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고유석 6이닝 3피안타 9K로 시즌 4승!>
경기가 끝난 뒤, 평소보다는 조금 적은 기사가 올라왔다.
열광적인 분위기도 지난 경기들과 비교하면 조금 적었고.
└이전 경기들이랑 비교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안정감은 있더라.
└루키 같지는 않았지. 특히 로빈슨 카노나 넬슨 크루즈처럼 클린업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그랬고.
사실 매리너스와의 경기 자체는 이전 경기들의 임팩트와 비교하면 대단히 화려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6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고, 만족스러운 탈삼진 쇼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호쾌하게 타자를 돌려세우는 것보다는, 바깥쪽 승부로 꾸역꾸역 잡는다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세 경기 연속 10탈삼진도 실패했고.
물론 연속 이닝 무실점을 27이닝으로 늘린 것이나, 데뷔 직후를 기준으로 역대 2위, 선발투수 1위로 올라선 건 대단한 이야깃거리였으나.
전체적인 반응 전체적으로 다소 잠잠하다고 볼 수 있었다.
└Go는 저런 피칭도 잘하네.
└Suck이 구속은 빠르지 않아도, 파워 피처 같았는데, 이번 경기는 피네스 피처적인 느낌이 더 강했어.
└느낌이 강한 게 아니라, 그냥 피네스 피처였지.
└그만큼 다재다능하단 거지. 이런 피칭도 잘하네.
다만 평소 구속이 느려도, 파워피처처럼 호쾌하게 던지던 것과 달리.
이번 경기에선 전형적인 피네스 피처의 모습을 보여준 것에 놀란 사람들도 적지는 않았다.
특유의 공격적인 피칭으로 유명하고, 사랑받은 선수였으니까.
허나 그렇기에 몇몇 팬들은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졌다.
루키답지 않은 선수라는 거야, 이미 오클랜드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했고, 성적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솔직히 Suck을 루키라고 봐야 하나?
└평범한 루키는 아니지. 특히 피칭만 놓고 보면, 절대로 루키는 아니야.
└난 Suck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소니가 돌아오면 그가 1선발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Go는 아직 경험도 적고, 소니는 그렇지 않으니까. 근데··· 이젠 잘 모르겠다.
└만약 You-Suck이 갓 데뷔한 투수가 아니라, 일정수준 이상의 커리어를 쌓은 투수였다고 가정하면, 솔직히 논쟁 자체가 의미 없기는 하지.
└저기··· 호칭 좀 하나로 통일해줄래? Go, Suck, You-Suck, 죄다 다르네.
논쟁에서 소니 그레이를 지지하는 측의 가장 큰 주장은 하나였다. 고유석이 이제 갓 데뷔한 루키라는 것.
아직 경험도 적고, 긴 시즌을 맡겼을 때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한 투수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약점이었으니까.
<4경기 동안 43K! 압도적인 탈삼진으로 리그 전체 삼진 1위를 차지한 Go!>
허나 오늘 보여줬던 안정감은 분명 루키 딱지와 어울리지 않았고.
또한 이제까지 보여준 임팩트에 대한 보상처럼 서서히 이달의 투수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더는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조금은 힘들어졌다.
전체적으로 놓고 봐도, 압도적인 삼진 페이스와 여전히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는 투수가 고유석이었으니까.
└관건은 이거지. 과연 소니가 언제 돌아오냐는 것. 그리고 돌아왔을 때, 최소한 Suck과 비슷한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
└재활도 끝났다고 하던데. 곧 마이너 경기 나오겠네.
그렇게 서서히 분위기가 고유석에게로 기울어질 때, 어쩌면 오클랜드 팬들이 가장 바라던 소식이 들려왔다.
<소니 그레이, 오는 22일 A+에서 재활 후 첫 복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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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몸은 좀 어때?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멀쩡합니다. 깨끗하게 나았다니까요? 바로 등판해도 될 걸요?”
투수코치는 자신의 물음에 당당히 대답하는 소니 그레이를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으니까.
짧은 듯 길었던 재활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를 준비하는 투수의 심정이겠지.
“오늘은 딱 5이닝만 던질 거야, 알지? 투구수도 80구 정도로 제한될 거고.”
“뭐, 오래간만의 등판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 이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마이너 코치인 자신이 무언가 보태는 것도 조금은 우스운 투수니까.
‘잘하는 거야 당연하고, 관건은 어느 정도로 실전 감각이 올라왔냐는 거겠지.’
애초에 소니 그레이라는 투수는 이곳, 하이A에 있어선 안 되는 규격 외의 괴물이다.
그렇기에 상대팀 타자들도 대부분은 한 수 배운다는 심정이거나.
메이저리거에게 한방 날려 확 뜨겠다는, 도박꾼 정도의 생각이지, 진지하게 맞상대하려는 이들은 없을 거다.
‘그나저나 요즘 좀 시끄럽던데···’
그는 흘끔 소니 그레이의 안색을 살폈다. 알고 있을까? 그가 재활을 마무리하는 동안 위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업계 종사자로선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으니까.
소니 그레이를 이제 갓 데뷔한 투수가 밀어낸다고? 루키가 1선발을?
물론 그 투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니 역대급 수준으로 잘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 그렇지.’
실력만 놓고 따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애초에 1선발, 즉 에이스라는 건 실력만 놓고 따지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한 팀의 간판이자, 대표적인 투수니까.
‘선발 로테이션을 무슨 타선으로 아는 건가?’
타선이야 그때그때 잘하는 타자가 3번에도 서고, 강한 2번에도 서겠지만, 에이스라는 자리는 실력은 기본이고 +a를 요구하는 자리다.
에이스가 무너지는 것만큼 사기가 떨어지는 일이 없으니, 당장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안정성도 고려해야하지.
그 안정성은 결국 커리어고.
‘이제 네 경기 던진 투수랑, 13년부터 4년 간 꾸준하게 활약한 투수는 다르지.’
다만 작년은 아쉽게 말아먹었고, 올해는 시작부터 부상에 시달리며, 여기에 내려오긴 했으나.
애초에 소니 그레이라는 투수와 루키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감히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만약 알고 있다면 소니 입장에선 조금 불쾌하겠어.’
재활을 마치고 맞이한 첫 경기이기에, 혹시라도 감정이 상해서 등판을 망치는 것은 아닌가, 투수코치는 소니 그레이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만약 무언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목은 그대로 날아갈 테니까. 팀의 에이스를 잘 지원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다행히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평소처럼,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밝은 모습.
아마도 모르는 거겠지.
‘진짜 재활에만 집중했으니, 바깥 사정을 모를 수도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넘긴 투수코치였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소니 그레이는 정보에 밝았다.
아니, 그보다는 밝을 수밖에 없었다.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쯤 되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도 알아서 날아온다.
SNS나, 주변 지인들을 통하기도 하고, 친분을 가진 선수들이 현재 상황을 전해주기도 하지.
‘Go, 이렇게 잘할 줄 알았으면, 그때 좀 친하게 지내기라도 할 걸 그랬나?’
그렇기에 소니 그레이는 고유석과 그의 성적, 그리고 그것이 일으킨 파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봤을 때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신인에게 시선을 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작년 시즌을 부상으로 망쳤고,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더욱더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뿐.
‘결국은 그게 독이 됐지만.’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고, 하물며 기계도 과부하를 걸면 쉽게 고장 난다.
조급한 마음에 몸을 몰아붙였으니, 탈이 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겠지.
부상이 안타깝다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어쩌면, 모든 원인은 부담감이었다. 물론 그는 오클랜드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애슬레틱스에 대단한 애착도 없고.
선수로서 어느 정도는 충성심을 가졌지만, 애초에 팀의 재정상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팀이니까.
허나 팬들은 아니다.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는데.’
소니 그레이는 잘 알았다.
오클랜드 팬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기대가 얼마나 크고,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2013년 첫 데뷔 시즌에서,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이 보여줬던 환호성이.
신인의 포스트시즌 8이닝 무실점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엄청나게들 기뻐했지.
‘결국 마지막에 망쳤지만.’
허나 그럼에도 팬들은 박수를 쳐줬다. 수고했노라고, 넌 최고의 투수가 될 거라고. 언젠가 함께 월드시리즈를 들어 올릴 거라고.
어쩌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던 게.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 아닌 욕심이 생겼던 게.
그렇기에 항상 최선을 다했고, 처참하게 망가졌던 작년, 좌절한 팬들을 보며, 더는 실망 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그에 대한 집착감에 스스로를 몰아붙였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그런 영웅심리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밖에 없다고.
자신이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좋은 투수들도 굳이 오클랜드를 선택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 몸에서 느껴진 이상징후와 통증은 정말이지 원망스러웠고, 팬들의 느낄 절망을 떠올리면 가슴이 쓰렸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훨씬 사정이 낫네. 훨씬 좋아졌어.’
그런 걱정이 무안하게도, 팀은 잘 나갔다. 생각보다 시즌 초반을 괜찮게 보냈고,
팬들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다. 사라지는 듯했던 희망도 다시 피어올랐고.
에이스의 부재라는 빈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워준 선수 덕분이리라.
‘Go가 아니었다면··· 지금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겠지..’
그래, 잘 알고 있다.
그 루키 투수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팬들의 머릿속에서 소니 그레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있는지.
약간은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 잠깐 새에 새로운 남자에게 넘어가버린 팬들이 야속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깨가 조금 가볍기도 했다. 모두 다 나를 볼 때와는 조금 색다른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래도 질 수는 없지. 내가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가 있는데.’
경쟁심이 피어오르면서도, 무거웠던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졌으니까.
‘원투펀치는 조금 마음에 들긴 하지만.’
사실 대다수는 이걸 기대했다. Go가 앞으로도 계속 잘하고, 자신도 무사히 복귀하면.
과거 마크 멀더와 팀 허드슨, 그리고 배리 지토가 주축이었던 영광의 삼인방시절처럼 다시 에이스가 활짝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지.
그런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팬들은 그를 기다렸고, 예전보다 기대나 애정이 조금 덜해진 것 같긴 하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다.
“준비 됐어?”
“네, 됐습니다. 바로 가죠!”
힘차게 외친 그는 마운드로 향했다. 부담감이 사라진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웠고.
“스트라이크!”
비록 마이너지만, 오래 간만에 던진 초구는 굉장히 상쾌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렇게 에이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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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복귀했다며? 빅리그는 언제 온대?”
“아마 한 경기쯤은 마이너에서 더 던지겠지.”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니, 선수들은 죄다 저 얘기다. 에이스의 귀환이니 재밌는 주제거리이긴 하지.
듣기로 5이닝 1피안타로, 삼진도 11개나 올렸다는데.
마이너 애들을 완전히 가지고 놀았구만.
비록 하이A 경기이기는 하나,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재활 복귀전이기에 그만큼 관심이 몰렸다. 슬슬 선수들도 1선발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어이, Young Ace! Old Ace가 돌아온다는데, 자신은 있어?”
“소니랑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뭐가 영이고 올드야?”
“그야, 당연히 네가 영이고, 소니가 올드지.”
“사실 덩치랑 얼굴을 놓고 보면 Suck 네가 올드 같기는 해.”
“소니가 좀 작아서 그런가, 둘이 딱 서 있으면 완전 애랑 어른 같을걸?”
“아무튼 Old가 곧 복귀할 텐데, 에이스 자리 지킬 각오는 돼 있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녀석들은 날 발견하더니 실실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그동안은 팬덤에서 아무리 떠들더라도, 그저 재밌는 이슈 정도로 넘겼지만, 진짜로 소니 그레이가 곧 돌아온다고 하니, 선수들도 이젠 은근히 궁금한 눈치네.
거기다 소니 그레이의 복귀전도 완벽했으니까.
‘뭔 대답을 바라는 거야?’
뭐, 늙은 투수의 콧대를 꺾어버리겠다, 그런 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충 무시했지만, 솔직히 나도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에이스, 그리고 1선발.’
에이스를 바라지 않는 투수는 없으니까.
그래봤자 선발 로테이션 순서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겨우 그 정도가 아니지, 팀에서 가장 잘하는 투수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나도 조금 욕심은 났다.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정도 성적을 찍었는데, 2선발로 밀려나는 것도 좀 억울하잖아?
‘일정은··· 절묘하네. 대충 프런트 생각을 알겠어.’
어제 22일 마이너에서 첫 복귀전을 가졌으니, 한 경기 더 치른다 치면, 소니 그레이는 아마도 다음 달에 복귀할 거다.
그러면 일정도 딱 맞아 떨어진다. 5월 첫 상대가 미네소타 트윈스인데, 5월 2일에 경기가 열리거든.
원래 로테이션대로면 내가 등판하겠지만, 5월 1일, 하루 정도의 휴식일이 주어지니,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하기에 딱 알맞은 셈이지.
‘프런트에서도 그걸 다 감안하고, 소니 그레이의 복귀일을 정한 걸 테고.’
내가 엄청나게 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쪽이 상식적인 선택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루키에게 에이스라는 중요한 자리를 안겨주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팀에 헌신한 투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소니 그레이가 훨씬 더 안정적이니까.
다만 나한테 통보를 하거나, 아니면 은근히 언질을 주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직까지 확정은 아닌 것 같다.
‘관건은 다음 경기구만.’
일정대로면 내가 4월의 마지막 경기로, 26일에 에인절스전의 원정 경기에 등판하니.
지금까지 말이 없다는 건, 그때 내 성적을 보고 선택을 내리겠다는 뜻이겠지.
잠시 주인이 비운 자리를 운 좋게 비집고 들어간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내줄 수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