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66화 (66/316)

66화

개막전 시리즈는 위닝 시리즈로 마쳤다.

1차전을 갚아 주듯, 3차전에는 에인절스에게 아쉽게 영봉패를 당했지만, 내가 등판한 개막전을 포함해서, 시리즈 나머지 경기들은 모두 이겼거든.

“7년 만에 개막전 위닝 시리즈라던데?”

“그래? 거참 신기하네.”

“이놈의 베이스볼은 별걸 다 기록한다니까.”

2010시즌 이후 7년만의 개막전 위닝 시리즈라고, 4차전이 끝난 직후 PA 아나운서(경기장 아나운서)와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사실 선수들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개막전 시리즈 결과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선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팬들은 엄청 좋아하더라.”

“좋겠지, 원래 그런 기록을 기억하는 건 팬들이니까.”

“관중도 작년보다 많지 않았어? 4차전에서도 한 2만명은 되겠던데.”

“그거야 Suck 얘 덕분이지. 얘가 기대감을 확 올렸잖아?”

굳이 이런 것까지 기록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일이지만, 변동이 잦은 선수단과 달리, 항상 같은 자리에서 팀을 지켜봤던 팬들에겐 남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

다른 선수들 말에 따르면, 평소보다 개막전 시리즈 내내 관중도 훨씬 많았고, 오래간만에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며, 흥겨운 분위기가 떠나기 전, 오클랜드에 감돌았으니까.

비록 그걸 느낄 새도 없이,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비행기에 타야 했지만.

“자, Suck, 배팅해봐.”

“올인.”

“···넌 그거 밖에 할 줄 모르냐?”

“쫄리면 죽으시던가. 쫄?”

“하, 이 애송이 자식이 누가 투수 아니랄까봐 사람 속을 효율적으로 긁어대네. 오케이, 콜.”

“콜 먼저 까보슈.”

“K,J 투페어. 넌?”

“4 트리플. 내가 먹었네.”

“사기치지마! 어떻게 열 판 중 네 번이 트리플이야! 그게 확률적으로 말이 된다고?”

“Miss.Fortune이 날 사랑하나 보지. 어우, 밀머니가 이렇게 많아서 어떡하나 몰라. 다 쓰려면 배가 터지겠는데? 텍사스 도착하면 바로 칼질 좀 해야겠어.”

원정 비행기야 저번에도 말했듯이 더럽게 시끄러운데. 내가 그 소음의 중심이 되니까, 오히려 더 편하네.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른 마커스 시미언은 친절하게 패를 건내주니, 그는 이내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보다 먼저 밀머니를 털렸던 제드 라우리나 크리스 데이비스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멍한 얼굴로 그저 박수만 쳤고. 그것으로 포커판이 끝났다.

뭐, 엄청난 도박은 아니고, 원정 시리즈가 있으면 구단에서 주는 식대, 밀머니 걸고 하는 건데. 테이블에 앉고 딱 1시간이 지나니, 다 쓸어 담았네.

그러게 어디 선발투수한테 수싸움을 걸어? 이 허접한 새끼들이. 그래도 한 네, 다섯판 안에 끝날 줄 알았는데 열 판이나 했으니, 생각보다는 잘하네.

“너··· 너 나중에 텍사스 도착하면 한판 더해. 젠장 현금이 없네.”

“미안하지만 우리나라는 도박이 불법이라서 말이야, 밀머니 정도는 괜찮겠지만, 그 이상은 좀 그렇지. 특히 상습적이면 안 되고.”

“여긴 미국이야!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속인주의야.”

“그게 뭔데!”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법을 따라야 한다고. 그럼 잘 따고 갑니다. 더 귀찮게 하지 마슈. 덕분에 포식하겠네.”

저번에 개막전을 준비하기 위해 거절하면서 허접이라고 놀린 것 때문에 꿍했던 건지. 이륙하자마자 한판 하자며 계속 징징거린 탓에 판에 끼었는데. 이젠 좀 조용하겠네.

허접들 식대를 다 털었으니, 이젠 다음 경기, 다음 등판에 집중할 시간이다.

한층 더 두둑해진 밀머니를 안고서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현재 팀의 4선발인 자렐 코튼이 흘끔 쳐다봤다.

듣기로 비행기 좌석은 대부분은 친한 선수들끼리 앉거나, 유망주의 옆자리에 베테랑을 붙여준다.

투수들은 투수끼리 붙이거나, 아니면 등판일정에 맞춰서 그날 출장할 포수와 같이 앉히고.

그러니 나도 원래대로라면, 스티븐 보그트가 옆에 앉아야 하겠지만, 마찬가지로 팀의 유망주이자, 원정 시리즈 1차전에 바로 등판할 5선발 앤드류 트릭스를 위해 스티븐 보그트는 그쪽에 앉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예민한 성향이 많은 선발투수끼리는 웬만하면 같이 앉히지 않는 편이지만.

자렐 코튼은 이미 4차전에 등판한 선수라 이번 시리즈는 출장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나마 덜 예민하다는 건지, 오늘은 옆자리 동승자가 됐네.

“땄어?”

“싹다. 하나 줄 테니까, 내가 좀 시끄럽거나, 노트북 타자 소리가 거슬려도 참아줘.”

“오··· 앞으로도 종종 네 옆에 앉아야겠어. 아, 그리고 그건 걱정 마. 난 귀가 둔감한 편이거든. 특히 이것도 받았으니, 마음대로 해.”

털어 온 밀머니 봉투 하나를 뇌물 삼아 쥐어주니, 활짝 웃으며 정장 안쪽에 집어넣었다.

옆자리 동승자 허락도 받았고, 시끄러운 징징이들도 조용하게 만들었으니, 이젠 더 거리낄 것도 없겠군.

‘개막전도 아니고, 데뷔전도 아니지만, 첫 원정이니, 웬만하면 잘해야지.’

미신인 건 아는데, 첫 시작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람의 심리는 생각보다 얄팍해서, 스타트를 잘못 끊으면 그게 은근히 거슬리거든.

그러다 루틴, 습관, 트라우마, 뭐 그런 걸로 남으면, 이후 원정 때마다 망칠 수도 있고.

내 첫 메이저리그 원정 경기의 상대는 텍사스 레인저스. 한국인들에겐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팀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약한 팀이 아니지.’

한국인 메이저리거와의 악연(?) 때문인지, 한국 인터넷에서는 레인저스가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텍사스 레인저스는 강팀이다.

당장 페이롤(연봉총액)만 보더라도, 올해 애슬레틱스가 8천 1백만 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27위인데, 레인저스는 1억 7천 8백만 달러로 7위지.

물론 페이롤만 가지고 팀의 전력을 추산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페이롤 높은 팀이 강팀일 확률이 높다는 건 사실이지.

‘특히 텍사스 특유의 이미지답게, 제법 파워가 좋은 타자들이 많은데다가, 구장도 콜리시엄이랑 반대지.’

콜리시엄이 투수에게 유리하고, 홈런을 많이 억제하는 구장이라면, 레인저스의 홈, 글로브 라이프 파크 인 알링턴은 상당히 타자 친화적이다.

2014년부터 작년, 2016년까지 3년간 모은 파크 팩터를 통틀어 전체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좌측 외야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홈런이 나오기 쉽다고도 하고. 또 파울지역 자체가 엄청 좁아서, 외야는 그냥 죄다 페어다. 그래서 3루타도 쉽게 나오지.

‘다른 걸 다 떠나서 텍사스인데 돔구장이 아닌 것 자체가 문제지.’

나도 작년까지는 텍사스에 살아봐서 잘 안다. 얼마나 황량하고 건조한 동네인지.

그만큼 습도가 낮은 탓에 타구의 비거리가 조금 더 늘지. 그나마 여름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투수로서 참 짜증나는 곳이지만, 그래도 벨트레가 못 나오는 건 나쁘지 않네.’

텍사스의 중심타자이자, 핵심 타자인 아드리안 벨트레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부상을 당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어쨌든 꽤 긴 시간은 아웃이지. 대단한 거포는 아니지만, 훌륭한 타격 능력으로 텍사스 타선의 윤활유와 같은 그가 나오지 않는 건 어쨌든 나한테는 좋은 일이다.

‘우리랑 다르게 개막전에서 내리 3연패를 하긴 했지만. 타격은 준수했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원정 개막전 시리즈를 펼친 텍사스 레인저스인데. 개막전을 깔끔하게 스윕패를 당했지만.

투수들이 겁나게 털려서 그렇지, 타자들은 준수했다. 그런 와중에 중심을 잡아줄 벨트레까지 있었으면, 꽤나 골치 아팠겠지.

‘노마 마자라, 루크네드 오도어, 그리고 엘비스 앤드루스. 이 셋이 가장 조심해야 할 타자인가?’

우익수 노마 마자라.

2루수 루크네드 오도어.

유격수 엘비스 앤드루스.

셋 다 지난 시리즈에서 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타격 능력을 뽐냈던 선수들.

비록 스윕패를 당했지만, 타격감은 좋은 것 같으니, 이 셋을 어떻게 막을지가, 이번 시리즈의 중요한 키 포인트였다.

아 물론 추민수 선배님, 아니, 선수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고. 선구안이 좋으니까.’

최선을 다해야지. 선배의 연륜에 밀린 고유석! 이런 기사를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조이 갈로, 얘도 약간은 위험한 것 같고. 다른 타자들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분석자료를 조금 더 살펴본 뒤, 그제야 노트북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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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황야의 땅.

물론 텍사스라고 해서 죄다 사막이거나, 황야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댈러스-포트워스는 오클랜드와는 느낌이 다르네.

물론 텍사스에서 1년을 살았기에, 사실 나한테는 오클랜드보다는 이쪽이 조금 더 익숙하지만 말이야.

경기는 저녁에 시작한다.

원정팀을 배려하는 거지.

물론 바로 등판해야 하는 자렐 코튼에겐 그다지 기분 좋은 배려가 아니겠지만. 나는 뭐, 오늘은 푹 쉬고 2차전에 등판하니까, 상관없다.

“식사부터 하자. 난 지금 배고파 죽겠어.”

“기내식을 그렇게 먹어놓고?”

“기내식은 간식이지, 간식.”

“바로 호텔로 가나?”

“아마도?”

“지금 시간이··· 호텔 식당 열었겠네.”

“난 좀 자야겠어. 경기 전에 푹 쉬어야지.”

원정지에 도착하면 마이너나 메이저나 똑같구만. 자거나, 먹거나, 둘 중 하나인 걸 보면. 참고로 나는 후자다.

원래 기내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다가, 등판을 위해서, 최대한 열량을 섭취를 해야지. 물론 잠도 자야 하고.

‘같은 지구 라이벌 팀이라서 그런가, 그리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네.’

공항에서 원정 숙소인 호텔까지 가는 길, 구단버스를 보는 몇몇 시민들의 눈빛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같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팀이라서 자주 경기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관계가 그리 좋지는 못하니까.

구단버스에다 대고 노려보는 게 조금 웃기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진심인 것 같다.

‘환영만 받던 곳에서 적지로 들어오니까, 또 느낌이 새롭네.’

시범경기 때도 인기 팀들과 원정경기를 하면, 상대팀 팬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원정경기라는 느낌이 확 들고는 했는데. 역시 정규시즌에서 상대팀 연고지는 차원이 다르네.

‘경기장에서는 이것보다도 훨씬 더 뜨겁겠지.’

나는 슬쩍 앤드류 트릭스를 봤다. 스티븐 보그트의 옆에 앉아, 약간 긴장감에 찌들은 투수.

이번 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등판 예정인 선수인데, 원래 선발투수는 아니다.

작년에 데뷔했는데, 불펜 투수에 가까운 선수니까. 롱 릴리프지. 그러다가 선발이 된 거고. 그래서인지 위치는 조금 애매하다.

선발진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소니 그레이가 복귀하면 한 명은 밀려날 수밖에 없고. 자렐 코튼과 그가 그 후보 중 하나니까.

‘자렐 코튼이야 작년에 트레이드로 넘어온 뒤로 빅리그에서 잘했으니 훨씬 유리하지만···’

이 친구는 조금 애매하다.

애초에 그러니 5선발인 거고. 팀에서도 선발로 길게 쓸 생각은 없겠지. 소니 그레이가 오기 전까지, 적당히 채워주는 정도일 테니까.

‘본인도 그걸 잘 알 테니,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네.’

스윕패를 당했지만, 타격감이 올라온 강타자들. 그리고 극도로 타자친화적인 경기장, 글로브 라이프 파크.

거기에 불안한 위치를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터라 잔뜩 긴장한 선발투수가 어우러지면.

‘지난 시리즈로 쌓은 타격감이··· 이번에 터질 수도 있겠네.’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고, 애써 털어냈지만, 내가 감이 좋았던 건지, 예상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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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난 이래서 여기가 싫단 말이야.”

“레인저스 투수들은 여기서 어떻게 던지나 몰라?”

“스티븐, 앤드류는 좀 어때 보여?”

“···좀, 힘들어 보여.”

원정 1차전은 대패로 끝났다.

관람을 마치고, 기분 좋게 걸어나가며 소리치는 레인저스 홈팬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앤드류 트릭스는 2이닝 만에 쓰리런 하나, 투런 하나로 홈런 두 개를 포함, 9실점을 내주며 무너졌고.

상황을 진정시키러 올라간 불펜 역시 이후 9회까지 3실점을 추가로 내주며 총 12실점을 기록했다.

우리 타자들도 무려 6점이나 뽑아내며 거세게 항전하기는 했는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투수진 분위기가 더 불안해졌다. 글로브 라이프 파크가 X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혔으니까.

‘결국 터졌네. 루그네드 오도어, 노마 마자라. 이 둘이 역시 가장 문제야.’

요주의 인물로 꼽았던 셋 중 둘이 오늘 제대로 터졌다. 오도어는 쓰리런을 쳤고, 마자라는 투런을 쳤으니까.

물론 앤드류 트릭스가 빠르게 무너진 탓도 있지만, 어쨌든 타격감이 확실하게 올라왔다.

‘까딱하면 바로 넘어가겠네. 콜리시엄에선 그나마 마음 편했는데···’

눈앞에서 박살나는 걸 봐서 그런지, 나도 다른 투수들처럼 괜히 불안해지네.

물론 순수하게 구장 덕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개막전보다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로키스에서 뛰는 투수들이 새삼 존경스럽네.

거긴 고지대라서 비거리도 비거리지만, 던지다 보면 숨까지 차다고 하던데. 올해 인터리그 매치업 상대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라서 다행이야.

아니지, 공기 마찰이 적어서, 쿠어스 필드에선 구속이 더 빨라지기도 한다고 하니까, 마의 90마일을 볼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을지도?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가, 별 잡생각을 다 하네.’

아무튼 그렇게 처참한 난타전 속에서 패배를 당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개막전을 위닝 시리즈로 마치면서 팬들만이 아니라, 선수단 분위기도 좋았었는데. 한번 털리니까 다시 내려가네.

만약 팀 케미스트리가 두텁고 끈끈한 팀이라면, 이렇게 한번 패배했다고 해서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겠지만. 오클랜드는 그런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돌아가는 버스 옆자리는 스티븐 보그트가 앉았다. 내일 같이 출장할 예정이니까.

‘불안한가 보네.’

아닌 척하면서도 흘끔흘끔 나를 보는데, 이해는 된다. 내가 개막전이야 완벽하게 해냈다지만. 이제 갓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인이잖아?

어떻게 보면 오늘 털려서 저~쪽 맨 뒷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앤드류 트릭스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이지.

거기다가 내 피칭 스타일 자체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니, 더욱더 불안할 거고.

“?”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좀 웃음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피식거리니까, 스티븐 보그트가 미친놈 보듯이 보는데. 그냥 좀 웃기네.

‘너무 겁먹었네. 트라웃도 잘 잡아놓고.’

스티븐 보그트의 모습을 보니, 지금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약간 긴장했겠지. 살짝 굳었을 거고.

리그 최고의 타자인 트라웃도 잘 때려잡아(?) 놓고서, 앞사람 털렸다고 긴장을 하다니.

물론 글로브 라이프 파크 인 알링턴은 인상적이다. 왜 파크팩터에서 순위권인지 잘 알 만큼.

장타가 쉽게 나오고, 높은 뜬공도 까딱하면 펜스 너머로 훌쩍 넘어간다는 건데.

‘언제는 뭐 안 그랬나?’

애초부터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난 그런 상황 속에서 공을 던졌다. 맞으면 넘어간다는 불안 속에서.

아니, 작년이 아니라, 마이너 내내 그렇게 던졌지. 그렇기에···

‘안 맞으면 그만이지.’

내 피칭은 원래 이게 모토다. 공격적으로 하되 타자의 배트에 안 맞는 것. 그런 종류의 투구를 가장 많이 했고, 가장 잘하지.

“스티븐.”

“어, Suck.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오늘은 투수들 운이 안 좋았으니까. 내일 경기는 네 컨트롤을 바탕으로 해서 그라운드볼을-”

“내일 경기는 내가 알아서 던져도 될까요?”

“뭐?”

“철저하게, 내 스타일대로.”

스티븐의 눈빛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오늘 경기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그런 시선에도 나는 그저 말없이 씨익 웃었고, 스티븐 보그트 역시 날 통제하는 걸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기 때문인지, 허망한 눈빛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삼진을 좀 많이 잡으려고요.”

그래도 경기에서 호흡을 맞출 배터리이고, 파트너이니 내일 내 피칭 계획을 적당히 알려줬는데.

“그래? 난 홈런 칠 생각이야. 한 세 개 정도. 셋 다 그랜드슬램으로.”

대놓고 개소리 취급하네.

진짜라니까? 이게 정답이라고. 안방마님인 포수라는 양반이 바깥양반인 투수를 너무 못 믿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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