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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져서 놀러왔다-3화 (3/227)

3화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좋은 학생이자 성공한 직장인으로서의 신분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금 같은 걸 가지고 올 수 있다면 한층 좋았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약간 조정하기 위해 강민은 막대한 자원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러고서도 어마어마한 귀금속이 그에게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가지고 이곳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각 세계의 존재는 그 존재의 파동이란 것이 있어 그것이 맞지 않는다면 옮겨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강민은 양 세계 모두에서 그 파동이 유효해 옮겨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민이 맨몸으로 이 세계로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뭐, 돈 같은 거야 여기서 벌면 되니까.’

원래 세계에 있던 때와 비교하면 물론 많이 약해졌다. 지구는 마나가 약하니까.

하지만 강민은 원래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전사였고, 간소하지만 몇 가지 마법도 할 줄 알았다. 그것만 해도 부모님을 도와 충분한 부를 쌓고, 이곳에서 그럴듯한 신분을 만들어 두 분을 안심시키는 것에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니 장래 한국은 휴양소 비슷하게 이용한다할까.’

그것이 현재 강민의 계획이었다.

신분을 만들고 기반을 만들어서 이 세계에서 일을 하고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건너와 휴양을 즐기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시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전후 처리란 정말 무시무시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강민은 직접적으로 정치를 하는 권력자의 입장에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권력에 아주 가까워서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친구를, 그것도 베스트 프렌드를 돕는 일이면서 동시에 전쟁에 휘말려 불행해진 이들을 돕는 일이다. 그걸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그것만 해도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휴식은 아주 중요했다. 이렇게 처리해야 할 일들과 완전히 끊어진 상태로 즐길 수 있는 휴식은 더더욱.

사실 이번 휴가도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질질 끄는 친구를 눈물을 머금고 걷어차고 온 것이다. 부모님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안 놓아줬을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이런 시간은 한층 상쾌했다.

곧 즐거운 마음으로 종종걸음을 이어가는 강민의 눈으로 낯설지 않으나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건물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동성고등학교.

강민이 이 세계로 건너가기 전에 다니던 학교였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도 정리할 것이 있었지.’

강민은 빙그레 웃었다.

여러 가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뭐 모두 즐거운 것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다 즐거운 걸로 바꾸면 된다.

이제 강민에게는 그럴 만한 힘과 시간이 있다.

***

교실에 들어간 강민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자리를 찾아 학생으로서 의자에 앉게 되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한데 강민이 앉자 주변의 다른 학생들이 그를 바라보며 불쌍한 사람을 바라보듯이 흘깃흘깃 시선을 주었다.

강민은 그런 시선을 접하고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했다. 뭐 앞으로도 그럴 만하게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때 강민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괜찮냐?”

“뭐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건 학생을 돌아봤다. 그는 강민에게 유환구라는 이름의 남학생으로 오지랖이 다소 넓지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던 학생이었다.

“뭐긴…… 뻔한 거 아냐?”

“아…….”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강민은 빙그레 웃었다.

“걱정마.”

“뭐 믿는 구석이라도 생겼어?”

“조금.”

“그놈들 정말 소문이 더러워. 뭘 믿는지 모르지만 진짜 조심해야 돼. 내 코가 석 자라 도와줄 수는 없다만…….”

환구는 계속 걱정스레 조언했다.

강민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뭐 이것만 해도 충분해.”

환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민의 속을 알 수 없어서였다.

강민과 그는 친한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된 이후 강민의 처지는 반의 모든 학생들이 동정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놈들에게 찍히다니.

그야말로 재수가 없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재수 없음이 최소한 일 년, 자칫하면 삼 년까지의 학교생활을 결정하는 것이 고등학교의 현실이다.

“걱정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뭐, 네가 그렇다면 나야 더 할 말이 없긴 하다만…….”

환구는 결국 물러섰다. 걱정스럽긴 해도 본인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데야 무슨 말을 더 할까. 그냥 물러나서 지켜보면 될 뿐이다.

환구가 멀어지고 나서 십수 분이 지났다. 홈룸 시간까지는 아직 십수 분이 남았다. 교실의 학생들은 저마다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모여 떠들고 있었다.

강민은 우선 책을 펼쳐서 살펴봤다.

‘아…….’

오랜만에 교과서를 보니 어지러웠다. 예전에 이렇게 어려운 걸 다 공부했던가 싶을 지경이다.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칼을 잡고 몬스터를 썰고, 마왕과 싸우는 흉험하고 단순한 생활을 했으니 글과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뭐…… 예외도 있지만.’

마법을 사용하던 동료들은 비록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 중이라 해도 항상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공식을 외우고, 복잡한 마법을 사용하는 게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민은 전사(戰士)다.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공부도 좀 시작해 봐야 하겠지.’

찌푸린 얼굴로 강민은 중얼거렸다.

휴가 와서 웬 공부냐 싶긴 하지만 부모님이 계신다. 걱정을 끼치지 않고 훌륭한 아들이 되어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겉모습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 지닌바 힘을 사용하면 당장에라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선 휴가를 온 보람이 무어란 말인가!

어차피 영광과 부라면 이 세계에서 충분히 얻었고, 앞으로도 얻을 것이다. 현대의 지구는 어디까지나 휴식을 위한 장소로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자면 주목받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이고 눈에 크게 띄지도 않을 신분을 마련해서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한편,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마법을 배워 둔 중에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고…….’

집중력이라든가 암기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사용한다면 당장에 십 년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어도 수능 시험을 치르기까지 적잖이 따라잡고, 어쩌면 과거 학교 다닐 당시보다 좋은 성적을 얻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때였다.

드르륵.

뒷문이 거칠게 열리고 세 사람의 학생이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소란스럽던 교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선두부터 김재철, 이만수, 구수구. 이 반의 일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명한 메이커 북쪽산 패딩을 입고, 어깨로 늘어뜨리는 가방을 멘 채 건들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 일진이오.’ 하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바로 김재철, 그야말로 이 반은 물론 동성고등학교 전체를 아우르는 일진 중의 일진이었다.

그가 2학년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악명과 싸움 실력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고등학생 무렵의 한 살이란 정말 큰 것이다. 그 차이를 뒤집으려면 어지간한 힘과 깜냥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그는 강민을 보자마자 씨익 웃었다. 잊고 있었던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이었다.

“여, 왔냐.”

손을 들고 건들거리며 다가갔다. 강민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강민의 눈동자가 잠시 그리움에 물들었다. 이런 시절도 있었지, 라는 표정이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세상의 고통은 전부 자신에게 있는 줄로만 알았다. 후일 그 정도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주변에 도움을 청해봐야 무의미하게 끝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듣고 보았기 때문에 상담 같은 것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묵묵히 견뎠다.

묵묵히 견딜수록, 재철은 더욱 심하게 굴었다.

언젠가는 오줌을 담아 놓은 종이컵을 내밀더니 먹어보라면서 낄낄댄 적도 있었다. 물론 강민은 반항했는데 그날 많이 얻어맞았다.

눈앞에 별이 번쩍인다는 말이 만화에서나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그러다가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순간 강민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강민이 자살한 직접적인 이유까지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했었음은 틀림없었다.

부모님의 사고와 재철의 괴롭힘, 둘 중 하나만 아니었더라도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오늘도 말 잘 들어야지.”

재철이 앞으로 다가와 놀리듯 말했고, 옆의 수구가 강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완전히 애 취급하는 태도였다.

실제로 그들은 지금 강민을 지나가는 강아지보다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강민은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수구의 손을 잡았다.

수구가 비웃듯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당해놓고 꼴에 아직도 자존심을 세우려는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강민이 자신의 손을 잡은 그 순간 수구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아, 아아!”

일그러진 얼굴에서 저절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손아귀 힘이 어마어마했다. 손 전체가 뭉개지는 것만 같았다.

재철과 만수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은 험악하게 강민에게 외쳤다.

“이 새끼가!”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강민이 있는 쪽으로 모였다.

강민이 재철을 노려봤다.

책상을 발로 걷어차고 강민의 위에 올라타 내려치려 했던 재철은 움찔 멈추고 말았다.

눈. 강민의 눈이 범상치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범접해선 안 될 것을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평소라면 당장 행동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재철을 막았다.

재철이 움직이지 않기에 수구와 만수 역시 움직일 수 없었다.

강민은 웃으며 말했다.

“점심때 거기서 보자.”

그리고 손을 놓았다.

수구는 화들짝 손을 떼어냈고, 재철은 주변을 살폈다.

반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있었다. 쪽팔리다는 생각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뭘 쳐다보고 있어!”

거칠게 외쳤다.

학생들은 모두 자라목이 되어 시선을 돌렸다.

***

재철은 가방을 자신의 자리에 던져두고는 밖으로 나갔다.

교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수구의 손을 잡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어디 보자.”

“으으…….”

재철이 수구의 손을 잡고 확인했다. 손이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악력에 뭉개지듯 잡힌 것이다. 재철의 표정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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