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민은 준비한 돌을 들었다. 그의 머리통 절반만큼이나 큰 돌이었다.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달려왔다. 국산 중형차였다.
익숙한 디자인에 강민의 표정이 그리움에 흐려졌다.
바로 부모님의 차였으니까.
하지만 그리움에 흔들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정확히 이때 트럭의 움직임이 흔들리더니 중앙선을 침범하려 했다.
끼익-!
타이어가 바닥에서 미끄러져 마찰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강민은 자세를 잡고 돌을 던졌다.
후왕!
보이지도 않는 속도!
마치 한 줄기 선이 쭈욱 뻗어가는 것처럼 돌은 날아갔고, 트럭의 앞바퀴에 충돌했다.
콰앙!
거대한 트럭이 그 충격에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중앙선을 침범하고 안쪽으로 들어오려던 것이 미끄러져 도리어 밖으로 튕겨 나가듯이 길게 선을 그렸다.
끼이익!
끼이익!
끼익!
도로에서 차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브레이크를 밟았다.
콰앙!
쾅!
트럭의 옆에서 달리던 차들이 재수 없이 충돌해 옆으로 튕겨나갔고, 작은 차는 옆으로 누워버렸다. 많은 차들이 도로 중앙에 선 채로 어수선하게 정지했다.
웅성웅성.
“이게 뭐야.”
차에서 부산히 사람들이 나와 짜증을 내고 트럭 운전자를 욕했다. 그런 이들 가운데는 막 트럭 맞은편에서 달리다가 충돌할 뻔했던 차의 운전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고, 특히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막 충돌할 뻔했던 차, 즉, 강민의 부모님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아버지는 서효길, 어머니는 남길순. 나이에 비해 두 분 모두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무슨 경우람,”
“그러게 말이오, 여보. 여행 잘하고 와서는…….”
“그래도 다행이에요. 자칫했으면…….”
남길순은 정지한 트럭을 바라보며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저 트럭이 마치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때는 정말 얼마나 놀랐던지.
“하하, 설마 그러려고.”
아내가 걱정스레 한 말에 그녀를 달래기 위해 서효길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도 사실은 당시에는 아내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살아났으니까 지금 이렇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트럭의 움직임은 확실히 기묘했다. 갑자기 그럴 리 없다 싶은 방향으로 꺾이면서 원래 도로로 들어갔으니까. 게다가 그러기 전에 서효길은 창문으로 무언가 선 같은 것이 지나간 것을 본 것 같았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어차피 그런 건 별로 의미 없는 일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는 도로가 정리되길 기다렸다.
강민이 서 있던 도로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
덜컹.
문이 열리고 강민의 부모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불 켜진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강민을 찾았다.
“돌아왔다.”
“아들, 잘 지냈니.”
두 사람의 목소리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새해 들어서 강민이 부쩍 어두운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잘 대답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사실은 나중으로 물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신경을 쓴다는 것 때문에 더 까다롭게 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그대로 여행을 갔다. 사춘기란 본디 그런 것이니까.
강민이 방문을 열고 나와 그들을 맞았다.
평정을 가장하고.
하지만 내면의 격동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죽었던 부모님이다. 하지만 이제 오랜 모험을 거치고 돌아와, 시간의 흐름을 뒤틀어 마침내 구해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눈물을 참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 부모님을 맞았다.
“아, 돌아오셨어요. 여행은 어떠셨나요?”
강민의 부모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무 의외여서였다.
강민의 목소리가 밝았고, 그 표정 역시 주말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 비해 더없이 밝았던 것이다.
“아주 멋졌지.”
“너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얼떨떨한 얼굴로 아들의 인사를 받으며 어머니가 물었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별로 그런 건 없는데 왜……?”
“아니, 없다면 됐다.”
“요즘 울적해 보이던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강민은 웃었다.
확실히 그때는 그랬다. 세상이 다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러한 마음이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겹쳐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모든 사건을 거쳤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 무수한 고통을 겪었고, 견디고 이겨내 보았다. 과거의 그 고통이 같은 방식으로 그를 덮치더라도, 이제 웃으면서 떨칠 수 있다.
강민은 더 마그누스다.
“하하!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구나.”
“언제든 고민 생기면 얘기해라.”
안도한 얼굴로 두 부모님은 강민에게 말했다.
“네.”
강민은 싱긋 웃었고, 부모님이 들고 온 여행 선물을 받았다.
두 분이 여행 간 지역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난 음식이었다. 하지만 대개의 특산품이 그러하듯 그럴듯한 외양만 갖추었을 뿐,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세 사람은 같이 그것을 먹으며 투덜거렸다.
“오면서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단다.”
“교통사고요?”
“그래. 맞은편에서 트럭이 달려오는데…… 운이 나빴다면 정면에서 충돌할 뻔했지.”
“저런! 다행히 무사하시네요. 차는요?”
“차도 괜찮았다. 다행히 우리뿐만 아니라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 차가 넘어가서 수리비 꽤 나가겠다 싶은 사람들이 있는 정도였고.”
“다행이네요.”
“그래. 트럭 운전사가 음주운전을 했다지 뭐냐. 너도 차 조심해라.”
“네.”
강민은 세 사람이 이렇게 모여 투덜거리는 이 시간 자체가 너무도 소중했다.
***
호흡을 하면 모래가 입안에 들어오듯 강력하고 시큼한 마기의 기색이 느껴졌다. 강민은 검을 꽉 쥐었다.
손에 쥔 것은 용의 뼈로 만들어진 강력한 마법 검 드래곤 피어. 용의 현현 같은 강렬한 존재감으로 주변의 모든 적에게 두려움을 안기고, 설령 그 적이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으로 된 갑옷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해도 일격에 깨부수고 만다는 강력한 검이었다.
그야말로, 전설이 현실에 걸어 나온 듯한 검이다.
강민은 고개를 들었다.
바라보는 평원의 저 끝까지 무시무시한 적들이 아득하게 늘어서 있었다. 하늘까지도 가득 메운 것 같았다.
시뻘건 눈알을 번쩍이는 다크 나이트가 선두에 섰고, 그 위에는 장창병들이 대열을 이루고 세계의 종말을 부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뒤에는 거대한 거인이 어마어마한 공성병기를 이끌고 걸어왔으며, 다시 그들의 뒤에는 거대한 용의 뼈가 썩은 가죽을 온몸에 걸치고 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그들은 세상을 쓸어버릴 듯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 앞에 바로 강민이 서 있었다.
압도적인 수와 힘의 차이.
하지만 강민은 그들을 앞에 두고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강인한 표정으로 그들의 앞에 우뚝 서서는 대검 드래곤 피어를 양손에 들었다.
“하아아!”
기합 소리. 세계의 모든 힘을 그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듯한 포효였다.
그러자 강민의 발아래에서 붉은 원이 생겨났고, 조용한 연못에 인 파문처럼 뻗어나갔다. 그리고 폭발했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붉은 기둥이 하늘과 지상을 하나로이었다.
진군하던 악마의 군대는 그 앞에서 흠칫 떨며 이변에 대비했다.
그 붉은빛의 기둥이 움직이며 그 가운데서 강민이 붉은 선이 되어 악마의 군대를 가르고 달렸다.
슈우-!
콰과과과광!
그 앞에 선 모든 악은 마치 먼지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모래처럼 부서지는 악의 군대. 그리고 그 흐름의 끝에서 강민은 군대의 후미에 선 목표를 보았다.
아니, 마기를 느꼈다고 하는 게 올바를까.
이 마의 군대를 지휘하는 열두 대악마!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크기는 인간의 크기에서부터 공성병기를 이끄는 거인과 동등한 것까지 다양했다.
그들 역시 강민을 인식했다. 열두 대악마의 마력이 흉험하게 얽히며 강민을 맞상대하기 위한 강렬하고 어두운 파동을 주변 세계에 뿜어냈다.
그리고 힘과 힘이 충돌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강민은 손을 휘둘렀다.
“이놈들…….”
쿠당.
“아욱!”
머리를 부여잡고 강민은 끙끙댔다.
“꿈이었나…….”
꿈에서 검을 휘두르다 침대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흠칫 놀란 얼굴이 됐다. 생소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리고 안도했다. 여긴 오래도록 오지 않았던 자신의 방이었다.
강민은 피식 웃고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지구로 돌아왔었지…….’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어려운 싸움을 거쳤고, 이겼고, 이제 휴식을 위해 돌아온 상태였다.
비록 자신의 집이라 하나 지구의 시간으로 십 년도 넘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 게 당연했다.
꿈의 내용만 해도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다. 말했다가는 판타지 소설 쓰냐는 핀잔을 듣기 딱 좋았다.
사실은 그가 겪었던 가장 어려운 싸움 중 하나였는데.
“아들, 일어나야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강민은 부스스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운 음식 냄새. 한국의, 바로 어머니가 만든 음식 냄새였다.
*
강민은 학교로 등교했다.
등굣길에는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학교에 가는 게 그다지 즐거울 것도 없지만 그 길을 오랜만에 걸으면서 강민은 부드러운 표정이 됐다.
‘역시 오길 잘했구나.’
강민은 이 세계의 영웅이다.
오랜 싸움을 거쳐 적을 쳐부수고, 세계의 평화를 찾았다. 그에게는 지위, 명예, 힘 모든 것이 있었다.
그 평화와 영예를 모두 얻고 강민이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휴식이었다.
너무 오래도록 싸웠다.
아주 힘든 싸움이기도 했다.
이제 조금은 쉬고 싶었다.
이왕이면 고향에서.
그래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도 구출하고 싶었다.
오랜 싸움을 거치며 막대한 힘이 생겼고, 다행히 두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약간이라면 시간을 역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이 세계에서 조언을 들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는 그 흐름을 뜯어고쳤고, 부모님을 죽음에서 성공적으로 구출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강민은 푹 쉬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제 강민에게 큰 의미가 없는 곳이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님을 제외한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그 세계로 옮길 수는 없으니 두 분을 안심시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