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캔자스시티 로열스.
스몰마켓 신화를 써 내려간 팀이자, 재작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지.
그때의 전력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지, 팀 전력 자체는 여전히 빼어난데, 그거야 나랑 상관없고.
‘이건 뭐 관광객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등판할 일도 없는 시리즈라서 그런지, 괜히 심심하고 그러네.
짬이 딸리는 막내라서 원정에 따라오기는 했는데···.
“배트 좀 가져다줄까요?”
“응? 아니, 괜찮아. 선발투수한테 그런 걸 시킬수야 없지.”
“예, 그렇죠. 그럼 드링크라도? 아니면 커피?”
“···미안하지만 난 Suck 네 침 맛이 궁금하지 않아서 말이야.”
할 일이 더럽게 없네.
두 경기를 무사히 치르면서, 소니 그레이가 오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에이스가 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안 시킨다.
이럴 거면 왜 데려 온 걸까.
보통 선발투수가 루키라면, 아무리 투수라고 해도, 잡일 같은 걸 한다고 하던데.
‘아, 생각해보니 내가 루키 헤이징도 깽판 쳐놨지?’
내 죄구만, 내 죄야.
그래도 가장 좋은 관람석인 덕아웃에서 공짜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구경하니까 좋기는 하네.
“Suck, 괜히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너도 얌전히 앉아 있어.”
전날 등판해서 나와 같은 백수 신세가 된 션 마네아의 말에 얌전히 옆자리에 앉아서 경기에 집중했다.
‘오늘도 무난하게 이기겠네.’
앞서 로열스를 호평했던 것과는 다르게, 경기는 우리 팀이 앞서나갔다.
1차전에서도 승리를 차지했는데, 오늘 경기인 2차전 역시 8점을 쓸어 담으며 거세게 몰아붙였으니까.
그에 반해 로열스는 단 한 점도 내지 못하며 시원스럽게 틀어 막혔고.
‘못하는 팀 특징이 봄에 잘하다가 여름에 처박고, 가을에 집에 가는 거라던데.’
내가 생각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보다 왠지 조금 잘 나가는 듯한 느낌에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수들이 들었다면 무슨 뜻이냐며 멱살을 잡았겠지만, 속으로만 말했으니, 상관없지.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가던 8회 말, 새로운 투수가 올라갔다.
“리암이네?”
“어, 아까 전에 불펜 들어가던데, 못 봤어?”
“어, 근데 리암은 그제인가 던지지 않았나?”
“연투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리암 헨드릭스.
팀의 주전 불펜투수다.
호주 출신이라는 조금 생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드문 건 아니다.
같은 영어권이라서 그런가, 마이너에도 호주 출신이 제법 많거든. 메이저에선 얼마 없지만.
‘실력은 좋지. 불펜인데도 이닝을 많이 먹는 편이고.’
듣기로 원래는 선발투수였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팀의 마당쇠 같은 투수다.
작년과 재작년 60이닝을 소화했다고 하는데, 불펜 투수라는 걸 감안하면 제법 많이 먹은 거지.
불펜이 부실한 애슬레틱스에서 그나마 믿을맨이라고 할만한 투수인데···
‘묘~한 눈빛으로 쳐다본단 말이야.’
별로 친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꾸준하게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선수 중 하나였다.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그런 건 아닌데, 계속 주변에서 은근히 시선을 보낸다고 해야 하나?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거지.’
내가 무슨 곰탱이도 아니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슬렁거리는 걸 보고도 모를 수가 없지.
백 퍼센트 뭔가 나한테 바라는 게 있다는 거고, 대충 짐작은 간다. 뭘 원하는 지.
‘나 같은 1년차 찌끄레기한테 뭐 다단계를 영업하진 않을 테고, 지금 내가 가진 거라고 해봐야···’
실력뿐이지.
집도, 차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가진 게 그거잖아, 그러니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사실 리암 헨드릭스만이 아니라, 다른 투수들도 종종 탐욕스런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던질 줄 아는 구종이···
‘패스트볼 세 개. 체인지업 세 개. 슬라이더랑 커브. 커브는 객관적으로 X나게 구리니까 뺀다 쳐도 일곱 개네.’
커터도 똑같이 구린데 왜 안 빼냐고? 그건 프리미엄이 붙어 있잖아.
무려 그렉 매덕스가 손수 가르쳐준 구종이라는 프리미엄이. 커브랑 같은 선상에 놓을 수가 없지.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 탐스러운 세븐 피치라서 그런가, 다른 투수들 눈에는 내가 마치 황금고블린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나만 달라는 거지.
‘사실 다른 구종이 많다고 해도, 죄다 서클 타령이지만 말이야.’
길게 늘어놨지만, 결국 대다수의 목적은 하나다. 서클 좀 가르쳐 달라는 거지.
“너도 서클 가르쳐줘?”
“갑자기? 고맙기는 하지만··· 하하하.”
이거 봐, 션 마네아도 당황한 척하더니, 은근히 좋아하잖아?
지금 내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종을 통틀어서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게 두 가지 종류의 서클이기에 아닌 척하면서도 팀 내의 투수들은 은근히 탐냈다.
아마도 리암 헨드릭스도 그럴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못 가르쳐줄 건 없지.
‘애초에 그립이나 던지는 방법은 그냥 평범하니까.’
그렉도 그렇게 말했었고.
다만 갓 데뷔한 찌끄레기에게 무언갈 배운다는 게 쪽팔리는 건지, 선뜻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난 이상하게 원정이 더 편하더라. 콜리시엄이 X같으니까. 그런가?”
“투수한텐 좋지 않나?”
“그야 그런데, 시설 말이야, 넌 불만 없어? 수리라도 좀 하면 좋겠는데.”
“마이너보다는 낫잖아, 마이너보다는.”
“그렇긴 하지.”
사실상 거의 기울은 경기였기에 잉여인간처럼 있는 나랑 션 마네아 뿐만이 아니라, 벤치의 다른 선수들 역시 노가리 까기 바빴다.
끝날 때까지는 모르는 게 야구라고는 하지만, 8회 말에 8대0이면 끝난 셈 쳐도 무방하잖아.
한 이닝에 만루홈런이 두 번 나와도 동점인 건데, 말 다 한 거지. 그게 가능한지는 차차하고.
“음?”
그런데 마운드에 오른 리암 헨드릭스는 그런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난타를 허용했다.
사실 난타까진 아니고, 안타 세 개를 맞았는데, 죄다 장타라서 순식간에 2점이 났네.
“어··· 좀 맞는데?”
“어, 좀 많이 맞네.”
경기 내내 꽁꽁 묶이다가 막판에 점수가 나오니, 경기장의 분위기가 되살아났고.
뒤이어 볼넷까지 나오면서 열기가 올라가나 싶었지만, 거시거 끝이었다.
“아웃!”
“아웃!”
“그럼 그렇지.”
“리암만 기분 더러워졌네. 다 이긴 경기, 혼자 실점하면 진짜 엿같은데.”
로열스의 저항은 애먼 투수의 기분을 망치는 정도로 끝났고, 혹시나 했던 덕아웃의 분위기도 다시 잠잠해졌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큰 것 같은데?’
나는 봤다. 약간 흔들리는 리암 헨드릭스의 눈동자를.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경력을 쌓은 투수가 잠깐 얻어맞은 것 치고는 제법 타격이 심해 보이네. 그렇다는 건···
‘단순히 실점한 것 말고도 뭔가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 뒤로 9회 말 프랭키 몬타스가 솔로포를 맞으며 리암 헨드릭스와 사이좋게 기분을 망쳤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승리를 가져가며, 캔자스시티 원정의 위닝을 확보했다.
“Suck, 네가 먼저 말했으니까, 뱉은 말 지켜야 한다?”
“무슨 말?”
“서클 말이야, 가르쳐 준다며? 혹시 빈말이었다거나 하면 좀 짜증날 것 같은데···.”
“내일부터 연습피칭 시작할 거니까, 대충 알아서 봐.”
션 마네아는 경기가 끝난 뒤 라커룸에서 신신당부를 받아낸 뒤에야 만족스럽게 웃었다. 관심 없는 척하더니. 욕심은 났나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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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시리즈의 마지막 날.
오늘이 지나면 드디어 다시 홈이다. 나도 등판할 때가 되고.
보통 이때부터 슬슬 어깨를 풀어두는 편이기에,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가 있는 날인데, 나가지도 않는 놈이 괜히 다른 투수들 귀찮게 하면 좀 그렇잖아?
그렇기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메시지가 온 것 같은데···
‘엄만가?’
보통은 엄마다.
티비 틀면 나와서 그런가, 마이너 때보다는 걱정이 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종종 걱정스런 마음에 연락을 주시거든.
그래서 이번에도 엄마인가 싶었는데, 화면에는 전혀 모르는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누구지? 미국 번호인데.’
한국 쪽 지역번호는 아니고, 휴대폰 번호도 아니니, 아마도 미국 쪽인데. 기자가 내 번호 알아낸 건가?
내가 미국에서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대니얼, 브라이언, 그리고 동료 선수들이 전부고, 걔네는 죄다 저장이 되어 있기에 조금 의아했다.
‘일단 확인이나 하자.’
잠금을 해제한 뒤 가볍게 터치하니, 메시지가 나타났고, 나는 잠깐 눈살을 좁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스캇 보라스···’
내가 소속된 에이전시,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전트.
<·····언제든지 편하실 때 연락 주십시오. - XXX-XXX-XXX>
그런 거물께서 내 연락을 바라고 있었다.
‘브라이언을 통해서 연락을 준 게 아니라 직통으로 왔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거나, 어떠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기분 좋게 훈련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1등은 못 하겠네.
이런 문제는 바로바로 처리해야 하거든. 괜히 더 귀찮아지기 전에.
잠깐 동안 벨소리가 흐른 뒤, 딸깍거리는 연결음이 스피커로 새어나왔다.
“···예,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네요. 조금 더 고민하고 결정하겠습니다.”
-예, Mr. Go도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정을 하십시오. 저흰 고객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따르겠습니다.
통화는 생각보다 길었다.
내용이 많았거든. 그만큼 꽤 중요한 것들이기도 했고.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해줬던 지원에 플러스로 매니저와 차량까지 지원해준다는 건데.
‘이유 없는 대가는 없지.’
다만 그 대가도 가볍다.
앞의 여러 가지 지원 방책을 이야기하면서, 스캇 보라스는 은근하게 말했다.
브라이언들 대신해서, 신인 선수를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양반으로 전담 에이전트를 바꾸는 건 어떻겠냐고.
이쪽이 메인이지.
에이전시의 가장 중요한 선수로서 내 성장을 최대한 돕겠다는 건데, 부모님도 아니고 성장을 돕기는 무슨.
‘내가 아무리 루키라고 해도, 진짜 애새끼는 아닌데 말이야.’
그냥 미사여구 다 빼놓고 본질을 말하자면, 일종의 ‘먹튀 방지’다.
내 먹튀? 아니, 브라이언의 먹튀. 훗날 브라이언이 친분을 이용해서 날 데리고 독립하는 걸 막겠다는 거지.
회사에 소속된 에이전트가 어린 유망주와 친해지는 게, 회사 입장에선 껄끄러우니까.
‘실제로 브라이언이 노렸던 것도 그거일 테고.’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
브라이언이 뭘 원하는지.
스스로 야망이 있기에, 대형 에이전시의 에이전트가 직접 마이너 선수와 계약을 맺은 것일 테니까.
그렇기에 과할 만큼 나한테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고. 에이전트라는 양반이 직접 픽업을 해줄 정도로.
‘구미가 당기긴 하네.’
애초에 비즈니스로 시작한 관계고, 나도 브라이언에게 바랐던 건 그 본인이 아니라,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라는 대형 에이전시의 역량과 지원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제안이 제법 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지만···.
‘약간은 껄끄럽네.’
등판이 없어서 그런가, 쓸데없는 곳에서 머리가 팽팽 돌아간단 말이야.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잘 털어 드시는 양반이, 어린놈 홀린다고 방심을 하신 건지, 서순을 좀 잘못 배치하셨네.”
결정을 내렸다.
손을 잡을 거냐고? 아니, 그리 오래된 관계는 아니고, 비즈니스로 시작된 사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전담 트레이너를 구해주고, 오프시즌 동안 훈련하면서 머물 숙소도 렌트해주고, 심지어 오클랜드에서 살집까지 직접 발품 팔아서 구해줬지.
물론 그것들도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역량이 뒤를 받쳐줬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어쨌든 그는 모든 성의를 보였으니, 매몰차게 놓는 것도 좀 그렇지.
그럼 의리를 위해, 지금의 제안을 깔끔하게 제안을 거절할 거냐고? 아니, 그것도 아니다.
‘어른들 상대하더니, 어린놈은 너무 어리게만 보시네. 그렇게 어린놈도 아닌데 말이야.’
말했잖아,
서순이 잘못됐다고.
매니저까진 나도 안 바란다.
대니얼도 시즌 동안 같이 사는데, 무슨 매니저까지 구해?
그건 바라지도 않고, 그냥···.
“슬슬 면허 따고 렌트카 알아보려고 했더니, 공짜로 한 대 생기겠네.”
차만 먹을 게, 차만.
한 가지 밝히자면, 스캇 보라스가 나한테 제안한 건 or이 아니라, and였다.
구단에는 악마로 불리지만, 선수한테는 천사라더니, 그 말이 진짜였구만.
“시간이··· 어우, 좀 늦었네. 바로 씻어야겠다.”
꽁돈, 아니 꽁차가 생겨서 그런가, 괜히 흥겨워진 기분으로 샤워실에 들어갔다.
이제 마음에 거리낄 것도 없겠다, 빨리 가서 몸 풀고,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션 마네아한테 서클이나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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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야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향하니, 제법 사람이 많았다. 통화하느라 시간이 지체된 탓에 1등은 못했네.
‘다행히 투수들은 거의 없네.’
그래도 원래 생각처럼 괜히 등판할 투수들에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선발인 자렐 코튼도 안 보이고, 그 외의 다른 투수들도 거의 안 보였으니까.
“Suck, 아니, Go. 일찍 나왔네, 몸 풀려고?”
“네, 슬슬 피칭감각 잡아야죠.”
슬금슬금 주변을 걸어다니니, 나를 발견한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저 양반도 요즘 들어서 Suck이라고 한단 말이야. 반박자 느리게 Go라고 고치기는 했지만, 아무튼 조심해야겠어.
코치마저 Suck, Suck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은근히 바라보자, 그는 잘 알겠다는 듯 자신의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타이머 맞춰 놓고, 15분···’
대니얼이 없기는 해도, 그가 프로그램을 죄다 짜줬기에, 그에 맞춰서 몸을 풀면 된다.
팀 트레이너 또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는 건지, 두 눈에 불을 켜고서 보고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적당히 워밍업을 하고 있자, 슬슬 다른 투수들도 하나둘씩 얼굴을 비췄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으면 안 되나? 저렇게 보고 있지 말고.’
어제, 교체투수로 등판해서 난타를 당했던 리암 헨드릭스가 멀찍이서 나를 지켜봤다.
분명히 뭔가 묻고 싶은 거라거나, 아니면 궁금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다가오지는 않네.
부끄러움 반, 굳이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나를 배려하는 마음 반일 텐데.
차라리 후딱 와서 물어보는 게 낫지, 오히려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게 더 부담스러운데 말이야.
‘감시당하는 기분이구만.’
그런 내 바램에도 리암 헨드릭스는 그저 바라만 보며 본인의 스트레칭을 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곧장 불펜으로 향했다.
“제가 1등이죠?”
“어, Go, 네가 1등이야. 어깨는 좀 어때? 피로감은 없어?”
“네, 제가 회복 속도가 좀 빨라서···.”
“그렇다니 다행이네. 팀 중심 투수가 회복까지 빠르다면 말이야.”
혹시라도 무슨 문제라도 없는 건지 나를 흘끔 훑어본 불펜코치는 자신만만한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를 지나친 뒤, 익숙한 불펜포수 한명을 붙들고 천천히 캐치볼 하듯 가벼운 연습피칭을 시작했다.
“나이스볼~”
“죄다 나이스에요?”
“진짜야, 이 정도면··· 주니어에선 충분히 먹히겠는데?”
“···”
연습피칭이라고 해봐야 별건 없다. 어깨를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차분~하게 공 몇 개 던지는 거지.
오늘은 나중에 션 마네아가 오면 서클도 가르쳐줘야 하니, 평소보다 조금 덜 던져야 하고. 입이 방정이구만.
그렇게 천천히 불펜포수와 공을 주고받을 때, 어제 경기가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리암 헨드릭스가.
‘왜 싱커를 고집하는 걸까?’
어제 그의 등판을 망친 건 싱커였다. 나쁘지 않기는 한데, 쉽게 난타를 당했지.
그는 쓰리피치 투수지만, 그것들 외에도 종종 던지는 게 있다. 커브랑 체인지업.
체인지업은 진짜 가끔 던지는 정도고, 커브도 마찬가지지만, 제법 독특하지.
‘너클 커브, 불펜에서 던질 때 보면 꽤 좋아 보이던데.’
일반적인 커브 그립이 아니라, 너클 커브거든.
너클볼처럼 손가락을 세워서 던지는 커브 말이야.
제법 낙폭도 좋고, 꺾이는 것도 급격해서, 차라리 싱커의 비중을 낮추고 커브를 조금 더 많이 던진다면 더 나을 텐데.
포심이랑 슬라이더가 좋으니, 떨어지는 공까지 있다면 레퍼토리에도 딱 좋을 것 같고.
‘내가 그 커브 가지고 있었으면 잘 써먹었을 텐데, 뭐, 사람마다 본인의 피칭이 있으니까.’
물론 내 말이 정답은 아니다.
애초에 내가 아는 피칭은 오직 내 피칭밖에 없으니까.
사실 이제 갓 데뷔한 놈이 빅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투수의 피칭을 평가하는 것도 조금은 우습고.
지그시 쳐다보던 눈빛 때문인지,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난단 말이야.
‘음··· 물물교환이라도 해볼까? 대체 뭘 원하는 건지는 몰라도 후딱처리하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은데.’
너클 커브가 탐나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계속 신경이 쓰이잖아. 아니, 사실 맞아.
다른 것들은 다 좋아졌는데, 커브 하나만 여전히 죽여주게 구리지. 오프스피드로 타이밍을 찌르는 것 외에는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물론 떨어지는 종류의 변화구 역할이야, 서클 V1이 대신 해주기는 하지만.
그럴듯한 커브까지 하나 갖춘다면, 진짜 변화구 마스터가 될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찔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