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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83화 (83/316)

83화

‘생각보다 별로 춥지는 않네.’

듣기로는 오대호와 맞닿은 만큼, 더럽게 추운 동네라고 하던데. 막상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에 도착했을 때는, 그다지 쌀쌀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10월에 여길 와봐라, 그런 팔자 좋은 소리가 나오나.”

“원래 겨울엔 얼어 죽는데, 여름에는 또 엄청 더워, X같은 곳이지.”

그렇다고 한다.

몇몇은 살짝 몸서리치기도 했다. 트윈스 원정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나보네.

“근데··· 왜 여기도 따라온 거야? 에인절스 때야 같은 주라서 그리 안 멀어서 따라왔다고 쳐도.”

“레이더스 모르냐? 저 양반들은 뉴욕으로 원정가도 따라가는 양반들이야.”

“레이더스 출신만 원정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뭐라도 걸려- 아···”

꽤나 거리가 먼 동네인데도 경기장 근처에서 종종 보이는 오클랜드 유니폼에 입맛을 다시던 마커스 시미언은 이내 깨달은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입 좀 다물어라.

부정 탈지도 모르는데.

악성에 가까운 내 팬들이야 그렇다 쳐도, 일반 팬들이 원정을 온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기록이라고 보기도 애매한데 말이야. 팬들이 보기엔 또 다르겠지.’

데뷔전부터 34이닝 연속 무실점. 역대 2위의 기록이다.

1위는 39이닝이던가?

근데 또 공교롭게도 그 1위가 애슬레틱스 출신이다. 2008년에 브래드 지글러가 오클랜드 소속으로 달성했거든.

그러니 팬들 입장에선 과거의 오클랜드 기록을 새로운 오클랜드 선수가 깨는 것이니,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

아,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 1위는 59이닝의 오렐 허샤이저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이건 데뷔전부터 카운트했을 때의 기록이다.

그냥 연속 이닝 무실점은 34이닝은 물론, 39이닝 가지고도 어림없지. 40이닝 이상 찍은 괴물들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인기를 끌고 있긴 한가보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1차 기록도 아니고, 거기서 한 번 더 거름망을 좁힌 2차 기록이 주목받는다는 것 자체가, 지금 내 인기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연속 이닝 무실점이야 정식 기록으로, 찾으면 쉽게 나오지만, 데뷔 직후 기록은 사실 기록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게 사실이거든.

진성 야구너드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으며,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기록이지.

<한 시즌 최다 연속 이닝 무실점 – 오렐 허샤이저·····

최다 연속 이닝 무실점(Start of Career) - 브래드 지글러 39이닝 – Go You-Suck 34이닝···>

그런데 본격적으로 내가, 그리고 기록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어떤 야구 사이트든지, 연속 이닝 무실점 아래에 간략하게나마 기록이 나왔다.

괄호치고 (데뷔 직후)이라고 표기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기록하기 위한 기록을 내가 정식 기록으로 끌어 올린 셈이지.

‘그러니··· 최소한 타이기록 정도는 해야 모양 빠지지 않겠지.’

39이닝 타이까지 5이닝, 신기록까지 6이닝이다. 오늘 경기로도 충분히 달성 가능하지.

기왕이면 6이닝 더 찍고, 깔끔하게 40이닝으로 딱 떨어지는 게 보기 좋겠지만, 쉽지는 않겠지.

2차 기록이 정식 기록의 문턱에 선 이상, 신기록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트윈스도 어떻게든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할 테니까.

‘개막하고 한 달. 다섯 경기쯤 뛰었으니, 데이터도 얼추 쌓였겠네.’

루키 투수의 진가는 2번째 달부터다. 종종 보면, 9월 확장 로스터로 올라온 투수가 엄청난 성적을 찍는 경우가 많다.

당장 우리 팀만 봐도, 작년에 트레이드로 넘어와서, 지금은 5선발로 남은 자렐 코튼도 작년 9월의 히어로였고.

그 외에도 은근히 신인 투수들이 첫 달은 화려하게 장식하는 경우가 많지.

본인의 실력도 있겠지만, 그만큼 견본이 부족하기에 타자들이 쉽게 당하는 건데. 서양인들이 겪는 마의 16세처럼,

그런 분위기가 두 번째 달부터는 조금 달라진다.

그때쯤 되면 대충 견적이 나오거든. 소포모어 징크스의 하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다 마침 트윈스이니, 오늘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겠네.’

루키의 생소함이 조금 걷혀졌을 때, 내가 어느 정도로 통하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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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You-Suck.

이 생소하고 대단히 독특한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최소한 빅리그에서는.

굳이 무실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밖의 또 다른 기록을 무수히 몰고 다니는 투수니까.

현시점 가장 주목 받는 투수이자, 그만큼 가장 경계되는 투수.

그렇기에 고유석은 전력분석관들의 사랑을 받았다. 위험한 싹은 미리 잘라내야 했으니까.

“컨트롤은 거의 4분할 이상이야. 존을 세세하게 나눌 줄 알아.”

“삼진을 잡는 커맨드도 인상적인데··· 패스트볼 구사율이 어떻게 되더라?”

지난 4월의 다섯 경기와, 시범경기 때의 역투로 쌓인 정보는 이미 충분히 많았다.

그렇기에 각 팀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나름대로의 분석 결과를 도출했고, 5월의 첫 경기를 맞이한 미네소타 트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로슨은 내려온 자료를 확인하며 입맛을 다셨다.

겉으로 보기에도 이미 슈퍼스타에 근접한 루키지만, 낱낱이 해체된 자료 속의 투수는 그 이상이었다.

‘완전히 괴물이네.’

느린 구속을 채워주는 괴랄한 무브먼트와 스터프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자신이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선수들 역시 잘 알고 있지. 거기서 굳이 더 말을 보태봤자, 괜한 공포감만 조성되리라.

‘서클은··· 그냥 깔끔하게 거르는 게 나은 수준이고, 나머지도 제각각 제몫은 하는 수준이야.’

변화구 역시 뛰어나다.

주력구를 제외하면 죄다 약간의 하자는 있을지언정, 못 쓸 정도라고 평가될 건 없었다.

구속을 제외한 모든 걸 다 갖춘 선수, 그렇기에 전력분석팀에서 주목한 건 타자를 잡는 방식, 경기 운영이었다.

‘클러치 능력이라···’

클러치 능력.

보통은 타자에게 자주 쓰이는 말이고, 그마저도 약간은 의구심이 붙는 단어인데.

이 자료에는 투수에게 그런 말이 붙었다. 클러치 능력이 뛰어난 투수라고.

처음에는 의아했지.

투수와 클러치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으니까. 허나 자세히 확인할수록 어째서 그렇게 표현한 건지 이해가 됐다.

‘대부분의 피안타가 하위타선에서 나왔어. 반대로 중심타선은···’

전통적으로는 3-4-5번을 타선의 중심으로 본다. 현대야구에서는 그걸 조금 앞당겨서 2-3-4로 보기도 하고.

어쨌든 이 중심타선은 투수로선 클러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가장 중요한 순간을···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군.’

미네소타 트윈스가 분석한 고유석은 그런 클러치 상황에서 강력한 투수였다. 각 팀의 내로라 하는 타자들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까.

심지어 트라웃마저도 당했고.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많은 구종을 바탕으로 한 수싸움에 능한 투수이고, 기본적인 스터프가 대단한 것도 한몫을 하지.

‘그리고 극단적인 완급조절.’

지난 4월, 고유석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85마일로. 84~5마일을 왔다 갔다 했던 것보다는 조금 올라왔다.

최고구속은 여전히 89마일인데, 그 최고구속이 나오는 타이밍이 절묘했다.

‘88마일 이상의 전럭투구의 80% 이상이 중심타선에 집중됐어.’

물론 완급조절은 선발투수의 기본이고, 잘하는 타자에게 전력투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특이할 것도 없지만, 그건 다른 특징과 연결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패스트볼 구사율은 하위타선에서 더 높아져. 경기의 전체 패스트볼 중 70%가 하위타선에서 나올 정도로.’

그리고 70%의 대부분이 존 안쪽으로 들어가고, 삼진을 노리는 하이 패스트볼이 많지 않다. 대부분 몸쪽 코스.

거의 모든 하이 패스트볼은 중심타선에서만 나왔다.

‘중심타자들에게만 파워피처처럼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는 거지.’

지난 4월, 한 달 동안만 54개의 탈삼진을 올릴 만큼 압도적인 삼진능력을 갖춘 투수.

그 삼진으로 인해 맞춰 잡는 피칭이 가려졌다. 물론 많은 삼진이 하위타선에서 나왔지만. 중심타자들은 더욱더 극렬하게 삼진을 노린다는 거겠지.

그러니 하위타선에서 안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일단은 맞추게는 해준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핵심은 타격의 스타일이고.’

팀의 중심타자쯤 되면 대부분은 거포다. 못해도 20홈런은 날리는 선수들인데.

그런 타자들은 대부분 크게 당기는 스윙을 한다, 특히나 요즘 시대는 거의 어퍼스윙이고.

투수는 그런 파워를 강력한 전력투구와 무브먼트로 적절히 억제하면서, 변화구와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았다.

반대로 힘이 떨어지는 하위타선을 상대로는 수싸움 대신, 그저 구위로 찍어 눌러 밋밋한 타구를 만들어서 잡는 건데.

‘대충 알만하네,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하는 투수인지.’

즉 어설프게 수싸움을 하거나, 장타를 노린다면, 오히려 철저하게 당한다는 뜻.

타격코치, 제임스 로슨은 입맛을 다셨다. 34이닝이라고 했던가? 무실점 이닝이. 신기록까진 6이닝이 남았고.

거기다 정식적으로 에이스로 낙점이 됐지. 소니 그레이를 밀어내고.

아마 여기서 대관식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들러리가 되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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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타격음이 귓가를 스친다. 무거움은 덜하지만, 제법 날쌔네. 타자와 주자도 제법 날쌔고.

“세이프!”

좌전안타. 깔끔하지는 못하다. 느릿하게 날아가서 간신히 잡히기 직전에 떨어졌으니까.

뭐, 그래도 안타는 안타지.

슬쩍 주변을 훑으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내 경기 때마다 나타나는 관중석의 침략자(Raiders)도 마찬가지고.

‘위기구만.’

3회 말 1사 주자 1,2루.

이제 겨우 3회이지만, 제법 많이 맞았다. 대충 2.1이닝 막은 건데, 벌써 피안타가 넷이네.

오늘 한 경기 만에 저번 달 피안타의 절반 가까이를 벌써 채운 건데. 페이스를 봐서는, 끝날 때가 되면 아예 넘을지도 모르지.

“진짜 미안! 내가 꼭 잡았어야 하는 건데···”

“괜찮으니까, 집중이나 해요.”

절묘한 위치로 날아가는 타구를 끝까지 뒤쫓았던 유격수 아담 로살레스가 괜히 사과했다.

백업 내야수로, 마커스 시미언 대신 출장했는데. 사실 방금 안타는 그의 책임이 아니다.

그냥 딱 절묘하게 타구가 떨어졌으니, 좌익수, 중견수, 유격수 셋 다 책임 없지.

‘역시, 예상처럼 바로 카운터가 나오는구만.’

그저 상대가 잘 때렸을 뿐.

오늘 트윈스의 타격은 한 마디로 지칭하자면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장타보다는 짧은 단타가 많이 나왔거든. 어떤 의미에선 스몰볼이지.

안타 대부분이 아슬아슬했기에 운이 나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운이 나쁜 건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를 보고 운이 나쁘다고 하는 거니까.

지금은 그저 저쪽에서 의도한 대로 경기가 흘러간 것이니, 단순히 운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장타를 배재했어. 적극적으로 타격하면서도, 맞추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상위타선, 클린업 트리오들마저도 그런 방식의 타격을 했다. 내 구위를 억지로 이기려 들지 않겠다는 거겠지.

무조건 컨택, 어떻게든 공을 맞히고, 날리는 종류의 타격을 하고 있는 건데, 지금까지는 잘 먹혔다.

메이저리거쯤 되면, 죄다 타격기술이 좋긴 하네. 힘에서 밀리는데도 어설프게나마 타구를 보내는 걸 보면.

‘거기다 내가 뭘 던지고, 어떤 구종의 비중이 큰지 잘 알고 있다는 것도 크고.’

다행히 아직 실점은 없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연출됐기에, 팬들도, 다른 선수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당장 지금만 해도 적당한 안타 하나면 바로 실점이고, 그러면 무실점 기록도 끝나니까.

그러니 기분 좋게 기대감을 가지고 원정을 왔을 때와는 다르게,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데···

“스트라이크!”

이제부터 보여줘야겠다.

갑자기 잠재력이 폭발하기 전에, 처참한 실링을 가지고도 어떻게 한 달 이상 더블A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지를.

“볼.”

그때는 정말 X나게 처맞았다, 거의 매 경기, 아니 과장 좀 보태서 매 이닝마다 실점하는 수준이었고, ERA도 개판이 났었지.

그렇게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맞으면서 강제로 배웠다.

“아웃!”

“아웃!”

꾸역꾸역 막는 방법을.

1사 1,2루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병살타에 홈팬들은 제 얼굴을 쓸어내렸고, 반대로 소수의 우리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터프가 X같아도 투구수로 죽어라 대가리 박치기하다 보면 어떻게든 막아는 지더라고.’

그때는 그렇게 꾸역꾸역 막아도, 기본적인 기량차가 심해서, 결국 실점은 내줬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부족했던 스터프, 무브먼트를 죄다 갖췄고, 원래 장점들도 훨씬 업그레이드됐으니까.

‘열심히 처 맞다가, 때린 놈 지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반격을 해보자고.’

또한 그때랑 다르게, 지금은 영화 속의 록키처럼 마지막 한 방도 가지고 있고.

쓰읍, 정식 에이스 데뷔전에, 소니 그레이의 미련까지 떨쳐 내줘야 하니, 기왕이면 멋지게 이기려고 했는데···

‘뭐, 마지막만 멋있으면 되겠지.’

열심히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에 승리하는 주인공도 나름대로 멋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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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온 볼!”

“나이스! 잘 참았어!”

찬스를 살리진 3회 말.

허나 그게 아쉽지 않도록, 4회 말 역시 시작부터 페이스가 넘어왔다.

선두타자가 볼넷을 골라내며 출루했으니까.

“세이프!”

후속타자 또한 단타를 기록하면서, 1루 주자는 3루까지 가면서 분위기는 다시금 살아났다.

“요즘 잘 나간다더니, 별거 없는데?”

“과장이지, 과장. 언론에서 좀 띄워준 거야.”

제법 잘 나가는 투수.

저번 달 가장 강력했던 투수.

슈퍼스타의 재목이 보이는 루키. 각양각색의 수식어는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물론 스터프는 대단하다.

무브먼트도 듣던 대로 굉장하고. 특히 포심은 때릴 때마다 손바닥이 찌릿할 정도였고.

허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안타를 만들어냈고, 경기를 지배했다. 연속 이닝 무실점? 이제 37이닝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곧 깨질 거다.

5경기 연속 선발투수 승리?

상대 타선도 철저하게 틀어막혔기에 그 역시 오늘로 끝이지.

4월, 5경기 동안 54개나 잡았다던 삼진은 오늘 고작 세 개가 끝이었고.

“하나 날려!”

“대충 굴리기만 해. 3루에 있으니까, 무조건 들어와.”

“서부지구 애들이 못 떼 준 동정 딱지, 우리가 떼 주자!”

그렇기에 저 루키의 무실점을 금방 깨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번 이닝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희생플라이 하나, 혹은 가벼운 땅볼 하나면 득점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니까.

무사 주자 1,3루.

병살타를 치더라도 득점이 가능한 상황이기에 점수가 안 날 수가 없지.

그렇기에 멍청한 서부지구 놈들이 못해준 일을 우리가 대신 해주자며 소리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아, 쓰읍- 풀카운트인데 한 번 참아보지.”

“잘하면 만루였는데, 그래도 안타 하나면 되니까.”

그 한 방이 점점 멀어졌다.

무사 주자 1,3루에서 삼진이 하나 올라갔고. 그걸로 원 아웃.

투수를 흔들기 위해 도루를 시도하려고 했을 때-

“아웃!”

어떻게 알아챈 건지, 순식간에 견제구를 던지며 다시 아웃 하나 더.

“파울!”

“볼!”

“스트라이크!”

“파울!”

“아웃!”

마지막 타자에겐 9구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혈전 끝에 투수 앞 땅볼을 유도하며 이닝을 끝냈다.

그렇게 3회 말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허무하게 득점의 기회가 날아가 버리자, 서서히 분위기가 묘해졌다.

치기는 정말로 많이 쳤다.

이제까지 말까지 나온 안타만 5개에 볼넷이 한 개.

거의 매 이닝 주자가 나간 셈이니,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렇게 기분 좋게 투수를 두들기던 트윈스 타자들의 얼굴에 조금씩 당혹감이 서렸다. 그렇게 기분 좋게 때렸는데.

“왜 점수가-”

“아니, 쟤 진짜 루키 맞아?”

“징글징글하다··· 뭐 저렇게 막아?”

정작 점수가 안 나왔으니까.

대신 상대 타선도 철저하게 막혔기에 그나마 낫지만, 차라리 자신들 또한 깔끔하게 틀어 막혔다면 모를까, 흥만 실컷 내고, 정작 경기를 압도하지는 못했기에 조금씩 타자들에게 피로가 쌓였다.

“이렇게 되면···”

타자들에게 장타를 배제한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했던 타격코치 제임스 로슨 역시 표정이 점점 굳었고, 곧 불길한 예감이 목덜미를 훑었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비록 점수를 내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분위기가 좋은 건 이쪽이었으니까. 언제 득점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겠지.

“세이프!”

곧이어 5회 말.

그 생각처럼 다시금 선두타자 안타를 기록하며 또다시 무사 주자 1루.

“이번에는 좀 내자!”

“이번 이닝도 날려 먹으면 타이기록야, 타이! 쪽팔리지도 않냐?”

“계속 어루만지지만 말고, 이제 좀 넣어라, 넣어!”

숱한 기회에도 계속 감질나기만 했던 것을 꼬집으며, 이번에는 좀 결과를 내라는 관중들의 성토가 이어졌을 무렵.

마찬가지로 트윈스 타자들 역시 조금 더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올랐다.

방금 전의 안타까지 포함해서, 여섯 개나 때려놓고, 볼넷까지 하나 얻어놓고 아직까지 무실점이라니.

조금 지친다는 느낌마저 들었고, 그 모든 공격을 받아내면서 끝끝내 쓰러지지 않는 투수가 징그럽게도 느껴졌지만.

이젠 정말 끝을 봐야 했다.

“자자, 저 녀석도 이제 좀 지쳤을 테니까, 지금처럼 쉽게쉽게 가자.”

“이번에는 점수 내야죠,”

타격코치 제임스 로슨은 직접 타자들 한명 한명과 스킨쉽 하며 의지를 북돋웠다.

분명 잘 통하는 것 같기는 하니, 이젠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득점을 올릴 차례였으니까.

“그리고 저 투수 경기 후반이 되면-”

문득 그의 머릿속에 투수, 고유석의 특징이 떠올랐고, 그것에 대해 타자들의 주의를 주려고 했을 때.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빠른 간격으로 연이어 울리는 주심의 콜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자신들의 턴은 끝났다는 걸.

지금까지 얻어맞고만 있었던 투수가 드디어 가드를 풀었으니까.

“인터벌이 빨라지는데···”

저 가드를 자신들이 깨트린 것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파상공세를 펼치면서도, 결국 게임을 끝내는 마지막 위닝샷을 날리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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