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밥 멜빈 감독에게 고유석의 첫인상은 조금 애매했다.
돌아가는 이야기는 들었다.
더블A에서 엄청난 성적을 올린 선발투수라고 했었지.
선발진이 부족한 수준을 넘어, 완전히 박살난 상황이니, 못해도 내년, 2017시즌에는 볼 거라고 생각했다.
팬들 역시 그를 빅리그에서 보기를 바랐으니까.
‘생각보다 성실한 타입이군.’
다만 그 재능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구단에서 직접 그렉 매덕스라는 거물을 특별 인스트럭터마저 붙여줄 정도면 말이다.
피칭 스타일이 영리하면서도, 대단히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이미 받았기에, 그런 성향이 좋은 성적과 겹쳐져서, 솔직히 약간은 재능에 취한 선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처음 본 고유석은 생각보다 성실했다.
물론 어떻게든 프런트나 코칭 스태프의 눈에 들기 위해, 마이너리거들은 캠프 안에선 그 누구보다 성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밥 멜빈 자신 정도의 경험이 쌓이면, 그게 과장된 연기인지, 아니면 원래 루틴인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그런 경험으로 추론했을 때, Go라는 선수는 분명 원래도 저런 편일 거다.
‘하긴, 보통 피칭이 영리한 선수들의 경우 자기관리도 철저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
워크에씩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면, 직접적인 피칭은 그냥··· 더 할 말이 없었다.
“완전히 괴물이에요. 받다가 손바닥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확실히 공이 좋아 보이기는 하던데, 무브먼트는 어떤가?”
“수평 무브먼트가 적어서, 볼 끝이 더러운 타입은 아니지만, 대신 수직 무브먼트는 최소한 제가 받아본 투수 중에서 1위입니다. 타석에서 보면 떠오른다는 느낌이겠죠.”
그를 전담했던 불펜포수가 앓는 소리를 할 정도로 강력한 스터프.
“서클은 어때 보였나? 컨트롤은 되는 것 같고?”
“서클은··· 쓰읍, 분명히 저번 자료랑은 궤적이 다른데, 엄청납니다. 리그에서 비교할 만한 사람은 잘 안 떠오르는데··· 페드로의 마이너카피 정도는 됩니다. 컨트롤도 되는 것 같고.”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이 이렇게 말할 만큼, 전에 받았던 자료에서도 호평 일색이었던 서클 체인지업은 괴물이 되어 나타났다.
낙차가 약간 줄어든 대신, 역회전이 더 괴이하게 변했지. 마지막 순간 급격하게 꺾이는 무브먼트는 우타자에겐 재앙이고.
슬라이더 역시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워낙 강력한 서클과 패스트볼의 구위의 반사이익으로 쓰리핑거도 통할 거라고 예상됐다.
커브는···
“그렇다면··· 최소한 예상했던 것 이상이라는 뜻이군.”
“예,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괜찮은 투수 자원 정도가 아닙니다. 실전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초 기대는 5선발 혹은 롱 릴리프 정도. 허나 캠프에 들어온 선수는 선발진의 중심을 맡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남은 건 실전 피칭.
시범경기 동안 이닝이 보장되었기에 충분히 테스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아니라, Go가 테스트 중이군.”
“예?”
“메이저에서 자신이 통하는지 아닌지, 직접 시험하고 있어.”
전설이 시작됐다.
시범경기 첫 경기인 시카고 컵스전부터 시작된 피칭은 곧 캑터스 리그를 휩쓸며 고유석을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고.
더는 실전을 평가하는 행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시범경기를 지배했다.
“좀 싹수가 없기는 한데··· 실력은 진짜입니다. 커맨드가 좋아서 삼진도 잘 잡고, 컨트롤은 볼 한 개 사이예요. 그리고··· 수싸움도 뛰어나고.”
“선발투수 정도는 되겠지?”
“솔직히 말하면··· 그 이상입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횡재한 거죠.”
투수 리드 문제로 한 차례 마찰이 있었던 스티븐 보그트는 밥 멜빈 자신과의 면담에서 그렇게 말했다.
루키에게 힘 싸움에서 밀렸으니, 감정이 그리 좋지는 않을 텐데도 오로지 호평뿐.
그의 마지막 말에 밥 멜빈은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지, 선발진이 날아간 상황에서, 이런 투수가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이보다 더 큰 횡재가 어디 있겠는가?
‘소니와 Go, 션과 켄달. 5선발은 자렐 코튼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그렇게 정규시즌에 대한 꿈이 부풀어가던 찰나, 받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건지, 행복한 단꿈은 금방 끝났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이제 정규시즌까지 몇 걸음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올해는 기분 좋은 시즌이 될 거라고 믿었는데.
하필이면 에이스, 소니 그레이가 또 한번 부상으로 이탈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곤 하나, 시즌 초반은 날릴 거라고 했고.
-시범경기 동안 소니의 로테이션은 Go에게 맡길 것.
오더가 내려왔다.
소니가 이탈한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선수에게 그의 자리를, 시범경기 동안에만 맡기라고 했지.
거기에 추가로 남은 선발투수들의 상태를 확인하라는 지시도 떨어졌고.
그는 가장 먼저 고유석과 면담을 가졌다. 소니가 사라진 시점에선 가장 중요한 선수니까.
그리고 소니 그레이의 자리를 맡기며,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영리한 선수니,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릴 테니까.
“네, 준비하겠습니다. 하실 말씀은 이게 끝인가요?”
그것에 대한 투수의 반응은 가벼웠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무심하게 대답했지.
‘멘탈은 문제가 없군.’
어쩌면 그때부터였다.
단순히 좋은 투수,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 정도였던 고유석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건.
“수고했어, 설득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뇨, 설득한 게 아닙니다.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더군요.”
올해 캑터스 리그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화이트삭스전은 마지막 마침표였다.
7이닝 퍼펙트.
완벽한 피칭을 선보인 투수에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시범경기에서 굳이 긴 이닝을 피칭할 이유가 없는데, 하필이면 퍼펙트라는 기록 때문에 계속 올려야 하게 됐으니까.
그렇기에 투수코치인 스콧 에머슨에게 설득을 부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Go가, 먼저?”
“넓게 보자더군요. 시즌을 위해서.”
솔직히 말하면··· 그 뒤로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정신이 멍했다. 이제 갓 데뷔한, 아니, 갓 데뷔할 유망주가 그런 절제력을 보인다고?
-·····시범경기의 기록에 연연해서 무리하는 것보다는, 팀을 위해 더욱더 완벽한 컨디션으로 시즌에 임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밥 멜빈을 다시 일깨운 건, 경기가 끝난 뒤, 현장 인터뷰였다. 그제야 깨달았으니까.
‘직접 판을 짰군.’
이 완벽한 스토리 자체가 저 선수가 만들어낸 하나의 판이라는 걸. 고깝지는 않다.
‘무엇을 의도했던, 결국 퍼펙트를 해냈고, 그 퍼펙트를 포기했다. 절제력을 발휘해서.’
이건 바뀌지 않으니까.
그것으로 개막전 선발투수는 정해졌고, 그 선택은 성공으로 돌아왔다.
예상처럼 그는 그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게감에 짓눌리지도 않았고.
개막전에선 데뷔까지 겹쳤기에 약간은 긴장한 듯했지만, 마운드에 올라간 순간부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
그 이후로는 시범경기를 통해 재단을 마친 빅리그를 폭격했고. 압도적인 1선발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최소한 그 경기만큼은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을 때, 그토록 기다렸던, 그리고 고민했던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소니가 다음 달부터 다시 선수단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딱 예정대로야.”
“저··· 그런데 그러면 1선발은 어떻게···”
소니 그레이가 돌아왔다.
모두가 기다렸던 에이스가.
이젠 선택을 내려야 했다.
‘상식적으로는··· 소니가 맞겠지.’
애초에 그의 자리였고, 선수단 내에서도 인망이 높은데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좋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지.
당연히 그에게 다시 1선발 자리가 돌아가는 게 맞겠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는 건···
‘서로 느낌이 판이하지.’
애슬레틱스에게 소니 그레이는, 그가 등판했을 때, 경기에서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 투수였다.
반대로 고유석은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은 투수였고. 오랫동안 팀을 지탱한 에이스와 갓 데뷔한 루키에 대한 평가라기엔 서로 뒤바뀐 듯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소니에겐 안정감이 없으니까.’
소니 그레이라는 투수는 안정감이 떨어졌다. 폼이 좋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잘하는 것 같은 투수이나.
어느 순간은 심각하게 주저앉지. 주로 후반기가 시작되면 그런 모습을 보이고. 물론 부상이 잦다는 것도 안정감을 깎아먹고.
‘1선발이 자주 바뀌어서 좋을 건 없어.’
피지컬이야 겉으로 보이는 큰 약점이니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
소니 그레이라는 수준급 투수를 짓누르는 문제이자, 고유석이란 투수의 가장 큰 장점.
‘부담감.’
자신을 짓누르는 부담감에서 두 선수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니는 노력하지. 부담을 이겨내고,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항상 노력한다는 것이니 좋은 자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부담감을 이겨내는 건···
‘반대로 Go는 애초에 부담감 자체를 못 느끼는 타입이고.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욕심을 내는 타입이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거다.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거슬리고, 정신을 좀 먹는 게 부담감이니까.
그것이 선택을 갈랐다.
물론 누군가는 욕할지도 모르지. 기껏 팀을 위해 헌신했더니, 커리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변명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저 부담을 덜어주는 것뿐이라고.
‘둘 중 하나겠지. 사라진 부담감에 절망하고 분노하여 무너지거나, 아니면 훨훨 날아오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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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다음 시리즈 1차전에 등판할 거니까, 관리 잘해. 아, 면허 땄다며?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밤에는 운전하지 마. 차도 좋아 보이던데.”
“예, 걱정 마세요.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5월 1일, 휴식일.
미네소타 원정길에 오르기 전, 클럽하우스로 가니, 선발등판 통보가 떨어졌다.
‘진짜로 그대로 가네.’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소니 그레이라는 투수가 오클랜드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대단하기에, 상식적으로는 그쪽이 맞거든.
근데 내가 잘하긴 진짜 X나게 잘했나보다. 갓 데뷔한 루키의 초라한 커리어로 그런 에이스를 밀어낸 걸 보면.
“기분 좋은 것 같네?”
“뭐, 여러 가지 이유 덕분에.”
통보를 듣고, 대충 몸을 푸니, 마찬가지로 날아가기 전, 클럽하우스로 모였던 선수들도 대충 알아차린 듯 그렇게 말했고. 몇몇은 고깝게 보기도 했다.
선수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니까.
‘고참들이 보기엔 좀 그렇긴 하지. 방금 막 굴러온 놈이 에이스가 된 건데.’
특히 소니 그레이와 예전부터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은 더욱더 반응이 미묘할 수밖에 없고.
또한 약간의 걱정은 있겠지.
애슬레틱스에 큰 애착을 가진 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뛰고 있는 팀인데, 그 팀의 1선발, 에이스가 루키라는 건 꽤나 불안요소니까.
“이제부터는 너 진짜로 잘해야겠네.”
“언제는 못해도 됐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휴, 됐다. 내일 등판하는 놈한테 내가 뭔 소릴 한 거야. 그냥 편하게 해.”
“이미 늦었어. 애초에 말을 하질 말던가.”
약간은 천성이 가벼운 마커스 시미언마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이제 땜빵이 아니니까.’
지금까지는 땜빵 에이스였다.
소니 그레이를 대신해서 1선발 자리를 맡은 정도지.
그런데 소니 그레이가 돌아온 지금도 로테이션이 유지된다는 건 정식적으로 에이스가 됐다는 뜻이라는 거다.
‘잣대가 높아지겠지.’
지금까지도 1선발이었지만, 갓 데뷔한 루키가 빈자리를 맡은 것이기에 조금은 평가가 널널했다면, 이제부턴 진지하게 에이스에 걸맞은 평가 기준을 들이댈 거다.
다른 선수들도, 다른 구단도, 그리고 언론과 팬들도. 기존의 에이스를 밀어냈으니, 최소한 그 이상은 해야 한다는 거지.
‘계속 잘하면 상관없지만··· 삐끗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물어뜯겠네.’
당장은 괜찮다.
약간의 방어막이 쳐져 있으니까. 34이닝 연속 무실점에, 사실상 확정된 이달의 투수.
이 정도면 에이스 맞지.
허나 그 무실점이 깨지고, 방어막이 걷히는 순간,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겠지.
그래서 쫄리냐고?
난 원래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야. X같이 못할 때도 공 빠른 투수 놈들한테 열등감은 가질지언정, 타자들한테 쫀 적은 없으니까.
‘잘하면 되는 거지. 결국에는.’
어차피 딱히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커트라인이 50점에서 60점, 아니 65점으로 올라간 건데.
난 애초부터 80점 이상을 찍는 사람이야. 그냥 평소 하던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브라이언 말이 맞았네.”
무게감을 무덤덤하게 넘기며, 대충 스트레칭을 마쳤을 때, 문득 브라이언이 생각났다.
개막전이자 데뷔전을 화려하게 마친 뒤, 다음날 운전면허 준비를 위해 서류를 떼고 다녔을 때, 그렇게 말했었지.
‘앞으로 네 경기만 더 어제 같은 피칭을 하신다면. Go는 애슬레틱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겁니다.’라고.
그 말이 사실이 됐구만.
개막전 이후로 네 경기. 저번 에인절스전까지 딱 멋지게 던진 덕분에 진짜 에이스로 낙점됐으니까.
‘이 정도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봐도 되기는 하겠네.’
예상이 정말로 맞아 떨어져서 그런지, 그 다음 예상도 기대가 됐다.
‘그리고 그런 퍼포먼스를 시즌 내내 유지한다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될 거라고 했던가?’
1차 목표는 클리어했으니.
이 기세를 잘 끌고 가서, 2차 목표도 완수해야지.
참고로 차는 이미 슈퍼스타다.
“뭐야? 소니 아직 안 왔어? 못 보던 차가 있어서, 소니 건 줄 알았더니.”
“그거 Suck 차야. 면허따고 바로 뽑았다고 하던데?”
“이야~ 요즘 세상 좋아졌네. 최저연봉이 많이 오르긴 했어. 이제 막 데뷔한 놈이 저런 걸 다 타고. 기껏해야 토요타 몰고 올 줄 알았더니,”
“A’s의 에이스님이신데, 차도 좋은 거 타야지. 잘했어, 한 대 뽑으니까 좋지? 나도 저거 있는데, 시승감이 좋더라고.”
“내 차 아니야. 에이전시에서 렌트비 내주는 거니까.”
“진짜? Suck 너 에이전시가 어디야? 나도 그쪽으로 갈까? 선수 대우 확실하네. Suck 니가 그 정도면 나 정도면 집도 하나 사주겠는데?”
벌써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지만, 그러게 최대치를 딱 정해줬어야지.
뭐, 에이전트 수수료로 엄청난 수준의 수익을 벌어들일 테니, 저거 렌트비 좀 내준다고 간에 기별도 안 가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차만큼은 이미 슈퍼스타다. 앞으로 남은 경기 성적도 그만큼만 올리면 딱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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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 5월 2일 미네소타 트윈스전 선발등판>
<소니 그레이 복귀, 허나 로테이션 유지!>
└소니 그레이 오면 밀려날 거라고 하던 놈들 어디 갔냐?
└이게 상식적이지 잘하는 놈이 에이스 해야 맞는 거야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소니 그레이가 해준 게 얼만데···
└현장 판단이라고 하는데, 그냥 핑계겠지
└예상이랑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원투펀치가 강력한 건 사실이니까, 올해는 할 만하겠네
구단의 선택은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말을 낳았다.
고유석의 팬들이야 당연한 수순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찝찝한 결과였으니까.
고유석이란 신성이 여러 기록들을 박살내고, 새로 세우며 미친 듯이 달리기는 했지만.
커리어가 부족하고, 경험이 떨어지는 루키이기에 약간의 물음표가 붙어 있었으니까.
└팀 꼴 잘 돌아간다. 애새끼한테 에이스를 맡기고LOLOL
└왜? 오클랜드 한테 딱 맞는 투수잖아? 적당~히 잘하고, FA X나게 남았고, 연봉조정도 한참 남아서 최저연봉이고. 거지 왕으로는 최고네.
└딱 봐도 모르냐? 소니 팔아치울 생각인 거.
└계속 데리고 있었을 거면 비위 맞춰줬을 텐데, 바로 밀어낸 것만 봐도 곧 기사 나오겠네. 트레이드 한다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라
오클랜드 팬들이 찝찝했다면, 다른 구단이 보는 시선은 그저 비웃음이었다.
얼마나 맡길 투수가 없었으면, 올해 데뷔한 루키에게 1선발을 맡기느냐는 생각이었으니까.
몇몇은 소니 그레이가 트레이드가 될 전조라며 침을 흘리기도 했고 말이다.
<5월 2일, 트윈스전에서 새로운 도전을 치르는 Go, 과연 그 결과는?>
<‘인턴’ 딱지를 떼어버린 Go는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고유석이 예상한 것처럼 반응이 나왔다.
임시, 인턴, 땜빵 등등.
에이스의 앞에 붙었던 가림막이 사라진 순간, 미네소타 트윈스전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니까.
또한 현재까지 34이닝을 기록 중인 무실점 이닝 역시, 데뷔 직후 최다 기록인 39이닝까지 5이닝을 남겨두고 있었기에, 과연 그것을 갱신할 수 있을 지도 관심사였고.
아니, 어쩌면 고유석이라는 신성이 박살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에 가까웠다.
루키 투수가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긴 하나, 그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그 대신 새로운 신성이 망가지거나, 주저앉는 건 자극적이면서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루키에게 ‘굴욕!’ 소니 그레이의 생각은?>
<자존심 상한 소니 그레이, 구단에 직접 트레이드 요청?!>
물론 기존 에이스의 분노도 좋은 소스였고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루머가 쏟아졌고.
흉흉한 시선들이 트윈스로, 미네소타로 향하는 애슬레틱스의 전세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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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네.’
왠지 조금 어색하다.
“레이스, 카드 빨리 돌려.”
“나 판돈 다 떨어졌는데, 현물로 맡겨도 돼?”
“시계라도 풀던가.”
분명 평소랑 똑같은 전세기 안인데, 그냥 좀 묘하게 어색하네. 내 기분이 그런 걸 수도 있고.
‘왜 좌석 배치를 이따위로 해놔. 차라리 앞칸에 앉히던가. 어차피 루키니까.’
메이저리그 전세기&전용기에서 선수단의 좌석 배치는 간단하다. 좋고 편안한 좌석일수록 선발투수에게. 그 외는 짬순으로.
원래 루키들은 꼬리칸이나, 이동이 잦은 불편한 곳으로 배치되는데, 난 일단은 선발투수라서 적당히 좋은 자리다.
근데 오늘은 그게 좀 더 업그레이드 됐다.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곳이거든.
내일 등판도 하고, 또 정식 1선발도 됐겠다 배려해준 건데, 문제는 반대쪽 옆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 또 눈 마주쳤어. 어색해 죽겠네. X바 차라리 시미언이랑 자리를 바꿀까? 어차피 포커치기 바빠서, 걘 지 자리에 가지도 않을 텐데.’
소니 그레이다.
원래라면 포수가 저기 앉아야 할 텐데, 나한테 밀려나기는 했어도, 일단은 에이스나 다름없고.
또 간만에 복귀한데다가, 내 다음 경기에 등판할 것이기에 구단 직원이 최고로 좋은 좌석을 배정한 것 같은데. 눈치가 더럽게 없네.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소름이 다 돋는다.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어색하게 웃기만 하고.
‘그러고 보니 인사는 못했는데···’
이 판국에 인사는 무슨 인사.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인데, 에이스 자리야 거뜬하게 짊어져도, 이런 건 좀 그렇지.
누군가 장난스런 녀석이라도 주변에 있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다른 선수들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지, 우리 근처엔 얼씬도 안 했다. 앞서 말했듯 원래 유동이 적은 좌석이기도 하고.
싸늘한 분위기 때문에 괜히 방광이 시려워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을 때.
“···아, 먼저 가.”
“아뇨, 먼저가세요.”
사람은 다 똑같나봐.
마찬가지로 어색함을 떨치지 못하고 일어난 소니 그레이와 딱 맞부딪쳤고, 슬쩍 먼저 양보하니, 그도 고개를 저었다.
서로 어색함에 한 1분쯤 마주보고 있었는데, 누가 보면 눈싸움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그럼 내가 먼저 갈 게.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이제 동료인데, 너무 예의차리지 마.”
“아··· 그래.”
결국 먼저 백기를 든 소니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비스듬이 나를 지나쳤고, 내가 어색하게 웃었을 때. 문득 다시 멈춰선 그가 말했다.
“내일 잘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네가 잘해서 그런 건데, 괜히 눈치 볼 필요는 없잖아? 주변 말들도 신경쓰지 말고.”
그렇게 말하는 소니 그레이는 조금 후련한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말이야.
‘부담감이라.’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예전에 시범경기 때 그렉이 소니 그레이를 보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약팀의 에이스. 그것이 주는 부담감과 압박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무너진다고 했던가?
‘내일 잘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아마 미련은 있을 거다.
에이스라는 단어가 투수를 미치게 하거든. 하지만 방금 봤던 홀가분함도 소니 그레이의 진심이겠지.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시는 1선발에 어림도 못 낼 정도로 잘해버리면, 저쪽도 좋고, 나도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