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양아치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니들 진짜로 그런 소리가 통할거라 생각했냐?”
“아니, 하지만…….”
“그게…….”
경찰 옆에 서 있던 강민과 양아치 하나의 눈이 그때 마주쳤다. 강민은 짧은 순간 자신의 표정을 바꿨다.
잔인한 괴물의 표정으로.
그 표정을 보고 양아치는 공포에 숨이 막히는 느낌을 맛봤다. 그리고 공포에 압도당해 더는 아무말도 못하게 됐다.
“…….”
“꺼져!”
달리 더 말이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경찰은 벌컥 소리 질렀다.
양아치들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화난 경찰의 표정 앞에서 결국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들이 나가자 경찰은 자리에 돌아온 다음 강민을 불러들였다. 이어 그는 풀 죽은 얼굴의 강민을 위로했다.
“학교에서 힘들지?”
“……네.”
울적한 얼굴을 지어내고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것들은 모조리 다 쓸어서 감방에 처넣어야 하는데 미성년자라서 그렇게도 못하고. 내가 다 미안하다. 보아하니 지들끼리 싸우다나 치료비가 급해서 너를 짚어 가해자로 만들고 돈을 뜯어내려던 수작이었던 것 같은데……. 더러운 것들이 어디서 저런 공갈을 배워선. 쯧! 요샌 어린 새끼들이 어린 거 믿고 저지르는 짓들이 더 무섭다니까. 나도 이게 한두 번이 아니다.”
“…….”
강민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호응했고, 경찰은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이 근처 양아치들은 꽤 극성이라 이런 문제에 그는 여러 차례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변변찮은 성과를 내었을 뿐이다.
이유는 어리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것이 마치 방패처럼 쥐새끼 같은 것들의 패악질을 방어하고 있었다. 어떤 패악질을 저질러도 시시한 소년원이나 집행유예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심지어 왕따로 동급생을 죽인 경우도 그러했다.
경찰은 강민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한테 잘 말씀드리고, 어른들한테 도움을 구해라. 조심하고. 가봐라.”
“감사합니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출소를 나서는 그에게 경찰이 마지막으로 위로했다.
“힘내라.”
문을 나서면서 강민은 웃었다. 정말 힘을 내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치듯 경찰서를 빠져나간 양아치 무리가 모여 걸어가는 쪽을 바라봤다. 그는 그들 중 하나를 찍어 뒤를 쫓았다. 누가 이런 일을 기획한 건지 알아낼 차례였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말이야…….’
강민의 머릿속에는 벌써 쉽게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
가게 좋은 친구는 그날 밤도 아주 바빴다.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했고, 맥주는 전해지자마자 비워졌다. 여기저기서 빈 맥주잔을 들고 손님들이 성화를 부렸다.
“여기 맥주 3000 추가요!”
“여기도!”
“아, 얼른 주문 받으십시오!”
알바생들은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좁은 가게를 뛰다시피 움직이며 맥주와 안주를 전달하기 바빴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마치 한여름인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덕분에 가게 에어컨도 계절에 안 맞게 쌩쌩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에. 죄송합니다.”
“곧 갑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가게의 주방에서 종업원들만큼이나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강민의 아버지가 피로하지만 뿌듯한 얼굴로 나왔다.
“아이고, 바쁘다.”
“호호, 이렇게 손님이 몰리니 어쩔 수 없죠.”
카운터를 보고 있던 강민의 어머니가 그를 맞아 차갑게 식힌 수건을 내밀었다.
강민의 아버지는 땀을 닦으며 아내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알바생은 세 명. 하지만 그 세 명이 헐떡거리며 주문을 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눈에 선히 보였다.
인건비 절약도 좋지만 이래선 있던 알바생도 다 도망갈 판국인데다 손님에 대한 서비스 질도 현저히 떨어질 게 불을 보듯이 뻔했다.
“그러게 말이야. 알바를 더 써야 하겠어.”
“그렇죠? 오늘 매상은 어제의 두 배는 돼요.”
싱글벙글한 얼굴로 강민의 어머니가 말했다.
“입소문이 퍼지면 더 많이 오겠지?”
“가게가 좁아서 어쩌죠?”
강민의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금도 좋은 친구의 문 앞에는 안으로 들어오려다 자리가 없음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쥐어 줘야 할 판이다.
맥주가 점심 식사도 아니고, 떠들썩하게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서 즐기다 가는 건데, 번호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가게가 좁으니 어쩔 수 없었다.
강민의 아버지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옮겨야 하나…….”
“그럴 순 없죠.”
하지만 강민의 어머니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팔고 있는 특제 생맥주는 특제 생맥주란 이름을 붙여 팔고 있지만 정작 두 사람 역시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술인지 모른다.
그 원리를 모르는 이상 가게에 크게 손을 대는 것은 굴러들어온 금덩이를 제 발로 걷어차 내는 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리모델링을 하든가 해야 할 텐데……. 그러면 대출을 받아야 하려나.”
“당장은 좁은 대로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게 말이야.”
아내의 말에 강민의 아버지도 찬성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방송국에서 연락 왔어요.”
“방송국에서?”
“어디더라? 이 지역 방송국인데, 맛집 프로그램 하는데 우리 맥주를 소개하고 싶다는 거예요.”
“아. 고맙지만 거절한다고 해둬.”
“왜요? 좋은 기횐데?”
의아하게 물었다.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유흥업이든 요식업이든 성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하지만 강민의 아버지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좋은 기회는 무슨.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감당이 안 되는데 그런 데 소개까지 돼봐. 어쩌려고.”
“하긴, 손님이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죠.”
강민의 어머니도 이미 이 일을 시작한 지 여러 해였다.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일의 성격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강민의 아버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리모델링도 그렇지만, 장사 되는 거 봐서 건물 2층을 빌려서 거긴 예약제로 운영하든가 해야겠어.”
“예약제로요?”
호프집이 예약제라니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님이 계속 이렇게 오면 여러 번 찾아와도 그냥 가는 손님도 생길 테고, 그럼 웃돈을 주더라도 자리를 맡아두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테고. 괜찮지 않겠어?”
호프집에 찾아와서 자리가 없어 돌아가야 한다면 그건 황당한 꼴이다.
한데 그런 걸 여러 번 경험하게 되면 기대하고 찾아온 손님은 반대로 가게를 증오하게 되는 수가 있다.
진상을 많이 경험해 본 바, 강민의 아버지는 그런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상도 막고 수익도 올릴 겸, 그런 식으로 충분히 손님 측에서 약간 노력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 같아요.”
가게를 다시 둘러봤다.
가득가득한 손님들. 그리고 그들의 주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 주문 전부가 물론 집안의 수익으로 연결된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 이대로라면 하루 순익만 천만 원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겠지?”
“호호! 가게가 좁아서 당장은 무리지만 길게 보면 가능하겠죠.”
웃음이 멈추지 않는 것은 강민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맥주통 꼭지를 바라보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서 이런 복이 갑자기 굴러들어왔는지 몰라.”
“그러게 말이죠.”
강민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심경이었다.
자고로 사람 팔자가 어찌 될지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
어두운 골목길을 걷던 소년이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소년의 이름은 이구식. 오늘 강민을 습격하는 데 참여했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으으.”
맞은 얼굴이 아직도 쓰렸다.
용돈이나 좀 벌어볼까 하고 학교의 일진과 웬 놈을 습격했는데, 역으로 얻어맞고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짭새까지 동원했건만 엄한애 괴롭힌다고 욕만 먹고 쫓겨났다.
‘되는 일이 없군.’
하지만 그놈은 대체 뭐지?
정말 셌다.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힘이라고 할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더니 열 명이 넘는 상대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모두 때려눕혔다. 그 때문에 용돈 벌려다 집안 거덜 나게 생긴 애들도 적지 않았다.
‘치료비 청구도 못하고…….’
증거가 있어야 하지.
얻어맞은 건 분명한데, 때린 놈을 때린 거라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주먹이 상처가 안 난다니.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게 아니라 경찰 말마따나 무협지에 나오는 금강불괴라도 익혔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가.
‘하여간 그놈 일에는 앞으로 절대 얽히지 말아야지.’
몸을 사려야 했다.
일단 이쪽이 머릿수가 많고, 또 든든한 자금도 있다는 것 때문에 참여를 하긴 했지만 얼굴을 직접 내밀어 짭새 있는 곳까지 간 이상 한동안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역시 여러모로 이번 일은 수지가 맞지 않았다. 아니, 수지가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쪽박이었다.
하지만 그의 불운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깨를 툭 치는 손길이 있었다.
“여.”
“악!”
놀라 뒤를 돌아봤다. 웃으며 서 있는 같은 또래의 남학생이 보였다.
“뭐, 뭐야!”
“나 모르냐?”
가로등 불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구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히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인연으로 얽힌.
“너, 넌 강민?”
“그래. 물을 게 있어서 왔다.”
“말할 거 없어! 얼른 꺼져!”
허세를 부리듯 이구식은 거칠게 외쳤다.
강민은 피식 웃었다.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동시에 번개처럼 손을 뻗어 구식의 손을 잡아 쥐었다.
“아, 아악!”
구식은 손이 잡힌 순간 마치 두부처럼 자신의 손이 뭉개짐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상 힘을 주진 않았다.
사실 강민의 악력은 수 톤을 넘는다. 물론 이계에서 그랬지만 지구에서도 몇백 kg은 쉽게 넘길 수 있다. 인간의 육체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다.
하지만 고어 영화를 찍을 것도 아니고, 살인을 저지를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강민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냐?”
“아, 알겠어. 알겠어! 뭐든 말할게!”
식은땀을 흘리며 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강민은 손을 놓았다.
구식은 잡힌 손을 다른 쪽 손으로 쥐고 쩔쩔 매는 표정으로 강민을 두렵게 바라봤다. 이미 반항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뭐, 뭘 알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