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65화 (65/316)

65화

“···경기는 끝났습니까?”

조심스럽게 들어온 직원에게 빌리 빈은 서류에 처박힌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물었다.

언뜻 무심한 것 같았지만, 그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모든 신경이 경기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어쩌면··· 이번 시즌, 아니 더 나아가 구단의 미래가 걸린 경기다. 새롭게 등장한 영웅이 정말로 팬들의 영웅이 될지, 아니면 그저 한때의 흥미로 남을지, 첫발을 떼는 순간이니까.

“네, 끝났습니다. 4대0으로, 우리가 승리를 차지했고요.”

그 순간 빌리 빈은 펜을 쥔 손을 꽈악 쥐었다. 4대0. 무실점이라는 뜻이니, 최소한 선발투수가 털리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애써 떨리는 감정을 감춘 그는 직원이 건네주는 보고서를 받았다.

스카우트팀과 분석팀이 오늘 경기를 분석한 자료. 상대 팀인 에인절스에 대한 분석도 담겨져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약하게 심호흡한 그는 곧 보고서를 펼쳤고, 이를 꽉 깨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7이닝 9탈삼진 2피인타 1볼넷.’

시선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고정됐다. 선발투수의 성적이 기록된 페이지. 그곳에 적힌 글자와 숫자에 그는 그제야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도박은 성공했다.

그것도 최상의 결과로.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은 뒤, 투구수가 아직 남았기에 7회에 다시 올라간 고유석은 탈삼진을 두 개를 더 추가하며, 다시금 삼자범퇴로 이닝을, 자신의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건 그를 개막전의 선발투수로 내세웠던 빌리 빈이 기대했던 최선의 결과물보다도 더욱 만족스러웠다.

“Go가 에인절스 타선을 압도했습니다. 시범경기와 마찬가지로요. 트라웃을 삼구삼진으로 잡았고요.”

덤덤하게 세부 내용을 조금 더 보고하는 직원의 말에 빌리 빈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일을 예상했다.

“마케팅 부서가··· 더욱 바빠지겠군요.”

세상이 흔들릴 거다. 야구계가 주목한 경기니까.

신인의 데뷔전 개막전 선발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도박이 성공했으니. 그에 따른 보상, 조금 속되게 표현하자면 그 판돈이 엄청날 테니까.

‘11만 달러짜리 주식이··· 최고의 수익률로 돌아왔군.’

11만 2천 달러.

고유석이라는 선수를 한국에서 데려오며 쥐여줬던 돈이다.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 지명자들과 비교하면 하찮은 수준.

큰 기대가 없었는데도, 그 작은 기대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며. 슬슬 상장폐지를 준비했던 투자는, 그의 인생 최고의 한 수로 바뀌었다.

‘이제 한 경기니, 아직은 안심할 수 없겠지만···’

빌리 빈은 슬쩍 아까 전부터 읽고 있던 서류를 봤다. 올해 구단의 운영 방침과 선수단 계획인데. 당연하게도 기본 방식은 리빌딩이다.

선수를 갈아 끼우는 정도로는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하니까.

‘가장 문제는 선발이지. 에이스였던 소니가 망가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 채워줄 수 있다면···’

판을 새로 짜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정상에 도절할 만한 전력이 갖춰질 수도 있었으니까.

‘준비해야겠군.’

후련한 마음으로 잠시 등받이에 몸을 기댄 빌리 빈은 그제야 느껴졌다. 환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그래, 이제는 들린다.

그들이, 팬들이 뭐라고 외치고, 환호하고, 기뻐하고 있는지. 그리고 바깥의 사람들 역시 뭐라고 이야기할지도.

‘스타의 탄생인가.’

지난 74년 동안 가장 파격적이었던 데뷔전이 이상적인 결과로 끝났으니, 이젠 스타가 탄생할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귀찮아지겠군.’

아니나 다를까.

다른 구단들에게도 이제 막 전달됐던 건지, 고요했던 사무실 안이 요란한 전화 소리로 가득 찼다.

“사장님? 컵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엡스타인이 직접 한 것 같은데···.”

“···빠르기도 하군. 바로 연결해 주십시오.”

오늘 경기 보고서를 보고 시원해졌던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해졌다.

침을 질질 흘리는 하이에나들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할지, 아니면 그냥 심플하게 꺼지라고 할지. 고민됐으니까.

-빌리? 저에요, 조시 레딕 건 이후로는 오랜만이네요. 그땐 다저스한테 넘겼으니, 이번엔 저랑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비즈니스를···

“듣고 있어, 그것 참 흥미롭군. 계속 말해봐.”

그래, 이쪽이 좋을 것 같았다.

굳이 금방 끊어서 다른 놈들에게 시달릴 바에는. 대충 한 놈 붙잡고 계속 질질 끄는 게 더 편하겠지.

-네, 역시 말이 잘 통하네요. 리빌딩 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괜찮은 투수 한 명에게 미래를 거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리한테 몇 명 받아 가서···

“오, 그래, 정말 놀라운데? 몇 명이나 주겠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수화기를 테이블 한쪽에 내려놓은 빌리 빈은 그것을 배경음악 삼아,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중간중간 몇 번 추임새만 해주면 혼자서 30분은 떠들 테니까.

-···내 얘길 듣지 않는군요.

“그래? 아닐 텐데? 계속 듣고 있었어. 주겠다던 녀석이··· 존 스미스였던가? 그 친구 좀 괜찮던데.”

-컵스에 그런 이름을 가진 선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도 한 명쯤은 있을 줄 알았더니··· 아쉽군.”

-생각이 없으신 것 같으니, 이만 끊죠. 혹시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테오 엡스타인이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정확하게 30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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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는 기록이 많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 한편으론 굳이 이런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싶은 것까지도 말이다.

그런 수많은 기록 중에서도 개막전 선발투수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는 건 굉장히 희귀한 기록이다. 단 한 명만이 성공한 일이니까.

애초에 개막전의 선발투수로 데뷔한 투수조차 이전까지는 역대 세 명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이야기를 낳기는 충분했다.

분명 선발투수로 데뷔한 투수는 제법 많고. 성적을 놓고 본다면 고유석이 기록한 7이닝 무실점 9탈삼진보다도 더욱 뛰어난 데뷔전을 치른 선수들도 제법 있지만. 그 데뷔전이 개막전이었던 건 아니니까.

그토록 희귀한, 역대 단 한 명밖에 해내지 못했던 기록에 고유석이 올라섰다.

<로버트 ‘Lefty’ 그로브마저 실패했던 기록을 Go가 해내다!>

데뷔전을 개막전 선발투수로 치른 선수 중 가장 유명하고, 레전드라고 할 만한 레프티 그로브를 언급하는 이들도 많았다.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로 꼽혔던 선수기에, 마찬가지로 좌완인 고유석과의 관계성도 있으니까.

<개막전 선발투수 데뷔전의 최다 탈삼진을 기록, Go!>

그 외에도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상 붙이기 나름이었다. 유례없는 일이기에, 하나하나가 다 기록이니까.

그렇기에 언론은 최대한 자극적인 방향으로 언급하며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 올렸으나.

우습게도 굳이 그렇게 장작불을 넣을 필요도 없이, 이미 여파는 굉장히 거셌다.

[#A’s]

[Go가 해냈어! 결국 해냈다고! 뭐? 경험이 없어서 불안하다고? 뭔 상관이야? 실력이 충분한데!]

└내 30년 야구 인생에 최고의 데뷔전이야!

└데뷔전이 아니라, 단순히 개막전 선발투수로 한정해도 훌륭한 기록이지!

└난 Go가 트라웃 잡을 때 솔직히 조금 지렸어. 최고의 투수야!

└다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해? 그냥 편하게 말해. ‘야구의 신’이라고.

기대를 보답받은 에이스 팬들이야 이미 황홀경을 걷고 있었기에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Go는 진짜 팀에 대한 애정이 많아.

└분명 오클랜드 출신도 아니고, 국적도 다른 선수인데. 완전 로컬 출신 선수 수준의 로열티야!

└어찌 보면 이게 선순환이지. 팜에서 유망주를 키우니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선수가 나오는 거잖아?

└그렇지! 소니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Go 네가 1선발 에이스지!

└‘A’s의 1선발은 물러서지 않는다’ wow··· 무슨 영화 대사같네.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유석은 특유의 스킬로 팬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인터뷰를 했기에, 그에 대한 반응 역시 대단했고 말이다.

이렇듯 훌륭했던 데뷔전과 적절한 스킬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녹아버렸다면.

[#LAA]

[Suck, 그 녀석 운이 좀 좋긴 했는데··· 잘하긴 하더라.]

└Fuckoff! 그 새끼가 뭘 잘해? X같은 놈이 더럽게 공 던지던데.

└솔직히 6회에 트라웃 잡을 때는, 나도 조금 놀라긴 했어.

└그냥··· 운이 나빴던 거야. 하필이면 애송이가 운 좋게 얻어 걸린 날에 우리가 상대였던 거지.

└트라웃 빼곤 다 X신 같은 타자들 때문이지. 특히 X발 푸홀스 그 X새끼는 1년에 2500만 달러씩 받는 새끼가, 최저연봉 받는 애송이 투수한테 안타 하나를 못 쳤어.

에인절스는 조금 미묘했다.

그들 역시 상대편의 시선이긴 하나, 직접 경기를 보고, 피칭을 봤으니까.

당한 입장에서도 훌륭했던 피칭이기에 인정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지만, 애써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다만 딱 한 가지 장면에서는 모두 생각이 같았다.

[#LAA]

[Suck이 새끼는 트라웃 세 번째 타석 때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야?]

└오리엔탈의 마술이라도 부린 게 아닐까? 트라웃에게 저주를 걸은 거지.

└찾아보니까 셋 다 같은 그립이라던데. 서클이라고 말이야.

└같은 구종만 세 개인데, 트라웃이 못 치다니···

└What The- 그럼 사실상 같은 구종을 다른 구질로 던질 수 있다는 거잖아?

└한 가지 확실한 건, Suck 얘가 미친놈이라는 거야. 트라웃한테 체인지업만 세 개를 던져? 트라웃한테?

└인정하긴 싫은데··· 진짜 Big Ball이지.

트라웃과의 마지막 승부 장면. 같은 그립의 서클 체인지업을 세 번 연달아 던져, 트라웃을 헛스윙 삼구삼진으로 잡았던 장면.

약간의 충격은 있을지언정, 에인절스 팬들 역시 그것이 이번 개막전의 하이라이트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대문에는 그 순간을 담은 사진이 큼직하게 실렸고 말이다.

[#Cubs]

[시범경기 때도 보통은 아닌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쟤 좀 탐나네.]

└난 이미 저번에 화이트삭스 X신들 때려잡는 거 보고 반했어.

└우리가 데려오면 안 되나?

[#Braves]

[Go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네. 좋은 피칭을 할 줄 알아.]

└매덕스가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지도했다고 했던가? 확실히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도?

└매덕스 제자라고? 그림 우리 새끼잖아? 당장 데려오자!

└미친개(MadDog)의 제자가 You-Suck이라니··· 왠지 좀 끌리는데?

[#RedSox]

[크리스 세일보다는 좀 부족한 것 같지만, 그래도 선발진으로 조합하면 제법 그럴 듯한데? 특히 트라웃 잡는 모습 보고 반했어.]

└이름도 잘 맞네. 쟤는 Suck, 우리는 Sox. 바로 데려오자.

└혹시라도 우리팀 오면 별명은 RedSucks으로 확정됐네.

당사자들 외의 다른 구단들 역시 새로운 신성의 등장에 흥미를 보였고. 몇몇은 탐스럽다는 듯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이렇듯 경기 전부터 쏟아졌던 관심은, 그런 기대를 120% 만족시키며 활활 타올랐던 데뷔전으로 인해.

불 속에 들이붓는 기름처럼 고유석을 중심으로 한 열기를 더욱더 뜨겁게, 그리고 강렬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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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잘하니까, 다르긴 다르네. 돌아오는 반응이 달라.

자고 일어나니, 휴대폰이 꺼져 있다. 꽉 충전해놓고 잤는데, 고장이라도 났는가 싶어서 조금 충전한 뒤 다시 켜보니···

‘부재중 전화, 메시지, 톡, 죄다 엄청나게 쌓였네.’

내 전화번호가 이렇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건가? 요즘 개인정보가 자주 털린다던데. 진짠가 보네.

연락 온 사람들 중에서 대충 부모님과 야구부 감독님부터, 내가 아는 사람들을 추려서 답장을 보내니, 한 세월이 걸렸다.

죄다 축하한다거나,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들인데, 어제 내가 좀 대단하기는 했지. 그래서, 이게 전부냐고? 그럴 리가.

진짜는 불이 붙은 휴대폰이 아니라, 집 밖에서부터 시작됐다.

“Suu-아니, Go? Go 맞죠?”

“예 맞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네요.”

“못 알아볼 수가 없죠! 경기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데···”

“Go? 어제 경기 정말 잘 봤어요!”

“저거 Go 아니야?”

“넌 동양인 볼 때마다 그 소리- 어? 맞는 거 같은데?”

어제 등판했던 지라, 스트레칭 외에는 추가적인 트레이닝도 없고,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서 경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기에.

기왕이면 홈에 있을 때 처리하려고, 브라이언에게 부탁해서 경기 전까지 운전면허를 발급 할 때 필요한 서류를 몇 장정도 미리 떼려고 돌아다녔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죄다 알아봤다.

“Go? 경기 정말 잘 봤습니다. 혹시 악수라도···.”

“아, 예. 오른손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상관없습니다.”

모자도 움푹 눌러 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멋들어지게 썼는데 알아보는 걸 보면 신기하단 말이야.

‘내가 생각보다 사람들 눈에 튀는 타입인가?’

아, 생각해보니 더럽게 튀기는 하네. 이렇게 덩치 큰 동양인이 오클랜드에서 그리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

왠지 인기스타가 된 것 같아 즐겁기는 한데,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돈 많은 것처럼 보이면 강도당한다고 했는데, 괜찮나 몰라. 그리고 누가 요즘 야구가 인기 없대?’

야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서 사무국에서도 골머리를 썩인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래도 미국에서 메이저 스포츠이긴 한가 보다. 아주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네.

아니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썼으니, 얼굴을 알아본 것도 아니지 참.

그리고 미국인들은 개인주의가 심하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제아무리 슈퍼스타라도 함부로 아는 척하거나 하지 않는다더니, 개뿔도 없네.

이렇듯 경기의 여파인지, 브라이언의 차에서 내리는 족족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 유명세가 운전면허 준비에 약간 도움이 되기도 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오래 걸릴 줄 알고 긴장했는데, 잘하면 오늘 경기 전까지 다 떼겠는데요?”

“Go의 인기 덕분이죠.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정도 서류를 다 발급받으려면··· 하루를 다 털어도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까요. 특히나 인터뷰에서 로열티를 드러낸 것이 큰 몫을 했고요. 인터뷰 스킬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 따라한 거죠. 이제 거주 증명서만 남았죠?”

“네, 그것까지 발급받으면, 운전면허에 필요한 서류는 모두 준비되는 겁니다.”

한국과 다르게, 공무원들의 기본 업무 속도가 더럽게 느리고 불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난 그냥 프리패스였거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부러운 듯 쳐다볼 정도로.

“Go, 직접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업무를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염려 마십시오.”

“아··· 예, 감사합니다.”

별건 없고, 딱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앉은 창구 앞으로 슬쩍 걸어가면 끝이다.

만나서 영광이라는 말을 계속 들어주다 보면, 한국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죄다 일을 처리해줬거든.

지금 거주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온 곳도 마찬가지고.

“네, 여기 거주 증명서 받아 가시고, 다른 증명서들과 함께 DMV에 제출하시면 됩니다. Go의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돕게 돼서 제가 다 기쁘네요.”

“예, 감사합니다. 저 혹시 사인이라도 해드릴까요?”

“···원래는 안 되지만··· 따- 딱 한 장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따끈따끈한 거주 증명서를 떼준 직원은 황급히 가져온 종이 받은 사인을 보며 아쉬운 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집에 있는 유니폼을 입고 왔어야 했다고.

그것을 끝으로 모든 서류는 차랑 이동시간 포함 단 3시간이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준비가 됐다.

덤으로 내가 이 오클랜드라는 도시에서 얼마나 빠르게 유명인이 됐는지도 알게 됐고.

‘데뷔전만으로 이러면, 나중에 커리어 좀 쌓인 다음에는 진짜 데릭 지터처럼 사인볼만 들고 다녀도, 굶을 걱정 없겠는데?’

전성기 시절 데릭 지터는 밥값이나 택시비를 싸인볼로 대신 지불했다고 하던데. 선수시절 원나잇한 여자한테도 싸인볼을- 아, 그건 루머였던가?

아무튼 유명 선수쯤 되면 지역 연고지 내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다더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겨우 한 경기 가지고 엄청나네.”

“겨우 한 경기 정도가 아니니까요. Go는 이전부터 주목받은 유망주고, 개막전이라는 특수성까지 겹쳤으니, 모르긴 몰라도 오클랜드 시민 중 절반 이상이 어제 경기를 봤을 겁니다.”

내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브라이언은 오히려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신인선수의 데뷔전치고는 좀 과하게 이목이 끌렸으니. 그만큼 파급력도 클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어쩌면 기대에 보란듯이 증명했으니, 지금 같은 관심이 계속해서 이어질지도 모르고.

“네 경기··· 앞으로 네 경기만 더 어제 같은 피칭을 하신다면. Go는 애슬레틱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겁니다.”

나와 같은 생각인 건지, 그렇게 말한 브라이언은 마치 그 찬란한 미래가 예상된다는 듯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렇게 겉으로 티나게 웃는 건 처음이네.

프랜차이즈 스타, 그 말을 들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만약에 이번 시즌 내내 어제와 비슷하게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새로운 슈퍼스타가 되겠죠.”

“슈퍼스타라··· 나쁘지 않네요.”

인기에 대해서는 딱히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 정도였지.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이라서 그렇게 여긴 걸지도 모르고.

그런데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시범경기, 그리고 오늘까지 그 맛을 제대로 봐서 그런가.

별로 생각이 없었던 그 슈퍼스타라는 단어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마음에 들었다. 영 못할 정도의 일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

‘계속 잘하면 되는 거지.’

말이 쉽지, 이거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자신은 있었다.

‘그나저나 오클랜드가 이 정도면 한국 쪽도 장난 아니겠네.’

내 데뷔전에 미국이나 오클랜드 팬들 못 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큰 기대와 관심을 가졌던 게 한국이니까.

거기다가 앞으로 경기 일정과 내 로테이션을 계산하면, 내 다음 등판 역시 한국에서는 제법 흥미로운 주제일 테니, 그에 대한 말도 나올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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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이라는 이름이 메이저리그와 오클랜드라는 도시를 뒤흔들렸을 때, 고유석의 생각처럼 당연히 한국에서도 반응이 나왔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고유석! 7이닝 호투로 최고의 데뷔전을···]

[고유석은 투수 버전 이치로? 사이 영 상과 신인왕 동시 수상 가능성···]

[데뷔전부터 1선발 에이스로서의 자질을 증명해낸···]

[박찬원 이후 역대 2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투수···]

먼저 언론의 경우 광란의 분위기가 펼쳐졌던 미국과 비슷한, 어쩌면 그보다 더한 광기를 보이며 찬양했고.

[킹갓제네럴충무공유석 데뷔전 승리!]

└어제 경기 보고 솔직히 조금 지렸다 고유석 실력 실화냐?

└개라웃 개털리던데 MVP 별거 없네ㅋ

└오늘부로 고유석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한다. 고유석은 나와 한 몸이다. 고유석에 대한 비난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고유석 푸졸스랑 개라웃한테 개털릴거라던 새끼들 ㅇㄷ?

└개털긴했지, 고유석이.

네티즌들 역시 그 외 큰 차이는 없었다. 무려 개막전이라는 엄청난 이슈에 기대한 이들이 많았으니까. 못 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제법 많았고.

그런 불신과 기대가 섞인 시선 속에서 완벽하게 이뤄졌던 데뷔전 탓인지 몇몇은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유석 WBC 선발됐으면 한국 우승했다 ㅇㅈ?]

└트라웃도 개터는데 더 말할 것도 없음

└솔직히 메쟈는 그쪽에서 차출 잘 안 해준다고 하지만, 마이너리거들이라도 가능성 있으면 국대 차출해야함

└협회가 총 맞았냐. 외국으로 런한 새끼 국대까지 시켜주게

└ㅇㅇ 저번 WBC보면 대가리에 총 맞은 것 같긴 하던데

올해 열렸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본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었고, 특히나 투수진의 부진이 다소 부각 됐었으니까.

사실 대회 당시 시범경기에서 뛰었던 고유석이고, 애초에 선수단 선발 당시에는 마이너리거였던 고유석이라, 국대 차출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지만.

어쩌면 이런 터무니없는 아쉬움이야말로 고유석의 데뷔전에 한국 팬들이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았는지 이야기했다.

[고유석 주전 선발투수는 확정이지?]

└ㅇㅇ 이제 그냥 주전임

└사실 오클랜드에서는 이미 주전급으로 보고 있기는 했음

└주전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성적 유지하면 소니 그레이 돌아와도 1선발 쌉가능아님?

또한 이번 경기로 확실하게 주전 선발투수로 뿌리를 박았다고 할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만족감도 존재했고 말이다.

더불어 그렇게 무사히, 그리고 화려하게 완성된 데뷔전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무렵. 고유석이 예상했던 또 다른 이슈 스멀스멀 자라났다.

<고유석, 오는 4월 8일 텍사스 레인저스전 등판?>

<추민수vs고유석! 한국인 선후배 투타 간의 맞대결!>

└추민수vs고유석이 아니라, 텍사스 먹튀vs오클랜드 ㄱㅆㅅㅌㅊ혜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텍사스 놈들 긴장해라! 최고의 선발투수가 텍사스로 간다!

└└텍사스··· 최고의 선발투수··· 한국인··· 으윽 머리가!

└텍사스특)한국인 메이저리거 전용 ATM임

└└한국인 메이저리거 한정 불로소득의 성지ㅋㅋㅋ

애슬레틱스의 다음 시리즈 일정이자, 고유석의 두 번째 선발등판 상대팀이 텍사스 레인저스였으니까.

이번에도 여러 가지 특수성(?)이 겹친 경기였기에, 한국의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다소 기대될 수밖에 없는 매치 업이었다.

[#Rangers]

[텍사스 너네 코리안은 연봉이 2천만 달러라며?, 우리 사랑스러운 Go는 53만 5천 달러인데lolololol]

└괜히 여기서 트롤링하지 말고 그냥 꺼져.

└아메리칸리그 수준 깎아 먺는 X신들이 같잖은 애새끼 하나 가지고 신났네.

└그래봤자 니들은 지구꼴찌야. X밥이라고.

└허접하고 증명도 안 된 애새끼보다는 Choo가 훨씬 나은 선수지. 부상만 안 당하면 금방 반등할 테니까.

└에인절스 같은 X신들이나 애새끼한테 털린 거지. 우린 아니야.

└네가 그렇게나 사랑하는 그 망할 애새끼는 다음 등판 때 질질 짜고 멘탈 터질 거니까, 미리 마이너에 강등시킬 준비나 해둬라.

물론 미국 내에서도 그런 특수성을 포착하여, 레인저스의 심기를 직접 건드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개막전과는 조금 다른 이유의 관심 속에서 아직 에인절스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고유석의 다음 등판에 대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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