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61화 (61/316)

61화

<계속된 질문에, 빌리 빈 사장, 가능성을 열어 놓아···>

<알 게르히우저 이후 74년 만의 개막전 선발등판 데뷔!>

처음 기사가 나간 직후.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스포츠 언론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미국은 물론,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한국과 심지어 일본까지도 말이다.

그만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개막전 선발투수로 치른다는 건, 드물고 희귀하다 못해, 초유의 사태라고 지칭해도 무방한 일이었으니까.

[#A’s]

[Go가 개막전에 선발투수로 나갈 거라는데?]

└뭐, 그거야 이미 예상된 일이니까. 당연하겠지.

└솔직히 지금 선발진에서 Go가 가장 잘하잖아? 제일 잘하는 투수를 처음 내야지.

└Go라면 잘할 거야, 화이트삭스전 본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각할 걸?

└루키라고는 해도, Go의 경험이 적은 건 아니지. 마이너에서 5년을 뛰었으니까. 오히려 베테랑이라고 봐도 무방할 걸?

└지난 경기로 Go가 증명하지 않았던가? 재기발랄한 애송이가 아니라, 노련함까지 갖춘 투수라는 걸. 그 경기를 못 봤다면 모를까, 그런 모습을 봤기에, 난 Go가 잘할 거라고 믿어.

이미 그를 지지하고 있었던 애슬레틱스 팬덤의 반응이야 그런 인터뷰와 기사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기쁜 마음으로 개막전을 기다렸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A’s]

[니들 지금 제정신이야? 간만에 유망주 나왔더니, 그 유망주 죽일 거냐고!]

└지금 사람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어.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이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다들 좋아하는 거야?

└우리팀이 X신이라는 걸 온 세상에 알리는 꼴이야.

└Go가 잘한다는 거야 나도 동의하지만, 솔직히 좀 걱정되기는 해.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최소한 에이스의 팬이라면, 고유석을 의심하지 않았다.

직접 봤고, 느꼈으니까.

절대로 신인이 아니다. 그럭저럭 적당한 선발투수 정도도 아니고.

기량으로만 따진다면, 진지하게 에이스로 여기더라도 부족하지 않다는 거야 이미 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불안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토록 대단한 유망주기에. 행여나 부상을 당한다면, 아쉬운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A’s]

[우린 지금 우리 손으로 제2의 마크 프라이어를 만드는 거야. X발 죄다 더스틴 베이커에 빙의라도 했냐?]

특히나 마크 프라이어처럼 신인 시절부터 과도한 혹사로 그 재능이 꺾였던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수없이 많았기에, 그런 종류의 위험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슬레틱스의 선택은 정말 터무니없으며···

-유망주를 망치는 지름길···

-마지막 등장 이후 74년간 나오지 않은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나마 에이스의 팬들이 약간의 걱정과 큰 기대를 보였다면, 외부의 반응은 그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세 번밖에 없었던 일이고, 그마저도 마지막의 경우 1943년으로, 무려 74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신문기사 뿐만이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 방송에서도 연일 지금의 이슈를 이야기했고.

더욱더 강력하게 구단의 선택을 비판 혹은 비난하며, 이번 일을 지켜봤지만.

그런 반응과 상관없이,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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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에게 물어봤어? 뭐래? 등번호는 계속 79번으로 가겠대?”

“네, 예전부터 써왔던 등번호라, 메이저에서도 쭉 쓰겠다고···”

“마킹은 아직 준비 안 됐어? 빨리빨리 해. 개막이 코앞인데 뭣들 하는 거야? 팬들 난리난 거 안 보여?”

사무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개막전을 앞두고 여러 가지 준비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유석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다.

구장이나, 그라운드, 잔디 같은 것을 비롯한 나머지 준비야, 이미 착실하게 마친지 오래지만. 이번 사태는 그들에게도 급작스러운 일이니까.

무려 개막전 선발투수.

그것도 데뷔전이다.

최소한 최근 79년 동안은 없었던 일. 그런 중요한 이벤트를 가볍게 넘길 생각은 없었다.

“너무 과한 게 아닌지···”

“보블헤드까지 준비하라고요? 아니 Go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닥치고 해!”

숨쉴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마케팅팀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이토록 바빴던 적은 꽤 오랜만이니까.

빌리 빈의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날. 자신에게 미리 지시가 내려왔다. 판을 키우라는 지시가.

‘어차피 도박인데, 기왕 시작한 거,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배팅해야지.’

공식발표가 나간 이상, 이미 돌이킬 수는 없다. 고유석의 개막전 선발등판이 확정됐다는 거다.

외부에서야 위험을 논하고, 도박이라며 비난했지만, 이미 돌이키기 늦었으니, 차라리 애매하게 구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불을 피우자는 뜻이겠지.

‘유니폼만 매출만 봐도 알 수 있지. 이건 된다, 무조건 돼.’

화이트삭스전 이후 며칠간, 고유석은 해당 기간 동안 유니폼 판매량 14위를 기록했다.

생각보다 낮다고?

애슬레틱스 내부 순위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전체 순위였으니까. 믿을 만한 정보니, 거짓 일리는 없다.

실제로 매일 같이 올라오는 매출만 봐도 그 열기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지.

‘2차 분량마저 거의 동났어. 오프라인 매장은 전멸이나 다름없고.’

이미 전국적인 유망주로 등극하고, 애슬레틱스 팬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가공할만한 판매력을 보여줬던 고유석이기에.

그에 맞춰 추가로 발주했던 79번 유니폼의 2차 분량마저도 거의 다 소모됐고.

3차 분량은 언제 납품되는지 묻는 오프라인 스토어의 점주들의 문의가 융단폭격처럼 사무실에 퍼부었다.

‘에이스 팬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유니폼이나 MD(굿즈)마저 못 살 정도는 아니야.’

그 정도 구매력은 있다.

쇠락하고 불안한 치안과 경제력으로 유명한 오클랜드고, 메이저리그 평균 관중 순위에서 매번 바닥을 기는 마켓 규모지만.

어쨌든 작년 평균 18000명, 누적 150만 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팀이다. 구장의 위치가 우범지대고, 시설이 낙후되어, 관중 동원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렇지.

꾸준하게 경기를 시청하는 열성팬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상당하겠지.

‘특히나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부채질해주고 있으니까.’

같은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한 NBA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이미 연고지 이전을 확정지으며, 건너편 샌프란시스코에 새로운 구장을 건설 중이고.

NFL 팀인 오클랜드 레이더스는 이번에 연고지 이전을 확정하며, 2년 뒤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워낙 오클랜드라는 도시의 마켓 규모가 작다보니, 살기 위해 결정을 내린 건데. 물론 애슬레틱스 역시 꾸준하게 연고지 이전과 신구장 건설을 알아보고 있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확정은 아니다.

즉 뭐가 완벽하게 결정되기 전까지는 밉보인 친구들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뜻.

‘원래라면 그마저도 힘들었겠지만, Go가 제대로 주목을 끌어준 덕분에, 충분히 이득을 취할 수 있어.’

개막전 선발등판 자체는 도박일 수 있겠지만, 이익을 얻는 건 도박이 아니다.

마케팅 팀장은 확신했다. 최소한 투자수익 이상으로 긁어모을 수 있다고.

‘중요한 건 성적이야. 지금의 열기를 일시적은 화재 정도로 꺼트리지 않으려면. 성적이 좋아야 돼. 그렇다면 계속 활활 타오르겠지.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Go라도 개인성적을 준수하게 찍어야 하는데···.’

그는 스카우트 팀과 전력분석 팀, 그리고 지금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사장과 단장이 한창 회의를 나누고 있을 사장실을 봤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야겠지.’

####

환한 사무실 안에서, 수염난 사내들은 똑같은 자료와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며 철저하게 검토했다.

이 선수에게 거의 모든 게 걸려있다고 말하더라도, 결코 과하지 않았으니까.

“기량은··· 솔직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범경기 동안 올린 성적도 물론 놀랍지만. 그보다는 피칭이죠.”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만, 작년 스카우트 팀의 평가는 실책입니다.”

전력분석팀은 기량에 감탄했고, 스카우트들은 작년 자신들의 실수에 멋쩍은 듯 웃었다.

작년 선발투수로 복귀하여, 엄청난 성적을 올린 고유석에 대한 생각은 플루크였다. 그것도 아주 극심한 플루크.

기본적인 스터프와 스터프의 실링이 없는 선수라는 게 주된 이유였고.

하지만 겨울이 지나 다시 나타난 고유석은 그런 평가를 전면으로 부정했다.

저조하다 못해, 아예 잠재력이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되었던 스터프와 무브먼트는 최고라는 찬사마저 나올 정도가 되었고. 기존에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변화구는 두터운 짜임새를 보였다.

만약 이러한 미래를 모른 채, 플루크 때 값비싸게 팔자는 이유로 고유석이 트레이드가 되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향후 10년간은 최악의 트레이드로 꼽혔으리라.

“시범경기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규시즌에도 물론 좋은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요. 객관적인 데이터가 증명하죠.”

전력분석팀은 거의 확신했다.

보통 마이너나 시범경기에서 잘 나가다가, 정규시즌 때 어려움을 겪는 유망주는 많다.

그 이유는 선수마다 판이하게 다르기에, 한 가지를 딱 꼽을 수가 없지.

그나마 가장 흔한 경우는, 투피치 혹은 패스트볼 중심의 원피치 투수가 그런 피칭이 빅리그에서 안 먹히는 탓에 망하는 거다.

마이너까지는 구종이 적더라도 스터프로 압살이 가능하지만, 그 스터프가 초월적인 수준이 아닌 이상, 빅리그의 노련한 타자들에겐 금방 타이밍이 읽혀, 장점이 박살 나는 거지.

“최소한 Go는 그런 위험성에서는 벗어났습니다.”

“그는 사실상 6피치니까요. 포심, 투심, 그리고 세 가지의 서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까지.”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던졌던 커브까지 포함한다면 7피치죠.”

고유석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구위가 대단하다는 거야 그런 유형의 망가진 유망주들과 비슷하나, 선발투수인 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울 만큼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니까.

같은 그립인데도 정확하게 구분되는 서클 체인지업은 그런 다양성의 상징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에이스 내부에서는 그걸 매덕스의 매직이라고 불렀다. 현역시절 다양한 구종과 자유자재의 구질을 구사했던 매덕스에게 낙폭이 심한 서클을 전수받은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거지.

어쨌든 다양한 구종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제구력이 크나큰 장점인 선수기에, 여타 유망주들보다는 오히려 위험성 자체는 확연하게 낮다.

그렇기에 정규시즌에서도 충분히 좋은 선발투수로서 팀 선발진의 중심이 되리라 예측했지만.

오늘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단순히 긴 시즌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야 이미 숱하게 토론과 논의를 거쳤고,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왔으니까.

“다만 개막전 선발등판은···”

“···결국 관건은 에인절스 타선입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선수니, 부담감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과연 지금까지 상대했던 타자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타선을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개막전 선발등판.

야구계를 달아 올린 이슈가 오늘 회의의 이유였다. 굉장한 도박수라는 거야 결정을 내린 빌리 빈이나 데이비드 포스트 역시 잘 아는 사실이고.

사실상 팬들의 여론에 떠밀려, 내린 결정이나 다름없기에 그들도 조금은 억울하지만. 어차피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당연하게도 호성적을 기대했다. 최소한의 예측과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것이고.

“개막전 에인절스의 예상 라인업입니다. 작년 성적과 이번 시범경기 동안 에인절스가 내보인 라인업에 맞춰서 조합을 했습니다.”

스크린 위로 쭉 펼쳐진 라인업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당연히 단 한 사람.

“트라웃···”

“으음···”

“크리스 브라이언트아 잘 잡았지만, 어차피 시범경기니까···”

마이크 트라웃.

현시점 메이저리그의 확고부동의 정점. 두 번의 MVP와 다섯 번의 올스타. 그리고 실버슬러거. 한 번의 행크 아론 상까지.

골드글러브를 제외한, 타자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쓴 천재타자.

같은지구 팀으로서 수없이 상대했던 선수였기에 회의실 안에는 낮은 신음소리가 흘렀다. 마치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처럼.

그런 분위기는 빌리 빈의 나직한 목소리로 해소됐다.

“할 만하군요.”

고개를 숙이거나 한숨을 내쉬던 이들은 목소리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눈빛으로 그를 봤지만, 빌리 븐의 두 눈에는 오직 진심만이 가득했다.

“올해 개막전은 우리 홈에서 열리죠. 콜리시엄 말입니다. 콜리시엄이 타자에게 얼마나 불합리한 구장인지는··· 우리가 가장 잘 알죠.”

콜리시엄은 투수친화적인 구장이다. 넓고 광활한 외야 필드와 파울라인은, 3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대신, 홈런은 극도로 억제했다.

그렇기에 작년 크리스 데이비스의 홈런이 놀라웠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 콜리시엄의 특수성을 짚은 빌리 빈은 슬쩍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트라웃을 제외한 나머지 타자들 중에서, 콜리시엄에서 Go의 공을 넘길 수 있을 만한 타자가 있습니까?”

그나마 트라웃을 제외하면, 그 정도의 파워를 갖춘 건 알버트 푸홀스다.

향간에 떠도는 루머처럼 나이를 속인 건지, 아니면 그저 에이징 커브를 심하게 맞은 건지는 몰라도.

처참하게 몰락한 푸홀스 작년 참담한 비율 스탯을 기록했지만, 서른한 개의 홈런을 날리며, 여전히 파워가 건재하다는 건 증명했다.

하지만 심각하게 망가진 선구안 탓에, 수준이하의 변화구에도 손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고유석에겐 그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만한 변화구‘들’이 존재했다.

“Go의 스터프는, 대단하죠. 특히 포심은 엄청난 상승 무브먼트를 가져서, 장타를 억자헤고요.”

“푸홀스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 외의 나머지는 다소 애매하죠.”

즉 최소한 처참하게 홈런을 난타당하는 일은 없다는 뜻.

그에 다른 이들 역시 빌리 빈과 마찬가지로 조금씩 자신감이 차올랐다.

“Go의 폼만 잘 관리해서, 최적의 상태로 등판시킬 수 있다면···”

어쩌면 이번 개막전이 그저 재밌는 이슈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

본격적인 관리가 들어갔다.

개막전에 나가실 귀하신 몸이니, 최대한 아껴주겠다는 뜻이겠지.

원래 로테이션대로였다면, 26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 했겠지만, 거르고 그 다음 날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3이닝을 던졌다. 이닝을 관리한 거지.

삼진 네 개에 안타 두 개로, 시범경기 최다 피안타를 기록했고. 그것을 끝으로 내 시범경기는 끝났다.

“Go, 앞으로는 최대한 폼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네, 그래야죠.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스콧 에머슨은 행여 내가 조금 불쾌함이라도 느낄까 싶었던 건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솔직히 별생각 없다.

‘남은 시범경기에 못 나가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개막전에 나가는데.’

개막전 등판이 코앞인데, 시범경기 성적에 연연하는 것도 조금 우습잖아?

로열스전이 끝나고, 바로 연락이 왔다. 개막전 선발등판이 확정 됐다고. 그러니 준비하라고. 브라이언의 축하 전화도 왔었지.

숙소를 비롯해서 모든 준비를 해뒀으니, 몸만 멀쩡하게 오라면서 말이야.

“옆에 와서 쫑알거리는 놈 없어서 좋네. 너도 그렇지?”

“뭐, 조용하긴 하네요.”

기사가 나간 이후, 주변은 부쩍 조용해졌다. 갑자기 서먹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배려해주는 거지.

개막전 선발이라는 중요한 과업일 짊어졌으니, 행여 괜히 컨디션을 망치지 않도록 말이야.

그래서 그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몸만 열심히 만들었다.

“내일부터는 트레이닝을 조절하겠습니다. 개막전에 맞춰서, 최고의 폼으로 마운드에 오르셔야 하니까요.”

기존의 시범경기 로테이션에 맞게끔 훈련을 조정했던 대니얼은 다시금 훈련을 바꿨다.

이제까지는 등판을 해야 하니, 적당히 컨디션을 관리하고, 워밍업을 하는 정도였던데 반해, 이젠 개막전만 남았으니, 최대한의 효율로 준비한다는 거겠지.

‘그나저나 계약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알기로 스프링 트레이닝까지만 도와주는 걸로 아는데.’

시즌 개막이 다가오니, 여러 가지 고민이 생겼다. 오프시즌 동안 트레이닝 해주기로 했던 대니얼이기에 그와도 계약을 연장하던지, 아니면 안녕을 고하든지 해야 하고.

그렉 역시 특별초청으로 모셔온 인스트럭터인 만큼, 시즌이 시작되면 빠이빠이 해야겠지.

“그렉, 제 개인 코치하실래요?”

“코치? 커트 앵글 너한테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좀 비싼 몸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지금은 쥐뿔도 없죠. 대신 다음에 FA 되면 연봉 좀 나눠드릴게요.”

“얼씨구, 이제 갓 데뷔할 놈이 FA는 무슨, 그전에 내가 먼저 저승 가는 게 빠르지···”

슬쩍 물었는데 어림도 없네.

그래도 그렉 역시 내심 이별이 다가오는 게 아쉬운 것 같기는 했다.

괜히 입맛을 다시거나, 날짜를 확인하거나 했으니까.

“어휴, 이 나이 먹고 애새끼 하나 맡아서 키우느라 더럽게 힘들었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해방이구만.”

아닌가? 그냥 곧 해방이라는 것에 속이 후련한 것 같기도···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어갔다.

“Go, 콜리시엄에서는 웬만하면 플라이볼을 적극적으로 유도해도 괜찮을 거야.”

“투수 친화적이라고 했죠?”

“정확하게 말하면 홈런이 잘 안 나오지. 대신 뜬금없이 3루타도 만들어지니까, 그 점은 주의하고.”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은 연습피칭을 할 때마다 여러 가지를 지시하거나, 가르쳐줬다.

사실 가르친다고 해봐야, 메이저리그 코치라고 해도 투수를 마음대로 터치할 수는 없기에.

주로 에이스의 홈구장인 콜리시엄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그에 맞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지.

원래는 시범경기 동안 투수들 폼을 확인해야 하니, 두루두루 둘러보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나한테만 딱 붙어있었다.

구속이나 제구, 그리고 컨디션 같은 걸 체크하는 거겠지. 페넌트레이스의 스타트를 끊을 투수니까.

“커터는 아직도 좀 부족하네.”

“쓰읍, 이상하게 잘 안 맞네요. 슬슬 감이 잡힐 만도 한데.”

“웃기고 자빠졌네. 배운지 몇 달이다 됐다고 감이 잡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는데, 좋은 결과를 바라면 그게 도둑놈이지.”

그런 관심과 노력 속에서 폼은 정상을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사실 캠프 합류 전에 이미 폼을 완성한 상태였기에, 엄청난 변화는 없었지만, 조금씩 공이 묵직해지거나. 변화구의 각도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고.

스터프가 올라간 이후 작년에 비해 아주 약간 부족했던 제구도 작년, 한창 락하운즈에서 주가를 올릴 때와 똑같아졌다.

그렇게 2017시즌 페넌트레이스 개막을 3일을 남겨뒀을 때.

“오··· 더 무거워졌는데? 이러다가 글러브 뚫리는 거 아니야?”

불펜포수의 익숙한 호들갑과 함께.

“구속 얼마 나왔어요?”

“89마일. 아까 전부터 쭉 89마일 찍었어. 이게 최고구속이지? 이젠 기복 없이 꾸준하게 찍네.”

“네, 최고구속이에요. 쉽게 찍는 걸로 봐선, 폼이 다 올라온 것 같네요.”

모든 준비는 끝났다.

‘빅리그라···’

드디어 빅리그.

갖은 고생 끝에 드디어 도달한 꿈의 리그. 거기다 개막전. 내가 생각했던 데뷔전보다 훨씬 더 호화롭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떨리냐고?

‘어디 한번, 진짜 메이저리그 경기도 씹어먹어보자고.’

그럴리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몸은, 약간의 흥분과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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