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85화 (85/316)

85화

“좀 어때? 잠은 잘 잤어?”

“잠이야 항상 푹 자죠.”

“컨디션은?”

“딱 좋아요.”

코치의 질문에 기분 좋게 답변한 그는 잠시 땅을 골랐다.

아직은 불펜 안이지만, 마음가짐이 남달랐으니까.

‘잘해야지, 오늘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공을 던졌다. 적당한 힘을 유지하며 하나, 둘 공이 박히자, 불펜포수의 익숙한 립서비스가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나이스 볼~ 마이너에서 푹 쉬었나 봐? 작년보다 훨씬 나은데? 이거, 올해는 진짜 사이 영 타겠어?”

“그래? 실망이네. 난 사이 영이 아니라 MVP까지 노리고 있었는데.”

“그것도 가능하고!”

불펜포수의 말에 능청스럽게 대답한 그는 잠시 마음을 갈무리했다. 조금 기분이 묘했으니까.

‘에이스.’

결국은 밀려났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이 팀에 해준 게 얼만데 말이야.

물론 부상을 달고 살기는 했고, 올해는 아예 시즌 초반을 통째로 날렸지만, 그래도 너무하다고 생각했지.

‘생각했던 거랑은 달랐지.’

그 자리를 빼앗아간 녀석.

최근 리그에서 가장 각광받는 투수는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남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루키이니, 약간은 성질이 더러울 것 같았거든.

특히나 선발투수들 중에서는 예민한 스타일이 많기에 더욱더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 편견이다.

사실 자신도 데뷔 때 그에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었는데도, 그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런 녀석이길 바란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선수단에 합류하고, 직접 마주 본 녀석은 적당히 가벼운 듯하면서 동료들과 적당히 어울릴 줄 알았다.

친화력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 세상에 빠져서 모두를 밀어내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눈치보고 있는 모습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좋은 녀석 같은데, 자신이 신경 쓰여서 경기를 망치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한편으론···

‘실력도 보고 싶었고.’

성적이야 잘 안다.

마이너에서도 익히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자신을 밀어낼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렇기에 실력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약간의 아쉬움과 섭섭함을 완전히 털어내고, 이 후련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어.’

그가 생각했던 그 투수는 뭐랄까, 일종의 괴물이었다.

엄청난 삼진 페이스와 무실점을 자랑하는 투수. 거기다 자신과 달리 피지컬도 좋다.

구속은 느리다고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들이 어우러져 형성된 상상 속의 투수는 어릴 적 봤던 랜디 존슨처럼 괴물 같은 타입이었는데.

어제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런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심하게 흔들렸지. 미친 듯이 난타당했고.

약간은 실망했다. 저런 녀석에게 밀린 건가, 싶어서 조금 허탈하기도 했고.

‘물론 그게 진짜 실력은 아닐 거야.’

다른 동료들이 당황한 것을 보면, 그리고 성적을 보면 단순히 어제가 운이 나쁜 날이었겠지. 유독 폼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당장 기록만 봐도, 저번 달에는 5경기 동안 단 아홉 개의 안타만을 허용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은 증명했고.’

그렇게 난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마지막에는 다시 기세를 잡았고.

실망은 빠르게 걷혔다. 왠지 조금 만족스럽기도 했고.

어제가 아닌, 오늘 경기에 등판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처음 느꼈던 후련함은 조금 더 진해졌다.

그리고···

“어깨 괜찮아? 슬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충분해?”

“네, 딱 좋게 달아올랐어요.”

“뭐, 너한테 이런 말 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만, 긴장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가자. 이제 첫 경기니까.”

“안 조급해요, 이제는.”

새로운 감정도 생겼다.

1회 초가 끝났나 보다.

전날은 참···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점수를 내지 못했던 타자들인데. 어제 원정 팬들의 질책이 통한 건지, 오늘은 1회부터 1점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신기하네.

자신이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원정 팬들이라,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 연고지인 오클랜드 내에서조차 절대적인 인기를 갖추지 못한 게 애슬레틱스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리 많지는 않더라도, 충분한 숫자의 팬들이 원정 경기를 따라왔다.

아마도 그 원인은 그 친구 덕분일 거고.

“너도 잘해라! 어제 Suck처럼!”

“소니! 너 복귀하는 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 무리하지 말고, 기분 좋게 가자!”

“넌 여전히 에이스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불펜을 나서자 그런 원정 팬들이 그에게 소리쳤다.

자신을 잘 모르는 건지, 그냥저냥 대충 잘하라며 소리치는 팬도 있고, 그를 너무도 잘 알기에 일부러 쫓아온 팬도 있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레드카펫처럼 마운드까지 펼쳐졌다. 그 위를 걸으며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희망, 무슨 뜻인지 알겠네.’

마운드에 오르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가슴 안쪽에서부터 올라왔다.

마운드가 주는 설렘도 있지만, 두근거림 자체는 어제부터 시작됐다.

팬들은 그 친구를 희망이라고 불렀었지. 구세주라고 하기도 했고. 애슬레틱스의 미래라는 뜻이리라.

무지막지하게 잘하는 유망주, 심지어 아직 앞길도 창창한 투수이고, 사정이 좋지 못한 애슬레틱스이니, 그런 별명이 붙은 거라고 생각했다. 타당한 별명이기도 하고.

허나 이제는 그 진의를 알 것 같았다. 그비록 생각했던 것처럼 파괴적인 피칭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완벽했지.’

어제 경기를 보면서, 그리고 팬들의 반응을 느끼면서, 문득 몇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좌절감이 아니라, 팬들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던 그때가. 처음 자신이 메이저리그의 문턱을 넘었던 그 시절이.

영원히 추억으로 남을 거다.

영영 추억으로‘만’ 남겠지.

언젠간 다시 기회가 오겠지만, 그땐 그 장면 속에 자신이 없을 것 같았으니까.

허나 이젠 아니다.

결국 완성시키지 못했던 그때에, 그때의 좌절에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트라이크!”

그래, 희망이 생겼거든.

초구 스트라이크.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공을 박아 넣는 순간 기분 좋은 상쾌함이 시원하게 몸을 휘감았다.

‘최강의 2선발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미련은 없다.

아쉬움도 없고.

그저 약간의 승부욕이 차올랐다. 자신이 떠올린 미래를 팬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아웃!”

소니 그레이가 돌아왔다. 그를 옭아맸던 족쇄를 풀고서.

####

오클랜드의 분위기는 좋았다.

꽉 막혀버린 빠따로 인해 1차전은 졌지만, 2차전에서는 다시 승리를 챙겼으니까.

선발투수로 나갔던 소니 그레이도 복귀전부터 6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였고.

<소니 그레이, 완벽했던 복귀전! 6.1이닝 8K 2실점!>

<에이스의 귀환! 오클랜드의 막강한 원투펀치?>

└우리 선발진 왜 갑자기 좋아보이냐.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좋지.

└Go랑 소니, 켄달, 션. 이 정도면 다른 팀에 안 꿀리는데?

└Go가 지금처럼 성적을 올린다는 가정하에, 더블 에이스 체제네.

└Go가 아니라, 소니가 시즌 끝날 때까지 버텨야지.

└올해는 진짜 좀 일내나?

전날 고유석이 보여준 철옹성 같던 모습과 소니 그레이의 준수했던 복귀가 겹치며.

오클랜드 팬들의 머릿속에는 기분 좋은 상상이 피어올랐다.

분명 이번 오프시즌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박살이 나다시피 했던 선발진이 한순간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준수하다 평가받을 정도로 올라왔으니까.

└좋은 거 맞아? 갓 데뷔한 루키 1선발,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유리몸 2선발인데?

└냅둬, 오클랜드 기준으론 최고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그 모습을 고깝게 보기도 했다. 진지하게 이게 좋다고?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당장 겉모습 자체는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나, 가장 중요한 1,2선발에게 언제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이 존재했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팀의 팬들은 아직 전반기도 한참이나 남은 상황에서 포스트시즌이라는 행복한 상상에 접어든 A’s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으나.

그들이 어떻게 보든지 간에, 오클랜드에겐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다. 기다렸던 소식도 드디어 들려왔고.

<오클랜드의 Go, AL 4월 이달의 신인!>

└이거야 당연한 거지! 언제 발표나나 계속 기다렸네.

└솔직히 Go 말고 받을 사람이 없는 게 팩트야.

└휴스턴 새끼들, 댈러스 카이클 밀던데, 한 달 동안 무실점한 투수랑 비교가 되냐?

└6경기 나오면 뭐해? Go만큼의 퍼포먼스가 없는데!

└X발 카이클이 퍼포먼스가 없다고? 니들 눈에 문제있냐?

└애새끼가 좀 잘했다고 너무 밀어주네. 거지새끼 적선하는 것도 아니고.

2차전이 끝난 직후, 모두가 기다렸던 4월 이달의 투수&신인 발표가 나왔고, 수상자는 예상대로 고유석이었다.

그것을 본 오클랜드 팬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흡족하게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 다 경쟁자가 확실했으니까.

그나마 이달의 투수는 34이닝 무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임팩트가 있었기에 제아무리 6경기 동안 준수한 모습을 보인 댈러스 카이클이라고 해도 그리 두렵지는 않았지만.

└양키놈들 속 좀 쓰리겠네. 그렇게 말도 안되 게 밀어줬는데.

└사실 애런 저지인지 뭔지가 받았으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아무리 10홈런이라도 해도, 무실점 빼고 봐도 삼진만 54개를 올렸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또 이상하게 발표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문제는 이달의 신인이었다.

애런 저지의 경우 양키스 팬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유망주중에 하나였고.

메이저리그 내에서 가장 인기팀인 만큼, 여러 수상에서는 은근히 ‘양키 프리미엄’이 붙고는 했으니까.

물론 정배는 고유석이지만, 혹시라도 프랜차이즈 가치에서 밀려 상을 빼앗길까 걱정했던 오클랜드 팬들은 2관왕 발표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애런 저지, 4월 Player of the Moth 수상! Rookie는 Go에게 밀려, 아쉽게 2관왕 실패!>

└쓰읍··· 좀 아쉽네.

└아니, 10홈런이나 쳤는데 이게 말이나 돼?.

└솔직히, 저쪽 임팩트가 너무 쌔기는 했어.

└그래도 이달의 선수는 탔으니까, 만족해야지.

그리고 양키스 팬들 역시 그럭저럭 만족은 했다.

이달의 신인은 수상에 실패했지만.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달의 선수는 수상했으니까.

다만 그것 역시 조금은 논란이 일었다. 애런 저지가 동부를 휩쓸며 엄청난 성적을 올린 건 사실이나.

트라웃 역시 준수한 성적을 올렸고, 홈런은 차이를 보이지만, 출루율과 타율에서 애런 저지를 크게 앞섰으니까.

└보상 판정이야 뭐야?

└Go한테 밀린 걸 트라웃한테 화풀이 한 거지.

└100% 사무국 새끼들이야. 신인들이 뜨니까, 밀어줘서 판 키우려는 거지.

└꼬우면 홈런 많이 치던가?

└적어도 4월은 트라웃보다 저지가 더 잘한 게 팩트지.

└그래서, 트라웃 저번 달 홈런 몇 개냐? 10개는 쳤어?

당연하게도 에인절스 팬들은 약간의 불쾌감을 호소했고, 반대로 양키스 역시 억울하다는 듯한 모습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더니, 이젠 당연한 수상마저 사무국의 밀어주기로 매도하는 셈이니까.

└쓰읍- 크리스 세일도 좀 아쉽네. 무실점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받을 만했는데.

└카이클이 제일 불쌍하지. 여섯 경기 등판하고 성적도 X나게 올렸는데, 루키한테 밀렸네.

이달의 투수 역시 그것보다야 이견이 덜했다고는 하나, 팬들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고.

그렇게 리그가 개막하고 약 한 달. 한창 분위기가 올라왔을 때, 그런 팬덤의 민심을 쏟아낼 순간이 왔다.

<2017 올스타 후보 발표! 6월 29일 오후 11시 59분까지 투표 진행>

곧이어 올스타, 그 찬란한 무대에 오를 선수를 가리는 투표가 시작되었으니까.

[#A’s]

[Go도 후보에 올랐네.]

└사실 후보는 의미 없지. 어차피 투표로 선정하니까. 저기 없어도 투표 가능하고.

└최대한 밀어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선발투수라서 제일 치열한 텐데··· 좀 힘들긴 하겠네. 그나마 Suck은 다른 곳에서도 인기가 많은 게 다행인가?

사무국에서 발표한 후보 중 고유석 역시 선발투수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어차피 팬 투표로 결정되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또한 선발투수의 경우 각 팀의 스타들인 만큼, 가장 치열한 부문이기에 오클랜드 팬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으나···

<고유석, 아메리칸리그 선발투수 올스타 후보 선정!>

└자~ 드가자~

└제발 한국인이면 투표해라!

└고유석 몰표 가즈아!

└어글리 코리안 새끼들 신났네ㅋㅋㅋㅋ

└국뽕들 때문에 고유석은 쵸큼ㅋ

└국뽕 빼도 성적이 쩌는데?

└(Link)올스타 투표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곧 추가적인 지원군이 몰려왔다.

####

마지막 3차전에서 다시금 패배를 기록하고, 1승2패의 루징 시리즈로 원정을 마친 뒤.

다시 홈으로 돌아왔다.

“오~ 2관왕께서 이리 일찍 나오시고! 역시 달라!”

“캬~ 부럽다 부러워, 누군 데뷔하자마자 떡하니 상까지 타고.”

“2관왕은 무슨··· 정식 상장도 안 주는 건데.”

쌔끈하게 뽑힌 차(렌트)를 몰고 클럽하우스로 도착하니, 죄다 저 소리네.

원정 때도 2관왕이라느니, 천재라느니 하면서 놀려댔는데, 아직도 저러네.

“그치, 2관왕이 뭐야? 데뷔하자마자 올스타가 되실 분인데.”

“아주 종자가 다르신 분이야~ 어떻게 비법이라도?”

“시끄러우니까 좀 가라.”

“어우, 가라면 가야지. 에이스님의 명령인데.”

올스타라.

투표가 시작했다고 하는데,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내가 선방 중이다. 현재까지 집계로 선발투수 중 3위라던가?

‘오클랜드 화력, 생각보다 쎄네?’

도시 자체가 가난해서 스몰마켓이지, 진지하게 규모를 따지면 중급 정도는 된다는 말이 많던데. 그게 진짜였나?

물론 극 초반 집계니, 진짜 빅마켓 팀들의 팬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뒤로 훅 밀리겠지만 말이야.

한국도 난리가 난 것 같더라.

부모님한테도 연락이 왔고. 감독님, 그러니까 야구부 감독님한테도 연락이 왔다.

한국인 투수의 이달의 투수는 박찬원 선수 이후로 처음이라고 하고. 또 올스타 후보도 추민수 선수와 나, 단둘 뿐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어쨌든 한 경기 끙끙 앓으면서 간신히 넘기니 보상이 수두룩하게 쏟아졌다.

방금 내 말에 황송한 듯 물러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에이스 대접(?)도 확실하고.

‘그리고 벽도 허물어졌지.’

단순히 좀 잘하는 루키가 아니라, 팀의 진짜 에이스이니, 거리낄 게 없어진 거지.

선배로서의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팀 내에서 제일 잘하는 투수로 인정받은 거니까.

“뭐야, 오늘도 더 빨리 왔네? 보통 한 시간쯤 더 늦게 오지 않나?”

“Suck, 마침 잘 왔네. 나 요즘 체인지업 커맨드가 좀 흔들리는데, 너 어떻게 잡냐?”

아니나 다를까.

훈련장으로 들어가니, 다른 투수들이 은근히 다가왔다.

루키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건 쪽팔리는 일이지만, 에이스에게 배우는 건 발전하고자 하는 향상심이고, 워크에씩이니까.

그나마 걸림돌이라고 할만한 소니 그레이는 오히려 에이스에서 밀려났는데도 최근 기분이 좋아 보이기에 상관없고.

그래서 그런가, 리미트가 풀린 것 같다. 예전엔 그래도 아닌 척 흘려가듯 그립 같은 걸 물었는데, 이젠 대놓고 물어보네.

‘저쪽도 슬슬 입질이 왔고.’

가장 먼저 서클 그립을 배워놓고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션 마네아에게 한번 더 그립을 보여준 뒤. 워밍업을 마치고 불펜에 들어갔다.

내일 등판이기에 마지막 점검이 필요했으니까. 불펜포수와 농담이나 따먹으면서 가볍게 공을 던질 때, 우렁찬 투구음이 옆에서 들려왔다.

“오··· Suck 너도 대단하지만, 쟤도 점점 올라오네.”

슬쩍 눈을 돌려 한쪽을 봤다.

나도 제법 빨리 온 편인데, 그런 나보다도 먼저 불펜에 있었으니, 아마 투수진 중에서는 아마 1등으로 도착한 것 같은데.

몇 차례 공을 던진 투수는 아닌 척 하면서도 은근히 내 눈치를 봤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처럼.

입질이 없어서 나도 그냥 잊고 지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지긴 했나 봐.

“Suck, 어··· 몸은 좀 어때?”

“나쁘진 않아요. 리암은 어때요? 오늘 등판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적당히만 풀고 있어.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계속 눈치를 보다, 결국 용기를 낸 건지 그는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넸고, 가볍게 답변하자 더욱더 용기가 생긴 건지,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Suck, 혹시 그립 하나만 보여줄 수 있어?”

“어렵지는 않죠.”

그립. 내가 던지는 구종이 워낙 많아서, 그립이라고 해도 선택지가 너무 많지만. 사실 물어보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서클이지, 서클.’

가장 강력하고.

여러 전문가들도 최고수준으로 꼽는 만큼, 다른 투수들이 보기에도 탐이 날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 대부분은 백이면 백 서클 그립을 물어보지만, 내 서클이 딱히 그립이 특이한 건 아니라서 죄다 실망하지.

그러니 아마 이 양반, 리암 헨드릭스의 목적도 서클···

“그럼 혹시 싱커 그립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싱커요?”

-이 아니네?

내가 싱커를 던졌던가? 대체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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