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경기 전, 고유석의 인터뷰는 당연히 화제가 됐다.
리그 최고의 타자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말한 거니까.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MVP 타자조차 자신에겐 그저 쉽다고 말한 거고.
브라이스 하퍼를 시작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보수적인 개념이 강력한 메이저리그이기에 당연히 여러 비판이 이어졌다.
<루키의 오만함? Go, 인기에 취해, 경기 전부터 망발!>
└이래서 루키들이 잘나가면 좀 그렇다니까. 몇 경기 잘했다고 지가 진짜 최고인 줄 알아.
└트라웃 입장에선 그냥 우습지. 저런 놈이 자기한테 비빈다는 것 자체가.
└무실점이라고 말 많던데, 딱 보니까 오늘 맞겠네. 투수라는 놈이 입 터는 거 보니, 정신상태가 글러 먹었어.
사람들은 잘 나가는 루키가 흔히 품는 오만함이라며 눈살을 찌푸렸고.
고유석이 잘나가면서, 고깝게 보는 시선도 적지는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쭐이 났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그 바램은 손쉽게 박살났다.
마지막 트라웃에게 내준 고의사구성 볼넷과 안타 하나를 제외하면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으니까.
<루키의 오만함? ‘실력’으로 증명했다!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킨 Go!>
└이렇게 잘하면 솔직히 입 좀 털어도 되지.
└난 오히려 좋던데? 잘하는 놈이 말도 잘하니까, 얼마나 예뻐?
└꼬우면, 홈런 치고 배트플립 했어야지. 아, 트라웃은 안 하겠네. 범생이니까.
└개막전이랑 비슷한 결과는 아니네. 삼진은 두 개 더 잡았고, 안타는 하나 덜 맞았으니까, 말이야.
천지분간 못하는 신인의 오만함은 실력에서 우러나온 패기로 탈바꿈됐고, 오히려 제 말을 지키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반응도 적지는 않았다.
<고유석 7이닝 11K 무실점! 사실상 4월 이달의 투수 확정!?>
<박찬원 이후 19년 만의 한국인 투수의 ‘이달의 투수’ 수상 정조준>
그렇게 에인절스전마저 완벽하게 끝나면서, 한국과 미국 양측에서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양쪽 언론들은 이번 경기로 고유석이 사실상 4월 이달의 선수를 확정 지었다고 평가했으니까.
<5G 5W, 54K 2BB ‘0’ERA, Go의 아름다운 April!>
└Suck 이번 달 등판은 끝난 거지? 로테이션 대로면.
└저게 사람 성적이냐?
└이 정도면 이달의 투수는 확정이라고 봐도 되나?
└이닝이 상위권보다 조금 달리기는 한데, 나머지가 워낙 압도적이라···
└다른 거 다 떠나서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무실점, 이거 하나로 끝난 거야.
└ERA가 Zero인 투수한테 이달의 투수를 안 주면 그것도 좀 우스운 일이지.
물론 4월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어난 피칭을 보여준 투수는 무수히 많고.
1.19의 ERA를 기록한 크리스 세일이나, 0.77을 기록한 어빈 산타나. 아직 한 경기가 더 남아, 4월에만 6경기를 등판하는 댈러스 카이클 등의 후보가 있었지만.
그들 역시 한 달 내내 단 한 점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4월을 보낸 퍼포먼스와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으니까.
또한 등판한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5승을 찍은 승수와 현시점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한 54개의 탈삼진은 클래식 스탯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도 크게 어필됐고 말이다.
└이달의 투수는 확정인데, 문제는 이달의 신인이지.
└? 리그 최고의 투수인데 신인상은 그냥 따라오는 거 아니야?
└애런 저지인가 뭔가도 좀 잘하고 있거든.
└허접한 서부지구 새끼들이나 때려잡은 투수보단, 우리 Judge(판사)님이 더 Coool해.
└그럼그럼 야구의 꽃은 원래 홈런이거든. 베이브가 홈런 친 덕분에 우리가 A’s 거지새끼들이랑 다르게 잘나가는 거잖아?
└그래봤자 양키스 Japs랑 뚱땡이 사바시아보다 Go가 더 나으니까 닥치고 꺼져.
다만 확정 분위기에 접어든 이달의 투수와 달리, 이달의 신인은 약간의 문제거리가 있었다.
고유석이 미국 서부를 휩쓸며 4월 최고의 투수로 떠올랐다면, 반대로 동부를 휩쓴 타자가 있었으니까.
<‘All Rise!’ 애런 저지, 시즌 10호 홈런!>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인기를 비교한다면, 고유석은 애런 저지의 상대가 아니었다.
엄청난 성적과 여러 기록을 세우며, 시범경기를 넘어, 정규시즌에서도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고유석이나.
비슷한 시기 애런 저지 역시 Judge라는 성 때문에 동부지구의 치안판사로 군림하며, 10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신인 타자로서는 훌륭한 임팩트를 선보였으니까.
<4월 Rookie of the Month는 누구에게? Judge와 Go의 2파전!>
└Go지
└Go아니야?
└이것도 솔직히 Go지.
└거꾸로 물구나무서서 봐도 Go야.
물론 10홈런이라고 해도, 퍼포먼스면에서는 고유석에게 크게 밀릴 수밖에 없었지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인기팀 양키스와 가난한 스몰마켓 애슬레틱스 간에는 기본적인 체급차를 무시할 수 없었다.
[#Yankees]
[Go인지 뭔지 하는 놈도 잘하는 것 같긴 한데, 저지한텐 안 되지. 그래봤자 찌질이들 사이에서나 잘한 거잖아? 보니까 상대팀이 죄다 서부지구더만.]
└진짜? 서부 수준 알만하다.
└걔 구속이 90마일도 안 된다며? 걔한테 채프먼 구속 5마일쯤 덜어줘도 채프먼보다 느리네. 이게 투수냐?
└걔 때문에 거지새끼들이 요즘 좀 시끄럽긴 하더라.
└냅둬, 돈도 없는데 공짜 투수 생겼으니, 얼마나 좋겠어?
└90마일도 못 던지는 투수라··· 루저들의 King으로 딱이기는 하네.
└트라웃도 슬슬 끝물이야. 저런 허접한 투수한테 털리는 거 보면.
그리고 고유석의 등판이 모두 AL 서부지구 팀으로 한정되었기에, 다른 지구 팀들에게 그 퍼포먼스가 크게 와닿지 않는 것도 있었고.
그렇기에 양키스 팬들은 고유석의 성적에는 감탄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고.
그런 시큰둥하면서도, 다른 팀을 조금 내려 보는듯한 모습은 뜻하지 않은 서부지구 대통합을 낳았다.
└뭐? 서부지구 수준이 떨어져? 레인저스가 작년 전체 1위인 건 알고 말하냐?
└Suck 그 새끼가 이름처럼 엿같은 놈이기는 해도, 실력을 까는 건 좀 그렇지. Suck이 양키스 정도는 넉넉하게 노히터로 막을 걸?
└서부가 동부 못해? 웃기고 있네. 다른 리그도 아니고, 지구가 다른 건데 그딴 게 어딨어?
└주심 판정이 지구 따라서 달라지냐? 볼넷이 2개밖에 안 되는 투수인데, 뭐가 어째?
└그래서, 양키스에 트라웃보다 나은 타자가 누가 있는데? 그거나 말해봐라.
고유석에게 탈탈 털리면서, 그 이름만 들어도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서부지구 팀들이지만.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가 그를 폄하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5개국, 아니 서부지구 5개 구단 연합군이 양키스 팬 커뮤니티를 털면서, 약간의 소요사태가 발생했고.
특히 4월 마지막 경기까지 화려하게 장식한 고유석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개인 팬들은 온갖 종류의 트롤링을 선사했다.
[#Yankees]
[그래그래, 너네 Suck X나게 대단하다, Suck이 최고의 투수고, 그런 Suck한테 털린 서부지구는 최고의 디비전이고. 4월 이달의 신인도 저지가 아니라 Suck이다. 됐냐? 이제 좀 제발 꺼져라.]
└진작 그랬어야지.
└앞으로 깝치지 마라.
└처신 잘하라고.
└우리 오클랜드에서 판사(Judge) 같은 건 없고, 통하지도 않으니까 조심하라고.
└└X새끼야 그딴 건 말하지 마.
결국 압도적인 물량 앞에 버티지 못한 양키스가 항복선언을 하며, 사태가 진정됐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번 시즌 내내 벌여질 일의 초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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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니까요. 어린애도 아니고, 뭘 그리 걱정을 하시나 몰라.”
에인절스전이 끝난 뒤,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을 앞뒀다.
어찌나 중요한지, 브라이언마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저렇게 물을 정도지.
그게 뭐냐고?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필기가 문제지, 실기는 눈 감고라도 통과하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진짜로 감으시면 안 됩니다.”
“조크, 조크.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운전면허 따야지.
벌써 한 달이 다 돼가는데, 언제까지 브라이언 차 얻어타고 다닐 수는 없잖아.
거기다 빌리 빈한테 차까지, 정확하게는 렌트비까지 뜯어냈으니까, 돈 걱정도 없고.
가장 큰 난관은 필기였다.
미국에서 살면서 귀랑 입이 트여서 토킹은 되는데, 일상 용어나, 야구 용어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조금···
실기야, 한국에서 아빠 차 좀 몰아봐서 자신 있지만 말이야.
‘반쯤은 대충 때려 맞춘 거 같은데, 얼추 통과는 했네.’
그래도 눈칫밥 먹으면서 배운 영어가 읽는 것도 얼추 되는 건지, 턱걸이로 간신히 필기 시험은 통과했고.
이제 남은 건 깔끔하게 코스 통과하고, 따끈따끈한 운전면허 뽑는 것 뿐.
“Suck 너 무슨 원시인이냐? 나이가 몇인데 아직 운전면허가 없었어? 어쩐지 에이전트가 픽업해주더라.”
“면허는 있는데, 미국 게 없다고. 말을 좀 제대로 들어라.”
“My Son, 하나만 명심하렴. 브레이크랑 엑셀을 구분할 것. 그것만 할 줄 알면 돼.”
“투수라서 방향이나 거리조절 걱정은 없겠네. 컨트롤도 좋으니까, 주차도 잘할 거고.”
“그건 뭔 개소리-”
대충 몸 풀다가 슬쩍 동료들한테 말하니까, 어린애 보듯이 보더라. 사실 내가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닌데 말이야.
갓 데뷔해서, 선수단의 막내라서 그런지, 아주 어린 애 놀리는 것처럼 별 소릴 다하네.
“운전면허를 따야 진짜 어른이지. 이제 Suck 너도 진짜 남자가 되네. 응원할 테니까, 한 번에 뚫고 와.”
“Suck, 넌 잘할 거야.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만 해.”
“···아, 예.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딴 눈빛 하지마요.”
아니, 차라리 놀리는 놈들이 낫지, 라제이 데이비스나, 제드 라우리처럼 나이가 제법 있는 양반들은 진짜 무슨 아들 보듯이 흡족한 눈빛으로 보는데, 그게 더 껄끄러워.
특히 제드 라우리는 나랑 같이 포커도 친 양반이 어른스러운 척을 하네. 심지어 밀머니 죄다 털린 주제에.
아무튼 그런 응원을 등에 업고 곧바로 실기시험을 치렀다.
“바로 예약해 드려야죠! Go가 경기하시는데 불편하면 안 되니까요. 혹시 어느 날짜가 괜찮으시겠습니까? 원하시는 날에 바로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원래는 필기시험 통과하고도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시간이 제법 걸리는 걸로 아는데.
시험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을 때와, 필기시험 예약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사천리구만.
“···네, 시험일이 오늘은 맞네요. 잠시 대기하시면 곧 감독관이- 바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조금-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실기 시험장도 마찬가지였고.
“보통은··· 한 시간에서 오클랜드 같은 도시는 두 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데··· 음, 네. 그렇군요. 정말로 기쁩니다. 제가 이런 슈퍼스타의 에이전트라서.”
“열심히 던진 보람이 있네요.”
직접 달려가, 감독관 한 명을 질질 끌고 오는 직원의 모습에 걱정스러워서 함께 따라왔던 브라이언은 말을 잃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먼저 차례를 지켜야- 고맙다, 진짜 고맙다.”
“누군지 직접 보면 저한테 감사할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 그렇네. 내가 다음에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할게. 진짜 고마워. 아, 시험을 보러 오셨다고요? 바로 가시죠!”
아마도 선량한 시민 한 명의 자리를 내가 뺏은 것 같지만··· 내가 직접 요구한 것도 아니니까. 고맙게 받아들여야지.
시큰둥하게 끌려왔던 감독관도 하트가 가득한 눈빛으로 직접 에스코트까지 해줬다.
진짜 이래도 되나?
‘표지판에 박아도 대충 통과라고 할 것 같은데?’
차가 반파만 나지 않는다면 무조건 합격 시커 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막상 시험이 시작되니 제법 진지하게 체크했다.
다행히 직업의식은 있구만. 만약 시험에서도 저랬다면 나도 좀 찝찝했을 텐데. 다행이구만.
“네, 합격 결과 확인했고, 여기 이건 인턴 드라이브 라이센스인데, 정식 면허증 발급은 조금 시일이 걸리니까, 그전에 운전하실 때는 이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편안하게 운전 하시고,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정말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저··· 혹시 사인이라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Go를 위해서라도 괜찮습니다.”
시험은 손쉽게 통과했다.
실기는 문제없다니까?
내가 그래도 차를 몇 번이나 몰아봤는데, 이거 하나 못할까.
임시 면허증 역할을 할 문서를 발급받은 뒤, 사인이라도 하나 해주려고 했더니, 간곡하게 거절했다.
서류를 발급할 때야, 원칙에만 위배될 뿐 문제될 건 없겠지만, 이건 어찌 됐든 시험이니, 뒷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좌절하는 직원을 뒤로한 채 시험장을 빠져나온 뒤, 다시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갈까요? 바로 집으로? 아니면···”
“시험도 통과했겠다, 차도 바로 뽑으러 가죠. 브라이언도 곧 가야 할 텐데.”
“예, 카탈로그 드린 건 좀 보셨습니까?”
“이쪽으로 가죠.”
예전에 브라이언이 구해줬던 렌트카 카탈로그들 중 품속에 지니고 왔던 것 하나를 쓱 건네니,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별건 아니고.
그냥 누가 그러더라고.
차는 무조건···
‘독일제라고.’
내 돈도 아닌데, 이럴 때 비싼 차 타보는 거지.
원래는 미국이니까, GM이나 포드, 그리고 국산차도 생각했지만, 보니까, 우리 팀 미국 놈들도 죄다 차는 독일차던데. 나도 팀 분위기에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갓 데뷔한 루키 자식이 혼자서 톡 튀는 차를 타고 다니면 좀 그렇잖아?
‘그러게, 최대한도나 브랜드를 정해줬어야지.’
혹시라도 나중에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안 된다고 하면, 그때 가서 다른 차 알아보면 되겠지.
####
고유석이 한창 기분 좋게 차를 알아보고 다녔을 때.
약간의 휴식을 맞이한 애슬레틱스 프런트는 로스터 정리로 바빴다.
“다행히 후유증은 없는 것 같네요.”
“다행이지, 정말로.”
사실, 로스터 정리라기보다는 소니 그레이의 자리를 만드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에인절스전의 하루 뒤, 트리플A에서 마지막 마이너 경기를 가진 소니 그레이는 분명 기대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6이닝 동안 11개의 탈삼진을 올리며, 트리플A마저 가지고 놀았으니까.
마이너에서의 두 경기 모두 다 10탈삼진 이상을 기록했으니, 이만하면 걱정했던 부상의 후유증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러니 당장 자리를 마련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에이스가 돌아오는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선발진에 자리를 만들었고, 부진했던 앤드류 트릭스가 다시 불펜투수로 밀려났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로테이션이었다.
“반응은 어떻지?”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Go에게로 기울었습니다. 지난 에인절스전 덕분에요.”
기존에는 6대4에 가까웠다.
Go, 그 이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애슬레틱스 팬들에겐 희망의 상징이자 구세주이나.
에이스인 소니 그레이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는 팬들이 많았으니까.
허나 조금 자극적인 인터뷰가 곁들여졌던 지난 에인절스전마저 고유석이 화려하게 장식하며, 분위기는 넘어갔다.
가난한 오클랜드와 부유한 애너하임. 그런 차이 때문인지 오클랜드 팬들은 에인절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런 에인절스를 보기 좋게, 심지어 흥겨운 인터뷰까지 곁들여가며 박살 냈으니까.
‘원래라면 휴식일을 이용해서 로테이션을 조금 조정해야 했었지만···’
5월 1일에 경기가 없는 덕분에 로테이션 조정 자체는 쉽다. 그에게 하루의 휴식을 더 주면 끝이니까.
프런트의 원래 계획 역시 그거였지만···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이마를 두들겼다. 그 계획이 지금은 조금 애매해졌으니까.
‘사무실 내에서 조차도 저마다 의견이 달라졌어.’
마케팅 팀, 운영팀, 그리고 스카우트와 전력분석팀까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의견은 똑같았다.
기존의 에이스인 소니 그레이를 다시 복귀시키는 것.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소니 그레이라는 상징성을 집중하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고유석이라는 루키가 1선발을 맡는다는 것에 걱정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후자는 대부분 스카우트 팀이 주장했다. 루키의 경우 당장은 좋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긴 시즌동안 쉽게 무너지니.
1선발에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아예 로테이션 자체를 뒤로 확 밀어서, 최대한 이닝을 조절하자는 거지.
‘그런데 이젠 아니지.’
34이닝 54K.
그리고 현재까지 무실점.
한 달 동안 고유석이 올린 이 압도적인 성적은, 기존의 에이스에 대한 예우와 루키의 미래에 대한 걱정마저 주춤거리게 했다.
소니 그레이가 이 성적을 넘을 수 있을까? 에이스로서 이것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종류의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에, 심지어 팬들마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1선발, 에이스의 가치가 현대야구에 들어서면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결국 팀 내에서 가장 잘해야 하는 존재라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소니 역시 불안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부족한 피지컬 때문인지, 꾸준하게 부상에 시달리는 투수이고, 작년은 그 부상으로 아예 날려 먹었으니까.
올해 초 역시 사라졌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소니 그레이 역시 루키의 불안함만큼이나 부상의 불안함이 존재하는 투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성적으로 봐야지.’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슬쩍 그의 상사도 한창 고민하고 있을 사무실을 훑었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고민을 했었던 건지, 곧 결정이 내려졌다.
‘현장의 의견을 다르겠다라, 그렇다면···’
약간은 책임회피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경기를 치르고, 선수를 보는 이들의 판단을 존중한 것이고. 프런트가 다 하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결국 라인업과 로테이션을 결정하는 건 감독이니.
“5월 개막전도 Go의 차지군.”
기존의 에이스를 끌어내리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명분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