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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7화 (27/227)

27화

“저희가요?”

“저희가 어떻게…….”

당연히 강민 자신이 나서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화살이 자신들에게로 돌아오자 그들은 놀라면서 곤란하단 얼굴이 됐다.

하지만 강민이 도리어 기이하단 얼굴이 됐다.

“당연한 거 아냐? 재철 너 나름 이름 날리는 일진이라면서. 거기 호성 너도 그렇고.”

“그렇긴 하지만 그냥 반에서 일진인 거죠.”

이런 경우의 대처법은 군대와 같다. 괜히 나서면 일만 더 많이 부여받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최대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삼 학년도 있고요.”

“쯧쯧, 그러니까 이벤트가 된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끼리끼리 모인다고 일진들끼리는 연락망이 다 있을 거 아냐?”

“있긴 합니다.”

재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라 보통 그런 연락망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조직처럼 치밀하거나 한 건 아니고, 평범하게 친구들과 전화번호 교환하는 게 약간 더 발전된 정도다.

강민이 생각하기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거면 됐다. 방학 동안 학교를 통합한다. 그래서 재철이든 호성이든 니들 둘 중의 하나가 통합 일진이 되는 거야. 그리고 애 왕따 만들어서 셔틀질 시키는 걸 금지하는 거지.”

“어…….”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웃으며 강민이 말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결정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너나 재밌겠지!

이곳에 모인 강민단원의 현재 생각이다.

“뭐, 나름 특전도 있다. 착착 일이 성공해 가면 자유 시간도 주마. 이 일이 제대로 성공하면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애들이 없어지는 셈이니 봉사 활동 수백 시간 한 것만큼의 선행은 쌓은 셈이 될 테지. 그러면 2학기 때는 격주로 봉사 활동도 쉬게 해 줄게. 아니면 그냥 닥치고 공부만 할래?”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재철이 고개를 흔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안 하던 공부 따위 하느니 차라리 강민을 등에 업고 학교 짱이 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성공하면 주말에 자유 시간도 얻을 수 있다지 않은가. 그건 정말 매력적인 특전이었다.

“좋아.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만일 깨져도 복수는 해 주마. 내 셔틀은 오직 나만이 괴롭힐 수 있는 법이니까.”

“네에…….”

강민이 한 말에 모두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라 애매한 표정이 됐다.

어쨌든 적어도 강민이 방관하지만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니 나쁘진 않았다. 그가 나선다면 누구랑 싸워도 걱정할 게 없다. 지더라도 지는 게 아니다.

강민이 호성을 바라봤다.

“그러면 호성, 이만큼 들었으니 됐지? 너는 어쩔 거야?”

“저는…….”

호성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학교 폭력 근절 프로젝트라는 일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스터디 그룹에 참여해 그냥 조용히 방학을 보낼 것인가.

둘 모두 장단점이 있긴 했는데 학교 폭력 근절 프로젝트의 경우는 특전이 정말 군침 돌았다.

결국 호성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호성이 너는 일단 방 같은 것 좀 마련해 봐라. 방학 때는 학교에 안 올 테니 따로 모일 곳이 필요하잖아. 공부도 해야 하고.”

“제가요?”

내가 왜, 라는 표정으로 호성이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방을 구하는 건 돈이 드니 당연하다. 작은 고시원만 해도 한 달에 20만 원은 든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모일 공간 같은 걸 방학 동안 자유롭게 쓰려면 필요한 돈은 적어도 두 배는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강민은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그래. 너 부자잖아. 나 괴롭힌답시고 애들한테 뿌린 돈만 해도 그 정도 구하는 데엔 문제없을 거 아냐. 아니면 사람 괴롭히고 자살로 몰기 위한 백만 원은 아깝지 않지만, 여러 사람 돕고, 단원들의 복지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서 눈물이 다 나냐?”

“아, 알겠습니다.”

한 대 때릴 듯이 무섭게 묻는 강민의 말에 호성은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강민을 다른 학교 일진까지 동원해서 손봐주려 했을 때 뿌린 돈만 해도 백만 원이 넘는다.

“뭐, 나도 부려먹기만 하진 않으마. 네가 방을 구하면 대신 너는 일의 성패와 관계없이 방학 동안 첫째, 셋째 주말은 놀아도 좋아.”

강민이 떡밥을 던져줬다. 호성이 이전 주말 하루당 이십만 원으로 사고 싶어 했던 걸 고려한 특전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호성은 진심으로 기뻐 환호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유가 이토록 소중했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성은 대단히 부유한 집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주 자유로이 살아왔다. 그걸 갑자기 제약 당하고 꼼짝달싹 못 한채 봉사 활동만 다녔는데, 부분적으로나마 그 자유를 찾게 되었다. 기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말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돈 일이백 따윈 호성에겐 솔직히 푼돈이었다.

‘후후후.’

호성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강민은 속으로 웃었다.

기대한 대로 효과가 좋았다.

사람을 부리기 위해선 너무 조여서도, 너무 풀어줘서도 안 된다. 그 정도를 철저히 조절하면서 가끔 먹이를 던져 주면 뜻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

그러면 적게 주고도 많이 준 것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금 호성의 모습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는 앞으로 열성적으로 주어진 임무를 실행할 것이다.

강민은 이어 재철 일당에게 지시했다.

“아, 그리고 너희, 호성한테 나 괴롭히기로 하고 받았던 돈은 모두 돌려주도록 해라. 방값하고 기타 운영비로 써야 할 테니까.”

“네…….”

재철 일당은 모두 썩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방학의 기본 스케줄은 짜인 셈이군.”

강민은 웃었다.

보람찬 방학, 아니 휴가가 될 것 같았다.

*

일요일 오전.

강민은 기이함을 느꼈다. 학교에서의 일이 잘 풀려가는 것과는 달리 집에서는 부모님들의 얼굴에 점차 그늘이 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랬다. 어제도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돌아온 부모님은 짧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선 우울한 얼굴로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휴우…….”

“휴우…….”

두 분은 모두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땅이 꺼질 것 같았다.

“흐음.”

이제까지 강민은 우선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일에 자식이 너무 참견하고 끼어드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두 분이 보이는 모습을 볼 때 심상치 않은 일이다 싶었다.

강민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강민의 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걱정은 무슨. 아니다.”

“그래.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렴.”

강민의 어머니 역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서 강민은 알 수 있었다.

뭔가 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어허, 괜찮다니까.”

아버지가 엄격한 얼굴로 끼어드는 걸 막았다. 강민의 어머니가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말했다.

“참, 그리고 방학 때 네 과외 선생을 모실까 한다.”

“과외 선생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걸요.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강민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성적을 올리는 건 독학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과외는 필요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걸 하게 되면 시간을 잡아먹힌다. 강민단원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강민단원들이야 그걸 더 좋아하겠지만.

“하지만 2학년 2학기면 곧 3학년 아니니. 3학년 때는 늦어. 좀 무리가 되더라도 꼭 모시기로 했으니 열심히 공부하렴.”

“네에…….”

부모님의 뜻은 완강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싶어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고민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현재 겪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로서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강민이 한창 공부 해야 될 시기인데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말해 봐야 강민에게 무슨 도움을 얻을까 싶은 생각도 있으리라.

“…….”

강민은 눈을 감으며 몰래 상황을 알아봐야겠다 결심했다.

이계에서 지구로 돌아온 것은 부모님의 저런 얼굴을 보고만 있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부모님을 저런 표정으로 만든 존재가 있다면 그 근원까지 파고들어 가 철저하게 그 뿌리를 박멸할 것을 마음속에 맹세했다.

강민의 표정이 순간 마그누스로 돌아갔다.

드래곤조차 공포를 느끼고 만다는 절대 강자의 표정으로.

***

수란은 분장실의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메이크업은 모두 끝났다. 거울에 비치는 수란의 모습은 수란이 아니라 이제 유리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팬을 늘려가고 있는 인기 그룹 뷰티걸의 멤버.

수란 자신이 보아도 아름답다 싶을 정도로 거울 속 유리의 용모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분장은 끝난 지 오래이니 나가야 할 텐데 홀로 분장실에 있다니 어쩐 일일까.

“휴우.”

수란은 깊게 심호흡을 했고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들어 올렸다.

스마트폰이었다.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금세 화면이 넘어가고 문자가 작성되고,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전달되었다.

-안녕. 나 수란이야.

그녀가 보낸 문장이었다.

답장이 돌아왔다.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수란은 그 답장을 읽었다.

-아, 수란이. 네 활약 항상 TV에서 잘 보고 있어.

답장을 보낸 사람은 강민이었다.

금세 답장이 온 것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수란은 글을 적어 보냈다.

-정말? 아는 사람이 보고있다 생각하면 사실 창피한데.

-아니야. 멋지던걸. 노래도 좋고.

-그래?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야 기쁘지. ^.^

이모티콘도 찍어 넣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일 없으면 연락도 못하니?

약간 심통이 난 듯 적어 보냈다.

-그건 아니지만, 너 바쁘잖아.

-아니야. 바쁘니까 더 이런 연락을 하고 싶은 거야. 너무 정신이 없으니까 주변을 챙기기 어려워서.

-확실히 그런 면도 있긴 하지.

강민이 보낸 대답에 수란은 웃었다.

-오오, 아이돌도 아니면서 아이돌의 고뇌를 아는 척하긴!

-아이돌은 아니지만 이해 할 수는 있어. 주변이 너무 빨리 변하고, 또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것만 같고,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고. 그런데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정말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거 아냐?

-와! 족집게. 어떻게 그런 걸 알아?

자신의 마음을 읽힌 것 같아 수란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전화 저편에서 그 문자를 받고 강민은 고소를 지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이돌을 경험해보지 않은 강민이 저런 말을 하는 게 놀라워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아이돌 정도가 아니라 영웅으로 지내왔다.

영웅은 몇 가지 면에서 아이돌과 그 속성이 비슷하다. 때문에 수란의 지금 심경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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