥주 한 잔 시키시고 기본 안주만 30번째 시키시면…….’

알바생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쾅!

‘뭐 이런 쓰레기 같은 가게가 다 있지? 씨발 더러워서 내가 간다. 퉤!’

신경질을 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손님의 침 뱉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야, TV 안 보이잖아. 비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강민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들려오는 소리만 가지고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안에 있는 것들은 손님이라기보다 ‘손놈’이었다. 진상, 블랙 컨슈머 등등 여러 가지 단어가 있지만 그걸로 저 꼴을 적절하게 표현하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개새끼들이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개아들내미 같은 것들이 우르르 몰려와 패악질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강민은 깊게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데 신경을 집중했다. 이번에 그가 신경 써 들은 것은 알바생들의 대화였다.

‘저 사람 벌써 두 시간째야.’

‘맥주 시켜둔 거 마시지도 않고…….’

‘이러다 가게 망하는 거 아냐?’

‘경찰 못 불러?’

‘경찰한테 이야기해 봤는데 소용없다는데. 전에 좀 심한 놈은 경찰이 와서 잡아갔잖아. 그렇지만 결국 훈방조치 되고 다른 놈이 와서 채웠는걸. 우리한텐 정말 짜증 나지만 결국 술 마시면서 앉아 있고 목소리 좀 크게 한 것 정도밖엔 없으니까…….’

그 말을 듣고 대화하던 알바생들은 모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아주머니랑 일이 있어 나갔다는데.’

‘요즘 아저씨, 아줌마 볼 때마다 살이 빠지시는 것 같지 않아?’

‘나라도 그렇겠다.’

세 알바생은 모두 강민의 부모님을 동정했다.

이어 그들 중 하나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몰라. 주인아저씨가 어디서 원한 살 분은 아닌데.’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실 알바생에 불과한 이들에게 이런 일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바란다는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했다.

‘쩝, 나는 주인아저씨한텐 미안하지만 여기 그만둘 거야.’

‘너도?’

‘별수 있냐. 저런 꼴 매일 보면서 어떻게 일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렇긴 하다. 그나저나 주인아저씨 불쌍해서 어쩌냐. 이번에 장사 잘된다고 가게도 크게 확장하고 비싼 요리사도 들여와서 나가는 인건비만 해도 매달 천만 원이 넘을 건데……. 빚도 많을 거고.’

‘그래. 이대로라면 한 달도 못 갈 거야.’

‘더러운 새끼들. 벼락이나 맞아라!’

다들 분노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체념의 기색이 느껴지는 알바생들의 대화였다.

‘어이가 없구…….’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대강의 사정을 파악한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상황인지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맥주 때문인가…….’

몇 년이고 조용히 장사를 이어오던 가게가 갑자기 이런 꼴을 겪게 되었다면 그 외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껏 맥주였다.

가족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강민은 모든 것은 이루어보았기에 도리어 욕심이 없었다. 돈 그 자체가 얼마나 크고 더러운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인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세상을 너무 소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소망마저 이런 식으로 짓밟고 자신의 탐욕을 추악하게 들이미는 자가 결국에는 나타나고 말았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했던가.

강민은 화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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