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왜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면 자살하는지 알겠다 싶을 정도였다.
겨우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조용해진 가게 안에 앉아서, 강민의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몸에서 사리가 생기겠군.”
“이래선 아무리 술이 좋아도 장사하기 힘들어요, 여보.”
옆에서 강민의 어머니가 동감했다.
“그래. 장사 이전에 사람이 버티질 못하겠으니…….”
“어쩌죠?”
“이렇게 된 이유야 뻔한 거 아니겠소?”
강민의 아버지가 시름 어린 얼굴로 물었다.
하기야, 라는 표정으로 강민의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자리가 없어서 이 꼴인 것이다!
저 무수한 악플의 대다수는 시간 들이고 돈 들여 찾아왔더니 도대체 술을 마실 수가 없다는 짜증 때문에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예약제를 하는 것도 아니니, 도대체 운 외에는 기댈 구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바쁘다!
목구멍이 포도청!
한국은 2,400시간이라는 OECD 최고 노동 시간의 위엄찬 기록조차 가산되지 않은 시간이 많아 3,000시간에 달할 거라는 주장이 신빙성 있게 들리는 노동 착취의 사회다. 술을 마실 시간을 만들기도 힘들다.
그런데 그 시간을 가게의 사정에까지 일일이 맞춰야 한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 짜증이 역으로 이런 유치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답이 뻔하기에 강민 아버지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야지.”
“벌써 하려고요? 하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더 받을 수가 없는데…….”
강민의 어머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걱정스레 말했다.
이 가게 때문에 낸 대출만 해도 아직 다 갚지 못했다. 다른 대출을 만들 여력이 없었다.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다른 데 알아볼 구석을 찾아봐야지.”
“빌려 쓰려고 해도 인테리어 하고 하려면 억 단위로 들 건데 되겠어요?”
최소 일억은 잡아야 할 것이다. 지금 장사가 잘되고 있긴 하나, 갑자기 마련하려면 역시 쉽지 않은 금액이다.
“잘 찾아보는 수밖에.”
강민 어머니의 표정이 걱정스러워졌다. 잘 찾아본다고 해서 돈을 구한다고 하면 나올 구멍은 뻔하다. 좀 위험한 돈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런 아내의 걱정을 알고서 강민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시오. 이렇게 된 게 장사가 안되서가 아니라, 잘 돼서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죠.”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앞으로 잠시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파도만 견디면, 이후는 정말 밝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
야자 시간에 공부를 하던 강민은 볼펜을 물고 생각했다.
‘이놈을 어떻게 족칠까?’
호성을 족치는 방법을.
그냥 때려서 하던 짓을 못하게 하고 반성케 한다?
뭐, 어려운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봐야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
더 마그누스.
강민의 호칭이다.
용도 썰고, 악마도 썰고, 마왕도 썰은 영웅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지닌바 권력은 왕을 넘어서고, 지닌 부는 세계를 넘어선다 했다.
이 세계에서야 평범한 학생 노릇이지만 그거야 편하게 쉬기 위해서다.
할리우드 유명인들이 숨어서 휴가를 보내는 것과 같은 원리!
파파라치는 괴로우니까.
그런데 아무리 놀러 왔다곤 해도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주먹을 휘둘러 일을 해결하는 것도 좀 그랬다. 뭔가 획기적이고 재밌는 방법이 없을까 싶었다.
‘아, 그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더 마그누스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교한다면야 물론 부족하다.
하지만 한 인간의 혼을 구제하고, 시간도 유익하게 보내고, 더불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다면, 이는 확실히 쓸 만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놀러 와서 공부한다고 피곤한 것도 있고 말이지.’
자신의 생각이 마음에 들어 강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으음.’
호성은 고민했다.
강민을 족칠 방법을.
일진들을 동원하는 방법은 완전히 실패했다. 짭새까지도 실패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별로 없다.
시시한 벌레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난적일 줄이야.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단순히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서가 아니었다.
‘수란에게 집적댔으니 말이야!’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불덩이가 뿜어질 것 같았다. 온몸에 벌써 힘이 잔뜩 들어갔고, 양손이 꽉 쥐어졌다. 눈앞에 강민의 얼굴이 있었더라면 주저 없이 한 방 날려 주었으리라.
‘그럼 어쩔까…….’
좋은 방법이 있긴 했다. 다시 짭새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난번엔 아마 장갑이라도 미리 꼈던지 손도 상하지 않았고, 주변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좋은 수가 있었다.
‘동영상을 찍어두는 거지.’
시대는 바야흐로 디지털, IT의 시대!
개나 소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
어디서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싸움을 붙이고 그걸 촬영해서 경찰에게 제출한다면 제아무리 특이한 놈이라고 해도 별수 없이 경찰에 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정학이 문제일까. 퇴학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우리 집안이 힘도 좀 쓰고 말이지.’
계획이 잡히니 소집해야 할 얼굴들이 아주 쉽게 떠올랐다. 어떻게 강민을 괴롭히고 자신의 영역에서 쫓아낼까 생각하며 호성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싹!
‘응?’
그런데 한창 즐겁게 상상을 이어가고 있던 중에 온몸을 엄습하는 기묘한 느낌이 있었다.
호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저 평범하게 다들 공부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뿐, 호성은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우고 당장 지금 떠올린 계획을 한층 세밀하게 짜기 위해 노력했다.
‘후후후’
호성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비열한 미소였다.
자기 팔자도 모르고.
***
깡패 자세로 특수아동보호소 뒤뜰에 앉아 있는 세 청년이 있었다. 재철, 수구, 만수였다.
지금은 일요일. 강민이 시킨 대로 오늘도 이곳에 봉사 활동을 나와 있었다.
물론 봉사 활동 한답시고 출근(?)은 했지만 실제 봉사랄 건 거의 한 것이 없고, 그냥 시간만 때우다 갔다. 봉사 활동 시간은 꼬박꼬박 챙기고.
지금은 셋이서 뒤뜰에 모여 한 손에 담배를 쥐고 있었다. 셋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씩 빨았다.
“푸하.”
“좋구나.”
“극락이다.”
연기를 내뿜으며 셋은 동시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이렇게 일진답게 보내는 소소한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물론 특수아동보호소 같은 데가 일진답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셋은 잠시 이 시간을 즐겼다.
가장 먼저 담배의 끝머리까지 빤 것은 재철이었다. 꽁초를 땅바닥에 박아 비벼 불을 끄던 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 진짜 뭐하는 꼴이람.”
“씨발! 찌르고 튀어 버릴까?”
수구가 이어 담배를 끄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셋 모두 너무나도 싫었다. 진짜 생각 같아선 강민을 찔러 죽이고 어디 멀리 도망쳐 자유로이 살고 싶었다.
예전 자기들이 괴롭히던 애들이 같은 심정이었을거라 생각하면 쥐똥만큼이긴 해도 동정되는 면도 있긴 했다.
만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해보지? 저지른다면 내 앞으로 너를 대장으로 모시마!”
수구는 움찔 신경질적인 표정이 되었지만 별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찔러 죽이고 튈까, 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 그럴 정도로 독하진 못했고, 또 악독한 마음을 먹고 하려 한다 해도 그놈이 자신의 칼에 당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젠장 별수 없지. 졸업할 때까진 이렇게 지내야지.”
“호성 그놈도 결국 작살난 모양이고…….”
재철이 말했다.
재철의 목소리는 통쾌해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동시에 아쉬워하는 느낌 역시 강했다.
수구가 그 심정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좀 기대했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강민을 호성이 깨부수면 자기들도 자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으니까.
만수도 그런 심정에는 같은 의견이었다.
“강민 그 새끼 상대하는 것보다는, 호성이 이긴 다음 어떻게든 화해하는 게 역시 더 나았을 테고 말이야. 안 그러냐?”
“그러게 말이야.”
그때였다.
“흠,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셋의 등 뒤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놀란 셋은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뒷짐 지고 서 있는 강민이 있었다.
“하, 히익!”
“가, 강민!”
“어, 언제?”
셋 모두 벌러덩 뒤로 넘어지며 시퍼렇게 죽은 안색으로 뒤로 벌벌 떨며 도망치듯 움직이며 말했다.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며 강민은 말했다.
“담배 피우고 있을 때부터 쭉~.”
“어, 어 그게…….”
무마해야 한다!
무마해야 해!
처음 얻어맞았을 당시의 고통이 셋의 뇌리 가운데 떠오르며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느라 분주했다. 일생에 이렇게까지 머리를 써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강민이 말했다.
“뭐? 찌르고 튀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셋은 눈치챘다. 벌떡 일어서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되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느낀 것이다.
정면 돌파! 그것밖에 수가 없었다.
“에이, 제기랄!”
“언제까지 당할 줄 알고!”
“죽어라!”
셋은 달려들었고, 강민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아~ 그러세요?”
강민이 셋 사이를 파고들며 움직였다.
퍽! 퍼퍽! 빡!
“어억!”
“악!”
강민의 몸이 현란하게 움직이자 셋은 몸이 공중으로 뜨거나 여기저기 휘청였고 그럴 때마다 입으로 격렬한 신음을 토해냈다.
그들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엎어져 신음을 흘리는 신세가 되기까지는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길게 싸우면 여기 사람들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짧게 정리한 것이다.
강민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찔러 보시지?”
“자, 잘못했습니다.”
“사람 되라고 봉사 활동하라 여기 보내 놨더니 사람들 돕진 않고, 이런 데 모여 담배나 피우고 내 뒷담화나 깠단 말이지!”
발로 쿡쿡 밟았다. 딱 아플 부위만.
강하게 밟은 것은 아니지만 무협에 나오는 혈을 밟아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적은 힘으로도 무지막지하게 아프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아악!”
“꾸엑!”
“주, 죽을죄를……!”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셋은 금세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반성했다.
하지만 강민은 이 정도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그냥 아플 뿐이다. 근육이 상하거나, 뼈가 부러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