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면, 미국 각지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덕에 시범경기 리그-자몽리그, 선인장리그-가 열리는 플로리다와 애리조나는 한동안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메이저리거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기에, 비행기 티켓값도 마다하지 않는 거지.
일단은 그런데, 마이너 애들 중에서 메이저 캠프에 가본 몇몇의 증언에 의하면 에이스는 그딴 거 없다고 한다.
‘인기팀이 아니니까. 특히나 작년 시즌 말아먹었으니, 이 먼 곳까지 올 만큼 애정이 생길 리가···’
없어야 할 텐데.
뭐야, 왜 저렇게 많아?
제법 정이 들었던 피닉스의 숙소를 떠나, 도착한 메사.
피닉스의 위성도시기에, 말이 다른 도시지, 사실상 교외지역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편하게 캠프 장소인 호호캄 스타디움(Hohokam stadium)으로 갔는데, 듣던 것과 다르게 사람이 바글거렸다.
애슬레틱스는 인기 없어서 사람 별로 없을 거라더니. 역시 썩어도 준치라고, 메이저리그 팀이라는 건가?
“사람, 엄청 많네요.”
“네, 조심하십시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상보다 많은 인파에 함께 따라온 대니얼 역시 놀라운 듯 주의를 줬고. 브라이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수진 합류일이니까, 소니 그레이인가? 하긴, 그 양반은 프랜차이즈 스타니, 사람이 모일 법도 하네.’
오클랜드도 아닌, 애리조나에서, 에이스 선수 중 저 정도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두 명밖에 없다.
작년 엄청난 시즌을 보냈던 크리스 데이비스와 기존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소니 그레이.
부상으로 시즌을 말아먹었다고는 해도, 소니 그레이는 누가 뭐래도 A’s의 에이스니, 아마 그일 가능성이 높았다.
투수진 합류일인 14일이라, 크리스 데이비스는 아직 자기 집에나 있을 테니까.
‘괜히 부럽네. 저 사람들, 나한텐 관심도 없겠지?’
진짜 메이저리거의 인기를 실감하니 괜히 가슴이 근질거렸다.
“가보죠.”
“준비되셨습니까?”
“네, 뭐. 충분하죠. 몸도, 마음도.”
“다행이군요, 대니얼, 스프링 트레닝 동안 Go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하라고 돈 받는 건데, 열심히 해야죠.”
차에서 내리기 전, 브라이언은 마지막으로 우릴 훑었고, 능청스런 대니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브라이언을 뒤로한 채, 우리도 인파들 사이로, 정확하게는 정문으로 걸어갔고. 가까워지자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뚜렷해졌다.
“정말 영광입니다,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
“혹시 에이스의 코치가 되신 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어릴 적 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제발 애슬레틱스로 왔으면 좋겠다고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한테 기도했었는데. 이제야 이뤄졌네요.”
뭔가 좀 이상하다?
사람들은 마치 현역 선수가 아니라, 은퇴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애매했는데, 곧 웬 거대한 놈이 다가가니, 쓱 갈라지는 사람들 덕분에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을 본 순간, 나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매덕스?”
“예예, 매덕스 맞으니까, 사인받을 거면 잠시 기다리- 음? 오, 네가 그 투수군.”
아니,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이러니 난리가 나지.
애슬레틱스고 나발이고, 그렉 매덕스를 봤는데, 사인 안 받고 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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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사인회는 10분쯤 더 지나고 나서야 막을 내렸다.
“은퇴한 지 이제 10년쯤 되가는데, 아직도 다 알아보네. 이런 거 보면 사람들 기억력 참 좋아.”
이 위대한 분께서는 새삼 사람들의 기억력에 감탄하시며 열심히 펜을 놀렸던 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리셨다.
옆에 꼽사리 껴서 나도 몇 번 해주기는 했는데, 새 발의 피 수준이지. 죄다 저쪽으로 몰렸으니까.
그리고 그건 단순히 일반인들의 문제가 아닌 건지, 함께 경기장으로 입성하는 순간 주변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 사람 매덕스 아니야?”
“매덕스가 여길 왜 와?”
“인스트럭터 아니야?”
“우리 팀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인스트럭터를···”
“이번 시즌 진짜 제대로 준비하려는가 본데? 매덕스까지 모셔온 거 보면.”
“가서 말 걸어 볼까?”
투수, 포수들의 합류일이기에 죄다 수군거리기 바빴다.
죄다 익숙한 얼굴들인데, 몇몇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NL 사이 영 4회. 골든 글러브 18회. 올스타 8회. 통산 355승 227패 5008.1이닝, ERA 3.16, 3,371삼진 991볼넷.
이런 아름다운 기록들로 빛나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 직접 강림했으니···
‘나도 솔직히 기분이 이상한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그가, 아니, 이분이 인스트럭터 제안을 수락했다는 걸 미리 전해들은 나조차 이게 꿈같은데, 몰랐던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는 없다.
“웬 애송이 덕분에 현역 때도 안 입어봤던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다 입어보네. 요즘 유니폼 잘 나오는군. 신축성이 나쁘지 않아.”
거기다 특별강사라는 걸 확인시키듯이 에이스의 초록색 유니폼까지 입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피지컬이 더 좋은데? 내가 이런 몸이었으면, 100마일도 우습게 던졌을 것 같은데 말이야.”
“어··· 뭐, 사람 따라 다른 거죠.”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매덕스는 그 말이 정답이라는 듯 클클거렸다. 아니, 그보다 이런 캐릭터야?
“그래서, 커트 앵글. 나한테 뭐가 배우고 싶다는 거야? 영상 보니, 나 없어도 알아서 잘하겠더니만.”
“커트 앵글?”
“이름이 You-Suck이라며. 아, 혹시 커트 앵글을 모르나? 코리아 출신이라고 했으니까.”
“아뇨, 알긴 아는데···”
“그럼 커트 앵글로 가자고. 계속 You-Suck이라고 부르려니, 좀 그래서. 아, 네 이름이 이상하단 건 아니고. 발음만 같은 거겠지. 코리아 말로는 다른 의미일 테니까.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고.”
대뜸 사람을 커트 앵글로 부른다. 그, 빡빡머리 프로레슬러 있잖아. 어릴 때 봤던 기억이 나네.
처음 들어본 건 아니다.
더블A에서는 그냥 Suck으로 불렸지만, 그전에는 종종 커트 앵글로 부르는 놈들도 있었거든.
상스러운 단어를 입에 담기 싫다는 이유인데. X새끼들이지. 사람 이름을 진짜 대놓고 욕 취급한 거니까.
아, 매덕스가 그런 사람이란 건 아니고. 아니, 맞나? 아무튼 그렇게 부르는데, 기분이 묘했다.
내가 알던, 아니, 내가 상상했던 그렉 매덕스와 거리가 멀었으니까.
‘뭔가 좀··· 사람이 가벼운데?’
프로페서, 마스터. 그런 별명을 지닌 위대한 투수기에 위엄차고, 근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다, 매덕스라는 남자는.
그렉 매덕스가 아니라, 그레고리 앨런 매덕스는 이런 사람이었던 거겠지.
아무튼 뭘 배우려고 하는 거냐고 물었지? 그야 당연히···
“투심이죠.”
“그래, 그거야 당연하고. 그다음은?”
“커터도 배워야죠. 잘 던지신다고 아는데···”
“던질 줄은 알지. 그리고?”
“서클도 다듬어야 합니다.”
“그건 왜? 이미 나보다 낫- 아니, 나보다 쪼~끔 못한 수준이던데 굳이? 아무튼 그다음은?”
“타자 상대법도 배워야 하고, 시즌 관리도 배워야 하고, 경기 계획이랑 마음가짐, 그리고 피칭 영점 잡는 법도···”
“그래그래, 그냥 다 배우고 싶다는 거네. 괜히 장황하게 말하지 말고, 앞으론 그렇게 말해.”
매덕스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배우고 싶냐고 말하라고 하셔놓고, 왜 그러십니까, 교수님.
“이거, 아주 탐욕스러운 놈이었네. 하긴, 얼굴에도 욕심이 아주 그득해.”
“향상심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더 발전하기 위한 마음가짐?”
“흐음··· 아무튼 뭘 말하는지는 알겠어. 그냥저냥 파트타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탐욕스러운 놈으로 몰아놓고는 정작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열심히 해야겠네. 애 하나 키우는 것도 재밌지.”
“제가 아들뻘이기는 하죠.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웃기지마, 내 아들은 너보다 잘 생겼어. 일단 몸부터 풀자. 빨리 공을 봐야지, 못 기다리겠네. 나이가 드니 인내심이 떨어졌단 말이야.”
입안이 바짝 말랐다.
매덕스가 보는 앞에서 공을 던지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굳게 고개를 끄덕이자, 매덕스는 피식 웃으며 내 등판을 후린 뒤 앞장섰다.
몸 풀자더니, 어디로 가시는 거지? 아니, 그보다도 길은 아시나?
“저기-”
“걱정 마십시오. 여긴 원래 컵스의 스프링 트레이닝 홈이었습니다. Mr. 매덕스가 길을 모를 수가 없죠.”
내가 멈칫거리자, 매덕스랑 마주친 뒤부터 조용히 따라만 오던 대니얼이 슬쩍 말했다.
같이 몇 달 지내서 그런가, 척하면 척이네.
“그런데, 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솔직히 조금 힘드네요. 내가 매덕스랑 같은 공간 안에 있다니···”
그는 부쩍 호흡이 가빠졌다. 이제 보니 얼굴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혹시 감기라도 걸렸나 싶어 바라보자, 대니얼은 그제야 자기 꼴을 깨달은 건지 조용히 속삭였다.
“저 애틀랜타 출신입니다. Go의 트레이너를 맡게 된 건··· 제 인생 최고의 영광입니다. 진심으로요.”
“···예,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적어도 내가 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직업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몹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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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 언제 온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박기자야 말로 뭐 아는 거 없어?”
“나도 딱히···”
호호캄 스타디움에는 구단 관계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벤트에 가까운 스프링 트레이닝이라, 출입이 허락된 기자들이나, 구단 팬들도 가까이서 선수들을 관람하는 게 허락됐으니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경우 한국과 그리 인연이 없었기에, 원래는 메사에서 한국 기자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고유석의 메이저 캠프 합류과 확정되고, 레귤러까지 걸려있다는 소식에 올해는 제법 몰려들었다.
박기자 자신도 그런 기자들 중 하나였고.
“어? 저거 고유석 아니야?”
“어디, 어디.”
“동양인···이긴 한데, 쓰읍, 고유석 맞나?”
“애슬레틱스에 동양인이 고유석 말고 또 있어? 야야, 빨리 사진 한 장 찍어!”
“옆에는 트레이너인가?”
“그렇겠지. 옆에 나이 든 사람은 코치 같고.”
“오호라, 타이틀 뽑히네. 코치도 버선발로 마중 나오는 최고의 유망주, 어때?”
“너무 쌈마이하지 않아?”
“그 맛에 기사 보는 거지~”
기다렸던 선수가 들어오자,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미리 설치해뒀던 카메라도 플래시를 터트렸고.
그들은 벌써부터 기사 내용과 제목을 떠올린 듯 낄낄거렸지만, 박기자는 그들이 역겹게 느껴졌다.
‘X발 야구전문 기자라는 새끼들이, 그렉 매덕스를 못 알아보면 어쩌자는 거야?’
그저 나이든 코치라고 생각하는 다른 기자들과 다르게. 그는 정확하게 저 장년 남성의 정체를 알았다.
그렉 매덕스, 그가 대체 왜 여기에, 그것도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고, 심지어 고유석과 함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매덕스가 확실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격미달의 동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스였으니까.
“찍을까요?”
“너무 타이트하잖아. 옆에 매덕- 아니, 코치도 같이 나오게 찍어.”
“어··· 왜요?”
“하라면 해, 새끼야. 토 달지 말고.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주변의 눈치를 보고 나직하게 말하자, 알아먹지 못하는 부사수가 짜증나서 쏘아붙인 박기자는 애써 목소리를 꾹 참았지만. 목이 미치도록 뜨거웠다.
카메라 렌즈에 찍힌 얼굴은 조금 나이가 들기는 했어도, 그가 아는 매덕스가 맞았으니까.
‘매덕스가 오클랜드 코치로 부임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아니, 애초에 코치할 거라면, 브레이브스나 컵스였겠지.’
남은 건 하나. 특별강사다.
애슬레틱스가 특별강사로 그를 초청한 건데, 대체 왜?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뭐가 됐든, 이거 뜬다. 한국인 유망주를 지도하는 레전드 투수? X발 이거 못 띄우면 기자 접어야지.’
“최대한 잘 찍어. 어떻게든 코치 얼굴도 같이 나오도록.”
몸을 푸는 건지, 러닝부터 시작하는 고유석에 지루한 듯 다른 기자들의 기세는 누그러졌지만, 박기자는 다시금 부사수를 채찍질했다.
그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진 하나는 기깔나게 찍었기에 A컷 몇 장을 건졌고, 곧 얼마 자니자 않아, 오늘의 메인이벤트가 다가왔다.
“불펜··· 가는 거 같지?”
“야야, 카메라 옮겨.”
“사진 못 찍으면 죽는다?”
워밍업을 마친 듯, 어딘가로 걸어가는 고유석의 옆에는 매덕스와 트레이너 외에도 한 명이 더 붙었다.
진짜 애슬레틱스의 코치인데, 피칭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리라.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황급히 자리를 옮긴 박기자였지만, 솔직히 그에게 고유석의 피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2월인 거 감안하면, 구속이 더 느리겠지. 기껏해야 80마일 초반대, 아니 70마일 대가 나올 수도 있어.’
아무리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그런 구속으로는 이슈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코웃음만 치겠지.
‘고유석이 구위가 좋은 편도 아니니까, 그보다는 차라리 매덕스에 집중해야지.’
재능에 반해서, 흥미가 생겨서, 구단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무려 매덕스가 고유석의 개인강사가 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
구단이 그만큼 고유석을 챙긴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고유석이라는 선수의 잠재력도 적당~히 보여줄 수 있다.
이게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인다는 게 중요했지.
“고유석도 고유석이지만, 코치 반응도 놓치지 마. 입꼬리만 조금 올라가도, 무조건 찍으라고.”
“대체 뭔데 그러세요?”
“···옆에 저 사람이 매덕스야.”
“예?”
“쉿, 조용히 하고. 지금 우리만 아는 것 같으니까, 집중하자?”
“넵.”
투덜거리던 부사수에게 나직하게 말해주자, 화들짝 놀랐지만, 어깨를 꽉 누르니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짬이 딸려서 그렇지, 얘도 기자니,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은 거겠지.
‘타이틀은 뭐로 할까? 매덕스, 고유석에게 감탄? 이건 너무 쌈마이하고. 그럼 고유석을 위해 레전드 초청도 불사하는 오클랜드? 너무 길어. 매덕스라는 이름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투구자세를 잡는 고유석에게 두 눈이 향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매덕스로 가득했다.
그 정도의 소스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가, 이번 기사의 메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도리어 뒷전으로 밀려난 고유석의 피칭이었지만···
-퍼엉!
그런 박기자를 일깨우듯.
포수 글러브를 때리는 압도적인 소리가 절의 경종처럼 청아하게 머릿속에 울렸다.
“어?”
“어- 좋은데?”
“뭐야, 고유석 구위 약한 편이라고 하지 않았어?”
몰려들었던 기자단이 한순간 술렁거렸고, 박기자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들도 있었다.
우스운 건, 그렇게 놀란 게 그들뿐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다른 관람객들이나, 먼저 와서 공을 던지던 투수들, 지켜보던 코치. 죄다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으니까.
-퍼엉!
-퍼엉!
피칭은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일정하게 이뤄졌고, 굉음을 내던 포심을 시작으로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슬라이더에 열기는 더욱더 달아올랐다.
“음, 고유석 사실상 직구랑 슬라이더 투피치 같은데?
“체인지업 대단하다더니, 생각보다 별로야. 그보다는 직구가 제대로네.”
다만 많이 아쉬운 커브와 조금 아쉬운 체인지업으로 다시 잦아들었고, 감탄했던 사람들은 안정을 찾았지만···
-뻐억!
마지막 순간, 마치 반전을 선사하듯 압도적인 궤적을 뽐내며 날아간 서클 체인지업에 한 마디씩 내뱉던 말들이 모두 사라졌다.
공을 받아주던 불펜포수는 처음으로 공을 놓쳤고, 마스크 사이로도 보일 만큼 그의 두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포구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다. 모두 다 똑같은 표정이었으니까.
“허.”
놀라운 모습을 보여 놓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고유석과 흡족한 미소를 짓는 매덕스를 보며, 박기자는 생각했다.
“고유석···.”
‘진짜로 가능하겠는데?’
어쩌면, 언론의 호들갑에 불과했던 빅리그 데뷔가,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