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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39화 (39/316)

39화

빠악-

가죽으로 만든 표적지가 요란한 비명을 내질렀다.

포수글러브에 공을 정확하게 박아 넣었을 때도 이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소리가 귀에 익었다.

저것보다 더 작으면 오히려 막 불안하고, 뭐가 잘못된 건가 안절부절 못할 정도로.

“여전히 공이 좀 뜨네요.”

“그래도 처음과 비교하면 훨씬 낫습니다. 금방 적응했어요. Mr. Go는 손가락이 섬세하신 것 같네요. 컨트롤이 좋은 걸 보면. 악기를 배우셨어도 잘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체르니 정도는 쳐봤어요. 엄마가 살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오, 좋은 어머님을 두셨군요.”

숨통을 죄여왔던 문제가 명쾌하게 풀려서 그런지, 대니얼은 부쩍 농담이 늘었고. 지금처럼 실없는 대화도 자주 나눴다. 함께 난관을 넘으면서 가까워진 거겠지.

물론 농담따먹기만 하는 건 아니다. 구위가 좋아졌다고 끝이 아니니까.

남은 트레이닝 기간의 최우선 목표는 제구를 잡는 것.

똥볼에 익숙한 감각은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박히는 공을 하늘 위로 날려보냈다.

‘최대한 집중해도 볼 두 개, 아니 한 개 반 정도. 일주일만에 이 정도면, 그래도 많이 잡혔네.’

원래는 서클과 함께 제구가 긁히면서, 원하는 지점에서 볼 반 개 안쪽으로 컨트롤이 가능했다.

정확하게는 영점을 잡으면 그런 거고, 코너워크를 넘나들 때는 그보다 조금 공이 튀었지.

제구 하나는 웬만한 메이저리거들 쌈싸먹을 정도였는데, 힘이 실리기 시작한 공은 생각보다 조금 더 날뛰었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아니,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힘이니, 야생마라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승용마라고 해야겠네.

‘그래도 생각보다 컨트롤이 빠르게 잡혀. 캠프 합류까지 꽤 남았으니 최소한 그전까지는 손에 익힐 수 있겠어.’

손가락에 새로운 공, 구위에 대한 감각을 덧대는 작업은 생각보다 쉬웠다.

대니얼의 말처럼 섬세한 손가락을 지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있었던 거라서 그런지, 밸런스가 금방 잡혔으니까.

그 덕에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제법 손에 달라붙었다.

이만하면 준비는 됐겠지.

“지금 제 스터프, 대니얼이 보기엔 어때요?”

“훌륭하죠. 더할 나위 없이.”

뜬금없는 물음에도 대니얼은 즉답했다. 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립서비스 일수도 있겠지만,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구위가 좋다는 말을 듣는 게 참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은 일이라, 이미 입꼬리가 씰룩거렸지만, 부족했다.

더 정확한 평가를 원했으니까.

“수준으로 따진다면요? 메이저리거들도 많이 봤을 텐데. 비교하면 어느 정도예요?”

“글쎄요 수직 무브먼트, 수평 무브먼트, 회전수. 모두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니 그런 쪽으로는 말하기 힘들지만···”

더 깊이 파고드는 물음에 조금 당황한 듯 입맛을 다신 대니얼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피식 웃었다.

“최고. 최소한 지금까지 제가 만나봤던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Mr. Go가 최고입니다.”

“립서비스도 있겠죠?”

“물론이죠. Go가 지금 제 클라이언트니, 비위를 잘 맞춰야 하니까요.”

농담처럼 대화가 끝났지만, 아예 농담인 건 아니었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자신감이 느껴졌거든.

“그럼 매덕스도 만족할까요?”

“예? 매덕스라니···”

“뿅가서 눈에 하트도 그려졌으면 좋겠는데.”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최대한의 실링을 끌어냈다. 그로인해 더 높아질 수 없을 만큼의 스터프가 만들어졌고.

이 정도면 준비는 끝났지.

‘이제 브라이언 차례야.’

트레이닝을 시작한 이후, 브라이언과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가 맡은 다른 선수들도 있고, 겨울은 특히나 에이전트들이 가장 바쁠 시기니까.

그가 아무리 날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아직은 준 메이저리거에 불과한 선수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가 없지.

나도 훈련에 집중했기에 딱히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그가 필요했다.

“피칭 영상은 모두 촬영되어 있죠?”

“네, 에이전시로 보내야 하기에, 모두 저장 중입니다.”

“분석 말고 다른 이유로 쓸 차례가 됐네요.”

무기는 충분히 있다.

꼼꼼하게 촬영해준 대니얼 덕분에 연습피칭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피칭이 자료로 남아 있으니까.

‘이제 확답을 받아야지.’

시대를 집어삼킨 거인에게서 사인을 받아낼 시간이 왔다.

####

닭살이 돋았다.

피닉스에서 보내온 영상은 숱한 메이저리거들을 보고, 구단에게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분석했던 에이전트조차 전율이 돋게 할 정도의 충격을 머금고 있었다.

“이게··· 진짜 Go라고?”

적막이 감돌던 사무실에 브라이언의 말소리가 공허하게 울렸고.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브라이언 역시 저도 모르게 숨을 토해내듯 뱉은 말이기에 상관없었고. 답이라면 어차피 노트북 안에 있기에 상관없었지만.

-파앙!

-나이스 볼. 한 구 더 가보죠. 같은 코스로.

-더 강해졌죠?

-네,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눈으로 보기엔 더 무겁네요. 감각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영상 속의 두 남자는 꽤나 익숙한 듯 서로 사견을 주고받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과거의 고유석을 아는 브라이언에겐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니었지만.

-파앙!

-굿 샷.

‘이게 Go의 패스트볼이라고?’

비슷한 영상을 벌써 몇 개째 보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Mr. Go, 고유석이라는 투수는 부족한 스터프를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압도적인 브레이킹볼과 천부적인 제구력으로 채우는 선수였다.

그 두 가지로 더블A 타자들을 요리조리 농락하며 성적을 올렸지만. 스터프는 형편없었지.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트레이너까지 섭외한 거지만··· 이건 상상이상이군.’

구위가 늘어난다고 해도, 적당히 평균 정도, 아니 사실 그보다도 조금 못 미칠 거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스터프 자체가 심하게 떨어지는 선수였기에, 이번 오프시즌에서 그 정도의 수확한 얻어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정작 나타난 결과물은 그런 예상에 코웃음 치듯 수준이 달랐다. 한 계단이 아니라 한 층이 올라갔으니까.

마치 엘리베이터라도 탄 것처럼.

‘엘리베이터, 설마···’

우습게도 결과가 너무 좋았기에 오히려 걱정이 생겼다.

간혹 트레이너라는 사람들이 선수에게 ‘디자이너’가 되어 주기도 하니까.

누구보다 선수의 신체에 익숙한 이들이기에 그에 맞는 ‘약물’을 찾기도 훨씬 쉽지.

대니얼이라는 이름이 선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이유가 설마 그런 것이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확장된 브라이언이었지만, 이내 너무 갔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다면 금방 소문이 났겠지. 새어나갈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사무국의 행동은 늦더라도, 소문은 금방이야. 그리고··· Go는 설사 그런 권유를 받더라도 코웃음 칠 사람이지.’

그런 스터프로 더블A까지 꾸역꾸역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프로의식을 증명해줬다.

질 나쁜 선수였다면 벌써 손을 대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트레이닝의 결과물이라는 건데··· 허, 곧 있으면 대니얼이라는 이름이 금보다 귀해지겠군.’

수준이하의 스터프를 수준이상, 아니, 정상급으로 만들어낸 트레이너. 마다할 투수가 있을까?

이미 정상에 도달한 선수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손을 내밀 거다. 지금의 결과물만 하더라도 이 정도인데···

-서클 한번 더 가도 될까요?

-5구 정도면 괜찮습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포심은 맛보기였다는 듯, 서클과 슬라이더가 다시금 브라이언의 뒤통수를 때렸다.

20-80 스케일 기준.

45점(평균이하) 정도는 되었던 슬라이더가 55점(평균이상)까지 올라왔다.

기준은 당연히 빅리그.

원래도 A급 투수의 주무기 수준인 Plus(60) 등급은 되었던 서클은···

‘65, 아니, 거의 Plus-Plus(70) 수준이야. 낙폭이 줄어든 대신 역회전이 훨씬 급격하다. 분명··· 18K를 올렸던 날이 이랬었지,’

이걸 서클 체인지업이라고 봐야 할까? 그런 근본적인 물음마저 생겼다.

처음 에이전트를 시작하고 일을 배웠을 때, 투수 고객이 혹시라도 배우면 무조건 말리라고 이야기를 들었던 스크류볼, 낡은 옛날 영상으로나 봤던 그것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물론 구종의 매커니즘이 조금 다르니, 스크류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브라이언의 눈에는 그것과 비슷했다.

‘커브도 꽤나 준수한 수준까지는 올라왔고. 원래가 20점이었다면, 지금은 30점 정도는 되겠군. 쓰리핑거는 스터프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거의 그대로지만. 나머지가 급격하게 강해졌으니, 변칙적인 위력은 더 올라갔다.’

만약 고유석이라는 선수를 알고, 그의 피칭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에게 지금 영상을 보여준다면. 같은 선수라는 걸 알아볼까?

‘에이전트인 나조차도 이런데, 그럴 리가 있나.’

브라이언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백이면 백, 모두 고개를 저을 거라고.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적당한 유망주 정도로 생각했는데, 유니콘이었을 줄이야.’

상장되지 않은 스타트업 회사의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기면 유니콘 기업이라고 지칭한다.

브라이언의 눈으로 바라본 이정우는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유니콘이었다.

오로지 자신만 아는 환상 속 동물처럼 강력하고, 아름다웠으니까.

‘그러니 제대로 투자를 해야지.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확실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그는 어째서 고유석이 이 영상과 자료를 자신에게 보낸 건지 잘 알았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하였으니, 합당한 보상을 가져오라는 거겠지.

작년 여름처럼 이번에도 스스로 모두 완성해낸 고객이었으니, 브라이언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이런 건 웬만하면 수필이 낫겠군.’

보낸 자료를 복사하고, 볼펜을 드는 것. 적당한 문구는 많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자극적인 말들 중 하나를 택하면 되겠지.

모든 것이 완벽하고, 꿈만 같은 상황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에이스쪽도 놀라겠군. 정말로 이럴 줄 알았다면, 작년 트레이드 때 어떻게든 다저스로 보냈어야하는 건데.’

작년 트레이드 마감 전까지 열렬한 관심을 보냈던 다저스를 비롯한 여러 빅마켓으로 고유석을 보내지 못했다는 거였다.

경쟁이 치열할 것이기에 애초부터 계획 안에도 없었던 곳들이지만, 지금의 모습이라면···

‘경쟁자가 누구든지 가볍게 찍어 누르고 선발진 하나를 쟁취했을 텐데. 아쉽군.’

####

“나한테 소포 온 거 없어?”

“당신은 어떻게 내 얼굴만 보면 그 소리야? 없어, 오늘도.”

남자, 매덕스의 물음에 그의 아내는 그를 가볍게 흘겼다.

최근들어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처럼 매번 저렇게 묻고는 했으니까.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아내의 시선에 괜히 얼버무린 그였지만, 사실 그랬다. 신기하고, 궁금하며, 묘하게 마음이 끌렸으니까.

구속이 느려서는 그런 건 아니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의 시대의 80마일 중후반과 지금 시대의 80마일 중후반은 다르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 구속이 놀랍도록 올랐기에 상대적으로 따진다면, 그 투수는 오히려 매덕스 자신보다 구속이 더 느리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주제에 요상하게 타자를 잘 잡는단 말이지.’

심지어 구위도 약한 놈이.

제구는 제법이긴 하다.

서클 체인지업도 죽여주고.

적당한 머리가 있고, 제구가 좋으면서, 확실한 브레이킹볼이 있으니. 타자를 잡는 능력은 갖춘 셈이기는 하다.

물론 딱 더블A까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 이상은 힘들어.’

타이밍을 제법 잘 흔든다고는 하나, 빅리그에는 타이밍이 흔들려도 억지로 맞추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만약 그 투수에게 자신과 같은 구위가 있었다면, 타이밍을 빼앗았으니, 힘 싸움에서 이기고 가볍게 범타로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 녀석은 스치기만 해도 넘어가겠지. 한없이 가벼운 공이니까.’

머리싸움, 타이밍 싸움도 최소한의 기량은 갖춰야 성립되는 이야기다.

제구력은 제법 갖췄으니, 톰 글래빈처럼 지독한 인내심을 가지고, 경기 전체를 그린다면, 통할 수도 있겠으나.

매덕스 자신이 봤을 때, 그 투수는 수싸움을 하더라도 그런 종류의 인내심이나 두뇌는 없었다.

‘배짱 하나는 두둑하지. 맞으면 넘어가는 공을, 타자 몸쪽으로 집어넣을 줄 알아.’

스터프를 보면 피네스 피처로도 부족한 놈이 파워피처의 심장을 가졌다.

그것이 그 투수가 빅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이고, 매덕스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이유였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어림도 없었군.’

구위, 스터프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 자료 하나에 반절의 수락을 했었다.

정말로 구위까지 갖춘다면, 가능성이야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이 코앞인 지금까지도 소포는커녕 조심스러운 연락조차 없는 걸 보면.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리라.

‘애들이나 가르쳐야겠군.’

기대를 접고, 당초 계획대로 대학교 애송이들이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순간.

“택배입니다!”

고요했던 집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 동네를 관할하는 택배기사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여보, 나 지금 바쁘니까, 당신이 나가봐.”

바쁜 건지, 2층에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현관을 열었고, 익숙한 택배기사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테디, 무슨 일이야?

“Mr. 매덕스 앞으로 온 소포예요. 어··· 보스턴에서 보낸 것 같은데요?”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고. 멋들어진 사인과 함께 소포를 넘겨받은 그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어보는 아이처럼 사정없이 소포를 뜯었고, 저번과 달리 이번 소포는 간결했다.

“닥치고 봐라?”

두툼한 자료 대신 달랑 CD 하나. 간결한 구성에 피식 웃은 그는 능숙하게 CD를 재생했다.

뒤편에 웬 메모지가 붙어 있던 것 같지만, 그보다는 궁금한 게 우선이었으니까.

-파앙!

-파앙!

영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고, 입꼬리는 조금 더 올라갔다.

‘이거··· 완전히 다른 놈이 됐군. 벌크업 때문인가? 아니, 그거론 부족해. 투구폼도 똑같고.’

압도적인 파워. 지금까지 했던 생각이 모두 불필요할 만큼의 공에 실린 강력한 힘 외에는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이 정도로 준비했는데 거절할 수야 없지.’

휴대폰을 집으려던 찰나, 문득 CD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웬 메모지 한 장이 붙어 있었으니까.

‘그 에이전트인가? 이번에는 이게 그 자료 대신이군.’

알만했다. 어떤 놈이 붙인 건지. 영상 하나면 충분했겠지만, 혹시나 해서 설득하기 위해 붙인 거겠지.

저번에 스터프 향상 가능성에 대한 길고 장황한 자료를 보냈듯이.

피식 웃으며 종이를 집은 그는 안경을 추켜세우며 천천히 읽었고, 곧 오래간만에 터져나온 호탕한 웃음소리가 평온했던 집안을 뒤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당신 소포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소리를 들은 건지, 요즘 무릎이 시큰거린다던 아내가 2층에서 황급히 내려왔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 그냥 좀 발칙한 말을 들어서. 저 녀석도 신기한데, 에이전트까지 골 때리네.”

메모지에 적힌 말은 짧았다.

<깨끗한 시대의 좌완 매덕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야구에 심하게 심취한 너드들이나 할법한 망상이지만.

‘그래, X나게 궁금하네.’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본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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