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74화 (74/316)

74화

“이번 이닝은 점수 좀 내자.”

“Suck이 이렇게나 잘 던지고 있는데, 우리가 한 점만 내는 것도 조금 정 없지.”

공수교대로 분주한 덕아웃 안. 다리를 쩍 벌리고서 벤치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날 위해서 점수를 내겠다는 타자들 때문에? 아니, 그거야 타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만족스러울게 뭐가 있어?

그냥 계획대로 잘 진행됐던 지난 이닝들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더 짧게 끊었네.’

4회와 5회, 2이닝 동안 소모한 투구수는 21개로, 원래 목표치였던 25개보다 더욱 짧게 끊었잖아.

그 덕에 모든 준비는 마쳤다.

체력도 아주 쌩쌩하고.

‘커터가 생각보다 잘 먹혔어.’

경기 전, 불펜피칭하면서 깨달았다. 정점을 찍은 컨디션 덕분인지, 가장 부족했던 커터도 오늘만큼은 그럭저럭 쓸만하다는 것을.

서클처럼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준다거나, 묵직한 무게감으로 배트를 부순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투심이랑 섞으면 타자들 맛탱이 가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특히나 내 구종을 잘 알고 있는 애스트로스라면 더더욱.’

정보를 잘 취합하고, 분석하는 팀이기에 내가 투심을 던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커터는 아니지.

시범경기에서도 낮은 완성도 때문에 잘 쓰지 않았고, 정규시즌에서도 개막전에서 트라웃에게 도망치듯 하나 던진 걸 제외하면 연습할 때만 던졌으니까.

애초에 내가 커터를 던질 줄 안다는 건 우리 팀 내에서도 몇명 밖에는 없을 걸?

‘눈치를 봐서는 이제는 알아챈 것 같지만··· 그래도 잘 써먹었어.’

그래도 상대 벤치와 타격코치가 분주한 것을 보아 아마도 이젠 내가 뭘 던진 건지 알아챈 것 같다.

‘아마도 브레그먼이겠지.’

병살타를 치고 나서 표정이 이상하더라고. 당했다! 하는 듯했는데, 걔가 알아챈 거겠지.

더블A에서는 천재를 넘어서 괴물 같았던 놈이었는데, 여기서도 그 천재성이 빛바래진 않았구만.

어쨌든 그 덕분에 이제부터 커터는 못 쓴다. 평소보다 좋기는 해도, 아직 완성도가 낮거든.

‘컨택이 좋은 타자들은 미리 알고 있다면, 쉽게 골라내겠지.’

지난 이닝들에서 땅볼을 만들어낸 건, 애스트로스가 가진 정보를 역이용한 덕분이지, 커터 자체의 능력은 아니다.

“다음 이닝부터 시작이지?”

“네, 투구수도 많이 아꼈고, 체력도 아직 쌩쌩하겠다. 다 퍼부어야죠.”

구종 하나가 다시 사라진 건 아쉽지만, 뭐, 어차피 커터는 조커 카드였으니까,

2이닝 잘 막아줬으니, 이만하면 쏠쏠하게 잘 써먹었네.

‘타자들은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머리를 복잡하게 해주겠지.’

직접 던지는 건 삼가더라도,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 상대 타자들에게 갈림길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셈이니, 커터의 효용가치 자체는 아직도 여전하다.

‘최적의 상황이네.’

최고의 컨디션.

충분히 남은 체력.

머리가 조금 더 복잡해진 타자들.

정점을 찍은 경기감각.

고삐 풀고 날뛰면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이보다도 더 좋을 수가 없겠네.

“다음 이닝부터는 사인 내고 바로바로 던질 거니까, 잘 잡아줘요.”

“절대로 등 뒤로 보내진 않을 테니까, 마음껏 던져.”

조시 페글리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다.

“응? 어디가? 화장실?”

“코치한테 가요.”

“코치? 어··· 스콧?”

“슬슬 차례 돌아오는 것 같은데, 준비 안 해요?”

“어? 아! 어, 가야지.”

저 양반은 포수에 너무 몰두한 건가, 자기 타석 돌아오는데도 벤치에 앉아 있네.

허둥지둥 배트를 챙기는 조시 페글리를 뒤로한 채, 나는 곧바로 스콧 에머슨, 투수코치에게 향했다.

확답을 받아야지.

이렇게나 아름다운 상황인데, 갑자기 휙 교체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열심히 체력까지 아꼈는데.

“Go? 왜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스콧 에머슨은 내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있는게 아닌지, 걱정하는 것도 같고.

“별건 아니고, 오늘도 딱 투구수로만 끊어주세요.”

뜬구름 잡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이내 이해한 건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길게 가고 싶어?”

“그냥 딱 리미트까지만 던질게요.”

내 투구수 제한은 아마도 100구일 거다. 루키잖아.

사실 루키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 정도이기는 한데. 나는 더욱더 철저하게 끊는 거지.

실제로 지난 경기들도 100구를 꽉꽉 채운 게 아니라, 적당~히 이닝을 채우니까 바로 교체됐었고.

오늘은 그러지 말고 그냥 투구수 한계선까지만 던지게 해달라는 내 말에 스콧 에머슨은 입맛을 다셨다.

“···일단은 알았어.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제 남은 체력을 마운드에서 죄다 때려 박는 것만 남았구만.

다시금 씨익 웃은 나는 지금까지 적절히 제어했던 감각의 고삐를 놓았다.

“···휴스턴 놈들, 다음이닝부터 좋아서 죽겠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타석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던 조시 페글리는 약간은 멍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암! 좋아죽고말고.

물론 내가.

####

“스트라~~~잌 아웃!”

주심은 신이 났다.

판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타자를 약 올리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맛깔스런 콜로 삼진을 알렸으니까.

어찌 보면 직업정신이 출중하다고 봐도 되겠다. 목이 제법 아플 텐데, 계속해서 잔뜩 성대를 긁어가며 소리치는 거니까.

“You-Suck!”

관중들은 그런 주심보다도 조금 더 신났다. 삼진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5이닝동안 탈삼진 5개.

그럭저럭 적절한 수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계로 텍사스에서 열렸던 화끈한 삼진 쇼를 봤었던 이들에겐 약간은 아쉬웠겠지.

거기다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시범경기 때는 무지막지한 삼진율을 자랑했었기에 더욱더 그렇겠지.

비록 오늘 역시 좋은 피칭이고, 상대 타선을 효율적으로 잘 잡기는 했지만, 2%정도 부족했던 마음을 꽉꽉 채워주는 조금 늦은 삼진 쇼가 그들은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스트라잌~ 아웃!”

“You-Suck!”

“KKK! KKK!”

그런 마음의 발로인지 삼진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내 이름을 크게 외친다.

한 2만 명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은데, 저 정도 숫자의 인원이 다 같이 내 이름을 외치니 괜히 좀 가슴이 웅장해지네.

내 이름은 유썩이 아니라, 유석이지만 말이야.

‘약간 중의적이네.’

어쨌든 내 이름을 외치고 있기는 한데, 몇몇 관중은 그와 동시에 삼진당한 타자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타자를 향해 You Suck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니, 그게 맞나?

내 이름을 대놓고 욕처럼 쓰고 있는 셈인데, 애들도 보는 앞에서 저게 뭐하는-

“You-Suck!”

“You-Suck!”

아, 꼬맹이들도 열심히 손가락질하고 있네.

어른들한테 아주 좋은 거 배웠어.

될성부른 나무구만.

전염이라도 되는 건지, 점점 더 퍼져나갔고, 이내 늙은 노신사부터 꼬꼬마까지 죄다 타자에게 You-Suck거리며 손가락질했다.

듣고보는 입장에서 조금 기괴한 풍경이나, 효과는 확실하다.

노골적인 손짓에 멘탈이 터진 건지, 삼진당한 타자가 덕아웃에 들어가는 순간 헬멧을 내동댕이칠 정도로.

난 타자들이 저렇게 똥씹는 표정하면 제일 좋더라. 얼마나 보기 좋아? 타석에서 물러날 때는 응당 저런 얼굴을 해야지.

물론 삼진을 당한 것도 모자라서, 2만명 가량의 사람들에게 You Suck이라고 매도까지 당해야 하는 타자의 속마음은 썩어 문드러지겠지만, 어쩌라고? 내 일도 아닌데.

‘포커페이스가 깨졌네.’

그리고 그런 타자들의 반응은 지금 휴스턴 애스트로스 타선의 상태를 표현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땅볼로 아웃을 당하더라도, 약간 멍하고, 아쉬울지언정, 다음을 기약했던 타자들인데. 이젠 그런 모습조차 없거든.

그 말은 곧···

‘놨다는 뜻이지.’

날 공략하는 걸 포기했다는 뜻이다. 기를 쓰고 방법을 찾지 않을 정도로.

이해는 간다.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갑자기 훨씬 더 강력한 공을 던지면서 자기들을 조진 것도 어처구니없을 텐데.

데이터에 없던 커터로 경기 중반을 지우더니, 이젠 기껏 적응한 것이 무색하게도 속도까지 빨라진 거니까.

‘그래도 약점을 물고 늘어지기는 하네.’

“파울!”

다만 날 두들기는 걸 포기했다는 거지, 약점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연이어 삼진 당한 동료들을 이어서 뒤이어 올라온 타자는 기를 쓰고 공을 커트했다.

어떻게든 승부를 질질 끌겠다는 뜻. 최대한 투구수를 뽑아내려는 거다. 루키라서 투구수 제한이 철저하다는 걸 이용해서, 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리겠다는 건데···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어림도 없지.

다시 스트라이크 아웃.

KKK, 세 타자 연속 삼진이 완성됐고, 삼진 쇼의 스타트를 끊었던 6회에 두 개를 올렸으니, 이제 두 자릿수를 채웠다.

‘K 뒤집혔네.’

3루 관중석 쪽에서 함께 온듯한 사람들이 내가 삼진을 올릴 때마다 K가 쓰인 패널을 세웠었는데. 아홉 개가 전부였던 건지, 하나가 뒤집혔다.

7이닝 2피안타 10탈삼진.

선발투수로서 경기를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한 성적이지만, 난 약속에 철저한 사람이다.

‘이제 88개인가? 12개 남았네.’

꽉 다 채울 거라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스콧 에머슨을 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군. 락하운즈 투수코치였던 존 와스딘도 나랑 마음이 잘 맞았는데, 이 양반이랑도 그런 관계가 될 수 있겠어.

“레인저스 때보다 오늘이 더 쩌는 것 같은데?”

다시 벤치로 돌아와 털썩 앉자, 주변의 동료들은 헛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히나 오늘 경기 내내 외야로 타구가 하나도 가지 않은 탓에 쉬었던 외야수들은 연신 따봉을 날려댔고. 알아, 오늘 X나게 잘하고 있는 거.

“Suck, 이러다가 너 진짜로 에이스 되는 거 아니야?”

“그래봤자 소니 대신인데, 뭔 에이스.”

글러브를 벗고 다음 타석을 위해 배트에 미끄럼방지용 파인타르를 칠하던 마커스 시미언은 은근히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에이스라, 어찌 보면 지금 A’s의 에이스는 나다. 1선발이잖아? 소니 그레이 대신이지만.

그것을 꼬집는 마커스 시미언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그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말은 소니가 돌아오더라도, 한번 노려볼만 하지 않냐고. 1선발 말이야. 소니도 첫 풀타임 시즌에 바로 1선발 된 케이스거든.”

별 시답잖은 말을 다 하네.

내가 대충 흘려 넘기자, 마커스 시미언도 진지하게 얘기했던 건 아닌지, 어깨를 으쓱였다.

‘1선발이라···’

가능할지도 모르지.

내가 지금 같은 성적을 앞으로 쭉 찍다는 가정하에.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조금 욕심이 나고.

에이스라는 이름이 주는 마력이 있거든.

허나 그건 나중에 경기 끝나고 생각해야 할 일이지. 지금 내 목표는 그저 남은 이닝을 잘 마무리하는 거다.

‘나 다음 이닝도 던진다? 어디 한번 잘해보자.’

덕아웃 난간으로 다가가, 상대 선수들에게 잘 보이도록 천천히 점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투구수를 끌어내서, 날 조기(?) 교체 시키려던 그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었음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

자기들을 놀린다는 걸 잘 아는 건지, 대부분은 불쾌한 듯 눈을 부라렸지만, 몇몇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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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부터 8회까지 이어진 5타자 연속 삼진! Go가 애스트로스를 침몰시키다!>

고유석의 폭주는 8회 초 삼진을 두 개 더 추가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비록 직전경기인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6이닝 13K 1피안타. 5.2이닝 퍼펙트라는 무지막지한 임팩트를 보여줬었으나.

이번 경기 역시 그것에 가려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레인저스전보다도 파급은 더 컸다.

-Go는 굉장히 영리한 투수죠. 지능적인 피칭으로 자신의 공격적인 성향을 받쳐주는 스타일이죠. 그런데 휴스턴을 상대로도···

-Go는 이번 경기로 휴스턴이라는 30개 구단 중에 가장 분석적인 팀에게도 자신의 피칭이 통한다는 걸···

-어쩌면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신성이 떠오른 걸지도 모르는···

-Go는 7이닝 이후로도 충분히 강력한 피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

야구와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에서 이번 경기를 이야기했고, 그 프로그램 속 패널들이 찬사를 보내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으리라.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팀은 어떤 의미에선 대중들보다 전문가들에게 조금 더 고평가를 받았다.

특히 세이버메트리션들에게는 트렌드를 잘 읽을 줄 아는 스마트한 구단으로 통했고.

그런 구단의 막강한 타선을 8이닝 동안 꽁꽁 묶으며, 자신의 의도대로 가지고 놀았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팬들이야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저 엄청나게 잘했다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그런 팬들의 흥을 올리기 위한 적절한 기록도 곁들여졌다.

개막전 데뷔한 직후부터 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연속 이닝 무실점이 21이닝까지 늘어났으니까.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의 1위인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 무실점에는 반조차 미치지 못하고. 그 뒤로 이어진 기록들에도 아직은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나.

기록이 많은 메이저리그답게, 데뷔 직후로 기록을 한정하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거기서 한번 더 선발투수로 한정한다면, 데드볼 시대의 투수를 포함하여 역대 2위였고 말이다.

거기다 데뷔 직후 39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브래드 지글러가 마찬가지로 오클랜드의 선수였었기에 팬들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A’s]

[Go가 무실점을 딱 3이닝만 더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럼 구원 1위, 선발 1위가 둘 다 우리 팀 기록이 되는 거잖아?]

└목표를 좀 더 높게 잡아. Suck이라면 분명 39이닝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데뷔 직후 한정이라서 정식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긴 한데, 어쨌든 데드볼 시대의 기록을 깬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해.

└데뷔전 개막전 선발등판도 대략 70년 전쯤 일이었으니, Go는 올드 레코드 브레이커라고 봐도 되겠군.

└아직도 좀 안 믿긴다. 이런 선수가 우리 팀이라고? 이렇게 잘하는 선수가?

연속 이닝 무실점을 데뷔 직후로 한정하고, 그마저도 선발에 한정해야만 하지만. 팬들은 고유석이 데드볼 시대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기뻐했고.

또한 분명 작년만 하더라도 전체 리그에서 선발진이 가장 부실한 팀 중 하나였던 게 애슬레틱스인데.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 흥분한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A’s]

[우리··· 선발진이 갑자기 엄청 좋아졌는데?]

└진심이냐?

└아니, 여기에 소니까지 합류한다고 생각해봐. 소니랑 Go가 원투펀치를 맡고, 켄달이랑 션이 뒤를 받쳐주면, 그림 괜찮지 않아?

└어? 뭔가 그럴듯하다?

└소니는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소니까지 오면 그걸로 끝이지. 최소한 선발진은 완성이야.

그렇게 팬들이 고유석이라는 신성과 곧 돌아올 소니 그레이의 궁합을 상상하며 즐거워했을 때, 팬 커뮤니티에 그런 행복한 상상과 관련된 질문이 올라왔다.

[#A’s]

[그런데 Go가 계속해서 잘한다는 가정하에, 나중에 소니가 돌아오면 1선발은 누구야? Go? 소니?]

└아마 Go 로테이션을 조정하겠지. 원래 소니 자리였으니까.

└1선발에 원래가 어딨어? 잘하는 놈이 맡는 거지.

└지금 Go가 소니보다 잘한다는 뜻이야?

└나도 Go를 열렬하게 사랑 하지만, 그건 좀 아니지.

└물론 커리어로 따지면 Go가 상대도 안 되겠지만, 당장은 더 잘하는 건 맞잖아?

어쩌면 다 함께 어깨동무하고서 흥겹게 노래했던 애슬레틱스 팬덤의 분위기를 뒤흔들지도 모르는 질문이 말이다.

└1선발은 웬만하면 믿을 만한 선수한테 맡겨야지. 팀 선발진의 핵심인데.

└그럼 Go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선 가장 믿을 만하잖아?

└소니가 잘하기는 하는데, 안정감을 따지는 건 조금 그렇지. 부상을 자주 당하니까.

└너네들 다 X신이냐? 1선발, 아니 에이스 자리를 신인한테 맡기자고? 그리고 Go가 더 잘해? 애초에 소니는 나오지도 못했는데, 누가 더 잘하고 말고가 어딨어?

└그니까, 부상 때문에 못 나온 것도 감안해야지. 시즌 초반 통째로 날린 건데.

└Go는 루키야. 이제 갓 데뷔한 선수고. 그런데 1선발이라는 부담마저 계속 안겨주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부담이 아니라 명예지. 그렇게 따지면 데뷔전을 개막전 선발투수로 하는 게 더 부담스러운 일인데, Go는 그것도 잘 이겨냈잖아? 에이스라고 못할 게 뭐야?

└내가 이런 머저리들이랑 같이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네.

└Go가 진짜 잘하기는 하나봐. 벌써부터 Stan(극성팬)이 생긴 거 보면.

소니 그레이라는 에이스의 부재와 그 빈자리를 채운 고유석의 조금 과할 정도로 좋은 성적,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띄워준 언론의 조화는 조금 예기치 못한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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