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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62화 (62/316)

62화

지역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3연전을 끝으로, 캑터스 리그는 막을 내렸다.

시범경기 동안 총 7경기를 출장해서, 26이닝을 던졌으니, 기존에 보장받았던 18이닝보다 8이닝 더 던졌네.

84명의 타자를 상대해서, 46개의 탈삼진과 1개의 볼넷, 4개의 피안타를 기록했다.

‘이렇게 보니, 팬들이 환호하는 게 당연하네.’

새삼 돌이켜보니, 진짜 크레이지 모드였던 것 같긴 하다. 내가 생각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니까.

물론 진짜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저런 성적을 올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뭐 어쨌든 죽여주기는 하네.

신문에선 날 그렇게 표현했다. 미스터 제로라고. 시범경기 동안 실점을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던 걸 가지고 별명을 붙인 건데.

‘시범경기 성적은··· 이젠 딱히 상관없지.’

시범경기 성적은 그저 기분 좋은 추억 정도로 호호캄에 고이 묻어둬야겠지.

이제 메사를 떠나, 오클랜드로 날아갈 시간이었으니까.

“그렉.”

“오글거리게 껴안고 그럴 건 아니지? 난 사내새끼 안는 취미는 없는데.”

“예예, 악수나 합시다.”

그 말은 이별의 시간도 다가왔다는 거지. 인스트럭터로서의 그렉의 계약은 끝났다.

뭐, 정식 코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개인 코치를 할 양반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

“커터는 절대로 던지지 마. 한 1년은 묵혀둔다고 생각하면서, 연습만 해. 투심은 종종 던지되, 브레이킹볼처럼 여기고. 어느 정도 쓸 만하지만, 아직 약간은 부족하니까.”

이제 해방이라며 그렇게 좋아해 놓고, 마지막까지 제대로 조언해주시네.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까는 거에 가깝지만 말이야.

“그리고··· 절대로 쫄지 마. 자신감 가지고 당당하게 던져. 최소한 은퇴 이후에 만나봤던 애새끼들 중에선, 커트 앵글 니가 두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니까.”

그래도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덕담도 해주시네. 그렉 매덕스의 눈으로 2위라, 쪽팔리지는 않네. 어디서든 가슴 피고 다녀도 되겠어.

“걱정 마세요. 제가 새가슴은 아니잖아요?”

“그래, 오히려 새가슴보다는 더럽게 싸가지가 없어서 문제지. 어디서 맞고 다니진 않겠네.”

그 말을 끝으로 그렉은 약간 시원섭섭하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내가 슬쩍 내민 오른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내가 원래 남한테 오른손으로 악수 잘 안 해주는데. 특별히 너한테만 해주는 거니까, 영광으로 생각해라.”

“예, 무려 그렉 매덕스가 공을 던진 손이랑 악수했다고 자랑하고 다닐게요.”

그것을 끝으로 나는 짐을 챙겼고, 그렉 역시 본인의 숙소로 돌아갔다.

아들이 있는 대학교에서 투수코치를 한다던가? 부럽네. 누구는 겨우 한 달쯤 배웠는데. 어디 대학생들은 시즌 내내 배울 수 있고.

‘그래도···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많이 배웠으니까.’

두 가지 서클을 똑바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됐고. 경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도 배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커터와 괜찮은 투심도 손안에 남아 있고. 수비력도 좀 다듬었네.

이 정도면 그래도 기간은 짧지만 남부럽지 않게 배웠구만. 브라이언한테 징징거려서, 간신히 모셔온 보람이 있어.

그래도 제법 정이 든 코치, 스승과의 이별인 괜스레 기분을 복잡미묘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 명은 잡았으니까.

“남은 시즌 동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부탁해야죠. Go의 커리어가, 곧 제 커리어가 될 텐데. Go는 무조건 잘할 테니까요.”

대니얼은 개인 트레이너직을 수락했다. 뭐, 내가 한 건 없고, 이번에도 브라이언 덕분인지. 1년 계약이기에, 최소한 이번 시즌 동안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네.

그렇게 한 번의 이별과 대단했던 성적을 뒤로한 채, 메사, 호호캄을 떠나, 오클랜드로 향했다.

개막전을 위해서.

####

오클랜드로 향하는 전세기 안은 정말···

“너 뭐 들고 있냐?”

“A 투페어.”

“지랄하지 마. 내가 A 트리플인데, 니가 어떻게 투페어야?”

“뭐, 공장에서 잘못 찍어냈나 보지. 하트랑 다이아, 빨간색으로 A 두 장이야.”

“하트 A는 나한테 있는데?”

“넌 또 뭔데 끼어들어?”

더럽게 시끄럽다.

마이너 버스는 어찌나 조용한지, 뒷자리 놈 이어폰에서 새어 나온 노래 가사까지 들릴 정도였는데. 여긴 좀 과하게 시끄럽네.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특히 삼삼오오 모여 포커치는 놈들이 내는 소음이 상당했는데, 화장실로 가면서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니, 마커스 시미언과 제드 라우리는 슬쩍 나한테 권유하기도 했다.

“Hey, Suck! 너도 낄래? 아, 돈이 없나? 마이너였으니까.”

“내가 특별히 50달러 빌려줄 테니까, 같이 치자. 너도 심심하잖아?”

저 양반들이 미쳤나.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하는 투수한테.

“내가 끼면 다 털릴 텐데?”

“오~ 아주 자신만만한데?”

“괜히 잠자는 사자 코털 건드리지 말고, 허접들끼리 열심히 치슈. 훠이~ 훠이~”

“캬~ 역시 깡이 좋다니까. 말하는 것 좀 봐.”

“그래그래, 네 데뷔전 안 망칠게. 오늘은 그냥 넘어갈 테니까, 대신 다음에는 너도 껴. 그 잘난 실력 좀 보게.”

죄다 똥패만 들고 배짱 배팅하는 걸로 봐서는, 아주 허접 새끼들인데. 마음만 먹으면 다섯 판 안에 다 털어먹을 자신 있지만. 오늘만 특별히 참는다.

부정 타면 안 되잖아.

경건한 마음으로, 삿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목욕재계까지 하고 마운드에 올라야지. 데뷔전에 개막전 선발등판인데 말이야.

“다음에 다 털어줄 테니까, 판돈이나 열심히 모아두슈.”

그래도 개막전 투수라는 걸 아주 조금은 배려해주는 건지, 더 붙잡지는 않았다.

‘메이저쯤 되니까, 자료가 다르긴 하네.’

내 거절이 재밌었던 건지, 낄낄거리며 다시 자기들끼리 포커에 집중하는 무리를 무시한 채,

다시 자리로 돌아와 투수코치가 줬던, 정확하게는 전력분석팀에서 투수코치를 통해서 전해준 자료를 확인했다.

마이너에서도 대략적인 라인업과 선수들의 성적 정도는 전해주지만, 확실히 메이저는 달랐다.

전문적인 분석팀이 철저하게 데이터를 모은 자료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스탯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죄다 기록되어 있으니까.

‘특히나 에이스는 이런 쪽으로 더 철저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가난한 구단의 비애지.

값비싼 빅 샤이닝을 영입하지 못하니, 그런 놈들 상대로 이겨야 하기에, 더욱더 확실하게 데이터를 모을 수밖에.

물론 양키스나 다저스 같은 부자구단이라고 해서 데이터를 무시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심혈을 기울이겠지. 비싼 선수를 효율적으로 써먹어야 할 테니까.

‘그런데 에인절스는 그게 아닌 건가?’

확실한 건 에인절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매년 2400만 달러씩 받는 푸홀스 성적이 이 꼬라지인 걸 보면.

‘뻥파워는 여전히 강한 것 같지만··· 브레이킹볼 대처가 심각하게 떨어졌어. 변화가 급격할수록 공을 자주 놓친다. 100% 선구안 문제네. 노안이라도 온 건가? 그럴 나이는 아닌데.’

물론 좋은 변화구에 약한 거야, 어느 타자나 다 똑같겠지만, 이 양반은 좀 심하네. 어쩌다 이렇게 됐나 몰라.

내가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몰라.

‘대충 계획이 잡히네.’

여전히 파워는 엄청난 만큼, 연봉을 빼고 본다면 대단한 양반이지만, 잡을 자신은 있다.

그보다 조금 앞에 나올 양반은 자신없고. 그러면 간단하지.

‘한때의 우상한테는 미안하지만, 이쪽을 중심으로 조지면 되겠네.’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가지는 걸 그저 영광스럽게 여기고 넘길 생각은 없었다.

‘기왕이면 잘해야지.’

그렉의 마지막 당부처럼, 쫄지 말고, 당당하게 조져야지. 그게 내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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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여깁니다.”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브라이언이 반겨줬다. 나 때문에 왔나보네.

“브라이언,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요. 직접 보는 건 캠프 합류 때 이후로 처음이죠?”

“하하, 그래도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Go가 잘해주신 덕분에 일이 제법 많았어요.”

“앞으로도 쭉 많도록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렇다면 좋겠군요. 서든 씨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Go가 알아서 다 하니까요. 컨디션만 조절해주는 거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나도 곧장 브라이언이 몰고 온 차에 탑승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제가 이렇게 픽업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저도 언제까지 오클랜드에 있을 수는 없기에, Go도 슬슬 차를 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면허는 있으십니까?”

“네, 따놓기는 했죠.”

“다행이군요.”

그러고 보니, 마이너 때나 시범경기에서는 숙소에서만 지냈기에, 대충 구장으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부턴 나도 차가 필요하다.

구장 근처에 숙소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오클랜드에서는 그러면 안 되지.’

나도 들은 게 있거든.

다행히 면허는 있다.

미국 건너오기 전에 미리 따놨거든. 물론 미국에서도 차를 몰려면 차량등록국으로 가서 교환 신청을 해야겠지만.

선발투수라서 어차피 한번 등판하면 그 뒤로 5일간의 휴식이 주어지기에, 시간이야 넉넉하니, 걱정은 없다.

“혹시 렌트를 원하신다면, 그쪽으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지금 오클랜드에서 Go의 인기가 대단하기에, 잘하면 스폰서로 얻을 수도 있고요.”

“어··· 제가 자동차 스폰서를 받는다고요?”

“네, 물론 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직 이릅니다만. 오클랜드에 설립된 지사나, 점포 차원에서 무료로 렌트해주는 곳이야 많을 겁니다. 현재 도시에서 손에 꼽히는 인기 선수니까요.”

무료 렌트라.

이거 뭐, 몸만 덜렁 왔더니, 다 알아서 준비해주는 수준이네. 앞으로 지낼 집도 구단에서 1년간 대신 비용을 지불해주는 형식이니까.

근데 내가 그 정도라고?

시범경기를 통해서 유명세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거야 나도 느끼고 있지만. 아직 홈에서 한 경기도 안 뛰었는데, 그 정도인가?

내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니, 슬쩍 룸미러로 내 얼굴을 확인한 브라이언은 피식 웃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거야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과장한 게 아닙니다. 지금 Go는 최소한 애슬레틱스 내에서는 소니 그레이와 크리스 데이비스 다음가는 수준이니까요.”

“시범경기 정도로요?”

“시범경기 정도가 아니죠. Go가 직접 설계하지 않으셨습니까? 화이트삭스전. 그때의 피칭이 중요한 겁니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죠. 지금 Go는 에이스 팬들에게 구원자나 다름없습니다. 구단을 위해서, 자신의 기록마저 버리면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선수죠.”

구원자라, 그런 표현이야 이미 익히 들었다. 언론에서도 종종 나를 그렇게 지칭했으니까.

몰락한 에이스의 새로운 희망이자 구원자라면서. 굉장히 낯간지러운 평가인데, 진지하게 그렇게 여긴단 말이지···

“앞으로 지내실 곳은 베이 에어리어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얻어뒀습니다. 지금 가는 곳인데, 혹시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른 곳들도 있으니, 말씀하십시오.”

“뭐든 간에 마이너 숙소보단 낫겠죠. 상관없습니다.”

베이 에어리어가 한눈에 보이는 곳. 우리나라로 치면 한강 조망권이 확보된 집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도 주택가 위주의 부촌일 텐데, 기껏해야 괜찮은 아파트 정도를 생각했던 내 입장에선 엄청나게 호화롭구만.

“오···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메이저 신입생 집치곤 너무 큰데요?”

“치안을 위주로 집을 찾다보니, 여기가 제격이더군요. 혹시 아늑한 공간을 원하신다면, 시내 중심으로 들어가면 여럿 있지만··· 그리 추천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도착한 집은 그런 생각보다도 조금 더 웅장했다.

흔히 미국 영화나 드라마 보면 나오는 커다란 주택 같았으니까.

이게 내가 살 집이란 말이지. 아, 물론 1년 동안만.

‘어우, 세금 뗀 연봉을 생각하면, 구단 지원이 없는 이상 택도 없겠네.’

적당히 지내다가 정들면, 모은 돈으로 사거나 계속 렌트를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힘들겠네.

메이저리거라고 해서 막 부자는 아니다. 고액연봉자로 분류돼서, 세금도 엄청나게 떼는데다가, 사실 초년 차는 딱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만 받거든.

그 뒤로도 연봉조정 전까지는 생각보다 많이 못 받고.

물론 그것만 해도 억대 연봉이니, 대단한 고연봉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집을 사는 건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집 안에 간편한 GYM도 준비해 뒀습니다. 수준 높은 트레이닝은 힘들겠지만, 적당한 정도는 집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고마워요, 브라이언. 진짜 열심히 해야겠네요.”

“Go가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니. 최대한 도와야죠.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제 갓 데뷔할 애송이를 위해서 직접 발품 팔아서 집을 구했을 걸 생각하니, 괜히 좀 기분이 야시꾸리했다.

물론 집세야 구단에서 내준다지만, 이렇게 제대로 알아봐 주고 준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니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못하면 그것도 좀 민망하지.’

묘한 사명감이 가슴 속에 차올랐을 무렵, 브라이언은 몇 가지 주의점을 꼽았다.

“치안이 좋은 곳이지만, 혹시 모르니, 문단속을 철저하게 하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예, 그리고 지금은 제가 픽업을 해드리겠지만, 다음에 직접 구장으로 향하실 때는, 절대로 차안에 귀중품 같은 걸 두지 마십시오. 제가 말한 귀중품에는 휴대전화도 포함되니, 그 점도 명심하시고요. 또한 유니폼 같은 것도 웬만하면 자동차 안에 두지 마십시오. 메이저리거의 차인 걸 안다면, 현금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음, 일단 오늘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안 것 같다. 하나는 에이스 팬들의 사랑과 구단이 내게 건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됐고, 두 번째로 종종 소문처럼 들었던 오클랜드의 치안이 단순히 뜬소문이 아니라는 것도 제대로 알게 됐다.

“···또 혹시나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 웬만하면 저항하지 말고, 무조건 주십시오. 그럴 때는 절대로 주머니에는 손을 넣지지 마시고, 위로 손을 드셔야 합니다. 또한 경기 이후에는 유동인구가 많기에 그만큼···”

끊임없이 주의할 것들을 쭉 말하는 브라이언의 두 눈동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 가득 담겨져 있었으니까.

‘오클랜드라···’

어쩌면 작년에 그냥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곧 개막전이니 철저하게 정신무장을 해야겠지만, 어쩐지 브라이언의 말을 들으니,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좋게 생각하자. 애슬레틱스니까, 개막전에 선발등판을 다 해보는 거지, 다른 팀이면 택도 없어.’

신인이 데뷔전으로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팀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좋게 생각하자.

‘집은 그냥 계속 렌트로 살고, 대신 차를 방탄차로 하나 살까? 아니지, 브라이언 말 들어보니까, 비싼 차 같으면 오히려 더 기를 쓰고 털려고 할지도···’

그토록 기대했던 오클랜드.

여러모로 상상 그 이상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야.

####

시범경기 종료 이후, 개막전까지는 이틀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올린 폼을 마지막으로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인 셈이지.

나도 최대한 경기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연습하며 몸을 만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최대한 경건한 시간을 보냈다.

“Suck! 오늘도 일찍 들어가는 거야? 같이 식사라도 하지? 내가 살게!”

“속세의 더러운 때에 찌들었다간, 금방 부정이 탈 테니, 조심스럽게 지내야죠.”

“뭐, 동양의 신비 그런 거야?”

“엇비슷하다고 해두죠. 식사는 다음에 해요. 혹시 내일 경기 승리투수되면 내가 살게요.”

최대한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고, 오직 대니얼이 정해준 깨끗한 식단에 맞춰 허기짐을 채웠다.

마음 같아선 생식이라도 해서 몸 안의 악한 기운을 죄다 빼내고 싶은데, 그러면 공도 못 던질 테니 참았다.

솔직히 남이 사주는 식사, 그것도 크리스 데이비스쯤 되는 슈퍼스타가 사주는 식사는 조금 군침이 당기기는 했는데. 그래도 참아야지.

‘최고의 컨디션을 위해서.’

그렇게 이틀을 경건하게 보냈고, 최대한 트레이닝을 돕는 대니얼마저 내가 유난이라는 듯 눈을 흘겼지만, 그래도 부모님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유석에, 너희 엄마 좀 말려라. 얼마 전부터는 성당에 새벽기도 다니더니, 오늘은 108배 한단다. 저녁에는 정화수 떠다가 기도하고.

“···그건 무슨 혼종-”

-어우, 나까지 휘말려서 같이 108배 하게 생겼는데, 유석이 네가 좀 말리면 안 되겠냐? 나도 아들 잘되라는 마음에 새벽기도 정도는 같이 하겠는데, 너도 알다시피 요즘 아빠 관절이 안 좋잖아, 108배는 좀···

“Good Luck, 제가 나중에 효도할게요. 사랑해요, 아빠.”

-유석아? 유석아!

엄마는 오른손에는 묵주, 왼손에는 염주를 쥐시면서 뭔가 많이 짬뽕된 신앙심에 기대고 계신 것 같고.

아빠는 그런 엄마에 휩쓸려서 같이 108배를 하니. 나까지 저절로 경건해지네. 정성이 하늘에 닿겠어.

요즘 들어 무릎이 시리다던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성공해서 나중에 효도하면 되겠지.

뭐, 아무튼 내 노력과 대니얼의 도움, 부모님의 정성으로, 심기체가 잘 어우러졌으니.

‘이만하면 준비는 완벽하네.’

최소한 이 정도 노력했으면, 신도 돕지 않을까? 나도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뭐, 트라웃 타석에는 트라웃의 눈에다가 햇빛을 강하게 쏘아준다거나.

아니면 잘 맞은 타구가 바람에 밀려서 외야플라이가 된다거나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바빕신이 보우하사, 상대팀 타자들 타구가 치는 족족 수비에 걸리면 더할 나위 없고.

‘뭐, 사실 그 정도까지도 필요 없고. 그냥 지금 내 실력이 경기에서 온전히 나오는 것.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이미 완성된 몸과 가다듬은 정신, 거기에 영혼까지 완벽했던 준비를 끝으로, 개막전이자 내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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