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만수가 두려움에 떨리는 눈동자로 재철을 바라봤다.
“재철아…….”
“괜찮아.”
재철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내심 한구석이 이미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든 돌파해야 했다.
양아치는 체면이다. 쪽 한 번 팔리고 나면 끝장인 것이다. 어떻게든 이걸 해결해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퍼런 결의가 재철의 눈 안에 번쩍이듯 머물렀다.
***
교실 안에서는 재철이 나가고 난 뒤 크게 웅성거림이 일었다. 강민이 일진 중의 일진인 재철을 물리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환구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동그랗게 눈을 뜬 그는 강민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좋은 말로 설득한 거야.”
빙그레 웃으며 강민은 말했다.
환구는 물론 어이가 없었다.
“좋은 말로…… 그게 말이 되냐?”
“그렇다고 생각해 둬.”
강민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런 작은 소란도 소란이라면 소란이다. 피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여기서 싸움을 벌이는 걸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
점심때 거기서.
강민이 말한 그곳이란 그들 네 사람 사이에서는 나름 중요한 곳이었다.
학교 뒤편의 후미진 공터였는데 학교의 여러 시설을 수리하는 데 쓰는 자재를 가끔 놓아두곤 하는 곳이었다. 사람이 거의 들르지 않아 재철과 같은 양아치들이 딱 좋아할 만한 곳이기도 했다.
강민은 점심시간이 되자 급식을 먹고 그곳으로 나갔다.
재철을 비롯한 일진 무리는 아침의 그 일이 있은 뒤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민이 그곳에 가보니 과연 와 있었다. 그들 중 수구와 만수는 기다란 나무 막대를 쥐고 있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 심지어 무기의 사용조차도 불사할 모양이었다.
물론 강민은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아침에 그런 꼴로 당하고 그 정도 대비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렇다고 해 봐야 강민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강민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기다렸어?”
“이 새끼, 어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야, 넌 죽었어!”
수구와 만수가 노해 외쳤고, 재철이 그보다 빨리 움직였다.
재철은 강민의 품을 장악하려는 듯 재빨리 다가오면서 주먹을 길게 뻗었다. 동작이 깨끗해서 학교에서 널리 퍼져 있는 재철의 악명은 단순한 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마추어, 그래 봐야 일반인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강민은 아주 쉽게 그것을 피하고 역으로 재철의 품에 들어갔고, 주먹을 움직였다.
쉭!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재철의 턱에 강민의 주먹이 들어갔다.
요란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재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이것이 말로만 듣던 뇌진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놈!”
“죽어!”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수구와 만철은 그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이 거칠게 움직이며 강민을 공격하려 했다. 그들은 준비했던 나무 막대를 꽉 거머쥐고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재철조차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한 강민의 주먹이다. 수구나 만수 같은 시시껄렁한 잡배들 따위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강민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날아드는 나무 막대를 주먹으로 쳤다.
빡!
큰 소리가 나며 나무 막대가 그대로 박살 났다.
“어……!”
수구가 부러진 막대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했다.
다음 순간 그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강민의 웃는 얼굴이었다.
뻑!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다.
남은 것은 만수 하나.
하지만 이미 싸움이 되지 않았다. 만수 본인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고 있는데 무슨 싸움이 되랴.
강민은 성큼성큼 움직였다. 두려움에 몸을 맡긴 만수는 질끈 이를 물고 쥐고 있던 나무 막대를 휘둘렀다.
“오, 오지 마!”
하지만 나무 막대는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이어진 것은 강민의 주먹이었다.
만수의 의식 역시 그 순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끊어지고 말았다.
***
재철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도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겨우 몸이 말을 듣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장면은 차라리 의식을 계속 잃고 있던 것이 어떨까 싶은 것이었다.
빙그레 웃는 강민의 얼굴이었으니까.
“정신 차렸냐.”
“너, 너…….”
재철은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잃은 사이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 자기뿐만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양옆에 수구와 만수 역시 같은 꼴이 되어 묶여 있었다. 그들 역시 막 정신을 차린 듯 바들바들 떨면서 놀란 얼굴로 강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을 털며 다가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귀찮고, 일단은 맞고 시작하자. 내가 때리는 데는 좀 일가견이 있거든.”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 주저 없이!
퍽! 퍽!
퍼퍽!
처음 한두 방은 자존심도 있고 해서 비명도 흘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포박에서 풀려나면 나중에 두고 보자고 이도 갈았다.
지금은 이 꼴이고,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강하다고 깝죽대지만, 언제든 기회를 잡아 뒤통수를 치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재철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도대체 주먹질이 끊이질 않았다. 죽일 생각인가 싶을 정도였다.
“악!”
결국 재철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비명이 터지자 둑처럼 막혀 있던 고통도 같이 터진 것처럼 이제까지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으악!”
견딜 수가 없었다. 이를 갈며 독기 어린 눈으로 강민을 노려봤다.
주먹질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이 새끼……!”
“어쭈?”
하지만 강민은 위협에 전혀 졸지 않았다. 도리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층 치명적, 아니 아픈 주먹을 날렸다.
“끄악!”
견디지 못한 재철은 비명을 내질렀다.
강민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뭐라고 했지?”
이제 체면이고 나발이고 남은 것이 없었다. 그저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뭐든지 좋았다.
“자, 잘못했어요…….”
벌벌 떨면서 재철은 구걸하듯이 말했다. 강민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주먹질은 계속됐다.
퍽퍽!
고기를 다지듯이 재철을 때렸다. 비명을 연이어 내지르던 재철은 종래 비명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기묘한 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걸 옆에서 바라보면서 수구와 만수의 얼굴은 이미 푸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히, 히익…….”
“으, 으으…….”
두려움이 전신을 지배했다. 하체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자칫하면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퍽퍽!
그동안에도 강민의 구타는 계속됐다.
끝나지 않을 것 강민의 주먹세례가 마침내 멈춘 것은 그러고 몇 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강민이 주먹질을 멈췄을 때, 재철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꿈틀꿈틀 전신을 떨 뿐이었다.
기묘한 점이라면 그렇게나 철저히 얻어맞았는데, 얼굴은 전혀 망가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킨 줄 알았을 것이다.
“휴우.”
강민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역시 부족한 마나로 잘 때리려니 힘들었다. 차라리 두들겨 패서 죽여 버리는 거라면 아주 쉬웠을 텐데, 상처를 남기지 않고 고통만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에서 차마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이고,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신성한 노동의 땀을 닦아낸 강민은 이제 시선을 돌렸다.
그 앞에는 마찬가지로 묶인 채 시퍼렇게 죽은 표정을 하고 있는 수구와 만수가 있었다.
강민은 친절하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누구부터 할까?”
퍼렇던 수구와 만수의 표정은 마침내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하체에서 기묘한 통쾌함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렸다.
지리고 만 것이다.
***
강민은 쌓인 나무토막 위에 앉아 건들거리며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 아래쪽에는 재철과 수구, 만수가 무릎을 꿇은 채로 정좌하고 있었다. 그중 수구와 만수의 바지는 아직도 다 마르지 않은 채였다. 갈아입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강민은 턱을 긁으며 말했다.
“나는 누구지?”
“강민 형님이십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절대로 반항하지 않겠습니다.”
셋은 일제히,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어조로 강하게 외쳤다. 얻어맞고 또 얻어맞던 와중에 반항이나 복수의 마음은 꺾이고, 이제 공포에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들을 반항조차 못하게 만든 것은 그렇게나, 정말 그렇게나 많이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아무런 상처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을 땐 아프지만 구타가 그치니 그걸로 끝이었다. 멍이 들지도 않았고, 계속 아픈 구석도 없었다.
아예 맞은 적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다시 말해서 언제든 고통만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셋 다 이른바 일진이고, 티 안 나게 때리는 여러 가지 기술을 알고 있지만 그야말로 강민은 신세계였다. 고문법으로 사용되더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실제 고문술이 맞았다. 이계에서 적과 싸울 때 강민은 적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그는 거기서 훨씬 강했고, 그런 만큼 훨씬 고통스러운 고문이었다. 굳은 정신력을 자랑하던 많은 적들이 그의 주먹 아래서 무너졌고, 개처럼 설설 기게 되었다.
마그누스의 진짜 특기는 검이 아니라 주먹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강민이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말 변치 않길 바란다. 만에 하나 거짓임이 들통났을 때는…….”
“히이…….”
셋 모두 기묘한 비명 같은 것을 내며 벌벌 떨었다. 얻어맞을 때의 고통이 온몸에 환각처럼 다시 떠오른 것이다. 악마의 혓바닥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았다.
셋은 넙죽 엎드리며 애걸했다.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해요!”
진정성이 넘치는 맹세였다.
오늘 아침 뒷문으로 들어와 강민을 깔보던 태도는 지금 그들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혼조차 강민에게 굴복한 것 같은 태도였다.
강민은 자신의 적절한 구타가 썩어가던 세 영혼을 구제했음을 알고 크게 만족했다.
“그래야지.”
졸지에 부하 셋을 거느린 일진으로 지위가 격상된 강민은 이어 그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내가 학교생활을 조용히 하고 싶거든? 오늘 있었던 일은 어디 가서 떠들지 마라. 일진 자리도 표면상으로는 너희가 계속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