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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6화 (16/227)

16화

위험한 놈이다!

호성은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강민의 호성에 대한 용건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야.”

“넵.”

공손하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바로 눈앞의 상대를 때려눕히고 퇴학까지 시키려고 하던 사람의 태도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공손한 태도였다.

하지만 누가 호성을 비웃으랴. 천하장사도 아픈 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강민은 호성을 노려보며 물었다.

“왜 날 노린 거지?”

“그, 그게…… 수란 때문입니다.”

더듬거리며 호성이 답했다.

강민은 짜증 나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새끼가…… 야, 내가 그 애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엄한 사람을 괴롭혀 왕따로 만들었단 말이야?”

“그, 그게…….”

호성은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강민은 턱짓을 하며 호성을 추궁했다.

“뭔가 더 있는 모양이군. 말해봐.”

“사, 사실은…… 작년에 제가 공들인 이벤트를 강민 님께서 방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민 님이란 호칭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강민은 더 마그누스로서의 힘 중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원래 지닌 바에 비하면 현격히 떨어지지만 강민의 존재감과 위압감은 사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다. 이계에서는 그 존재감을 해방하는 것으로 평범한 인간은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얻어맞아서 고통에 심리적으로 압도된데다 그러한 존재감을 맞이하고서 강민을 평범하게 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민은 호성이 하는 말에 의아함을 느끼고 물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저…… 수란이 아직 뜨지 않았을 때 있지 않습니까?”

“그랬지.”

수란과 이야기를 한 뒤에 그녀에 대해 좀 알아봤다. 수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올해 들어서였다.

그 전에는 여러모로 활동을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던 듯 비교적 무명에 가까웠고, 간혹 학교에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돌아오곤 했었다.

마치 아직 학교라는 선택지를 버릴 수 없는 입장이라는 듯이.

그때의 수란은 강민도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는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호성은 말을 이었다.

“그때 귀갓길에 수란이 깡패들을 만난 일이 있지 않습니까.”

“너 설마…….”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얼굴을 슬쩍 일그러트리며 반문했다.

호성은 고개를 푹 떨구고,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백했다.

“그, 그 설마가 맞습니다.”

“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은 시험 중간 날이었다. 시험을 마친 학생들은 저마다 일찍 돌아가든가 도서관에 가서 다음 날 볼 시험 과목을 공부했다.

모범생이던 수란은 물론 도서관에 갔다. 당시만 해도 나름 성적이 괜찮던 강민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둘씩 도서관에서 빠져나갔고, 강민과 수란은 거의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이 되었다. 그리고 도서관 문이 닫힐 시간이 되어 하교했다. 그리고 우연히 돌아가는 방향이 같았다.

인적 드문 길을 둘이서 가는 셈이 되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걸었다. 강민은 수란을 언감생심이라 생각하면서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 즐거웠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인적이 드문 길에 접어들었을 때 웬 양아치 놈들이 시비를 걸어 온 것이다. 마치 친구처럼 그들을 둘러싸고 위협적인 말을 시작했다.

“저, 절호의 찬스였는데 그때…….”

호성이 말했다.

그 당시에 강민이 용감하게 나서서 그들을 맞아 싸웠다. 그 사이 수란은 도망갔다.

그날 시원하게 얻어터졌지만, 수란을 지켰다는 것이 기뻐서 그런 아픔 같은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고맙다는 수란의 인사도 들었다. 얼마나 기뻤던가.

그런데 그것이 호성이 만들었던 이벤트였단 말인가!

그걸 우연히 같이 가던 길이라 몸을 받쳐 막아 호성이 영웅처럼 수란을 구하는 걸 방해한 셈이고, 그래서 원한을 가졌다?

강민은 말문이 막혔다.

“하! 어이가 없군. 그런 애들 장난에 걸려서 내가 그 꼴이 됐었단 말이지.”

“…….”

호성은 아무 말도 못했다. 강민은 세게 발을 굴렀다.

쾅!

“히익!”

무시무시한 소리에 호성은 덜덜 떨며 뒤로 넘어졌다. 어둠에서 빛이라도 뿌릴 듯이 사나운 눈을 하고 강민이 이를 갈며 물었다.

“야, 어떻게 생각해?”

“죄, 죄송합니다.”

호성은 그렇게 말했다. 사실 지금 호성에게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리도 없었다.

“이 새끼가…….”

“으으……. 그, 그렇지만 단순히 방해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번쩍이는 더 마그누스의 눈길.

호성은 순순히 답했다.

“그, 그러고 나서 수란이 강민 님을 의식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게 그걸 핑계라고!”

이를 갈며 외쳤다. 그 기세에 억눌려 호성은 엎드려 싹싹 빌었다.

“죄송합니다!”

강민은 그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수란이 그 이후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니?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설사 정말 그랬다고 해도 이제는 무의미한 일이다. 수란은 구름 위의 스타고 강민은 평범한 학생이다. 이 차이가 메워질 리가 없다. 또 강민 역시 메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뭐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강민은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대충 상황은 파악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징벌도 가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였다. 호성 이놈을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것이다.

많이 아프게 만져줬으니 쉽게 딴생각을 품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복수심을 품고 움직이게 되면 재철 일당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골칫덩이가 될 수도 있다. 뭐라 해도 호성은 실제 어마어마한 뒷배경이 있다.

강민은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렇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시험을 일주일 앞둔 주말.

하지만 이번 주에도 재철 일당은 특수아동보호소에 와서 봉사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시간대는 마침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잔뜩 지친 안색으로 뜰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그들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힘들다…….”

이전과는 달랐다. 정말로 얼굴에 피로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아니, 열심히라고까진 못하지만, 적어도 농땡이는 안 부렸다. 그러니 피곤한 건 당연했다.

“제기랄. 이게 뭐람.”

“별수 있냐.”

셋은 짜증스럽게 신세 한탄을 했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알바는?”

“하고 있어. 다음 날이면 대충 그놈한테 줘야 할 돈 맞춰질 거야. 너는?”

“비슷한 신세지.”

셋은 거기까지 말하고 함께 한숨을 쉬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신조로 살았거늘 역으로 그 꼴에 걸리다니.

재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씨발! 갑자기 이게 뭐지? 팔자 좋은 일진 노릇하다가 갑자기 인간극장 주인공이네?”

“미국에 태어나지 않은 게 한이다.”

“미국에 태어나면 어쩌려고?”

만수의 말에 수구가 물었다.

그러자 만수가 총을 잡은 자세를 취하고는 말했다.

“모르냐? 총기 난사지. 두두두두! 강민 그 자식이 아무리 세 봐라. 총 앞에선 별수 있을라고!”

“병신아. 그걸로 총기난사면 우리가 먼저 벌집이다.”

수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런가.”

만수와 재철도 그건 그렇다 싶어 웃었다.

실제로 무던히도 아이들을 괴롭혔다. 괴롭혀서 총 맞는다면 그들 셋은 벌써 총 맞아 벌집이 되어 죽었어야 하리라.

재철이 마음을 정리하는 것처럼 말했다.

“푸념해 봐야 소용없다. 그냥 하자.”

“그래.”

다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정말 못 견딜 거 같으면 전학이라도 가든가.

그때 등 뒤에서 또 말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총기 난사라.”

“히이이익!”

모두들 경악하며 딱딱하게 굳은 몸으로 등 뒤를 돌아다보았다.

보호소 담장 너머로 강민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지난번 같은 일이 있을까 싶어서 문을 바라보는 쪽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걸 역으로 찔러서 담장 너머로 쳐다보고 있었다니.

강민은 가볍게 담장을 넘어서 안뜰로 들어왔다.

그를 맞이하자마자 셋은 동시에 넙죽 엎드렸다.

“자, 잘못했습니다!”

“감히 실언을!”

강민은 손을 휘휘 저었다.

“뭐 됐다. 이런 때마다 두들겨 계몽하면 자살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오늘은 넘어가 주마.”

“가, 감사합니다.”

셋은 정말로 감사했다.

강민에게 한 번 구타를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달리 없다.

그런 그들을 보던 강민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니들 동료를 하나 만들었기 때문에 데리고 왔다. 사이좋게 지내라.”

“동료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셋 모두 의아한 얼굴이 됐다.

“야, 들어와.”

강민이 외치자 문이 덜컹 열리며 굽실거리는 인상의 남자애가 안으로 들어왔다.

“네, 네…….”

셋은 누가 들어오는지 보고 모두 놀란 표정이 됐다.

“호성?!”

“바, 반갑다.”

호박이 썩어 문드러지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들어오는 청년. 그는 재철 일당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로 호성이었으니까!

재철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너도?”

“뭐…… 그렇지.”

공감의 뜻을 내비치는 얼굴로 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강민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말했다.

“서로 인사는 필요 없지? 서로 잘 아는 사이일 테니까.”

“네, 네에…….”

넷 모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은 이어 웃으며 설명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니까 친하게 지내도록 하고, 혹시 쓸데없는 생각 하는 놈이 생기면 보고하도록 해라. 만일 한 놈이 엄한 생각 하다가 나한테 들켜서 당하면 나머지 놈들도 같이 당하게 될 거니까 정신 차리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게 좋을 거다.”

넷 모두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죽었다. 이건 무슨 공산 독재 정권 아래 사는 것도 아니고, 서로 감시하면서 밀고를 해야 하다니.

하지만 한 놈만 실수하면 다 같이 당하는 연좌제 시스템이라 하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참 그리고 보여줄 것도 있는데.”

그러면서 강민은 근처의 자갈 하나를 쥐었다. 단단하고 큰 자갈이었다.

넷 모두 저걸로 뭐하려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강민은 빙그레 웃으며 꽉 쥐었다. 빠지직 소리가 나며 자갈이 산산이 부서져 강민의 손안에서 흘러 떨어졌다.

그걸 보고 넷 모두 시퍼렇게 죽은 얼굴이 됐다.

강민은 상큼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는데. 어지간하면 꿈도 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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