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입안에 감도는 달달한 맛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했다.
껌이라, 생각해보면 굉장히 흔한 건데 말이야. 껌을 씹는 선수는 많다. 아마 열 명 중에 셋 정도는 씹을걸?
학교 다닐 때도 씹는 녀석들이 많았다. 질겅질겅, 난리도 아니지. 많이 씹으면 사각턱 된다고 해서 난 안 씹었지만.
‘사각턱이고 나발이고, 효과만 있으면 하루에 열 개씩도 씹지.’
혹시나 해서 껌의 효과 같은 것들도 찾아봤다.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니까.
신경이 어쩌구저쩌구, 뇌의 활성화가 어떻고, 그러던데.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일단은 과학적으로도 껌을 씹는다는 게 집중력과 연관이 되어 있기는 한 것 같다. 사고의 속도도 빨라진다고 하고.
정확하게는 껌이 아니라, 무언가를 씹는 행위 자체가 그련 효과를 준다는 거지만, 어쨌든 효과는 있다.
“커트 앵글, 너 왜 갑자기 입을 오물거려? 충치라도 생겼냐?”
그래서 다음날, 훈련하면서 크리스 데이비스가 건네준 껌 한 통을 열심히 씹었는데. 배탈이 다 나으신 그렉 매덕스께서 비척비척 훈련장으로 나타났다.
나이도 있으시니, 조금 더 쉬어도 될 텐데, 이런 곳에서도 워크에씩이 강하시네.
열심히 줄줄 흘려보낸 건지, 굉장히 수척해진 얼굴로 묻길래 대답해주니, 그 역시 흥미롭다는 듯 자기 턱을 매만졌다.
“음, 확실히 집중력에 도움이 되기는 하려나? 근데 원래 안 씹다가 씹으면, 신경 쓰여서 오히려 집중력이 분산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씹고 있잖아요? 적응하려고.”
어깨는 등판의 피로를 떨쳐내고 멀쩡해졌는데, 정작 턱이 아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효과만 있다면야, 턱쯤이야 희생할 수 있지.
“그래, 참 장하다.”
진지하게 껌을 씹고 있으니, 꼴이 조금 우스웠던 건지, 그렉이 클클 거렸을 때. 주변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왜들 저래?”
정확하게는, 선수들의 훈련을 담고 있던 기자들이 분주해졌는데, 그렉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를 흘끔 봤지만. 나라고 아는 게 있을 리가.
‘기자들이 저런다는 건, 뭔가 기사거리가 있다는 건데···’
검색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훈련할 때는 휴대폰을 라커룸에 두는지라, 무슨 일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을 때, 3루코치이자, 벤치코치(수석코치)인 칩 헤일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몇 번 인사나 조금 한 걸 제외하면, 그다지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양반인데. 갑자기 다가오는 걸 보면 무언가 일이 터진 것 같다.
‘기자들이 자리 옮기는 걸로 봐선 내 일은 아닌데, 뭐지?’
“코치, 무슨 일이에요?”
“···Go, 잠깐 시간 좀 괜찮겠어?”
“시간이야 차고 넘치죠.”
칩 헤일의 표정은 조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시간은 또 왜 묻는 거지?
“그럼 잠깐 감독님과 면담 할 수 있겠어? 아주 잠깐이면 돼.”
감독 면담이라.
한 번 하기는 했었다.
아직 정식 레귤러 선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스프링 캠프에 초청된 이상, 시범경기 동안에는 나도 밥 멜빈, 그의 선수니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면담을 요청한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마이너 캠프로 가는 거던가. 아니면 내 상태가 중요한 거던가.’
갑자기 마이너 캠프로 쫓겨날 가능성은 0%나 다름없으니.
후자라는 건데.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바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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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젠장!”
밥 멜빈은 거칠게 테이블을 내리쳤다.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었으니까.
오늘 아침, 부상으로 잠시 캠프에서 이탈했던 소니 그레이의 진단서가 날아왔다.
광배근 근육에 손상이 났다는데. 회복 기간은 최소 3주. 부상 자체는 경미한 정도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치료가 3주니, 재활과 폼 회복까지 포함하면, 4월은 날리는 셈이군.’
치료가 다 됐다고 해서 바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고,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해서, 그 공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소한 한~두 경기 정도는 마이너에서 경기감을 올려야겠지. 소니 그레이는 선발투수기에, 그것 역시 제법 시간이 걸릴 테고.
그러니 그 모든 시간을 도합하면, 제아무리 빠듯하게 잡아도, 4월 이내에 복귀는 불가능했다.
‘하나를 채우면 또 하나가 비어버리니··· 대체 선수단 운영을 어떻게 하란 거야.’
부족한 선발진.
마이너 애송이들이나, 불펜투수를 선발로 전환해서 막아야 하는 건데. 간신히 한 자리를 채웠구나, 싶었더니. 다시 한 자리가 비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선수로.
‘만약 추가적인 이탈이 발생한다면, 그땐 정말 끝이야.’
어떻게든 투수를 끌어 쓴다면, 로테이션 자체는 돌릴 수 있을 거다. 그 로테이션이 대단히 불안하다는 건 차차하더라도 말이다.
허나 만약 또다시 선발진에 이탈자가 발생한다면, 그땐 진지하게 마이너 수준밖에 안 되는 선발을 내세워야겠지.
프런트 역시 그걸 걱정하는 건지, 현재 로테이션이 확정된 선발투수들의 컨디션을 최대한 체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켄달, 션, 그리고··· Go. 거기에 자렐. 딱 이 넷 정도인가?.’
확정된 선발은 대략 넷.
그마저도 진지하게 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앞의 셋이다. 자렐 코튼은 아직 불안하니까.
그 네 선수 중, 밥 멜빈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선수를 먼저 호출했다.
‘Go, 소니마저 없는 상황에선, Go가 가장 중요해.’
이제 겨우 세 경기를 치른 선수지만. 현재 투수진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는 그였다.
그 세 경기만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충분하게 증명했으니까. 소니 그레이가 무너졌던 지난 경기에서도 말이다.
‘그나마 부상위험이 낮다는 게 다행이지만··· 작년 142이닝을 소화했다고 했으니, 마냥 안심할 수는 없어.’
고유석의 부상위험 자체는 낮은 편이다. 훌륭한 신체조건을 갖췄고. 투구폼 또한 크게 뒤틀리거나 꺾이는 동작 없이 부드러우며. 결정적으로 구속이 느리니까.
몸에 과부하를 걸지 않는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는 부상위험이 낮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지난 시즌에 소화한 이닝이었다.
그전 시즌보다 38이닝 이상을 더 소화했기에, 앞서 말한 장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부상에서 아예 초탈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약간의 걱정을 가지고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밥 멜빈은 똥글똥글한 눈으로 들어온 고유석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Go, 어서 들어와. 훈련 중에 갑자기 호출해서 미안하네.”
“아뇨, 뭐, 어차피 훈련이라고 해봐야, 그렉, 아니 매덕스 씨랑 농담이나 나눴는데요, 뭘.”
“그렇다니 다행이군. 일단 앉도록 하게. 아, 혹시 커피 괜찮나?”
“아뇨, 마실 건 괜찮습니다.”
성큼성큼 들어와, 냉큼 앉는 선수는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들끓었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준수한 체격과 꾸준하게 노력해온 건지, 탄탄한 몸은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으니까.
한편으론 그렇게 안심하는 밥 멜빈 자신이 조금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스물넷이라··· 적당한 나이기는 하군. 보통 이때쯤 처음 빅리그를 밟지. 바로 선발투수가 되는 선수는 드물지만.’
아직은 젊고, 어리기도 한 선수, 이제 갓 빅리그를 밟기 직전인 선수에게 주전 이상의 활약을 기대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기량은 충분해.’
그것이 조금 우습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이 선수의 기대치와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였다.
시범경기 내내 엄청난 피칭을 선보이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
밥 멜빈 자신도 그렇고.
“매덕스의 코칭은 어떤가?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네, 뭐. 그냥 영광이죠. 개인적으로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혹시 훈련에서 뭔가 불편하다거나 한 건 없나?”
“딱히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하나씩 물으며, 차근차근 선수의 상태를 파악했다. 컨디션부터 피로도, 몸 상태와 폼까지.
하나하나 최대한 물었고, 숨김없이 대답하는 고유석에 조금 더 안심했다. 최소한 무언가를 숨긴다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으니까.
‘적어도 어딘가 큰 부상징조는 없다는 거겠지. 거짓말을 했다면, 바로 티가 났을 테니까.’
나머지 세세한 부분들은 트레이너들이 파악할 일이니. 거기서 질문을 멈춘 밥 멜빈은 가장 중요한 걸 확인하고자 했다.
바로 멘털리티.
기량은 이미 차고 넘치는 선수지만, 과연 빅리그의 중압감을 이겨낼 만한 정신력까지 갖췄을까?
“갑자기 호출한 건 다름이 아니라, 다음 등판 때문이야.”
“12일, 컵스전 아닌가요?”
“그렇지, 12일 등판이지만, 약간의 변경사항이 있네. 혹시 소니의 소식은 아나?”
“부상이라는 것만 압니다.”
“그래, 그 부상 때문에 그날 선발 등판이 예정됐던 소니의 이후 시범경기 출장이 불투명해졌어. 그래서 대신 자네가 컵스전에 선발로 나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로테이션은 계속 그렇게 유지될 걸세.”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시범경기 선발출장이야 이미 한 차례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그 무게가 달랐다.
밥 멜빈 자신이 일부러 직접적으로 소니 그레이의 이름을 언급했으니까. 그의 빈자리, 그의 로테이션을 고유석이 대신 채워야 한다고 말이다.
‘Go, 너라면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보통 이러면 둘 중 하나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금 긴장하거나.
둘 중에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까.
그저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만 않으면 된다. 어느 쪽이든지 과도하게 반응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위험하니까.
그렇기에 주의깊게 고유석을 지켜 본 밥 멜빈이었지만, 돌아온 반응은 간단했다.
“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하실 말씀은 이게 끝인가요?”
뭐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무게 잡고 하느냐는 식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고유석에 밥 멜빈은 그저 헛웃음을 흘렸다.
‘멘탈은 문제가 없겠군.’
생각보다 용기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똑똑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선수의 멘탈은 자신이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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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뭐 대단한 얘기라고. 대충 알만하네. 소니 그레이 때문에 구단 전체가 걱정이구만?’
이번 면담 덕분에 대략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됐다.
소니 그레이의 부상이 그냥저냥 좀 쉰다고 낫는 정도가 아닌 거겠지. 최소한 정규시즌까지 피해가 갈 수준이리라.
그것 때문에 구단이 덜컥 겁을 먹은 거고. 안 그래도 부족한 선발투수가 하나 날아갔으니. 추가적인 피해가 걱정스러울 테니까.
‘그리고 은근히 1선발 가능성을 흘렸는데··· 그거야 불가능하지.’
앞으로도 쭉 이렇게 로테이션이 이어질 거라는 밥 멜빈 감독의 말은 간단했다.
잘하면 페넌트레이스까지 이어져서, 내가 1선발을 맡아야 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건데. 내가 그런 거에 흔들릴 만큼 모자란 놈은 아니다.
나한테 1선발을 맡긴다고? 그럴 리가. 물론 당장이야 폼부터 올려야 하니, 로테이션을 유지는 하겠지.
허나 시범경기가 끝나면 이틀간의 휴식이 주어지니, 선발투수 로테이션이야 그때 재조정하면 그만이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1선발은 못하지. 설사 사이 영급 실력을 갖췄더라도.’
나한테 1선발을 맡긴다고 해보자. 과연 다른 선발투수들이 가만히 있을까?
켄달 그레이브맨, 그리고 션 마네아. 작년에 활약했던 투수들인데. 자기들 제쳐놓고 갑자기 이제 갓 데뷔하는 놈한테 1선발을 맡기면, 빈정이 상해도 단단히 상하지. 팀 케미스트리는 개판이 날 거고.
구단에서 그걸 모르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가장 걱정하겠지. 스쿼드마저 약한데, 케미까지 박살나면, 성적은 나락으로 처박힐 거니까.
‘그리고 말하는 걸로 봐선, 소니 그레이의 부상 역시 엄청나게 큰 건 아니야. 기껏해야 시즌 초반이나 좀 날리겠지.’
투수들 빈정은 상하고, 정작 오랫동안 유지도 못 할 애송이 1선발이라는 자충수를 구단이 선택할 리는 없다.
그러니 밥 멜빈의 묘한 뉘앙스는 그냥 무시해도 좋고, 정말 중요한 건 12일의 선발등판 그 자체였다.
‘이번에도 못 만나는가 했는데, 잘하면 만나겠네.’
2014년부터 타자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서서히, 하지만 급진적으로.
기본적인 스터프가 약해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야만 했기에, 대충 어떤 방향의 변화가 이뤄지는 건지는 잘 안다.
‘홈런이 늘었지. 그것도 상당히 많이.’
작년, 2016시즌에는 홈런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페넌트레이스 동안 총 5,610개의 홈런이 나왔고. 직전인 2015시즌의 4,909개와 비교하면. 701개, 약 14%의 상승을 보인 거지.
이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놀라운 수치겠지만, 비교 대상을 조금 더 과거로 돌린다면, 굉장히 충격적일 거다.
‘스테로이드 시대 혹은 그 이상 수준이지.’
스테로이드 시대, 약으로 얼룩진 거포들이 즐비했던 그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많거든.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이 나왔던 2000년에 이어 역대 2위니까.
즉 단순히 홈런이 많아진 수준이 아니라. 뭔가 확실한 계기가 있다는 건데, 당연히 나만 이런 움직임을 포착한 게 아니기에, 이미 정답은 나와 있었다.
‘스탯캐스트. 그리고 발사각도.’
스탯캐스트.
최신식 추적 시스템으로. 군사용 레이더 기술을 들여온 거라고 하던데, 아무튼 기존보다 훨씬 더 발전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스탯캐스트가 타구의 속도와 발사 각도를 제공하면서 일이 시작됐다.
발사 각도를 높여서, 뜬공을 만드는 게, 더 결과가 좋다는 결론이 나왔거든. 그리고 그건 성공했다.
여러 타자들이 스윙의 발사각을 높여, 보다 더 어퍼 스윙을 하면서, 홈런이 수없이 양산됐으니까.
‘플라이볼 혁명이라고 하던가? 거창하기도 하네.’
최근 글들을 찾아보면 이런 움직임을 플라이볼 혁명이라고 부르던데, 솔직히 작년 한 해에 피크를 찍은 것이니, 아직은 혁명이 아니겠지만. 현재 진행형인 건 확실하다.
‘결과를 봤잖아. 작년을 통해서, 이론이 증명됐으니··· 당연히 더 심해지겠지.’
증명되고, 현실에서의 결과까지 나온 이론. 그리고 그 이론을 통해 성공하는 모습을 보인 다른 타자들.
과연 프로 선수가, 더 높은 성적을 추구하는 메이저리거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더욱더 많아질 거다. 훨씬 더 집요하게 띄울 거고. 그리고 어쩌면, 올해는 역대 2위의 홈런 기록이 나왔던 작년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기록이 나올지도 모르지.
이런 정보들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어설프게 맞춰 잡으면 X된다.’
이 흐름이 더 확대돼서, 더 많은 타자들에게 퍼진다면, 일정수준 이하의 타자들조차 충분히 장타를 날릴 수 있을 거다. 위험성이 높다는 거지.
그러니 더욱더 확실하게 조져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위 타자들을 확실하게 조질 수 있는가. 그리고 수준이상의 강력한 타자들에게서도 장타를 억제할 수 있는가.’
아메리칸 리그에는 수없이 많은 강타자들이 존재한다.
애슬레틱스가 있는 서부지구 역시 당연히 준수한 타자들이 즐비하고, 파워가 있는 거포들도 제법 있다.
‘당장 트라웃도 있고 말이야.’
내 스터프는 대단하다.
그렉도 가끔 감탄할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그러니 살아남는 거야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만약 지금 리그의 변화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면? 그래도 구위가 통할까? 구속이라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존재하는데?
그리고 단순히 살아남는 정도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빅리그에서도 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강타자들에게도 내 구위가 먹혀야겠지.
‘컵스엔 그걸 시험해보기 딱 좋은 양반이 있지. 바로 다음 경기에서 만날 거고.’
다행스럽게도, 다음 경기 상대는 그걸 알아보기 딱 좋은 팀이었다. 왜 컵스가 좋냐고?
‘크리스 브라이언트.’
작년 NL MVP이자, 데뷔 시즌 신인왕과 올스타. 2년차에 MVP와 2번째 올스타라는 대업을 이룬 타자.
그리고 이런 변화, 플라이볼 혁명의 중심에 선 남자가 컵스에 있거든.
저번 경기에선 못 만났었다. 내가 중간에 출장했고,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교체로 나갔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선발등판이니, 잘하면 붙어볼 수 있으리라.
‘내 구위가 그 양반한테 통한다면, 다른 타자들한테도 어지간하면 먹힌다고 봐야겠지.’
부풀어 오른 흥분감을 느끼며, 감독과 면담하면서 잠시 멈췄던 입을 다시 열심히 오물거렸다. 겸사겸사 이것도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그때 확인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