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오냐, 다시는 안 그러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 주마!”
강민은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셋은 눈앞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
“후우.”
상쾌한 얼굴로 강민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재철, 수구, 만수 세 사람이 정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
그들은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았다.
긴장한 것이 표정에 역력했다. 강민에 대한 강렬한 공포심 역시 뚜렷했다. 그만큼 얻어맞고 강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강민은 그들의 태도에 만족감을 느끼며 오늘 이곳을 찾은 용건을 꺼냈다.
“나를 괴롭힌 것 말이야.”
셋 모두 허리가 꼿꼿해졌다.
강민과 그들의 관계에 있어 최고 핵심이라면 그 점이다. 찔리는 게 많고, 당시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만큼 셋 모두 몸이 굳지 않을 수 없었다.
“긴장할 필요는 없고. 왜 그랬어?”
“아니, 그게…….”
“별건 아니고…….”
“그냥 눈에 띄어서…….”
셋은 지어낸 것처럼 똑같은 답을 했다.
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너희 같은 새끼들이 애들 괴롭히는데 별 이유가 있었겠냐. 당시엔 나도 재수 없어 걸린 거라 생각했고 말이야.”
“네.”
“그, 그렇죠.”
“지금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저자세로 셋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간다면 강민을 상전으로 모시기라도 할 태세였다.
강민은 웃으며 이어 물었다.
“그런데 요즘 재밌는 이야길 들었지. 호성 그놈이 애들을 움직여 나를 노렸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까지 그놈한테 미움 살 일을 한 게 없거든? 근데 그렇게 나온단 말이야. 그러면 자연히 생각하게 되잖아? 너희 놈들이 나를 괴롭혔던 것도 실은 그놈의 사주가 아니었을까, 라고.”
강민의 예리한 눈은 놓치지 않았다.
셋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을!
“그건…….”
“어…….”
“음…….”
단서를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걸 놓친다면 바보였다. 강민은 무릎 꿇은 그들의 등 뒤로 돌아가서 어깨동무를 하듯 둘의 목에 팔을 걸고 속삭이듯 물었다.
“자~ 솔직히 말해보실까. 다 털어놓으면 편해~.”
강민의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을 그들은 견딜 수 없었다.
“마, 맞습니다.”
“호성이 괴롭히면 돈을 준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생각했던 대로였다.
강민은 흥미롭다는 표정이 됐다.
왜 호성이 자신을 노린단 말인가. 까고 말해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사하게 노리다니.
지난번 습격이라면 뭐 그나마 짚이는 구석이 있다. 지질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수란과 같이 있는 걸 보고 눈이 뒤집혔다던가. 뭐, 납득해줄 수는 없어도 이해는 되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이유가 뭐지?”
“저희야 그냥 돈 받고 하라는 대로 해 준 거라…….”
“네. 잘 모릅니다.”
난처한 안색으로 셋은 같이 모른다고 답했다.
강민은 그들의 표정에서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표정만이 아니고 심장 박동 수 올라가는 소리라든가, 근육의 긴장도 같은 것에서 판단할 때 거짓말은 아니다 싶었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 꽤 머리를 써야 하는 거라서, 그 특유의 육체적인 반응이 있다. 강민은 그런 걸 잘 파악하는 편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더 얻어낼 이야기가 없다 싶었던 강민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호성이 이렇게 찐득하게 구는 이유는 직접 묻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나는 간다.”
재철을 비롯한 셋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왔다.
“사, 살펴 가십시오.”
“짜식들. 또 농땡이 피우고 있다가 걸리면 죽는다. 전화해서 확인할 테니 열심히 일해라.”
“네, 네에…….”
셋은 곧 죽을상이 되었다.
강민이 그들을 한 번 쓱 노려보듯이 살펴봤다. 그 눈길 앞에 셋 모두 처음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라도 온 듯이 빠릿빠릿한 표정이 되어 일심동체로 외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휘적휘적 걸어 멀어지려 했다. 셋은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하려는 그 찰나에 우뚝 강민은 멈췄다.
“아! 그리고 다음 주 학교에서 나 괴롭히기로 하고 받은 돈은 다 내놓도록.”
“그건…….”
돈을 뜯던 입장에서 뜯겨야 하는 입장이 되다니. 그것만 해도 슬프고 괴로운 일인데 지금 그들의 주머니에는 그 돈이 없다. 그리고 당장 마련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하기야 니들이 가진 돈을 가만히 놔두겠냐. 분할 상환도 괜찮으니 엄한 애들 괴롭히지 말고 신성한 노동의 땀방울을 흘리고 생긴 결과물을 바치도록 하려무나.”
강민은 셋의 속내가 어떨지 읽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으으…….”
“알겠니?”
강민이 음산하게 반복해서 물었다.
“아, 알겠습니다!”
셋은 고분고분하게 그러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닥에는 더욱 더한 바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
호성은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이 아주 잘사는 만큼 자동차를 대기시킬 수 있지만 이미지 문제가 있기에 다른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가서 차를 타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따로 볼일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는 길에 차를 탈 일은 없었다.
“후후후.”
골목길을 걸어가는 호성의 표정이 득의양양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강민 작살내기 계획이었다.
이제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사람도, 장소도, 도구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 적절한 때를 보아 실행하기만 하면 강민은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인 죄목으로 퇴학당하고 말 것이다.
퇴학!
드디어 눈엣가시 같은 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호성이 옆으로 난 좁은 길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려 할 때였다. 어두운 좁은 길에서 갑자기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호성의 어깨를 잡았다.
“앗!”
호성은 놀란 소리를 냈지만 손의 힘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전차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호성이 좁고 어두운 골목 안에 들어갔을 때, 그를 끌어당긴 이가 입을 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우신가?”
“응? 뭐, 뭐야 너.”
호성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었다. 지금 자신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강민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둠 가운데서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강민의 희미한 얼굴은 무서웠다.
“왜일 거 같아?”
“너 깡패야? 길 가는 사람 붙잡고 갑자기 시비나 걸고.”
호성은 강하게 나갔다.
여긴 사람이 사는 도심지다. 골목이고 밤이라 인적이 드물긴 하지만…… 그리 험하게 굴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강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등 뒤에 얼마나 큰 백이 있는지는 알 것이다. 함부로 해코지하려 들지는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에 쿵쾅거리며 뛰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강민은 이런 상황에서도 허세를 유지하는 호성을 보고 감탄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흠! 내가 깡패라서 너한테 시비를 거는 걸까?”
“이게…… 너 후회한다.”
“너는 후회할 짓을 벌써 했지. 그리고 그게 너를 찾아온 이유다.”
예리한 눈길로 호성을 노려보며 강민은 짧게 말했다.
그 순간 강민의 눈길은 더 마그누스. 그 절대적인 강자 시절의 것으로 살짝 돌아가 있었다.
호성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눈길이 저럴 수가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자나 호랑이라도 저렇진 않을 텐데!
“그게 무슨…….”
전신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호성은 겨우 말했다.
하지만 강민은 호성과 길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증언은 이미 충분히 확보해뒀다.
“말이 많다.”
강민은 그리 말하며 손을 움직였다. 슉, 하고 움직인 강민의 손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호성은 너무 놀라서 눈을 질끈 감았는데, 눈을 떴을 때는 그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다.
재갈!
재갈을 물린 이유는 분명하다. 소리를 못 내게 함이다!
호성은 얼른 입안의 재갈을 뱉어내려 했으나 강민이 깊이 쑤셔 넣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강민은 호성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친절한 구타를 시작했다.
“일단.”
강민의 주먹이 호성의 배에 꽂혔다.
퍼억!
“욱!”
비명을 내질렀지만 낮은 소리만 나왔을 뿐이다. 어마어마한 격통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강민은 호성의 모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강민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 피로 비를 내리기도 하는 악마들이 있던 곳에서 왔다. 이런 거 가지고 동요할 이유가 없다.
“맞고 시작하자.”
빠악!
“욱!”
계속 때렸다.
“으싸!”
뻑!
“욱!”
신나게 때렸다.
호성은 아팠다. 너무너무 아팠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애들을 모아서 강민과 싸우게 하고 그걸 핑계로 퇴학을 시킨다고?
그런 계획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 상쾌하다.”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강민은 팔을 빙빙 돌렸다.
오랜만에 격하게 움직였더니 약간이지만 운동이 된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이 정도 몸을 움직였다고 느끼려면 일급 악마 열 마리는 잡아야 했지만 여긴 지구라 힘도 많이 약해진 상태라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강민의 발아래에는 걸레처럼 엎어진 채 신음을 흘리는 호성의 모습이 있었다.
“으, 으으…….”
“어때?”
“죄, 죄송합니다.”
호성은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저도 모르는 사이 강민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강민은 호성을 내려다보며 팔짱을 끼고 물었다.
“뭘 잘못한 건지는 아냐?”
“제, 제가 애들을 시켜 강민 님을 왕따 시키고 때리라고 했습니다.”
“흠! 순순히 고백하는군.”
여기서 뻘소리 해 봐야 더 얻어맞을 뿐이라는 걸 호성은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머리가 좋은 그는 알았다. 그렇게 끔찍하게 맞았는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남은 둔통도 없었다.
즉, 얻어맞았다는 이유로 고발도 불가능하다. 증거가 전혀 없다!
이전 짭새를 동원했을 때와 완전히 같은 상황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호성은 그래서 그저 사과했다.
강민은 더 마그누스의 분위기를 일부 뿜어내며 음산하게 경고했다.
“죽을죄를 지은 걸 알면, 죽어야겠지?”
“히, 히익…….”
호성은 말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끔찍한 공포에 온몸이 속박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덜덜덜 떨었다.
한동안 그렇게 더 호성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강민은 눈빛의 위압감을 풀었다. 그제야 전신의 긴장이 풀리며 호성은 제대로 호흡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