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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20화 (20/227)

20화

토마토 썩은 얼굴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재철 일행이 강민에게 주춤주춤 다가갔다.

“짜식들, 무슨 일이긴. 요즘 보호소에서 일도 잘한다고 해서 기특해서 내 수족 같은 쫄. 따. 구들을 부른 거지.”

강민은 ‘쫄따구’라는 부분을 아주 강하게 발음했다.

들으라는 듯이.

아니, 들으라고!

“하하하…….”

“하하…….”

완전 부하 취급하는데 분하기도 했지만 힘이 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으니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보호소에서 하는 일에 슬슬 요령이 붙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강민이 물었다.

“오늘 시험 점수 떴지?”

“으, 응.”

“떴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모두 나눠 받았다. 다른 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말고사 시험 성적은 성적표를 개별적으로 나눠줘서 확인하게 한다.

하지만 성적표를 나눠주면 곧 등수가 다 밝혀지기 때문에 사실 보안 효과는 거의 없는 편이다.

강민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나왔어? 차례대로 밝혀봐라.”

창피한 얼굴로 재철부터 밝혔다.

“펴, 평균 32점에 43등. 전교 412등.”

“평균 35점에 42등. 전교에선 406등이야.”

“평균 36점에 41등. 전교에선 403등 나왔어.”

만수까지 보고가 끝났다. 만수는 이야기하면서 얼굴에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강민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아이고…….”

강민은 셋을 훑어보며 말했다.

“참 치열한 도토리 키 재기다. 한심한 것들아.”

“너, 넌 어떻길래?”

재철이 욱해서 물었다.

강민은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후후, 그건 좀 이따가 밝혀주지. 아직 한 놈이 안 왔으니.”

“아…… 강민단이랬지.”

메시지 내용을 기억하고 수구와 만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단에는 한 사람이 더 있다. 호성. 어떤 일인진 모르겠지만 재수 없게 강민 손에 걸려들어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된 학교의 엄친아다.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호성 이 새끼도 와야지. 저기 오네. 야~ 얼른 안 뛰어와!”

돌아보니 멀리서 조심스레 다가오는 호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강민의 불호령에 바쁘게 움직여 강민 앞에 섰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와, 왔어. 무슨 일이야?”

“뭐 그야 용건이 있으니 부른 거지 똥개 훈련 시키려고 모이라 했겠냐. 자, 그보다 먼저 오늘 성적 나왔지? 불어봐.”

호성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평균 93점에 전교 12등이야.”

자랑스럽게 밝힐 만큼 뛰어난 성적이었다.

동성고등학교는 고교 평준화의 산물이다. 그렇다곤 해도 전교 12등 정도면 한국의 대학은 뭐든 골라 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다.

물론 특별한 과, 의예과 같은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뭐 그것도 시간이 있으면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사정권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와…….”

“씨발.”

“허어.”

심해에서 노는 셋은 소설이나 만화에서만 보던 성적을 직접 이루어낸 호성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부 잘한다는 거야 알고 있긴 했지만.

강민도 살짝 감탄했다.

“흠, 독보적이군. 하기야 그러니 그런 대가리를 굴릴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그 계약 때문에 지금은 망한 형편이다. 호성으로선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서둘러 본론으로 넘어갔으면 했다.

“우선 내 점수부터 밝혀주마.”

모두 기다렸다. 그러면서 제까짓 게 성적이 얼마나 잘 나왔겠는가, 하고 다들 생각했다.

그 생각은 당연했는데, 지난 강민의 성적이 재철 일당보다야 잘 나왔지만 과히 좋은 것이라곤 할 수 없어서다.

“평균 85점에 전교 87등이다.”

모두들 경악했다.

“억!”

“네가?!”

“누구한테서 답을 받아서?”

재철 일당이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영어 시간에 잠깐 반짝했다지만, 본 시험은 다르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저런 어마어마한 성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공부 잘하는 범생이 하나를 협박해서 커닝 페이퍼를 돌린 것뿐이다. 그게 틀림없었다.

호성도 놀란 표정이었고 내심 셋과 의견이 비슷했다.

적을 알아야 적을 극복한다고, 강민에 대해 몰래 좀 조사한 바가 있었는데 지난 성적은 바보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치른 기말고사에서 이런 성적 향상이라니.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강민은 혀를 찼다.

“쯧쯧, 생각하는 거 하곤. 내가 네놈들이냐. 엄한 애 괴롭혀서 답안을 가져다 바치도록 하게? 그냥 공부해서 받은 점수야.”

“그럴 리가…….”

“어떻게 단기간에…….”

“특별 과외를 받았나…….”

모두들 못 믿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민 자신도 사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싶어서 더 이상 이걸로 말을 끌 생각은 없었다.

커닝 같은 거야 쓰지 않았지만 그는 마법의 힘으로 여기까지 성적을 올렸다. 물론 마법의 힘을 빌렸어도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의미가 없었겠지만.

“뭐, 됐고. 그러면 이제 슬슬 성적이 다 밝혀진 셈이군. 그럼 여기 모이라고 한 이유를 말해두마.”

강민은 자상하게 웃는 얼굴로 강민단을 둘러봤다.

“이왕 이렇게 강민단이 형성되었으니 쉽게 찢어지면 아쉽지 않겠냐?”

아쉽지 않았다!

모두들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이 순간만큼은 인종과 사회적 신분, 성별 같은 것이 상관없었다. 그들은 영혼이 서로 통합되는 일체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강민은 눈을 부라리며 한 번 더 물었다.

“않. 겠. 냐?”

“아…….”

“그게…….”

“그, 그렇지.”

강대한 폭력 앞에서 결국 강민단원들은 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민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어 웃었다.

“역시 그렇지? 그래서 내가 한 가지 결심을 했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강민단은 모두 같은 대학에 간다!”

“헉!”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강민단원들은 모두 바보가 된 듯이 굳은 표정으로 어버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호성은 일그러진 얼굴로 반발했다. 같은 학교 가서 당해야 될 시간도 시간이지만 저런 병신들과 같은 학교에 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너무하잖아! 내가 이런 놈들이랑 같은 대학을 가야 하다니!”

“아, 그게 걱정이었어? 걱정마. 서울대가 목표니까.”

강민은 단번에 호성의 걱정을 끊어버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재철 일당의 실력으로 서울대에 갈 실력을 갖춘다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니까. 일 년 반이 아니라, 십 년 반으로도 어림없는 소리다.

“말도 안 돼!”

“그런 게 될 리가…….”

재철 일당 본인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물론 강민의 말이 불가능하다기보다, 그걸 빌미로 앞으로 당하게 될 일들이 걱정이라 반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어디까지나 자신만만했다.

“말이 안 되긴 왜 안 돼! 걱정마라! 내가 말을 꺼낸 이상 너희를 아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마! 사실 내가 걱정이 많았거든.”

그러면서 혀를 차고 강민은 강민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이야 내 손아래에 있어서 나쁜짓 못하고 예전의 죗값을 치르는 봉사 활동을 하며 사람답게 지내고 있다만, 솔직히 너희의 그 더러운 근성이 하루 이틀로 어찌 될 문제가 아니잖아? 나야 당한 만큼 복수하고 놓아줘 버리면 그걸로 땡이기도 한데, 그래도 사람 된 도리로, 역시 그렇게 놔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거든?”

말이야 구구절절 옳다.

하지만 강민의 진짜 목적은 물론 그런 인간 갱생보다는 심심한 것도 있고, 편리한 셔틀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터 컸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한 놈들인데 겨우 고등학교에서 좀 괴롭히고 봉사 활동 시키는 걸로 놔줄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강민은 그래서 이어 선언했다.

“한 번 손봤으면 끝까지 간다! 그런 책임감을 가진 정신이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나한테 당했다고 어설픈 울분이 쌓여 그걸 또 엄한 사람들한테 풀어봐라. 그럼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나쁜 짓을 하게 된 것 아니겠냐?”

“아, 아니…….”

“저, 절대 그런 일 없어!”

“믿어줘!”

재철은 울부짖듯이 애원했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서울대에 자신들이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저 괴상한 놈이 어떤 짓을 해서라도 같은 대학에 끌고 갈지도 몰랐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성적이 두 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저렇게 부쩍 올랐지 않는가?

거기다 강민의 태도에서는 기이할 만큼의 확신이 느껴져서 재철 일당은 그걸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설령 서울대에 가서 인생 역전하게 된다 해도 4년간 셔틀,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 인연이 이어질지 몰랐다. 그러면 평생을 지금처럼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있어선 안 됐다!

서울대 안 가고 말지!

“안타깝다. 인간의 말처럼 못 믿을 게 어디 있겠냐. 내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희를 못 믿는 건 아니다만,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그러나 강민은 어디까지나 요지부동.

“나, 나는 돈이 없어!”

이때 재철이 구원자를 찾은 듯한 모습으로 외쳤다.

강민은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라! 내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보내준다!”

학생 신분이라는 것이 문제긴 해도 강민은 몇천만 원 따위는 금세 모을 자신이 있었다. 급하면 도박이라도 하면 큰돈을 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민의 인지 능력은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하기 때문에 소리만 듣고도 주사위 숫자를 맞출 수 있다.

그리고 재철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다양한 대출 제도가 있었다. 돈을 핑계로 재철이 강민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핼쑥해진 얼굴로 강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성이 드디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발! 이 새끼가 미쳤나! 보자 보자 하니까!”

“그 반응을 기다렸다.”

강민이 반가워서 웃었다.

너무나도 섬뜩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고 호성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지만 내친걸음이다. 물러설 수 없다 싶었던 호성이 악을 썼다.

“이 개새끼! 내가 누군 줄 알아! 손가락 하나만 건드려 봐라! 너희 집안을 다 끝장내 주마!”

“아, 그러세요~?”

강민은 사뿐사뿐 걸어와서 호성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그리고 이어 씨익 호성에게 웃어줬다.

“방금 뭐라고 했지?”

“너, 너희 집 전부…….”

식은땀이 전신에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호성은 애써 강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성의 집안은 정말로 큰 부자고, 권력도 있다. 강민의 집안 따위는 정말 태풍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날려버릴 수 있다.

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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