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호성의 시선은 강민이 사라진 쪽을 향하고 있었다.
***
늦은 오후가 되었고, 호프집 ‘좋은 친구’에선 장사를 시작했다. 주말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손님이 들어왔다. 가볍게 술을 마시러 친구들끼리 들른 모양이었다.
그들을 맞아 아르바이트생이 자리를 안내했고, 주문을 받았다.
“여기 맥주 3000하고, 통닭 한 마리요!”
금방 주문대로 술과 안주가 도착했다.
“음?”
“어?”
“이거…….”
“뭐야?”
별생각 없이 떠들다 다 같이 처음 한 모금 맥주를 마셨을 때, 그들의 표정이 모두 변했다.
상상도 못했던 맛의 맥주였다.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맛이었다.
탄식처럼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이거 기가 막힌데…….”
“야, 너 뭐 시킨 거야?”
“그냥 맥준데.”
“잘못 온 거 아냐?”
정말 맛있는 맥주이긴 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도리어 무서웠다. 값이 얼마일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
그들은 곧장 알바생을 불렀다. 알바생이 오길 기다리면서 그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맥주를 바라보며 말을 나누었다.
“이런 맥주를 마음대로 못 마셔서 주문을 확인해야 하다니. 억울하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다들 빡빡할 때잖아. 다음에 날 잡아서 제대로 마시러 오자. 물어보고 혹시 싸면 오늘은 축제인 거고.”
“그래. 진짜 굉장한데. 어째서 이런 가게를 우리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던 거지?”
“뭐, 숨겨진 맛집 같은 거겠지.”
“그러면 오늘은 진짜 운이 좋은 거군. 이런 가게를 찾아내다니.”
“글쎄 말이야.”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바쁘게 움직이던 알바생이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아, 맥주가 잘못 온 거 같은데.”
“맥주가요? 이상한데…….”
알바생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잘못 가져다 줄 리 없는 걸 잘못 가져다줬다 하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생맥주 3000㏄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이건 생맥주가 아니잖아. 아니, 생맥주는 맞는데 그냥 생맥주가 아니잖아. 우리가 주문한 게 아냐.”
테이블 안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맥주 전부가 지금 상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 맛이 변했단 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가게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위생 관리에 얼마나 철저한지 알고 있는 알바생으로서는 좀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 방금 맥주를 맛본 이들로서는 또 이게 황당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야야, 잔말 말고 먹어보라 해.”
“그래. 먹어봐.”
백문이 불여일견. 이런 일에 관련되어 직접 먹어보고 진상을 확인하는 것만큼 쉬운 방법은 없다. 알바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컵을 하나 가져와 그 테이블의 생맥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표정도 다음 순간 변했다.
“어?”
“그렇지? 아니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의 손님들이 물었다. 알바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표정으로.
이런 끝내주는 맥주를 들여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비싼 술을 그냥 맥주로 여기 내온 게 아닌가 싶어 알바생은 당황스런 표정이 됐다.
“아니…… 잠시만요.”
알바생은 당장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왜 저러지?”
“혹시 저 녀석도 몰랐던 거 아닐까?”
“그렇게 엉성한 가게로는 안 보이는데.”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갑작스런 일에 이야기를 나누며 중앙의 맥주를 입맛을 다시며 바라봤다. 그중 한 사람이 호기 있게 외쳤다.
“에이, 맥주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냐. 기분이다! 그냥 마시자!”
“오오, 역시 남자!”
“나는 네가 진짜 사나이란 걸 알고 있었지!”
그들은 안주도 없이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기 시작했다. 주 안주인 통닭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도리어 이 술을 마시는 데 안주는 방해가 될 뿐이다 싶었다.
술 자체의 맛을 즐기는 것이 최고라 싶을 정도로 멋진 맛의 맥주였다.
***
알바생이 주방에 들어갔을 때, 내부에선 요리사와 주인아저씨가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큰 호프집은 아니라서 두 사람이 일하는 정도로 충분히 주문을 감당할 수 있었다.
“저, 아저씨.”
“무슨 일이냐, 진상이야?”
상민의 아버지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서비스업의 숙명이자 공포!
그것은 진상 손님이다. 그들의 감당 못할 행위와 트집은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고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몸에서 사리를 만들게 할 정도다.
알바생은 고개를 흔들며 설명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새로 술 들이셨죠?”
“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강민의 아버지는 반문했다.
하지만 알바생은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말씀을 해 주셔야죠. 새로 맥주 들어왔으면 미리 알고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아야 저도 대처를 하죠. 술을 잘못 냈어요.”
“얘가 무슨 소릴 하나…….”
아저씨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알바생은 가슴을 쳤다.
“아, 답답하게……. 이번에 맥주 진짜 끝내주는 걸로 들이셨잖아요. 가격도 모르겠고, 주문표에도 안 붙어 있어서 모르고 그걸 그냥 생맥주라고 냈단 말이에요.”
“우리 집에 생맥주 외에 맥주가 어디 있어? 병맥주 말이냐?”
“아~ 이게 대체 무슨…… 아주머니가 하셨나? 그러면 와 보세요.”
알바생은 답답한 얼굴로 강민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지…….”
곧 두 사람은 맥주통 꼭지 앞에 도착했다. 알바생은 잔에다 맥주를 담은 다음 강민의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마셔보세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강민의 아버지는 순순히 마셨다.
“음.”
표정이 변했다.
그 표정을 보고 알바생은 이제야 속이 좀 풀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말이 맞죠?”
“무슨…….”
맥주잔을 들여다보며 강민의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중얼거림을 흘렸다.
왜 알바생이 자신을 찾은 것인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민의 아버지 역시 이런 술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알바생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도 몰라요? 그러면 진짜 아주머니가 말도 없이 술을 바꾸셨나…….”
“그런 것 같구나. 전화해 봐야겠다.”
지금 강민 어머니는 카운터를 다른 알바생에게 맡기고 잠시 밖으로 일을 보러 나간 상태였다.
알바생이 물었다.
“맥주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그냥 생맥주 가격으로 받아야지.”
고민하다가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거 손해가 너무 크지 않아요?”
“밖에 뻔히 가격 다 써 있는데 그거 보고 온 사람들이 불평하면 감당 못한다.”
“그것도 그렇죠.”
알바생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상은 무섭다.
정말로 무섭다!
주문표에 정확히 가격이 기재되지 않은 맥주나 주문표에 있는 음식을 마련할 수 없거나 하는 건 진상들이 가장 트집 잡기 좋은 꼬투리가 된다. 사실 그런 경우 정당한 클레임이 되기 때문에 진상이라 부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아줌마가 얘기를 안 한 건 괘씸하지만 이런 술이면 얼마에 팔든 본전 뽑는 건 일도 아니지.”
“하기야 진짜 끝내주는 맛이었어요.”
이것도 알바생은 동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끝내주는 맛이었다. 일찍이 이런 맥주를 맛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강민의 아버지는 얼른 지시했다.
“특제 맥주라고 하고, 오늘 개시한 거라서 서비스로 그냥 생맥주 가격만 받는다 해라.”
“네.”
알바생은 그게 좋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좋은 친구를 찾은 손님들은 저마다 훌륭한 가게라고 칭찬을 하며 단골이 될 것을 다짐했다.
***
“흠.”
강민은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가요 프로그램이 재방송 중이었다. 남자 그룹, 여자 그룹 등 다양한 그룹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딜레이 타임을 가지는 중 진행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그룹이죠?”
“네. 특히 남성분들의 지지가 절대적이죠.”
“그렇습니다. 이번 순서는 뷰티걸의 노래 ‘이젠 나만 봐’입니다.”
방청객의 남성들이 환호했다.
무대 위에 다섯 명의 소녀가 들어왔다.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나다시피 하는데다 다리를 늘씬하게 드러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아, 저게 수란이네.”
모두들 무척 뛰어난 미소녀였지만 그 가운데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수란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보았을 때에도 예쁜 얼굴이라 생각했지만 한껏 꾸미고 나온 모습은 정말 절세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만큼 변화도 많아서 오늘 수란을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지금 나온 그룹 가운데 누가 수란인지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예쁘긴 하네.”
하지만 강민은 그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아름답다는 이상의 감상은 나오기 힘들었다.
‘근데 좀 선정적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긴 했다.
저게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라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사실 강민은 몸만 고등학생이지 실제로는 많은 체험을 한 입장이라 여자도 여러 번 안아 봤다. 아무래도 저렇게 꾸민 미소녀를 보자면 남자다운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실례기 때문에 강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때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갔다. 부모님 두 분이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을 맞았다.
“돌아오셨어요.”
“그래. 돌아왔다.”
강민의 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은 일 있으셨어요?”
강민은 무슨 일이 있는지 뻔히 알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래 좋은 일이 있었지.”
“이번에 가게 맥주가 갑자기 굉장히 맛이 좋아졌지 뭐니. 마셔본 손님들이 전부 감탄을 하더라니까.”
“그래. 이제 장사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즐겁게 말했다.
“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다른 회사랑 계약이라도 하신 거예요?”
“그게 말이다…….”
“그 비슷한 거라 생각하렴.”
난처한 얼굴로 부모님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야 두 사람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리 없으니 설명을 못하는 건 당연했다. 비밀은 강민이 설치한 마법진에 있지 원래 맥주나 맥주 통, 어느 쪽에도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여간 장사가 잘 된다면 좋은 일이죠.”
“그렇고말고. 이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다. 하하하!”
“그러니 남은 건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거지. 알겠니?”
강민의 어머니가 눈을 번쩍이며 강민에게 요구했다.
그 강력한 위압감에 강민은 과거 미숙한 전사일 때 드래곤을 앞에 둔 것 같은 긴장감을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