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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13화 (13/227)

13화

“뻔한 거 아냐. 누가 이 짓을 한 거야?”

“그야…….”

구식은 눈을 굴렸다.

호성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호성은 단순히 일진과 친분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의 집안은 이 일대에서 유명한 부자다. 잘못 걸리면 인생 조지는 것은 간단하다.

강민은 눈을 굴리는 구식을 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헛소리할 생각이면 각오해라. 너만 자살할 때까지 괴롭혀 주마.”

“뭐, 뭐?”

구식은 놀란 얼굴로 말했고, 강민은 서늘하게 말했다.

“농담으로 들리면 개겨 보든가.”

“으, 으으…….”

강민의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늘 일진은 정말이지 최악이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정말 그럴 힘이 있다. 특히 경찰을 태연히 속여 넘기는 신체 능력과 무서운 싸움 솜씨. 상대할 수 없는 적이다.

결국 구식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호, 호성이라고 있지?”

“호성? 집 부자라고 거들먹거리는 그 새끼?”

생각했던 대로였다.

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그 애가 우리들 불러서 돈 준다고 이번 일 한 거야.”

“돈까지 쓰면서 왜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래?”

호성이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학교에 갔다 수란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만나서 시선을 느꼈다.

이계에서 수시로 느꼈던 끈적한 시선.

바로 적의.

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잘라 말해 호성은 강민과 아무런 인연도 없다.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식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 나야 모르지.”

“알겠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식은 두려워하는 눈길로 강민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부탁하듯이 말을 꺼냈다.

“그, 그럼 난 간다.”

“아, 그 전에…… 앞으로 또 일진 노릇 하다 걸리면 죽는다.”

“으, 응.”

제깟 놈이 그런 걸 알게뭐야.

구식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강민의 노려보는 시선이 너무도 무서워서 속마음일지언정 쉽게 안심하고 무시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해서도 떠들고 다니지 말고. 파리가 붙으면 귀찮으니까.”

“아, 알겠어.”

“가봐.”

구식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강민에게 잡혔던 손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그 고통 따위는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것, 지금은 그것만이 중요했으니까.

그가 달려가는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면서 강민은 곰곰이 생각했다.

호성 이놈을 어떻게 작살내줄까 하고.

***

영어 시간이었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을 책을 펴고 반장이 인사하자 가장 먼저 지난번에 친 쪽지 시험 결과를 꺼냈다. 학생들은 숨죽였다.

영어 선생님의 쪽지 시험은 악명 높았다.

단어의 숫자도 매번 최소 30개 이상이었고, 또 틀리면 틀린 개수대로 얻어맞곤 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주에 시험을 치렀는데 숫자는 무려 50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학생들이 숨죽일 만한 숫자였다. 평소 영어를 멀리한 학생이라면 벼락치기론 감당이 어려운 숫자였다.

더구나 비슷한 단어가 많아 헷갈리기도 쉬운, 아주 사악한 쪽지 시험이었다.

“강민, 일어서라.”

“네.”

모두들 오늘 강민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강민의 성적이 요즘 바닥을 쳤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이렇게 일어나게 해서 면박을 주려 할 정도면 점수가 얼마나 형편없단 말인가.

한데 이어진 말은!

“이번 단어 시험은 강민이 일등이다. 전부 다 맞췄어.”

모두 경악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강민을 봤다!

강민은 그 시선을 뿌듯하게 느끼며 가볍게 웃었다. 역시 마법을 사용해 집중력을 올려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자, 이건 약속한 대로 선물이다.”

영어 선생님은 영어 문제집을 강민에게 내밀었다.

쪽지시험을 칠 때마다 내거는 상품이었다. 영어 선생님 본인이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문제집을 골라 반의 최고 득점자에게 주는 것이다.

문제집 값이 싸지 않고 반 수가 많으니 돈이 적지 않게 들 일이지만 문제없었다. 출판사에서 선물로 들어오는 게 많이 있으니까.

어쨌건 공짜에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문제집이었다. 강민은 냉큼 나가서 선생님이 주시는 문제집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부쩍 공부 태도라든가 여러 가지가 좋아졌구나.”

영어 선생이 칭찬했다. 강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슬슬 위험할 때니까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진짜 대단한데. 비결이라도 있니?”

갑자기 강민의 성적이 올라간 데에 호기심을 느끼고 선생님이 물었다.

당연히 답은 마법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적당히 지어내서 말했다.

“그냥 명상 같은 걸 잘 사용하고, 그리고 영어 단어도 한자처럼 뭐 구조 같은 게 있잖아요. ex가 붙으면 밖이라든가……, pro가 앞에 붙으면 대체로 어떤 뜻이 된다거나. 그런 걸 잘 사용한 거죠.”

영어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영어도 그런 게 있지. 한자처럼 말이다.”

단어를 일종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외우는 것은 이미지를 활용해서 단어를 외우는 것과 함께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어 외우기의 비법이다.

영어 선생은 다른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도 강민이 말한 것처럼 단어의 구조를 이해하고 외우면 외우기 쉬울 거다.”

“네.”

“그리고 강민, 지난번엔 좀 별로였다만 이번 시험은 기대하마.”

“알겠습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재철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강민을 기이하단 눈으로 쳐다봤다.

저놈은 역시 최근 뭔가 이상했다. 어디가 이상하냐 하면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웠지만, 못 믿을 것처럼 사람이 변했다.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할 것 같고.

심지어 이번에는 호성이가 애들 몰아서 밟으러 갔던 게 역으로 밟히고 돌아왔다고 하니, 진짜로 어디 소설에서 나오듯이 기연이라도 얻었단 말인가?

‘희한하단 말이야…….’

어떻게 변한 건진 몰라도,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다 생각 할 정도였다.

그러나 딴생각할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영어 선생의 웃음이 이제 성격이 변한 것이다!

영화에서라면 살인마나 사기꾼이 지을 만한 섬뜩한 미소!

모두 이어질 시간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을 움츠렸다.

영어 선생은 스산하게 공포에 떠는 학생들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며 품에서 매를 꺼냈다.

“그러면 다른 놈들은 이제 각오했겠지?”

‘으으…….’

세간에서는 체벌 금지니 뭐니 떠들어대고 있지만 저 영어 선생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엉덩이가 새파랗게 퉁퉁 부어가도 부모님들은 못 본 척했다. 오히려 공부 안 했다고 더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수많은 선배들이 영어 성적의 상승과 대학 진학을 통해 실적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동성고등학교의 삼대 언터처블 중 하나다.

영어 선생은 학생들의 표정에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내가 누누이 말한다만 영어를 잘하면 한국에서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만큼 영어를 쳐 주는 나라가 전 세계에 아무 데도 없다고! 보면 모르냐. 본국에선 쓰레기 취급받는 것들도 영어 할 줄 안다고 한국에선 얼마나 대접받아? 범죄자 새끼들도 떵떵거리잖아. 그러니 니들은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알겠냐?”

영어를 찬양하는 건지 까는 건지 모를 말이었다.

“자, 그러면 부를 테니 나와라. 김성윤.”

“네.”

죽을상을 하고 불린 학생이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12개가 틀렸군.”

“네.”

부웅!

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짝! 짝!

엉덩이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몸서리치며 학생들은 차례를 기다렸다. 그 가운데는 물론 재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어 선생의 매맛은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20년의 손맛이라고 할까. 이태리 장인의 한 땀 한 땀에 버금가는 장인의 매질!

강민만이 여유로웠다.

***

오늘도 ‘좋은 친구’는 장사가 잘됐다. 너무 잘돼서 문제였다. 문 앞이 가게 안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여기 뭐야!”

“짜증 나네!”

“이봐, 장사를 할 생각입니까 말 생각입니까!”

“왜 이리 늦습니까!”

욕설을 하는 사람, 신경질을 내는 사람, 침을 뱉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강민의 부모님도 원리원칙대로 대우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빨랐고, 찾아오는 사람 수는 더욱 늘어나면서, 클레임을 거는 이들은 정말 많아졌다.

이제는 전담원을 두다시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업은 사실 원리원칙이나 시시비비가 소용없다. 대체로 손님이 이긴다. 손님과 싸우기만 해도 가게 이미지는 가게가 잘못한 게 없더라도 박살 나고, 손님은 그냥 떠나면 그만이니까.

지금도 그랬다.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서.”

“다음에 다시 찾아 주세요.”

덕분에 강민의 부모님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그저 허리를 굽히고 사과하기 바빴다. 심지어 알바생도 늘렸는데, 새로 일한 알바생들이 실수하거나 접대에 약간 소홀함만 생겨도 그걸 빌미로 물고 늘어지는 이들도 많아져서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맛집 소개에 들불이 번지듯이 소개되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 아래에 달리는 리플들이 시간이 갈수록 악평으로 가득가득 채워지는 게 아닌가!

-여기 가면 만날 자리가 없고, 최악임. 가지 마셈.

-시간만 날렸다!

-소문 듣고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이게 뭐야! 맛도 못 보네. 더럽다!

-알바생 태도도 최악입니다! 가지 마세요!

-손님이 밀리는 걸 뻔히 알면서 가게 넓힐 생각은 안 하고…… 술이 맛있긴 한데 다시 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좋은 가게라곤 생각해요. 하지만 다시 가고 싶은 가게는 아니죠. 자리 나는 게 로또 수준인데 술 한잔 마신다고 그 고생을 하라고요? 못하죠.

-주변 가게는 좋겠네. 멍청한 사장이 가게 넓힐 생각을 안 하는 덕분에 몰리는 손님 수가 한둘이 아닐 거 아냐.

-다시는 안 가!

-가는 놈 호구 인증.

-욕하는 사람들 평가 정도로 나쁜 가겐 아닙니다. 그래도 너무 불편한 건 사실이죠. 술이 진짜 끝내주긴 하지만…….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그런 평가를 볼 때마다, 강민의 아버지, 어머니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사실 가게 욕만 하고 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두 사람을 향해 인격적인 욕을 퍼붓는 경우도 아주 흔했다.

솔직히 악플 단 놈들을 골라서 고소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인터넷과는 별 상관도 없이 살아오면서 정직하게 장사하던 사람들이다. 유명해지면서 칭찬 들을 때야 좋았지만 악플이 달리는 꼴을 보자니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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