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60화 (60/316)

60화

“나오겠지? 혹시 시범경기라고 교체해 버리는 거 아니야?”

“에이, 아무리 시범경기라도 그렇지··· 흔한 기록도 아니고.”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7회 말이 끝났을 때.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설렘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평소라면 광고 시간에 다른 채널로 잠깐 돌릴 텐데, 혹시나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리모컨에 손가락조차 올리지 않을 정도로.

살면서 퍼펙트게임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직관은 물론이거니와 생중계로 보는 것도 대단히 운이 좋아야하고.

그만큼 드물고, 희귀하며, 그렇기에 위대한 업적이니까.

“Suck··· 할 수 있을까?”

“야이- 그딴 말 하지마! 괜히 부정타 게! 뒤지고 싶어?”

시청자들마저도 그럴 정도니, 현장에서 직관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원정 경기를 따라왔던 애슬레틱스의 팬들은 마치 말 한마디 한마디를 크나큰 죄악처럼 여겼고.

아주 약간의 숨소리라도 내는 이에겐 무언의 압박이 쏟아졌고, 그런 관중들 중 한명인 채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내가 이런 경기를 직접 보다니!’

감히 목소리를 낸 불경한 자를 노려본 그는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설마 이런 경기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심장은 사정없이 요동쳤다.

그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오랜 팬이었다. 애초에 그러니, 시범경기까지 직접 와서 보는 거고.

Go 혹은 Suck, 그도 아니면 You-Suck이라고 불리는 투수는 이미 팬들에겐 희망의 상징과도 같았기에.

그런 선수가 자신의 눈앞에서 엄청난 경기를 펼치고 있다는 걸, 채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몇 차례 손등을 꼬집을 정도로.

‘할 수 있어, 충분히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말고! 체력도 아직 많이 남았을 거야. 7회에 오히려 구속이 더 올라갔으니까. 화이트삭스 새끼들이야 Suck의 강속구에 아무것도 못하고.’

공수교대가 끝난 그라운드에서는 타자들이 8회 초, 공격을 하고 있었지만. 그딴 건 이미 안중에도 없다.

채드는 그저 경기 초반부터 지금까지의 피칭을 천천히 곱씹으며 다시금 감탄했고. 주변의 다른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기에 Suck은 여력이 한참은 더 남았다.

7회,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던진 시범경기 최고구속, 89마일을 찍은 강속구(?)가 그걸 증명한다..

‘Suck은··· 언제나 믿음에 보답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리고 Go You-Suck이라는 투수는 최소한 이번 시범경기에선 그 누구보다도 팬들을 가장 만족시킨 선수다.

무언가를 기대하면, 그보다 120%를 해냈고, 점점 더 자라나는 욕심에 맞춰서, 점점 더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지.

그렇기에 그는 감히 의심하거나 걱정하는 이들과 달리, 그저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 무장한 채 그라운드를 내려봤고.

다행히 타자들도 눈치는 있는 건지, 차례차례 금방 아웃당하며, 빠르게 그라운드를 비웠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운명의 순간.

모두가 들뜬 눈으로 그라운드를 봤을 때.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불펜의 문이 열렸다.

“어?”

누군가 외마디의 허망한 소리를 내뱉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 누구도 그를 지적하거나 노려보지 않았다.

“투수···교체?”

“What the Fuuuuu-”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욕설을 토해내거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젓는 사람들 속에서 채드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황당함이 선을 넘으니, 오히려 목구멍이 턱턱 막혔으니까.

“아니- 아니이이이이! 투수 관리도 좋지만- 이해는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로 아니다. 투수의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인데.

아니, 이 경기장을 찾은 모든 관중들과 직접 경기를 시청하던 모든 시청자들의 일생에서도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렇게 끝난다고? 이렇게?

“차라리··· 차라리 안타라도 맞았으면 이해라도 하지···”

채드는 절규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시범경기의 기록 따위에 굳이 유망주의 어깨를 소모시킬 필요는 없지. 특히 소니 그레이가 부상으로 이탈한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그러니 제법 투구수가 높고, 긴 이닝도 소화한 루키를, 올해 갓 데뷔할 루키를 아껴주는 거야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새로 올라온 투수는 실망한 사람들의 야유와 화이트삭스 팬들의 안도 속에서 잘 이닝을 마쳤고. 그렇게 끝난 8회말에 조금 진정한 채드는 스스로의 감정이 아니라, 다른 이의 감정이 마음에 걸렸다.

‘Suck이 불만이라도 가지면 어쩌려고··· 유망주 관리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과연 Suck이 그걸 이해할까?’

스스로 7이닝 퍼펙트까지 만들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교체되라고 하면, 투수가 납득할까? 투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록인데?

그냥 편하게 앉아서 던지는 걸 구경했던 채드 자신조차 이렇게 울분이 터질 정도니, 본인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아쉬움과 실망감, 그리고 걱정이 뒤섞인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으며, 채드는 경기를 지켜봤고, 경기는 애슬레틱스의 승리로 끝났다.

사실 그 이후의 경기 내용은 딱히 기억도 안 났지만.

긴 한숨을 내쉬며, 주섬주섬 경기장을 나갈 준비를 했을 때, 인터뷰를 하는 건지, Go가 전광판에 나왔다. 그것을 보니, 더욱더 불안했다.

‘설마, 대놓고 기분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Go! 미안해! 내가 미안하다, 내가! 못난 구단 떄문에 내가 미안해!’

비슷한 생각인지, 처참한 패전에 불쾌한 표정으로 나가는 화이트삭스 홈팬들과 다르게, 에이스 팬들은 잠깐 멈춰 서서 인터뷰를 지켜봤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 Go를 모셨습니다.

리포터의 발랄한 목소리로 시작된 인터뷰. 찬양에 가까운 칭찬이 지나간 뒤, 걱정했던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퍼펙트게임 도중에 교체가 되셨는데. 혹시 그에 대한 기분은 어떠신가요?

‘저 망할 년이! 그걸 왜 들추고 지랄이야! 그냥 넘어가지!’

제법 예쁘장한 리포터지만, 저 질문 하나로 망할 년으로 둔갑했고, 속으로 욕설을 토해내던 채드는 불안한 듯 고유석을 봤다. 그리고···

-제가 원했던 교체라서, 딱히 상관없습니다. 처음으로 긴 이닝을 던지게 됐는데, 잘 해낸 것 같아서 그냥 기분이 좋네요.

-어··· Go 본인이 원하셨다고요? 어째서죠? 퍼펙트게임이 탐나지 않으셨나요?

-물론 욕심이 나죠. 투수라면 누구나 그럴 거고요. 하지만, 더 긴 시즌, 긴 미래를 선택한 것뿐입니다. 시범경기의 기록에 연연해서 무리하는 것보다는, 팀을 위해 더욱더 완벽한 컨디션으로 시즌에 임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부르르 떨었다.

“지금 Suck, 아니 Go가 본인이 교체를 원했다고 한 거 맞지?”

“어··· 아니, 진짜로? 왜?”

“그래! 시범경기가 대수야? 까짓 거 정규시즌에 하면 되는 거지! 네 말이 맞아!”

“You-Suck! You-Suck!”

예상치 못한 발언에 혼란에 휩싸였던 경기장은 곧 광란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만 점, 아니 십만점짜리 답이었으니까. 더 먼 미래를 위해서, 팀의 정규시즌을 위해서. 본인이 직접 퍼펙트게임을 포기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눈을 뒤집으며 그의 이름을 외쳤고, 그들 사이에서 멍하니 우뚝 선 채드는 생각했다.

‘개쩐다 X발. 이게 프로선수지!’

저 선수는 최고가 분명하다고. 그리고··· 저런 녀석이라면 팀의 상징으로서 개막전에 내세워도 될 것 같다고.

개막전 선발등판을 놓고, 마지막 쇼케이스와 같은 화이트삭스전은 마지막 인터뷰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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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선수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인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빌리 빈은 나직한 헛웃음을 토해냈다. 화이트삭스전이 지나고 하루. 그 하루 만에 세상이 다시금 요동쳤으니까.

<실력과 마인드, 모든 걸 갖춘 최고의 유망주!>

<‘시범경기에 연연하지 않겠다!’Go의 목표는 그저 정규시즌과 팀?>

<퍼펙트게임보다 더욱더 빛났던 그의 워크에씩과 로열티!>

지난 경기를 두고 쭉 쏟아진 기사들이다. 오클랜드 쪽 언론사들이냐고? 대부분은 그렇다. 대부분은.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죄다 난리군.’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다루는 가장 큰 언론사인 East Bay Time와 비교하면, 감히 함께 묶는 것조차 우스울 정도인 유력지들.

그런 유력지들조차 이번 일을 다뤘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물론 스포츠 부문이지만, 그만큼 이번 일이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다는 뜻이겠지.

물론 피칭도 피칭이지만, 마지막 인터뷰, 그 인터뷰가 이 모든 사태를 발생시켰다. 어쩌면 퍼펙트게임 그 이상의 파급력을 가졌으니까.

“얼마로 추산한다고? 개막전 관중을.”

“아, 네. Go의 활약 덕분에, 팬들의 관심이 보여서, 작년 저조한 성적에도, 개막전 관중 자체는 작년과 비슷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만약 Go가 등판한다면?”

“Go를 개막전에 등판시킬 경우··· 작년 개막전 대비 최소 20퍼센트, 최대 30퍼센트가량 증가할 거라고, 마케팅 팀에서 예측하고 있습니다.”

“20퍼센트란 말이지···”

그렇게 고유석이 일으킨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단순히 느린 구속에 비해 상당한 실력을 갖춘 정도인 유망주에서 그 이상의 존재가 됐다.

당장의 이익에서도 드러났다.

유니폼은 물론, 당장 관중수 증가라는 구단에겐 가장 큰 이익까지 예측됐으니까.

아직 빅리그에 데뷔하지도 못한 투수 한 명으로 인해서.

‘팀의 상징이 됐어. 불확실한 퍼펙트게임을 포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물론 그 이전에도 꾸준하게 믿기지 않는 피칭을 보여줬기에, 그 파급력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일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았다.

워크에씩. 그리고 팀에 대한 로열티까지 갖춘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흔치 않으니까.

아니, 메이저리그기에 흔치 않다. 트레이드 같은 프런트의 비즈니스가 잦은 메이저리그에선, 선수가 구단에 각별한 애정을 갖는 경우는 예전부터 서포터가 아니었다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까.

‘특히, 애슬레틱스에서는 더욱더 그렇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팀은, 소속 선수들에겐 그저 잠깐 거쳤다 가는 곳이다.

여기서 뼈를 묻겠다는 선수는 아무도 없지. 성적이 좋다면, 잘한다면, 어차피 영영 머무를 수가 없는 곳이니까.

그렇기에 워크에씩이 뛰어난 선수야, 선수단 내에도 제법 많지만. 로열티마저 가진 선수는 딱히 없었다.

그리고 팬들 역시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아쉬움을.

고유석이 정확하게 찔렀다.

‘거기다, 이제 갓 데뷔하는 선수이니, 적어도 오래 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고유석이란 선수의 이미지는 단 하루 만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얼굴마담,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노련한 모습하고, 침착한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빌리 빈은 생각했다.

개막전 선발등판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왜? 자신을 제외한 고유석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프런트는, 켄달 그레이브맨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일단은 안정적인 선택지고, 또한 고유석이라는 역대급 유망주를 아껴줄 필요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프런트 내부에서도, 최소한 팬들을 달래고, 관심을 끌기 위해, 개막전에 내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줄지어 나왔다.

처음에는 팬들의 여론에 누구보다 가까운 마케팅 팀장만이 홀로 주장했던 것이, 이젠 정론이 되어버린 셈이겠지.

‘그레이브맨이 다음 경기에 등판하지. 그것도 같은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괜찮은 선수니 적당한 성적은 내겠지만···’

과연 지금의 여론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이미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분위기를?

‘진짜 퍼펙트를 하지 않는 이상. 게임은 끝났군.’

신문 한쪽 페이지를 가득 채운 고유석의 사진을 가만히 내려본 빌리 빈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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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 됐군요. 저도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봤는데···

“오, 브라이언까지 그랬을 정도면, 대단하긴 했나 보네요.”

브라이언에게 연락이 왔다.

어차피 빅리그 데뷔야 이미 확정됐기에, 내가 살 집을 대신 알아봐 준다고 고생하는 걸로 아는데. 어제 경기가 그에게도 대단했던 건지,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네.

괜히 립서비스를 하는 건 아닌지,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고, 흥분감에 젖어 있었다.

뭔가 좀 뿌듯하구만.

-그런데 혹시··· 어제의 인터뷰는 구단에서 지시한 일입니까?

이쪽이 메인이구만.

그는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긴, 꽤 공교롭긴 하지. 내가 아무런 말도 안 했다면, 구단이 욕먹기 딱 좋았으니까.

어우, 오늘 반응 보는데, 장난이 아니더라. 만약 내 자의로 내려간 게 아니라, 구단이 그런 거라는 식으로 알려졌다면. 모르긴 몰라도 프런트가 뒤집혔으리라.

그렇기에 브라이언은 행여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구단이 인터뷰를 종용한 게 아닌지 물었지만, 천천히 상황과 내 계획을 설명해주자 나직한 웃음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하하, 오랜 시간 뒤에 은퇴하시고 나서는, 에이전트가 되셔도 괜찮을 것 같군요. 여론을 흔드는 법을 잘 아시니 말입니다. 아마 좋은 에이전트가 되시겠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면 지도편달 잘 부탁드립니다.”

능청을 떠니, 한 차례 더 웃음을 흘린 브라이언은 이내 다시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정말로 현명한 계획이었습니다. 퍼펙트가 가능하다면야, 그쪽을 노리는 게 낫겠지만, 힘들다면 보다 더 확실한 이익을 챙겨야죠. 그 이익 역시 작지 않다면. 더더욱 그래야 하고요. 지금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곧 직접적인 반응이 나올 테니, 기대하고 계십시오.

그것으로 통화는 끝났다.

기대하고 있으라니, 항상 최악의 가정을 열어놓는 브라이언이었기에, 지금처럼 섣불리 확언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저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그만큼 반응이 엄청나다는 거겠지.

‘그리고··· 흔들린 게 팬들만은 아니지.’

간만에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간신히 훈련장에 도착하니, 조금은 낯선 분위기가 반겨줬다.

나를 발견한 선수들은 놀라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러는데, 뭐, 이미 선수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거야 꽤 됐으니, 그거야 중요치 않고.

진짜는 훈련이지.

시범경기다 보니, 적당히 몸 푸는 정도에 머물렀던 선수들인데,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층 더 진지해졌으니까.

“제일 막내가 그렇게 했는데, 우리도 잘 해야지.”

“루키보다 못해서 되겠어?”

“소니도 얼마 안 있다가 올 거고, 저런 괴물까지 있겠다, 원투펀치 확실하니, 올해는 진짜로 해볼 만하지.”

역시, 어제 인터뷰는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것에 자극받은 듯, 선수들도 진지하게 시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계기가 필요했던 거지.’

뭐, 사실 모든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웃기지만, 어느 정도 기폭제는 된 것 같네.

거기다 팬들의 여론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거고. 결국 메이저리거도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존재니까.

‘그런 팬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긴장이 빡 들어갈 수밖에 없지.’

그리고 아마도 그런 팬들의 시선에 가장 부담스러울 사람은 저~기 보이는 저분일 거고.

아침 일찍부터 나온 걸까? 다른 선수들이 아직 뽀송뽀송한데 반해, 러닝 중인 켄달 그레이브맨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스스로를 몰아칠 수밖에.

어제 코앞에서 봤으니까.

내 피칭을, 그리고 그에 열광한 사람들의 반응을.

‘거기다 이젠 비교하는 기사조차 없고 말이야.’

어제 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팬들은 나와 그레이브맨을 놓고 개막전 등판을 점쳤다. 둘 중 한명에게 그 영광이 돌아갈 테니까.

뭐, 대부분 날 지지했지만, 루키라는 위험성 때문인지, 그레이브맨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적지는 않았지.

그런데 오늘은 그 누구도 그레이브맨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꾸준하게 올라와서, 우리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었던 여론조사도 없었고.

그저 내가 개막전에서 보일 모습을 기대했다. 어떤 피칭일 보일지, 어떤 성적을 올릴지. 트라웃을 상대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말이다.

‘적어도 팬들의 마음속에선 개막전의 선발투수로 내가 확정됐다는 거겠지.’

그리고 켄달 그레이브맨 역시 그걸 잘 알 거다. 애초에 여론에 흔들려서 자존심이 상했던 양반인데. 바로 알겠지.

분위기에 둔한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뭐, 정말로 퍼펙트라도 하면, 나라고 별 수 있나. 쿨하게 넘겨줘야지.’

####

머리가 복잡했다.

그냥··· 잔뜩 취한 날처럼 약간 멍하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고. 확실한 건 정상은 아니다.

‘···망할!’

켄달 그레이브맨은 잘 알았다. 시범경기라고는 해도. 실력만 놓고 따졌을 때. 자신이 저 유망주에게 상대도 안 된다는 걸.

구속이야 조금 더 빠르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이 크게 밀리지. 경험을 제외하면.

‘7이닝··· 문제없이 소화했지. 그것도 아주 쉽게.’

지난 경기는··· 그냥 완벽했다. 성적도 그렇지만, 운영 자체가 달랐다. 어린 유망주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한편으론 어이도 없었다.

분명 힘조절이라고는 모르는 녀석이었는데. 그래서 긴 이닝을 맡긴다면,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을 비웃듯이, 자유자재의 완급조절을 선보이며, 상대팀을 철저하게 농락했고. 7이닝, 선발투수로선 딱 좋다고 할 만한 이닝을 손쉽게 소화했다.

이게 가능한가? 이렇게 쉽게? 대체 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최소한 천재적인 재능이 주어졌으면, 다른 쪽이라도 부족해야 조금이라도 공평할 텐데. 저 투수는 그러지 않았다.

“켄달! 너도 잘해라!”

“화이트삭스 새끼들 별 거 없어! Suck처럼 조져버려!”

불펜을 나서자, 여러 가지 말들이 들려왔고. 자신을 응원하는 목소리지만, 약간 거슬렸다. 굳이 한 마디를 더 보탰으니까.

“시즌 초반에는 Suck이랑 네가 잘 해줘야 돼!”

그놈의 Suck. 들을 때마다 감정이 Suck해지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거다.

평소라면 손이라도 흔들어 줬을 텐데,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인채, 그는 마운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나마 있던 약간의 우위도 이젠 사라졌어.’

아직은 유망주, 치기어린 애송이. Go의 유일한 단점이었던 것들은 이제 없다.

팀을 위해서, 정규시즌을 위해서, 더 넓은 미래를 위해서 퍼펙트마저 포기한 선수를 어린애라고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팬들은 Go의 프로 선수로서의 워크에씩을 칭찬했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넓은 시야와 현명한 판단력을 찬양했다.

그것으로 켄달, 자신이 비교적 우위를 차지했던 부분마저 이제는 사라졌다. 그래, 이젠 자신이 확실하게 언더독이다.

‘프런트도 진지하게 검토하겠지. 어쩌면 이미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고.’

지금 당장, 이 순간에 한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열렬한 지지를 받는 선수.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현시점에서는 ‘그’ 소니 그레이보다도 더욱더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

그런 선수에게 개막전 정도는 맡겨도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마케팅이 될 테니까. 구단을 이끌어갈,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는 그럴듯한 스토리도 있고.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실 그 피칭에 홀린 건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으니까.

너무도 쉽게 맞춰 잡던 모습. 그러다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상대를 흔들던 모습. 그리고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내려오던 모습까지.

어쩌면 Go를 그렇게나 사랑하는 팬들보다도 자신이 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봤으니까.

같은 투수로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며, 그라운드의 분위기까지 몸소 맞으면서 똑똑히 지켜봤기에, 자신감은 생겨나지 않았다.

폄하할 수도 있다.

그날 상대 타선은 중심타자들이 많이 빠지고, 마이너 선수들이 포함되었기에, 완벽한 전력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그런 호투도 가능했던 거라며 이야기할 수도 있다. 허나···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야.’

팬들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피칭이고, 마운드 위의 퍼포먼스뿐.

그날 Go는 7이닝간 퍼펙트를 보여줬고, 열한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으며. 여섯 명의 타자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았다.

경기 후반의 압도적인 임팩트를 선보이며, 화이트삭스를 철저하게 때려 부순 그 모습만이, 오직 그것만이 팬들에게 중요하다. 상대 타자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후우··· 경기에 집중하자.’

어느덧 마운드.

그는 애써 흔들리던 정신을 다잡았다. 그 역시 메이저리거이기에, 경기 밖의 일과 감정을 마운드까지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너무도 친숙한 마운드가, 발목을 잡아끄는 늪처럼 느껴지는 건.

9회 말 노아웃.

점수는 11대0.

패배가 확정된 순간 마운드에 올라가는 패전투수와 같은 감정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스트라이크!”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던졌다. 봐라, 나도 할 수 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분명 상대 팀은 화이트삭스고, 그의 적은 타자들이지만, 오늘 만큼은 아니다.

화이트삭스라는 메이저리그 구단보다도 더욱더 크고 거대한 벽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어제의 피칭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다시 재생하며,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저번에 애새끼도 X같더니, 오늘은 너도 말썽이냐?’라는 표정의 타자들을 강력하게 찍어 눌렀다.

“스트라이크 아웃!”

차곡차곡 올라가는 삼진.

빠르게 지워지는 이닝들.

비록 중간에 1실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마지막 순간 내려진 성적은 이틀 전, Go에게 크기 뒤지지 않았다.

‘오늘··· 왜 공이 좋고 지랄이야.’

그렇기에 더욱더 허탈했다.

차라리 내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면, 후련하게 받아들였을 테니까.

어차피 안 되는 거였다고.

허나 준수하다 못해 훌륭한 성적을 올렸는데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휘이익! 오늘 죽여주는데?”

“페넌트레이스 때도 이렇게만 해줘!”

“켄달! 너도 X나게 잘하니까, 이번 시즌은 한번 일내보자!”

물론 팬들은 좋아한다.

더군다나 홈이기에, 오히려 환호성만 따진다면, 이틀 전보다 더욱더 크다.

하지만 마운드를 내려오며 관중석을 쭉 훑은 켄달은 알 수 있었다. 판을 뒤엎지는 못했다는 걸.

그날처럼, 관중들마저 압도된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끝났네.’

7이닝 1자책점 5피안타 7탈삼진이라는 훌륭한 성적표를 주어졌음에도, 다가올 미래를 알기에, 켄달 그레이브맨 고개를 숙였고.

그것을 끝으로 개막전 선발등판이라는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갈지가 결정됐고. 며칠 뒤, 기사가 올라왔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기대했던 기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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