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호성이 찌푸린 얼굴로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접근을 원천 봉쇄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건 모두 포기하고 안전만 선택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 넓은 공터 같은 데서 단순한 구조의 집을 짓고 거기 사는 겁니다. 사방이 뻥 뚫려서 아무나 그 내부를 볼 수 있게 하는 구조로요.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있는 경호원들로 둘러싸고 지키는 거지요.”
간단히 말하면 그 누구도 경호 대상에게 몰래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호성은 남자가 말한 경호 방법에 따른 생활을 잠시 생각해 보고 곧 찌푸린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래선 감금 생활이네요.”
“사실 그렇습니다. 어디 갈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 같은 덴 특히 말도 안 됩니다. 대응이 어려울 것 같은 곳도 그렇죠.”
“돌 부수고, 점프 잘하고, 그게 그렇게 굉장한 건가요?”
총도 있고, 탱크도 있고, 미사일도 있는 시대에 그깟 돌 좀 부수고 점프도 잘하는 게 그렇게 엄청난 능력인가 싶어서 호성은 물었다.
“굉장하죠. 이라크 아시죠.”
“미국이 쓸어버린 동네잖아요.”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든가 없다든가 해서 미국이 군대를 이끌고 들어가 다 박살 낸 동네라는 정도가 호성의 그 땅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거기서 미군이 참 많이 죽었는데, 이 사람들이 약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정규군하고 대결했을 때는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기다시피 했습니다.”
미군은 지상군 2만 명 정도를 이라크에 보냈다. 전쟁은 공중폭격으로 적을 흔든 다음 지상군으로 청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거의 완벽한 승리를 달성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런데 점령 후 그 지역 관리하려고 들어가서는 줄줄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이라크 정규군은커녕 제대로 훈련도 안 된 이라크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아를 구분할 수 없는 환경이 되니 그런 거죠. 눈에 보인다고 다 쏴 죽일 겁니까, 어쩔 겁니까. 어느새 다가와서 쾅! 터지면 죽는 거죠.”
전쟁은 점령 지역에 있는 인간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벌이는 것이 아니다. 칭기즈칸이나 그런 무시무시한 위업을 이루었을 뿐이다. 히틀러도 실패했다.
이라크전 역시 명분은 자유와 평화였다. 그곳에 사는 민간인에 대한 몰살 작전이 아니다.
그러니 민간인과 게릴라가 구분되지 않게 되면 참으로 대처가 곤란해진다.
미국이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러했다. 민간인에 대한 미군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한층 그 상황을 나쁘게 했다. 게릴라와 민간인이 협력하는 경우가 다발한 것이다.
그래서 아군이 죽으면 미군은 민간인에 대해 험하게 대하게 됐다. 사소한 걸로 민간인을 의심해 구타하고, 심지어 집단 구타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도 흔했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라크 민간인의 미군에 대한 감정을 더 나쁘게 하고 미군의 테러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했다.
이런 걸 음의 되먹임이라 한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이런 경우 좋은 방법이 있었다. 일본 놈들이 쓰던 방법인데 독립군과 협력한 민간인은 의심되면 그 지역을 통째로 학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민간인들은 무서워서 독립군과 협력하길 꺼리게 된다.
하지만 미군은 그럴 수가 없다!
자유와 평화를 명분으로 이라크와 싸운 것인데 거기서 죄 없는 민간인을 무진장 학살한다니, 인권 개념이 많이 향상된 현재에 가능할 리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몇몇 막장 국가라면 그런 짓을 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지구의 보안관을 자처하는 미국은 그런 일은 대. 놓. 고 할 수는 없다.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진 것은 미국의 자업자득이지만 불쌍하다 싶은 면도 있긴 했다.
그리고 호성이 말한 대로의 적이라면 미군이 처한 것과 똑같은 문제를 경호하는 입장에서도 겪을 수밖에 없다.
“흠.”
“한국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땅에 비해 사람이 많은 곳이라 적아 구분이 잘 안 되는 것도 문제고, 또 적아 구분을 해도 즉각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총기 사용이 안 되니까요. 한 방에 적을 무력화시킬 만한 수단이 별로 없죠.”
“스턴건 같은 거 있지 않나요?”
호성이 물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상대 몸 위에서 꾹 누르면 기절하는 걸 많이 보아 왔다. 경호원들도 보통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출력을 좀 세게 해서 꾹 눌러 버리면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총만큼 확실하진 않습니다. 또 상대가 대비하면 효과가 없기도 하고요. 덤덤탄 같은 걸로 쏴야 효과가 확실한데…….”
덤덤탄은 상대의 몸에 맞으면 총 앞부분이 뭉개져서 관통을 못하도록 만드는 탄환이다.
단순한 위력을 따지면 보통 탄환보다 약하지만 관통하지 않기 때문에 총탄의 힘이 전부 상대의 몸에 박혀 버리기 때문에 탁월한 살상력 및 저지력을 가진다. 마약 하고 맛이 간 놈을 막을 때 아주 좋다고 한다.
마약 하고 미쳐버린 범죄자는 총을 맞아도 괴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총탄이 몸을 관통해버리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정줄을 놔서 통증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효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덤덤탄은 탄이 맞는 순간 뭉개짐으로써 근육과 뼈에 손상을 주기에 이에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영국이 인도 식민지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되어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 잔혹성 때문에 1907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단순한 육체 능력도 엄청나겠죠? 이런 사람은 그만큼 맷집도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훈련 많이 받은 정예이긴 한데 그런 상대라면 진짜 어린애처럼 쓸려나갈 겁니다.”
무섭다는 표정으로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맨손으로 돌을 박살 내는 힘이라니.
악력은 펀치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 주먹이 안면에 들어오면 보통은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자칫 죽을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악력만 강한 게 아니다. 점프해서 10m를 뛴다는데, 어떤 우람한 다리일지 상상도 안 됐다. 걷어차이면 몸이 딱지처럼 접혀 버릴 것이다.
그러면 달리기 속도 같은 것도 어마어마하리라.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상대는 그냥 근육으로 된 갑옷을 입은 괴물일 것 같았다. 어지간한 고릴라 급? 급소를 때리지 않는다면 다른 부분은 어지간히 세게 때려도 간지럽기나 할까.
“음.”
“그리고 그만한 능력이 있으면 사실 머리만 살짝 굴리면 진짜 미국 대통령이라도 간단히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경호원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해 보십시오. 길게 생각할 때는 몇 년 성실히 근무해서 대통령 옆에 서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짧게는 지지자 행세 하면서 악수나 하려는 때 노리면 되고. 진짜 방법이 없죠. 차라리 힘센 괴물이 편하지.”
그게 제일 무서웠다. 단순히 강한 적이라면 그나마 나은데, 자신의 능력을 살려 신뢰를 얻어 목표물 근처에 접근하고, 기회를 봐서 처리하려 한다면, 이건 정말 방법이 없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경호원으로 취직하기도 쉽고, 승급도 빨라서 금방 큰일을 맡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경호회사나 군대도 결국 인원은 꾸준히 교체되는 만큼 사람의 보충이 필요한데 그런 인재를 보면 탐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신원 확인 같은 거야 물론 확실히 하지만 원한 관계가 아주 확실하지 않다면 뒷조사를 통해 그런 것까지 조사해 내긴 불가능하다 보는 게 편하다.
또 성형수술은 물론이고, 매수나 신분 세탁 등등 그런걸로 빠져나갈 방법은 찾아보면 적지 않다.
“그, 그렇군요.”
“그러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애당초 적이 안 되는 게 답입니다. 그 외엔 없습니다.”
“적이 되면 끝장이란 소리군요.”
호성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런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러니 거기 대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저희 정도면 충분히 안전합니다.”
“그렇겠죠.”
호성은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였다면 남자의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인생을 배배 꼬기까지 하고 있다.
이어 남자는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런데 도련님 소설이라도 쓰십니까? 그런 걸 다 물어보시고.”
현실에 있을 리 없는 존재를 상대로 경호하는 방법을 물어보니 만화나 소설에 관계된 이야기인가 싶어서 한 말이었다.
“뭐, 비슷한 겁니다.”
호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완성되면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완성되면 말이죠.”
호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이런 결론이 나올 걸 알고 있었지만 전문가의 인증까지 얻으니 한층 암담했다.
하기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해도 위험부담이 너무 큰 만큼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행히 해괴한 짓은 안 시키니…….’
아직까지 강민은 봉사 활동 이외에 그렇게 터무니없다 싶은 일은 시킨 것이 없었다.
서울대에 간다고 큰소리치긴 했지만 처음부터 서울대가 목표인 호성에겐 상관없는 말이었다. 돌대가리 셋도 서울대까지 끌고 가겠다 한 것은 어이없지만 어차피 남의 일이었다.
‘하아…….’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한동안은 그저 충실히 쫄따구 노릇이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호성은 각오를 다졌다.
*
쿵!
문이 닫혔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청년 하나가 깍듯이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그가 인사하는 앞에는 검은 소파에 앉은 험상궂은 중년 사내가 탁자에 탕수육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있었다.
지렛대파의 대장인 한성질이었다.
“그래. 어떻더냐.”
“아주 호황이던데요.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거 같았습니다.”
탐욕스런 표정으로 덩치 큰 청년은 말했고 한성질도 탐욕스럽게 웃었다.
“후후, 그렇단 말이지.”
“헤헤, 하실 겁니까?”
한성질의 옆에 서 있던 남자, 지렛대파의 부장이 물었다.
“저런 먹음직스런 먹이를 놔두고 가만있을 수 있겠냐.”
“하지만 용역 철거도 아니고 멀쩡하게 장사하는데 그러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스런 얼굴로 방금 보고한 청년이 물었다.
용역 철거는 철거 대상이 법적으로 불법이라 다소 무리한 행동이나 폭력 행사를 해도 크게 뒤탈이 없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를 상대로 억지를 부리면 공권력이 움직이게 된다.
한성질은 청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쯧쯧, 대가리하고는.”
청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속으로 그러니 깡패질이나 하면서 먹고사는 거 아니겠냐면서 투덜거렸다.
한성질은 담배를 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방법으로 가는 거지. 제대로 손님으로 활동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까? 그리고 그 지역 꽉 잡고 있는 게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