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45화 (45/316)

45화

이닝을 끝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느낀 건, 사람 심장은 생각보다 튼튼하다는 거다.

터지는 줄 알았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보면, 인간이란 동물이 은근히 강인하게 만들어졌어.

‘통하네, 아주 제대로.’

타자들의 배트가 헛돌았다.

물론 헛스윙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이 만들어봤으나.

굳이 타이밍을 찌르는 하이 패스트볼이나, 브레이킹볼이 아닌. 평범한 패스트볼인데도 헛스윙이 나왔다는 거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패스트볼이 먹힌다는 거지.’

그건 나한테 큰 의미였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 던지는 패스트볼이 약하기에,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도 항상 마음속 한편에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타자에게 타이밍이 읽히는 순간, 언제든지 공략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말이다.

이젠 그게 아니라는 거다.

패스트볼이 위력을 갖췄으니. 타이밍이 잡히더라도, 소위 말하는 먹힌 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그것이 주는 감정은 파도치는 바다처럼 거칠고, 강력했다.

#잘라내기#

“직접 받아보니까, 장난이 아닌데? 옆에서 볼 때도 죽여주더니··· 간만에 받는 맛 좀 나더라.”

“아, 그래. 나도 잘 받아줘서 좋았어. 지금처럼만 받아줘.”

“크하하, 그렇지? 내가 좀 실력이 좋거든.”

브루스 맥스웰.

오늘 경기 호흡을 맞추게 된 포수가 호들갑을 떨며 칭찬했지만, 흥분감 때문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 쳐다보네.’

덕아웃으로 향하며 쓱 관중석을 훑었고. 그들도 나를 봤다.

경악하는 컵스 팬들.

황급히 사진을 찍는 기자들.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

번쩍거리는 플래시.

그래, 저마다 표출하는 방법이 다르다 뿐이지, 사람들은 똑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내 피칭이 그렇게나 놀라웠던 걸까? 흥분감과 함께 묘한 뿌듯함마저 자라났다.

“수고했다, Go. 좋은 피칭이었어. 한 이닝 더 괜찮겠나?”

“당연하죠. 겨우 열한 개 던졌는데. 두 이닝도 더 가능합니다.”

“하하, 마음은 잘 알겠지만, 다음 이닝만 지금처럼 던져줘.”

그대로 덕아웃에 들어가니,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고, 나를 보는 투수들의 경계심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래, 똑똑히 보여줬지.

불펜여포가 아니라, 실전에서도 통한다는 걸, 코앞에서 보여줬으니, 저럴 만도 하지.

기쁨과 흥분감으로 멍해진 머리를 깨워준 건 그렉이었다.

“잘했어. 근데 설마 시범경기에서 삼진 좀 잡았다고 넋이 나간 건 아니지?”

첫 말은 투수코치의 칭찬과 비슷했는데, 그 뒤는 놀리듯 말투를 끌었다.

“···솔직히 조금?”

“그래, 솔직해서 좋네. 좋아 죽겠다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거짓말하면 그건 그거대로 꼴 보기 싫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렉은 내 옆에 앉았다.

예전에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 다들 훔쳐듣기 바빴는데. 생각보다 시답잖은 대화가 많다는 걸 깨달은 건지, 이제는 조금 덜하네.

“그래서, 속은 좀 후련해? 너 혼자 열심히 느끼라고 일부러 내버려뒀는데.”

그래서였나?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기껏 다른 버스에 탑승하기까지 하며, 원정에 따라와 놓고서, 정작 슬로언 파크에 도착하니, 근처에도 안 왔으니까.

피칭에 대한 조언은 물론, 평소처럼 잡다한 농담조차 안 했고.

‘혼자만의 감상시간을 주셨구만.’

그런 배려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서, 뽕맛은 확실히 봤다.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리잖아? 흥분도 되고.

하지만 그가 일깨워준 덕분에 그런 감정들에서 금방 빠져나왔다. 정신도 번뜩 들었고.

“후련하진 않죠. 누구 말마따나, 겨우 시범경기인데. 겨우 한 이닝이고.”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렉은 그제야 장난스런 표정을 던진 채, 투수코치처럼 만족스럽게 웃었다.

“금방 정신차려서 다행이네. 자기 피칭에 자아도취하다가 몇 대 얻어맞을 줄 알았더니. 좋아, 정신도 차린 것 같으니. 이젠 피칭을 해야지?”

“그래야죠. 그나저나, 그렉이 보기엔 어땠어요?”

“글쎄, 다른 건 모르겠고, 이것저것, 아주 신이 나서 던지던데?”

할 말은 없다. 그 말 그대로니까. 불론 내가 리드한 건 아니다. 리드대로 던졌으니까.

포수인 브루스 맥스웰, 혹은 투수코치의 작품이겠지.

하지만 초구가 박히고, 헛스윙하는 메이저리거의 모습에 신이 나서 던진 건 사실이기에, 변명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적달성도 실패했지. 오늘 경기 네 목표가 뭐냐?”

“멋지게 타자를 때려잡고, 사람들 머리에 기억되는 거?”

이번 경기는 쇼케이스다.

달라진 내 모습을 팬들과 프런트에게 제대로 선보이는 게 주목적이니까.

“그것도 맞는데, 그런 다른 사람들 생각 말고. 이번 경기에서 네 스스로 얻어야 할 게 뭐냐고.”

하지만 그렉이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런 건 투구 외적인 거고, 더 나은 피칭을 위해, 이번 경기에서 내가 얻어야 할 게 따로 있었으니까.

“지금 내 무브먼트와 스터프가 실전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하는 거죠.”

“그렇지, 그래서 확인했어?”

“···못 했죠.”

일단 위력을 보기는 했다.

굳이 타이밍을 찌르는 하이 패스트볼이 아니라, 평범하게 박아 넣은 포심에도 타자들은 헛스윙했으니까.

최소한 무브먼트가 죽여준다는 건데. 제대로 확인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일단 한 대 맞아야지. 그래야 공의 위력이 확실하게 보이니까.’

바로 정타를 맞아보는 것.

진정한 구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배트에 맞아야 한다.

그래야 공이 배트를 밀어낼 수 있는지, 그래서 소위 말하는 먹힌 타구로 범타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제이슨 헤이워드가 그나마 파울 하나를 만들긴 했지만, 그건 서클이지. 역회전 때문에 배트 하단부에 맞았고.’

KKK로 이닝을 마쳤고. 그마저도 죽을둥살둥 잡은 게 아니라, 단 11구만에 끝마쳤으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닝이지만, 너무 완벽했기에 도리어 정보를 얻지 못했다.

다음 이닝까지 맡긴다고 했으니. 다행히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문제는···

‘타자들이 칠 수 있느냐는 거지. 힘들 것 같은데···.’

이건 흥분해서 자만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현실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예전부터 자기객관화는 참 잘했다.

그런 자기객관화로 봤을 때, 아직 준비가 덜 된 타자들이 내 공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만큼 무브먼트가 좋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부러 하나 맞죠, 뭐.”

“음?”

그래도 죽어라 던지다 보면, 하나쯤은 때리겠지.

####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지! 우리도 이렇게 가야지!”

“네가 훨씬 낫다!”

6회 초, 우리 공격은 순식간에 끝났다. 앞선 내 피칭에 삘 받은 건지, 잭 레더시치는 삼진만 두 개를 올리며 6회 초를 지워버렸다.

연이은 삼진 쇼 때문인지.

조용했던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고, 몇몇 관중, 아마도 열성 컵스팬들은 보란 듯이 휘파람을 불며 투수를 칭찬했다.

‘얼씨구? 나 말고, 타자 봐, 타자.’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상대 투수와 바톤 터치하며 덕아웃을 나가자, 투수가 나를 째려보는데. 누가 보면 나랑 싸우는 줄 알겠네.

확실히 지난 이닝이 인상적이었던 건지, 관중들도 그렇고, 상대팀 선수들도 그렇고. 보는 눈초리가 달라졌다.

이러니까 진짜 어웨이 같네. 우리 홈이랑 겨우 몇 블록이나 떨어졌다고 말이야.

호기심과 약간의 적의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숨을 가다듬을 때.

“이번 이닝도 시원하게 삼진 잡아!”

아마도 우리 팬으로 보이는 관중이 소리쳤다.

앞서 잭 레더시치를 응원하던 컵스 팬들 목소리보다는 조금은 작지만. 애초에 숫자에서 차이가 나니까.

그래도 귀에 쏙쏙 들어와서, 슬쩍 자리를 확인하고 씨익 웃어주니 더욱더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작년 성적을 보고도 시범경기까지 왔으면, 진짜 팬이라는 건데, 아이컨택 정도는 해줘야지.’

참담한 시즌을 보냈던 에이스인데, 굳이 시범경기 보려고 애리조나까지 날아올 정도면, 구단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단 거지.

녹색의 유니폼을 펄럭거리는 걸 보니, 구단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빵빵해지네.

나중에 경기 끝나고 마주치면, 억지로라도 사인해 줘야겠어. 그런 다짐을 했을 때, 타자가 타석으로 올라왔다.

‘어디보자··· 역시 대타구만. 엘리엇 소토? 잘 모르겠는데. 뭐, 마이너겠지.’

작년 월드시리즈 MVP였던 4번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대신해서, 교체로 나왔는데. 조금 아쉬웠다.

컵스 구단 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MVP와 승부할 기회니, 혹시라도 헤이워드처럼 한 타석 더 세워주지 않을까, 기대했었거든.

헤이워드랑은 달리 작년 성적이 좋았던 선수기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폼을 올릴 이유가 없는 만큼, 두 타석 뛰고 바로 교체됐다.

‘체구가 조금 작네. 저 정도면··· 한 175쯤 되나?’

아쉬움을 삭이며, 그 대신 올라온 타자를 확인했고, 가장 먼저 한 가지 특징이 확 눈에 들어왔다.

바로 상당히 작은 키.

저 정도면 내가 지금까지 만난 야구선수 중에서 제일 작은 거 같은데?

일반인이라면 그럭저럭 평균적인 신장이겠지만. 야구선수들 중에서는 단신 중의 단신이다.

‘스트라이크존 더럽게 짜겠네.’

키가 작은 만큼, 존이 짧아지기에 정상적인 승부를 펼쳤다면 조금 컨트롤하기 까다로웠겠지만,

‘뭐, 상관없지.’

다행히 지금은 존의 크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존안으로 넣을 거니까.

주심의 지시에 맞춰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닝. 포수 맥스웰을 보니, 슬쩍 사인을 보낸다.

우타자라서 그런가 바로 서클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이미 뜻한 바가 있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에 요구한 건 바깥쪽 낮은 포심. 구종은 생각한 것과 같지만, 코스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다시금 고개를 흔든 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사인을 보내자, 맥스웰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 거리더니, 이내 끄덕였다.

‘자, 하나 쳐봐. 그쪽도 아마 마이너 같은데, 눈도장 찍어야지.’

약간의 심호흡.

숨을 고른 뒤, 곧바로 초구를 던졌고. 몸쪽으로 날아간 공을 타자는 가만히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결과는 스트라이크.

일부러 확실하게 존 안으로 집어넣었기에 당연한 결과다. 키가 작아도 존이 짧아지는 거지, 좁아지는 건 아니니까.

‘침착한 스타일인가? 하긴, 그리 파워가 있어 보이지는 않네.’

다시 포수를 보니, 이번에도 서클을 요구했다. 몸쪽 패스트볼 보여줬으니, 바깥쪽 서클로 달아나자는 건데.

정석적이고, 잘 먹히는 볼배합이다. 나도 즐겨 사용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사인을 보내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포수마스크 너머로 포수 맥스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차피 쳐맞아도 내 책임이니까, 그냥 좀 편하게 가자.’

시범경기에서까지 포수랑 힘싸움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력하게 요구하니 못 마땅한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포구자세를 잡았고.

“후우···”

숨을 뱉은 뒤,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면서, 손가락으로는 마디로 공을 꽈악 찍어 누르며 쏘아보냈다.

공을 확인한 타자, 엘리엇 소토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짓다가, 급하게 배트를 내밀었다.

“파울!”

같은 코스였거든.

어찌어찌 공을 후려쳤지만, 결과는 파울. 당연하다.

카운트는 이제 2-0.

체인지업을 예상했던 건지, 스윙 타이밍이 조금 늦었기에 정타를 맞추지 못했으니까.

‘괜히 귀찮게 수싸움 하지 말고. 그냥 잘 받아먹어라. 어설프게 머리쓰지 말라고.’

타자를 지켜보니, 얼굴 표정으로 번뇌가 드러났다. 그래, 나 같아도 저러긴 하겠네.

설마 투수가 같은 코스, 같은 구종으로 공을 세 개를 박아 넣을까, 싶을 테니 말이야.

엘리엇 소토가 자신의 본능을 믿기 바라며, 시선을 포수에게 뒀고, 이쪽도 내 생각을 알아차린 건지, 마스크 속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X되는 건 나잖아. 그러니 그냥 공이나 잘 받아.’

다행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미 빈정이 상한 거라고 봐야 하나? 사실상 내 멋대로 두 개 던졌으니까.

앞으로 나랑 호흡 맞추려면 익숙해져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럼 가자.’

마지막 3구.

똑같은 자세, 똑같은 그립으로, 똑같은 지점을 향해, 똑같은 공을 던진다.

대놓고 보여준 의도에 고민했던 타자였지만, 깊은 인상을 남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던 건지.

타자 역시 과감하게 타격폼을 잡으며, 날아온 공을 받쳐놓고 때렸다.

‘정타?’

배트의 중간, 스윗스팟에 제대로 걸친 공.

작년에 패스트볼이 저렇게 걸렸으면, 정타 정도가 아니라, 넉넉하게 펜스도 넘고, 구장도 넘어갔을 텐데.

‘아니, 밀렸어.’

지금은 배트가 밀렸다.

분명 타이밍도 제대로 잡았고, 스윙과 공으 코스가 일치했다. 그러니 모든 힘이 실렸을 텐데. 마치 큰 반발력이라도 받은 것처럼, 배트가 조금 밀렸다.

“아웃!”

맥없는 타격음을 내며, 떠오른 공은 간신히 내야를 벗어나는데 그쳤고. 유격수가 손쉽게 타구를 캐치했다.

이것으로 더욱더 확실해졌다.

지금 내 구위의 위력이.

‘어중간한 힘으로는, 정타를 때려도 홈런은커녕, 외야 근처도 못가겠네.’

일단은 열심히 1루로 달리던 타자는, 아웃된 순간, 곧바로 방향을 틀어, 컵스 벤치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손이 저릿한 듯 휘휘 젓는데, 신기하네. 예전에는 패스트볼이 너무 가벼워서 문제였는데. 이제는 정타를 때려도 도리어 배트가 밀려서 타자가 손이 아플 정도가 됐으니 말이야.

‘어쨌든 이걸로 대략적인 구위는 알았어. 그럼 이제 남은 건···’

뒤이어 올라오는 타자를 봤다. 카를로스 세풀베다. 얘도 영 모르겠다. 엘리엇 소토보단 크지만, 얘도 키가 작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이제 볼 거 다 봤으니···

‘그래, 그걸로 가자.’

“스트라이크!”

다시 열심히 때려잡아야지.

초구 슬라이더. 존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공에 크게 헛돌은 좌타자는 억울한 듯 나를 봤다.

마치 앞에 놈한테는 존 안으로 패스트볼만 세 개 던져놓고, 왜 자기한테는 시작부터 유인구성 슬라이더를 던지느냐고 묻는 것처럼.

물론.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대답은 공으로 대신했다.

2구로 몸쪽 포심. 마지막 3구는 바깥쪽 낮은 코너로 포심을 박아 넣으며 타자를 떠나보냈다.

깔끔한 삼구삼진.

뒤이어 올라온 카를로스 코퍼랜 역시 5구째 삼진으로 처리하자, 아까 전 잭 레더시치의 삼진으로 흥겨웠던 컵스 팬들이 다시금 불쾌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 기분 좋아.

역시 공이 아무리 좋아도, 불펜피칭으로는 부족하단 말이야.

타자도 때려잡고, 저렇게 관중들 반응도 좀 있어야 야구할 맛 나는 거지.

‘난 챙길 거 다 챙겼으니, 경기 재밌게들 보슈.’

실전에서의 위력도 확인했고. 간만에 타자들 잡으면서 기분도 좋아졌고. 거기다 2이닝 무안타, 무볼넷 5K라는 멋들어진 성적까지 기록했으니.

이만하면 챙길 건 다 챙겼네.

####

<고유석, 컵스 상대로 시범경기 2이닝 5탈삼진 완벽투!>

반응은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나왔다.

마이너리거들은 이를 악물고 임하는 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피칭이었으니까.

<느리지만 강력한 흑마구! 고유석 세 타자 연속 탈삼진 하이라이트>

<‘KKK’로 시범경기 개막전 최고의 장면을 연출한 Go>

특히나 5회 말, 선보였던 세 타자 연속 삼진은, 캑터스 리그 개막전의 하이라이트였고.

삼진 장면들은 짤막한 영상으로 편집되어,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 올라가기도 했다.

물론 시범경기에서 잘한 선수는 항상 존재해왔고. 그것이 곧 페넌트레이스에도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최소한 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A’s]

[오늘 Go는 진짜 Amazing했어! 실링 터진 거 같은데?]

[#A’s]

[선발진 박살나서 걱정했었는데. 진짜 다행이야! 이대로만 가자, Go.]

[#A’s]

[서클 체인지업이 무슨 UFO던데? 매덕스를 인스트럭터로 모셔왔다더니. 좌완 매덕스를 만들어버렸네!]

[#A’s]

[이거 봐, 빌리 빈은 항상 대책이 있다니까? 선발진 망하니까, 바로 한 명 튀어나오네.]

투수들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애슬레틱스의 팬 커뮤니티에는 곧바로 고유석의 영상이 나돌았고.

그렉 매덕스가 인스트럭터라는 걸 떠올려낸 몇몇은 그가 수제자를 만들었다며 칭송하기도 했다.

물론 매덕스 본인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말이다.

[#A’s]

[겨우 시범경기에서 2이닝 잘 던진고 가지고 호들갑 좀 떨지 마.]

[#A’s]

[첫 경기야 첫 경기. 겨울 지나서 하는 첫 경기라고. 타자들이 멀쩡할 것 같아?]

[#A’s]

[타자들 폼이 덜 올라와서 먹히는 거지, 저런 구속은 절대로 빅리그에서 안 통해.]

물론 항상 반대의견은 있다.

특히 고유석 같은 경우는 워낙 명확한 단점이 있다, 보니, 더욱더 반대의견이 나오기 쉬웠고.

그렇기에 몇몇 이들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며, 뜨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들었지만.

[#A’s]

[Fuckoff, 개소리할 거면 다른데서 해.]

[#A's]

[그렇게 쩔어주는 공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A’s]

[Go의 구속? 느리지. 그건 사실이야. 근데 안 통할 거라고? 글쎄, 우리가 인스트럭터로 데려온 양반이 현역 때 몇 승을 올렸더라? 3,000 삼진도 넘긴 거로 기억하는데.]

[#A’s]

[오늘 보니까 Go도 최고구속이 87마일 밖에 안 나오던데. 원래 89마일인 거 감안하면, 그럼 Go도 풀 컨디션 아니지 않아? 그럼 서로 같은 상황 아닌가?]

이미 타오른 불꽃은 양동이 정도로 꺼트릴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거세게 불꽃이 치솟았을 뿐.

지독하리만큼 투수가 부족하거나, 부진했던 에이스였기에, 새로운 선발투수, 그것도 실력이 좋아 보이는 유망주는 작년의 혹한으로 말라비틀어진 에이스 팬덤을 활활 불태우기 충분했다.

그렇게 한순간 뜨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A’s]

[이번 시범경기는 Go보는 맛으로 봐야겠네.]

고유석이라는 이름이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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