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아니, 그러니까 왜 Go가 제일 잘하는데 왜 에이스가 아니야? 계속 에이스 해야지.
└계속 설명했잖아, 지금까지 소니가 에이스였고, Go는 대신 1선발을 맡은 거라고.
└그니까! 내 말은 어차피 대신 맡은 자리, 그냥 계속 유지하면 안 되느냐는 거야.
└하···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아무것도 아닌 질문에서 촉발된 논쟁은 제법 격렬하게, 그리고 길게 이어졌다.
<애슬레틱스, 애스트로스와의 2차전 6대7의 아쉬운 석패!>
<애슬레틱스, 3차전 9대1 승리로, 위닝 시리즈!>
애스트로스 시리즈가 진즉에 끝나고, 홈으로 불러들인 레인저스와의 3연전 마저 끝났는데도 여전히 타오를 정도로 말이다.
거기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현재 애슬레틱스 팬덤이 둘로 나눠어 있다는 거였다.
첫 번째는 당연히 기존부터 애슬레틱스를 응원하고, 경기를 즐겨봤던 팬들이다.
“에휴··· 올해는 꼴지라도 좀 안 했으면 좋겠네.”
“3년 연속 지구 꼴등은 좀 그렇잖아?”
“뭐, 꼴지 할 수도 있지. 리빌딩만 잘한다면야.”
이들은 기본적으로 충성심이 높다. 과거부터 꾸준하게 경기를 시청하거나, 직관하며 애슬레틱스를 응원한 이들이니까.
오랫동안 팀을 봐왔기에 그들은 소니 그레이라는 에이스의 실력을 잘 알았고, 최소한의 예우차원에서라도 그를 지지했다.
“쟨 누구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구? 투수?”
“이름이··· Go You-Suck? 저런 녀석이 우리 팀에 있었나? 특이해서 마음에 드네. 잘해?”
“어, 실력은 있는 것 같더라. 시범경기지만, 삼진도 제법 잘 잡고.”
물론 고유석은 등장시점부터 그런 기존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팀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따로 있었다.
“야구네? 언제는 지루해서 재미없다더니.”
“···레이더스 X새끼들이 라스베가스로 튄다고 해서, 정이라도 떼려고.”
“아,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좀 어때? 야구 볼만하냐?”
“여전히 지루하긴 한데, 나쁘진 않네. 특히 저 녀석, 그러니까··· 그래, 투수가 마음에 들고.”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지! X발 아주 잘하네!”
이번 시즌 새로이 유입된 이들. 현재 팬덤 내에서 고유석의 가장 큰 지지층은 바로 이들이었다.
사실 야구에서 신규 팬이 유입되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연고제가 있는 모든 팀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는 해당 지역의 로컬스포츠로서의 개념이 짙으니까.
그렇기에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연고지역 이외의 팬 유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고.
특히나 오클랜드처럼 기본적으로 스몰마켓에 최근 성적마저 저조하고, 심지어 같은 주 내에 다른 거대구단(다저스, 자이언츠)가 있다면 그런 유입이 더욱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얘 진짜 물건인데?”
“그치? 시원시원하게 잘한다니까.”
“구속은 느리지만, 쓸데없이 질질 안 끌어서 좋네.”
걸출한 전국구 유망주의 등장은 그런 예측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시범경기가 시작된 직후부터, 화려한 퍼포먼스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고유석은 여러 언론들에게 일종의 ‘챔피언’으로 간택됐다.
강력한 공과 적극적인 피칭, 그리고 멋들어진 삼진쇼는 흥행성을 갖췄으니까.
<캑터스 리그의 라이징 스타! 파드리스를 압도!>
<7이닝 퍼펙트를 기록하며, 화이트삭스를 ‘Shotout’시킨 Go!>
미디어와 언론은 그런 압도적인 임팩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며, 고유석을 시범경기 최대의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고.
그런 열광적인 분위기는 황홀경에 빠진 기존의 에이스 팬들 외의 사람들에게도 어필된 거다.
“Go가 개막전에 스타트 피처로 나온다는데?”
“개막전? 한번··· 볼까?”
“야구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거기다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까지 하며, 흐름이 끊기지 않은 덕분에, 고유석이라는 선수에게 매력을 느낀 이들은 자연스럽게 오클랜드로 눈을 돌렸고.
“그렇지! 이거지!”
“트라웃 쟤가 제일 잘하는 야구선수라던데 Go한텐 쨉도 안 되네!”
“야구를 이맛에 보는구만, 이제야 좀 이해가 되네. 너드 아니면 노인네들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앞으로 애슬레틱스 경기도 좀 볼까?”
“최소한 Go가 등판하는 경기는 볼 가치가 있겠어.”
개막전을 시작으로, 정규시즌에서도 퍼포먼스가 이어지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애슬레틱스에 정착했다.
그렇게 신규유입 팬들이 생겨났고, 시청률도 제법 올랐으니, 구단과 방송사에서는 그저 만족스럽겠지만.
이런 신규유입 팬들에게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했다.
“음··· 오늘은 별로네. 그냥 딴 거 틀까?”
“어, 다른 거 보자. Go가 안 나오니까, 별로 볼 맛이 안 나네. 계속 Go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Go 나올 때 말고는 그냥 안 봐도 되겠네.”
그들은 야구나 애슬레틱스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저 고유석을 좋아했을 뿐.
원래도 야구를 좋아했던 이들은 웬만해선 응원팀을 갈아타지 않고. 제아무리 대단한 유망주가 나타났더라도 개인팬 정도로 끝난다.
그렇기에 고유석으로 인해서 새롭게 애슬레틱스의 팬이 된 이들은 대부분 애초부터 야구에 관심이 없었던, 농구나 미식축구 등을 즐겨보던 이들이 주류였다.
<오클랜드 레이더스, 연고지 이전 확정!>
<레이더스, 라스베가스의 품으로 안기다!>
특히나 워리어스와 레이더스 등, 기존에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했던 팀들이 줄줄이 연고지 이전을 확정 지으면서, 실망감에 두 팀의 팬덤에서 이탈하여, 마음이 붕 떠있던 이들에게 크게 어필됐고 말이다.
“타자들은 맨날 나오던데, 왜 투수는 다섯 경기마다 한 번만 나오는 거야?”
“Go가 루키라서 그런 거 아니야? 원래 어린 선수는 자주 경기에 안 내보내잖아.”
“아,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하긴, 루키는 잘 보호해야지.”
“야 이 모자란 새끼들아. 선발투수는 원래 로테이션에 맞춰서 나와.”
“그래? 그게 룰이야?”
“진짜? 에이, 그러니까 재미가 없지! 잘하는 선수를 팍팍 내보내야 경기도 재밌고, 성적도 좋고 하는 건데.”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지식 자체가 부족한 이들이 많았고, 야구란 어디까지나 ‘고유석의 피칭을 보는 것’정도로 국한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금 나아서 진지하게 애슬레틱스 팬이 된 이들조차도 최고의 투수를 묻는다면 무조건 고유석이었다.
그들이 지켜 본 경기들에서 가장 완벽하게 피칭했으니까.
“1선발? 그게 뭔데?”
“제일 잘하는 투수라는데? 에이스 말이야 에이스.”
“그럼 Go가 1선발이네. Go가 제일 잘하잖아.”
“제일 잘하는 투수가 1선발이라며? 그러면 당연히 Suck이 1선발이지!”
“소니 그레이? 걔가 누군데?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는데 걔가 왜 에이스야?”
그런 특수성 때문에 고유석과 마찬가지로 기존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소니 그레이지만.
신규 팬들에게 소니 그레이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고, 그들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투수가 Go를 밀쳐내고 ‘에이스’가 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반대로 기존 팬들 역시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에이스로서 자리 잡은 소니 그레이를 허접한 투수 정도로 취급하는 유입 팬들의 행태가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고 말이다.
그런 유입 팬층과 기존 팬층 간의 견해의 차이가 이번 ‘1선발’ 논쟁의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런 유입 팬들의 행동은 곧 인터넷 밖에서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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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4연전 첫 경기에서 등판하기 위해 평소처럼 경기장으로 입성했는데.
‘어째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쭉 관중석을 훑으니, 그냥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클랜드 팬들은 원래도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그 애정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단순히 애정을 넘어서, 광기에 도달했다고 해야 하나? 특히나 몇몇 관중들은···
“와··· 야구장에 저러고 와도 돼?”
“어··· 되니까, 저러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팬은 맞지? 혹시 매리너스 쪽 열성팬 아니야?”
“아니, 저거··· 레이더스 같은데?
뭔가, 뭔가 선을 넘었다.
저게 뭐야 대체, 야구 보러 온 거 맞아?
3루 관중석 부근에는 웬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쓰거나, 혹은 페이스페인팅을 한 양반들이 바글거렸고.
그들이 우리를 응원하러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그런 꼴을 하고서도 챙겨 입은 녹색의 오클랜드 유니폼 밖에 없었다.
“레이더스? NFL팀?”
“풋볼 팬들이 여긴 왜 와? 아직 리그 열리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걔들 곧 라스베가스로 튀잖아. 우리 쪽으로 갈아탄 거겠지.”
“살벌하네. 경기장에서 직접 보니까 저런 느낌이구나. 레이더스 애들은 저런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경기하나 몰라.”
정체는 다른 선수들 덕분에 밝혀졌다. 오클랜드 레이더스, 같은 콜리시엄을 홈구장으로 한 미식축구 팀인데.
올해 초에 라스베가스로의 연고지 이전이 결정됐다. 당분간은 오클랜드에 있겠지만, 준비되는 즉시 이전하겠지.
겉 외형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강성 팬덤으로 유명한 팀인데, 그에 대한 실망감을 품은 이들이, 그나마 오클랜드를 강제로 지키고 있는 우리 쪽으로 넘어온 것 같다.
심지어···
“Suuuuuuuck! 너 보러 왔으니까 오늘도 잘해라!”
“사랑한다! X발 나한테 남은 건 이젠 너밖에 없어! 레이더스 그 X같은 배신자 새끼들 때문에 이젠 너밖에 없다고!”
“네가 에이스다! 내가 야구는 X도 모르지만, 딱 봐도 니가 제일 잘해! 그러니까 계속 잘해라!”
내 팬인 것 같고.
생김새는 흉흉한 주제에 내 이름이 적힌 아기자기한 판넬을 흔들며 나한테 소리치는데. 외형만 보면 전투 전에 고함치는 것 같네.
“···”
“손이라도 흔들어주지 그러냐,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이게 스타성인가? 팬들 수준부터 확실히 달라.”
내가 말을 잃었을 때, 다른 선수들은 그저 흥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는데, 어우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그런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네.
그래도 일단은 내 팬인게 확실해 보이니까, 주변의 권유처럼 손을 흔들어줬는데···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역시 이건 뭔가 좀 아니야.
겉으로도 괴상망측한 남정네들이 어린아이처럼 양팔을 휘두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금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1선발을 해야 한다고, 내 개인팬들이 엄청나게 밀어주고 있다더니··· 저런 양반들이었구만.’
나와 소니 그레이 간의 1선발이 열린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니, 대부분의 오클랜드 선수들이 다 알고 있을걸?
여러 팬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거대하게 싸움이 번졌고, 그걸 언론에서도 열심히 퍼 날랐으니까.
물론 진지하게 여기는 건 아니고, 대부분은 그냥 재밌는 이슈 정도로 여겼지만, 진지하게 주장하면서, 날 밀어주는 팬들이 있다고 하더니.
바로 저런 양반들이구만.
‘한편으로는 좀 짠하네.’
듣기로는 엄청나게 강성 팬덤인 것 같은데, 그런 강성 팬들이 아예 다른 종목으로 넘어왔다는 건, 그만큼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겠지.
사실 우리도 선수단 내에서는 오클랜드 탈출(?)에 성공한 레이더스나 워리어스를 부러워하는 분위기지만.
어쨌든 현지 팬들에겐 폭탄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다.
‘때마침 그즈음부터 내가 떴으니, 자연스럽게 내 팬이자, 애슬레틱스 팬이 된 거고.’
봐도봐도 적응이 안 되는 몰골이기는 한데, 그래도 날 저렇게나 좋아한다는 것이니, 썩 나쁘지는 않았다.
긴장도 빡 들어갔고.
‘만족 못 시키면 큰일 나겠는데?’
환호하는 것까지야 괜찮겠지만, 너런 양반들이 나한테 욕설을 내뱉는 꼴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멘탈이 큰 타격을 입을 테니까.
‘좋아 해줄 때 최대한 잘 해야지. 오늘도 열심히 타자들 조져야겠어.’
뭐, 평소와는 조금 다른이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오늘도 멘탈은 확실하게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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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Suck! You-Suck!”
스티븐슨의 일행은 금방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고.
모든 관중석들을 통틀어도, 홀로 굉장히 동떨어진 분위기였으니까.
특히나 정적인 분위기가 강한 야구이기에, 그들의 존재감은 더욱더 튈 수밖에 없었다.
“레이더스 아니야? 왜 야구경기 와서 깽판이야?”
“몰라, 미친 거 같은데?”
주변의 관중들은 그런 광기어린 모습에 서로 수군거리며 징하다는 눈빛을 띠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티븐슨 자신은 물론, 그의 동료들이 아는 응원법은 오로지 이런 것밖에 없었으니까.
‘완전히 다르네.’
“여기 콜리시엄 맞아?”
“야구할 때 콜리시엄은 너무 조용하네.”
허나 그런 관중들과 마찬가지로, 스티븐슨 무리 역시 약간은 어색했다.
그들이 아는 콜리시엄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광적이고, 열기로 가득한 게 콜리시엄인데, 야구의 분위기는 그것과 사뭇 달랐다.
“뭐 어때?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건데.”
“쯧쯧, 즐길 줄을 모르는구만. 스포츠를 볼 때는 원래 이렇게 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샌님들이라서 그런 거지.”
물론 그 사뭇 다른 분위기에 짓눌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더욱더 소리 높여 응원하던 그들은 곧 주변 역시 자신들과 비슷하게 시끄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Suck!”
“매리너스 새끼들 조져버려!”
“이달의 투수 한번 가보자!”
“뭐, 뭐야? 갑자기 왜들 이래?”
“시끄럽다고 째려볼 땐 언제고, 지들도 만만찮네.”
“Suck이네! 저기~ Suck이 나오는데?”
갑자기 달아오른 경기장.
그 이유는 빠르게 드러났다.
불펜인지 뭔지에서 그토록 애타게 외쳤던 Suck, 혹은 You-Suck이 나왔으니까.
“잘해라! 꼭 잘해!”
“너 때문에 내가 이 봄날에 콜리시엄까지 왔으니까,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만 해봐!”
곧 이유를 깨달은 동료들과 스티븐슨 역시 다시금 소리치며 투수를 반겼고, 마운드에 오르던 투수는 잠깐 그들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그래, 그래. 오늘 한번 제대로 보여줘. X발놈의 레이더스가 다시는 안 떠오르도록.”
그렇게 중얼거리던 스티븐슨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둥글게 솟은 흙더미, 마운드를 내려봤다.
아직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여러 가지 용어는 헷갈리지만, 최소한 하나 만큼은 알았다.
지금까지 그가 본 경기들 중에서 저 위에 오른 투수 중, 저 녀석이 가장 잘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간절히 바랐다. 부디 저 투수가 지금까지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자신들이 팬을 버리고 떠나려는 배신자들을 잊게 해주기를.
“플레이볼!”
우렁찬 주심의 선언으로 시작된 경기. 마운드의 Suck은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첫 공이 날아갔다.
“스트라이크!”
“그렇지! 팍팍 넣어야지!”
“저 멍청한 새끼 쫄았으니까, 바로바로 조져버려!”
몸쪽 공. 빠른 공이라고 하는데, 89마일이면, 빠르긴 한 것 같다. 개소리나 끄적거리는 머저리들의 기사에선 느린 구속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89마일이 어딜 봐서 느려?
웬만한 도로에서는 죄다 속도위반 딱지가 붙겠구만.
“스트라이크!”
기분 나쁜 기사들을 떠올라, 괜히 입맛을 다시던 스티븐슨은 이내 다시금 울리는 스트라이크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껏 직접 보러오기까지 했는데, 놓쳐서는 안 된다. 최소한 티켓값이 아까워서라도 죄다 눈에 담아야지.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의 시작을 알리듯, 언제나처럼 울려 퍼진 삼진콜.
그들 무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지루한 관중들 역시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제법··· 맛이 나네.’
풋볼과 비교하면 야구는 약간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기에, 직관을 한다고 해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흥이 올랐다.
“마냥 샌님들은 아니네.”
조금 흡족하기도 했고, 자신 역시 이들 중 일원이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스트라이크!”
“캬~ 공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나 몰라?”
“저게 체인지업 맞지? 아니, 서클인가?”
“둘 다 맞아. 서클 체인지업.”
그렇게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고유석은 뒤이어 두 번째 타자에게도 초구의 카운트를 가져왔다.
서클 체인지업.
야구의 구종이 헷갈리긴 하지만, 저것 하나 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가장 강력한 공이었으니까.
그런 서클 체인지업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마치 자신에게 똑똑히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Suck은 티비에서 봤던 장면들을 직접 선사해줬다.
“스트라이크!”
서클과는 반대 방향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파울!”
방망이를 찍어 누르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다시 뚝 떨어지는 다른 종류의 서클까지.
“진짜 잘하네, 티비로 보던 것보다 더 쩌는데?”
“원래 Go의 피칭은 경기장에서 보는 게 진짭니다. 개막전에서도 그렇고, 저번 경기도 그렇고, 어찌나 잘하던지···.”
“아, 그렇습니까?”
똑같이 좋아하면서 조금 마음이 열린 건지, 그들을 철저하게 모르는 척했던 옆자리의 관중도 한 마디를 보탰고, 그것으로 묘한 유대감이 생성됐다.
‘점점 더 마음에 드네.’
You-Suck이라는 투수가, 그리고 풋볼이 아니라 베이스볼이 열리고 있는 콜리시움이 조금씩 가슴에 스며들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며, KKK, 조금은 인종차별 비슷한 것 같지만, 어쩄든 다른 사람들이 흥겹게 외치는 무언가를 완성시킨 Suck을 보며, 스티븐슨은 생각했다.
<레이더스, 라스베가스로 연고지 이전 결정!>
그의 마음과 순정에 큼직한 스크레치를 남긴 이 개자식들과 달리···
‘최소한 실망시키진 않겠네.’
저 투수는 절대로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고.
직접 경기장에서 지켜본 투수는 더욱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으니까.
‘이것 봐, 아무리봐도 Suck이 제일 잘하는구만. 누가 돌아오든 말든, 무조건 잘하는 놈이 에이스 해야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밤, 멍청이들과 키보드로 격렬하게 싸우며 품었던 생각또한 더욱더 확신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