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59화 (59/316)

59화

휴식은 길지 않았다.

6회 초, 우리의 공격이 금방 끝나버렸기에, 벤치에 앉고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마운드로 가야 했으니까.

나로선 오히려 고맙다. 그 덕에 흐름이 끊기지 않았거든.

도리어 빅이닝이 만들어져서, 시간이 소비됐다면, 더 안 좋았겠지.

‘후우··· 다시 가보자고.’

덕아웃을 걸어 나가며, 상대팀 벤치를 봤다. 타자들끼리 서로 모여 수군거리고 있네.

나를 가리키면서.

대충 무슨 이야기하는 건지는 뻔하다. 갑자기 빨라졌다거나, 조심하라거나. 지금까지 해왔던 타이밍은 잊으라거나.

저쪽 타격코치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거로 봐서,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 같은데.

상관없다. 지금 내 공은-

“스트라이크!”

누구도 칠 수 없는, 강속구니까.

시작된 이닝. 타자가 크게 헛스윙하며, 간신히 몸을 가눴다. 넘어질 것 같았는데, 다시 우뚝 서는 걸 보면, 코어힘이 좋구만.

욜머 산체스.

화이트삭스의 주전급 선수다.

다만 타격은 형편없다. 내야 유틸리티거든. 특히나 타율과 출루율이 비슷할 만큼 선구안이 나쁘기에.

“스트라이크!”

훨씬 더 쉽지.

스티븐 보그트는 이제 익숙해진 건지, 시간을 끌지 않고 재빠르게 공을 넘겨줬다.

리드 문제로 부딪치기는 했지만, 노련한 포수다 보니, 척하면 척이네. 마음에 들어.

본인도 조금 흥분한 것 같고.

지난 이닝은 그 역시 조금 당황한 듯, 황급하게 공을 잡았지만, 이번에는 사인을 내자마자 말없이 글러브만 가져다 댔다. 그 글러브를 향해서.

“스트라이크 아웃!”

공을 쏜다.

뚝 떨어지는 서클 V1.

두 번의 포심으로 카운트가 몰린 타자에겐 가혹할 정도겠지. 아직 정신도 차리지 못했으니까.

6회 말을 시작하는 삼구삼진.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리드를 잡고, 내가 타자들을 쉽게 처리하는 것에 흥분했던 우리 팬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었는데.

이제는 팬들마저 조심스러워졌다. 그거 중이잖아, 그거.

‘방망이 들고 올라오겠네.’

타자들 역시 잘 아는 건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차례차례 홈 플레이트로 올라왔고. 어떻게든 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돋보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전 이닝에 아쉽게 만들어내지 못했던 세 타자 연속 삼진.

무결점 이닝은 아니다. 마지막 9번타자한테는 4구를 소모했거든. 뭐, 의미는 없겠지만.

6회마저 지워지자, 경기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 이닝을 마치는 삼진이 올라가는 순간 터져 나오려던 목소리가 간신히 삼켜졌고.

“···”

아까 전, 5회 말에만 하더라도 다가와서 말을 쏟아냈던 야수들마저 입을 닫았다.

“한 이닝만 더 던지겠습니다.”

“어? 어. 그-그래. 투구수도 넉넉하네. 음··· 그래.”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스콧 에머슨은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굉장히 조심스러웠고, 그보다는 그냥 덕아웃 전체가 조용했다. 감히 내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지어 물 마시러 가는 것조차, 발걸음 소리를 안 내며 살금살금 가네.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야.

“커트 앵글, 오늘은 나도 인정한다. 설마설마했더니, 진짜 말한 대로 해버리네.”

“쉬잇. 그렉, 징크스 몰라요?”

“언급 안 했잖아?”

“아, 그렇긴 하죠.”

그렉 매덕스. 모두가 조용한 와중에 이 양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말동무가 되어줬다. 죄다 조용해져서, 괜히 좀 외로웠는데, 고맙네.

“그리고··· 어차피 너 할 생각도 없잖아?”

“···그것도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지. 나랑 생각이 똑같아서 그런지, 딱 보면 알아. 지금 커트 앵글 니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귀신이다, 귀신. 이것까진 안 밝혔는데 말이야. 괜히 천재가 아니야.

그래도 다른 사람들 눈치는 보이는 듯 조용히 속삭인 그렉에게 씨익 웃어주자,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큰 걸 노려야죠. 그리고 가능한 걸 노려야하고.”

“흐흐흐, 이거이거 아주 음흉한 놈이란 말이야. 마음에 들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아닌척하면서 귀를 기울였지만. 주어가 없는 대화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비밀작전도 아니고···”

“뭔가 중요한 비법이라도 전해주는 거겠지. 매덕스잖아.”

“쉿, 다들 안 닥쳐?”

저렇게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나도 루틴을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이다.

불펜피칭은 무조건 서클 체인지업으로 시작한다는 루틴을 계속 유지하고 있잖아? 구위가 좋아져서, 이젠 패스트볼도 제법 볼만해졌는데도.

허나 오늘만큼은 저 정도로 미신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고?

‘어차피 퍼펙트게임은 내 계획에 없거든.’

####

선발투수는 주연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주연이지.

가장 분량이 많으니까.

하지만 압도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확고한 원탑이 되기에는, 다른 주연들도 많거든.

감초 같은 조연들도 많고.

그런 선발투수가 진정한 주인공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 언제일까?

나는 확신했다.

앞선 6이닝을 완벽하게 막은 뒤. 다시 마운드에 올라가는 순간부터라고. 왜냐고?

다 보고 있잖아.

애슬레틱스 팬들.

화이트삭스 팬들.

기자들, 스카우트들.

경기장 안의 모든 카메라.

그리고 상대팀 선수들까지.

이 경기장 안의 모든 것들이 나를 보고 있다.

‘이제 세 타순. 교체는 없네. 저쪽도 오늘 제대로 테스트하겠다는 건가?’

마운드에 올라서자, 상대팀 덕아웃에서 타자들이 쭈루룩, 타석과 대기타석으로 나왔다.

1회에도, 4회에도 봤던 얼굴들. 교체는 없었다. 개막을 앞두고 있으니, 타자들 폼을 확실하게 점검하겠다는 거겠지.

1번타자는 입을 앙다물고서 나를 봤다. 이번이 세 번째 타석이니, 어느 정도 타이밍에 익숙해졌다는 건가?

‘글쎄, 이번이 첫 타석일 텐데.’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틀렸다. 저 타자는 지금의 나를 처음 상대하는 거니까.

본격적으로 출력을 올린 건 5회부터였으니, 처음이나 다름없지. 구속, 타이밍, 그리고···

“스트라이크!”

인터벌까지, 모두 다.

단순히 전력투구만 하는 게 아니다. 인터벌도 빨라졌으니까.

적당히 집중과 감각을 관리한 덕분에, 5회부터 정점을 찍으면서, 시동이 걸린 채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거든.

“스트라이크!”

미칠 듯한 인터벌이.

그러니 타자의 입장에선 전혀 다른 공처럼 느껴질 거다. 구속도 다르고, 타이밍도 다르고. 날아오는 간격마저 다르니. 아예 다른 투수처럼 보이겠지.

그러니 체감구속은 놀랍도록 올라간다. 비록 90마일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여전히 하찮은 구속이라고 할지라도.

“스트라이크 아웃!”

저 타자에겐 95마일 이상의 강속구나 다름없지. 구속이란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니까.

그리고 그 상대성은 타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이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과 시청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달라진 건 없지. 지난 경기들이랑 똑같이 던지고 있는 거니까. 인터벌이 빨라진 걸 제외하면.’

엄청나게 빨라 보이는 구속도, 쭉 전력투구했던 지난 경기들과 똑같은 놈이지만.

이미 4이닝 동안, 완급조절하며 맞춰 잡았던 내 피칭을 지켜본 이들에겐, 타자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르게 보일 거다.

분명 같은 피칭인데도. 그리 달라진 게 없는데도.

“스트라이크!”

더욱더 충격적인 거지.

2번 타자에게도 초구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몸쪽 포심. 타자는 가만히 지켜만 봤다.

똑똑하네. 허둥지둥거리는 것보다는, 저렇게 지켜보면서, 지금이라도 다시 타이밍에 익숙해지는 게 정답이지.

물론 그런 여유 따윈 주지 않을 생각이지만.

‘배트 한번 내겠네. 땅볼 유도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좀 위험하지. 야수들이 긴장했으니까. 그리고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

가볍게 던진 서클 체인지업.

전력으로 던진 만큼, 경기 초반보다 더욱더 역동적인 싱킹 무브먼트를 보이며 꺾이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헛돌았다.

허탈하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서클까지 달라졌어?’,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네.

그것으로 투 스트라이크.

더 볼 것도 없다. 눈이 좋은 건지, 제법 타이밍, 투구의 간격을 읽는 것 같지만. 그에 맞춘 특효약이 있으니까.

‘자, 휘둘러라.’

손안의 공을 찍는 게 아니라, 밀 듯이 툭 날려 보낸다. 빠른 배트 스피드를 선보이며,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그보다 조금 늦게 들어갔다.

쓰리핑거 체인지업.

이거 은근 쏠쏠하네. 완성도는 아직도 낮고, 맞으면 바로 넘어가는 공이지만, 나쁘진 않아.

‘이제 투 아웃. 거의 다 왔네.’

뒤이어 타석에 올라오는 3번타자, 멜키 카브레라. 경험 많은 노련한 타자다. 2005년에 데뷔한 양반이던가?

10년 넘게 빅리그에서 주전 선수로서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한데, 사실 그리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약쟁이거든.

심지어 건강보조제인 척 속이려고, 에이전트에게 시켜서, 허위 판매 사이트까지 만들기도 했고.

‘난 약쟁이가 싫어. X같거든.’

구속은 느려터지고, 구위마저 X같을 때도, 약은 손에 안 댔다. 제안은 X나게 많았지. 마이너에 약하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안 했다, 약까지 하면 그건 진짜 답이 없잖아. 그래서 꿋꿋하게 버텼는데. 저런 새끼를 보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제 서서히 떨어지던 어깨의 힘이 다시 차올랐고. 어차피 마지막 타자기에, 젖먹던 힘까지 모아 공을 쏘아 보냈다.

“스트라이크!”

“와-음.”

하이 패스트볼.

초구를 노렸던 건지, 크게 헛돈다. 포수글러브로 박힌 공을 보며, 몇몇 관중이 입을 벌리다가 주변의 눈총에 다시 닫았다.

근데 이해가 가는게, 사실 나도 좀 신기하네.

‘89마일. 최고구속 찍었네.’

최고구속 찍었거든.

몸이 다 올라온 걸까?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욱더 힘이 들어간 걸까?

내 인생 최고 구속인 89마일이 찍혔다.

90마일로 나왔어야 진짜 멋있는 건데. 어림도 없네.

‘그래도 넋을 놨네, 넋을 놨어.’

1마일의 상승이지만, 타자가 더욱더 당황하긴 충분하다.

체감구속이 남들보다 더욱더 빠르게 느껴질 테니까. 실제로 더 빠르고.

‘지난 타석에서 서클이 두 개. 투심이 하나. 슬라이더 안 보여줬네.’

그럼 보여줘야지.

바깥쪽 낮은 코스. 아슬아슬하게 걸치도록. 타자는 휘두르다 멈췄고, 주심을 봤지만.

“스윙! 스트라이크!”

결과는 스트라이크.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

경기 중간에 존이 달라진 건 아니니까. 설사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는 가고.

‘투수가 퍼펙트 중이면, 애매한 판정은 투수한테 기울지. 오심이 나왔을 때, 어느 쪽 여파가 더 클지가 명확하니까.’

시범경기라고 해도, 어쨌든 대기록에 도전 중인데. 결국 주심도 사람인만큼, 덜 위험한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 투 스트라이크.

여전히 타자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주심의 판정에 불만까지 생겨, 정신도 흔들렸다.

그러니 잡기 쉽겠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뭐든 간에 마무리가 중요하니까.

‘일단 한 구 빼고.’

“볼!”

오늘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건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기존과 조금 다른 노련한 경기운영.

경기 초반부터 맞춰 잡으면서 아주 잘 보여줬지.

두 번째는 그러다 갑자기 쏟아붙는 더욱더 강렬한 공격적인 피칭.

지금하고 있는 거 말이야.

원래도 자주 보여줬던 모습이지만, 오늘은 인터벌까지 빨라졌고, 또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르니, 훨씬 극적이겠지. 그래서 더 인상적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절제인데.

그건 조금 있다가 보여줄 생각이다.

‘그리고 마무리.’

“스트라이크 아웃!”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을 읽은 멜키 카브레라는 스윙을 참았지만, 애초에 존 안으로 넣었다.

그렇게 루킹삼진으로 이닝 종료. 6회부터 7회까지.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이 완성됐다.

기록의 희생양이 된 멜키 카브레라는 화가 나는 건지 거칠게 배트로 바닥을 내려치며 타석에서 물러났고. 후일을 기약하는 듯이 노려보기도 했다.

영~ 힘이 없으시네. 제대로 내려쳤는데 부수지도 못하고. 오늘은 확실히 안 드신 날인가보다.

‘분위기 죽여주네. 투수코치는··· 진짜 죽으려고 하고.’

마운드에서 덕아웃으로 향하는 길. 야수들은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싶었는지, 절대로 나보다 앞서서 걷지 않으며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기도 했고.

“쟤 대체 뭐야?”

“와··· 루키 헤이징 했으면 쪽팔려서 어쩔 뻔했어?”

“이런 거 보면 신이 참 불공평하단 말이야.”

“저기 봐, 팬들 입 찢어지겠네.”

안 들리게 속닥거리는데, 내가 귀가 좋아서 다 들린다. 굳이 저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저~기서, 잔뜩 고민하고 있는 스콧 에머슨도 마찬가지고. 투수코치는 정말 힘들 거다.

날 계속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안 올릴 수도 없잖아.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리는데. 그를 편하게 해줬다.

“아, Go. 수고, 수고 많았어. 오늘··· 정말로 대단하네.”

“그러게요. 어우, 간만에 길게 던졌더니 힘드네. 다음에 누구 올라가요?”

“어?”

그는 그건 대체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나를 봤다. 설마 자기가 퍼펙트 중인지 모르는 건가? 하기도 하고. 왜 몰라, 애초에 내 계획대로인데. 누구보다 잘 알지.

근데 앞서 말했듯, 오늘 계획은 딱 여기까지다.

이게 세 번째거든. 오늘 내가 팬들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 말이야.

‘애새끼처럼 억지로 던지는 게 아니라,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적절하게.’

이쪽이 더 이로울 테니까.

물론 아쉽기는 하겠지. 시범경기라고 해도, 무려 퍼펙트게임이잖아? 퍼펙트게임.

무려, 저~기 계시는 위대한 투수께서도 못한, 신이 내린 기록.

그러니 당연히 아쉽겠지. 내가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절대로 못하지. 가능성이 있다면, 나도 욕심이 나겠지만, 오늘 퍼펙트는 불가능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무조건 퍼펙트를 택했을 거다.

왜냐고? 이유가 뭐 있어? 그냥 너무 당연한 선택이지.

개막전 선발? X발 퍼펙트게임 했는데 뭔 상관이야? 그걸로 경쟁 끝이지. 근데 불가능하다. 조금의 가능성도 없다.

‘5회부터 7회까지,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졌으니까.’

투구수는 아직 넉넉하다.

2이닝 정도는 더 막을 수 있겠지.

투구수만 본다면 말이야.

인터벌이 빠르다는 건, 나도 숨고를 시간이 없다는 거고. 죄다 전력으로 던졌으니, 체력소모도 훨씬 극심했다.

꿋꿋하게 걸어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 덕아웃에 들어왔지만, 숨넘어가기 직전이라는 거지.

하지만 연기를 해야 한다.

마치, 할 수 있지만, 더 큰 그림을 위해, 정식 시즌을 위해 내 스스로의 욕심을 접는 척, 정규시즌을 위해 절제하는 척 보여주는 거지.

물론 방금 전까지 여섯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았기에.

“···수고했어, Go. 그리고··· 정말 고맙다.”

“넓게 봐야죠. 시즌을 위해서.”

“그래, 그래야지.”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다 껌뻑 속겠지만.

아, 저~기서 클클거리는 그렉은 제외하고.

저 양반이야 어차피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이걸로 목표는 달성했네.’

개막전 선발등판.

그것의 경쟁자인 켄달 그레이브맨과 비교했을 때, 내 가장 큰 단점은 뭘까? 그레이브맨에 나에게 앞서는 게 뭘까?

바로 경험. 겉으로 보이는 경험이다.

켄달 그레이브맨은 풀타임을 소화해본 선수다. 최소한 나보다는 경험이 많지. 저번 시즌에서, 그럭저럭 무난한 성적도 보여줬고.

그에 반해 당장 실력적으로는 내가 조금 더 낫고, 나이도 비슷하지만, 난 애송이지. 갑자기 어떤 급발진을 보일지 모르는 애송이 말이야.

‘오늘로 그걸 떼버리는 거지.’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하면서, 때로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엔 적당히 절제할 줄 아는. 애송이지만 애송이가 아닌 투수가 되는 거지.

어차피 불가능한 퍼펙트에 목맬 바에는,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더 낫다.

투수코치의 감사를 뒤로 한 채, 털썩 벤치에 앉은 나는 흘끔, 저쪽에서 고개를 처박고 있는 켄달 그레이브맨을 봤다.

‘어디 한번, 이것보다 더 잘해 보슈.’

7이닝 11탈삼진 퍼펙트.

그가 정말로 개막전 선발을 바라고, 자존심을 챙기고 싶다면, 이틀 뒤, 뛰어넘어야 할 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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