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티 프로젝트.
그것은 외계에 문명이 있는지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전파탐지기를 통해 지구 각지에서 다양한 신호를 수집해 그 중 외계의 문명이 보냈을 만한 것이 있는지를 탐구하는 걸 주된 임무로 삼았다.
이제까지 이 일은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우주는 아득하게 넓었고, 어쩌면 불과 수십 년으로 그런 성과를 얻으려는 것이 바보 같은 일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늘의 별조차 수백, 수천 년, 어떤 것은 수십만 년 전의 모습일 정도로 우주는 넓은 것이다.
그런 세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한 천문연구소에서 길버트는 여전히 많은 전파 자료를 모으고 또, 분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늘 그러하듯 빅뱅 이후로 우주를 소란스럽게 하는 전파 정도나 잡히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의미가 있는 특별한 전파 같은 것이 잡힌다면 그건 그야말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발견이 되리라.
“응?”
컴퓨터 화면을 지루하게 살피던 길버트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방금 무언가 이상한 것이 기록됐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화면을 바꾸어 기록된 것을 다시 살폈다.
자신이 본 것이 맞았다.
“이건…….”
이상한 전파였다.
하지만 외계인의 것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것은 우주의 아득한 멀리에서부터 파장형으로 날아온 것이 아니라 지구의 성층권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인공위성이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관측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인공위성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모두 기록되어 있고, 그들이 발하는 전파에 대한 기록도 모두 있다. 지금 관측한 것은 그런 자료와 일치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인증되지 않은 인공위성일까?
그 경우라도 인공위성 자체에 대해서도 관측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좌표에 인공위성이나 그와 비슷한 것이 있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그곳은 순수하게 진공이었다.
‘뭐 데브리 정도는 있겠지만…….’
데브리는 우주 쓰레기다. 장래 우주 산업에 큰 위협이 될 거라고 이야기되는 위험한 것들이지만 지금 관측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 순간 또 다른 관측 자료가 날아들었다. 같은 파장이었다.
하지만 이전과 특징이 완전히 같았다. 마치 우주에서 갑자기 나타난 듯한 전파였다.
“뭐야 이게?”
길버트는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우주에 귀신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 파장은 곧 완전히 사라졌고,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길버트는 이를 정리해서 상부에 보고했지만 몇 차례 검토 후 별반 가치 없는 정보이자 사고에 의한 것일 뿐이라 판정되어 결국 버려졌다.
***
늦은 밤.
정적에 쌓인 집이었다. 오래된 어둠이 사물의 곳곳에까지 스며든 것 같았다.
방의 수는 셋.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놓여있고, 베란다 밖으로는 무미건조한 아파트의 모습이 연달아 늘어서 있는 흔한 도심의 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집 전체가 약하게 흔들렸다.
지진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떨린 것은 오직 아무도 없는 어두운 이 집뿐이었다. 어쩌면 집의 위아래 층에 있는 이들이라면 미약한 흔들림 정도는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우웅!
어둠을 찢고 빛이 나타났다. 빛은 전구나 형광등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발생했다.
그 빛은 점차 확장해서 하얀 덩어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곧 사람 하나가 온통 들어가고도 남을 듯한 크기가 되었다.
이어 빛이 흔들렸다.
그 빛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사람이었다.
남자. 체격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키는 175를 넘기는 정도. 머리는 짧았다. 특징적이라 한다면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과, 호리호리한 체격이라곤 해도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게 근육으로 뭉쳐진 몸이라는 점이었다.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기에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한데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불과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까.
그가 눈을 떴다.
누군가 보았다면 눈을 뜨기 전 그를 보고 받은 인상과 뜬 것을 보고 받은 인상이 크게 다름에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다.
안광이라고 해야 할까. 눈을 감았을 때는 앳되어 보인다는 인상마저 있었는데, 눈을 뜨는 순간 그런 기색이 사라졌다. 마치 오래도록 전장에서 살아온 것 같은 강렬하고 단단한 분위기가 주변을 감쌌다.
소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그는 탄식처럼 한숨을 쉰 다음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전신이 다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다음 소년은 몸을 돌려 베란다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 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
감상하는 것처럼 오래도록 그 광경을 바라본 다음 소년은 무뚝뚝하게 걸어 소파로 다가갔다. 오래도록 아무도 손대지 않은 리모컨이 놓여있었다. 그것을 들어 TV를 켰다.
삐!
화면이 밝아지며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 씨는 동료의 욕설에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경찰은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
곱게 차려입은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면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왔구나.”
소년의 이름은 서강민.
그는 특별한 사고로 인해 이계로 가게 되었다 마왕을 물리치고 사정이 생겨 원래 세계로 귀환한 영웅이었다.
*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강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옷을 챙겨 입는 일이었다.
집은 떠나갈 때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옷을 챙겨 입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세계에 가지고 있던 막대한 아티팩트들이 아쉬웠지만, 그것들은 어느 것 하나 가져올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옷가지도 그랬기 때문에 강민은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맨몸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세계에 가 있던 동안 강민의 몸은 10년간 많은 성장을 했었지만, 돌아오는 순간 떠났을 당시의 몸 정도로 돌아왔다. 미리 들었던 부작용이었다. 젊어진 셈이니 꼭 나쁜 건 아니었다.
강민은 옷을 챙겨 입은 다음 밥을 챙겨 먹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들과 찬장의 인스턴트 식품은 여전해서 금세 한 끼 식사를 만들 수가 있었다.
가볍게 떨리는 젓가락을 들어 한입을 먹었을 때, 강민은 정말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야말로 문명의 맛이었다.
화학조미료란 얼마나 축복받은 문명의 이기인 것인지!
‘좋구나…….’
강민은 감격해 중얼거렸다.
잘 정제된 쌀밥에 화학조미료의 맛이 가득한 스팸 몇 조각, 그리고 김치와 다양한 부찬들. 정말 몇 년 만에 먹는지 모를 산해진미였다.
이 세계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쌓은 뒤로는 여러모로 음식에 자유롭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짜 맛있다 싶은 음식은 먹은 적은 별로 없었다.
일단 향신료 자체가 크게 제약되어 있었고, 조리법도 제한되어 있어서 몇 가지 특별히 맛있는 것은 있어도 전체적으로 쉽게 물려버리곤 한 것이다. 그렇다고 매끼 별식을 찾아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더구나 또…….’
요리사가 문제였다.
정말로 문제였다!
강민은 요리사를 생각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MSG가 마시쩡의 준말이란 농담은 정말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벌써 그 요리사의 솜씨가 그리워지는 걸 느끼자면 역시 음식이란 맛만으로 먹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강민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음미하듯 한 입 한 입 밥을 먹으며 강민은 거실에서 TV를 봤다. 그러면서 먼저 한 일은 날짜 확인이었다.
‘…….’
화면에 나타난 숫자를 보고 강민의 표정이 흔들렸다.
지금 시간인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는 지금 텔레비전에 비친 시간에 자신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시간에 올 수 있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다.
강민의 표정이 흔들린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한 시간 뒤, 아파트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그것은 적잖은 이들의 삶을 바꾸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당사자들이고, 그다음으로 그들의 가족이었다.
바로 그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강민의 부모님이었다.
두 분은 오랜만에 주말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맞은편의 음주운전자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부모님의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을 강민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온몸이 떨렸고, 고통과 닮은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었다. 울부짖음이라 할까, 통곡이라 해야 할까, 비명이라 해야 할까.
강민은 이제까지 상상해 보지 못한 음색으로 자신이 주저앉아 무언가 부르짖는 것을 그 다음 알았다.
그리고 결국 결심하고 말았다.
쓰라린 결심을.
‘…….’
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이제 돌아오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니까.’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마그누스.
다른 세계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하기로 결심한 일은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사건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가족을 잃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맛보았기에 그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조할 생각이 없었다.
***
부우웅!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밤이 깊었기 때문에 차들의 숫자는 적었다. 많은 차들이 평소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맛보듯 즐거이 도로를 달렸다.
매연 냄새 가득한 도로변의 인도에서는 한 소년이 추리닝 바람으로 서 있었다.
강민이었다.
그는 팔목을 바라봤다. 차고 있는 시계는 사고 시간까지 10분도 남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이미 부모님을 어떻게 구출하면 좋을지에 대한 계획도 잡혀 있는 상태였다. 사건 경위를 경찰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사건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강민은 고개를 들어 왼편을 바라봤다. 도로의 꺾인 곳이다.
‘여기서…….’
강민이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순간에 거대한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비틀거리는 움직임이 위태로워 보였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운전자는 가벼운 약주를 하고 운전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모님의 죽음이 너무 슬퍼서 그에 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니 참으로 나쁜 놈이다.
‘저쪽 세계였으면 넌 죽었다, 이 십장생아.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라.’
강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실제 이 세계에서 활동하면서 강민은 여러모로 단호했다. 사실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얻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에서 이 세계에서의 성격을 드러낼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 자제하기로 했다. 지금 달려오는 트럭의 운전사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