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1회부터 5회까지.
두 타순이 도는 동안 나온 것은 안타 하나와 고의사구 하나가 전부였다.
예상처럼 요주의 인물을 묶어두니, 나머지 타자들은 그다지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손쉽게 타석에서 물러났고, 그것은 6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6회 초.
이닝 선두타자로 올라온 9번타자 넬슨 워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으며, 오늘 경기의 탈삼진을 8개로 늘렸다.
‘얘까진 쉽고. 이다음이 문제인데, 너 정신 좀 차렸냐?’
손쉽게 물러난 선두타자를 뒤이어 올라오는 타자. 프랜치 코데로. 그를 쳐다보니 두 눈동자에 의지가 가득했다.
아주 죽일 듯이 노려보네.
오케이, 이러연 오히려 쉽지.
‘그걸로 가자.’
주자도 없고. 앞서 말했듯 피안타 하나에 고의사구 하나가 전부라서 투구수도 넉넉한데.
타자의 의지가 강렬하고, 정신도 차린 것 같으니, 더 망설일 것도 없지.
‘어차피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니까.’
앤디 파즈에게 사인을 보내자, 녀석은 슬쩍 벤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포수의 모습에 타석에 들어온 타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설마하는 표정이네.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볼.”
“볼.”
“볼.”
“볼, 베이스 온 볼!”
캐치볼 하듯 포수와 공을 주고받자, 주심은 무심한 목소리로 타자에게 친절히 지금 상황을 설명해줬고.
그것으로 오늘 나와 타자, 프랜치 코데로 간의 맞대결이 막을 내렸다.
“하···”
주심의 선언에 타자 프랜치 코데로는 허탈하게 웃었고. 눈동자에는 탁기가 가득했다.
‘기쁘지? 출루율 공짜로 올라가니까. 좋아서 죽을 것 같지 않아?’
나라면 기쁘게 1루로 걸어 나갔을 것 같은데, 저 녀석은 아닌가보다. 사실 속이 썩어 문드러지기는 하겠지.
첫 타석은 슬로 커브로 삼진을 잡히며 멘탈이 터졌고, 그에 대한 여파로 두 번째 타석도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시 정신줄 잡고 세 번째 타석에 올랐는데, 이제는 아예 헛스윙조차 못하게 만들었으니, 멘탈이 터질만도 하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 안에서 놀아난 거니까.
‘그러게 적당히 잘하지 그랬어. 너 혼자 너무 튀니까,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기에 이런 선택을 내렸다는 걸 알아주기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타자는 그런 내 속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저 거친 발걸음으로 1루에 걸어 나갔다.
힘없이 비틀거리는 타자를 뒤로하고 대기타석에서부터 올라오는 2번타자를 보자, 얼굴에 핏줄이 울긋불긋했다.
얘는 진짜로 빡칠만 하지.
자기 앞에서 고의사구가 나왔으니, 완전히 무시하는 거니까. 부정하지는 않는다.
“스트라이크!”
무시하는 거 맞거든.
터놓고 말해서, 얘가 잘했으면, 절대로 고의사구 안 했지.
충분히 잡을 만한 놈이었기에 선택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X같으면 잘하지 그랬냐?
‘성적이 성적인 만큼, 약점이 아주 명확한 놈이야.’
같은 손 타자에게 가장 위력적인 건 다들 알다시피 슬라이더다. 이거 만한 게 없지.
그런데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해서 만능인 건 아니고, 코스 역시도 중요하다.
가장 베스트는 최대한 상황을 만든 뒤, 존에서부터 밖으로 나가는 식의 슬라이더인데. 잘만 던지면 헛스윙 혹은 빗맞은 타구기에, 가장 좋다.
그게 보통인데, 간혹 슬라이더의 구속과 위력이 대단히 뛰어난 투수들은 반대로 몸쪽으로 딱 붙여서 맞힐 듯하다가 존안으로 넣어, 스트라이크를 잡기도 한다.
당연히 스트라이크존으로 꺾여들어가는 만큼, 위험성은 훨씬 높지. 그만큼 시원한 맛도 있지만.
내 슬라이더가 예전보다 대단히 좋아졌다고는 해도, 그만한 위력은 없기에 자주 하지 않는 편인데···
“스트라이크!”
‘얘한테는 잘 먹히지.’
아주 배트가 제멋대로 막 흩날린다. 스윙한 것 같기도 하고, 공을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됐든 그리 바람직한 스윙은 아니다.
어설픈 헛스윙에 잔잔한 웃음소리가 경기장에 울렸고. 타자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으니, 그걸로 승부는 끝이다.
어떻게 이용할지만 남았을뿐.
‘쉽게 가자, 쉽게.’
삼진을 노릴 수도 있겠지.
쪽팔려서 배트를 휘두를 테니, 적당히 변화구를 던지거나, 높은 하이 패스트볼이면 손쉽게 잡을 수 있을 거다.
그 정도야 이미 판이 깔렸고, 진짜 영리한 투수는 거기에 함정을 하나 더 파놔야지.
‘이번에도 슬라이더. 대신 바깥으로 나가게.’
코스만 살짝 달라졌지, 같은 구종이니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코스다.
내가 원한 결과물은···
“2루! 2루 먼저!”
“아웃!”
“1루!”
“아웃!”
병살타고.
구위가 약하다고는 해도, 이런 상황에는 유도할 수 있지.
흥분에 사로잡혀, 나가는 공을 건드린 타자였지만. 배트 끝에 공이 스치는 순간 얼굴에는 후회감이 깃들었다.
최악의 결과를 낳았으니까.
그래봤자 이미 늦었지만.
“오늘도 장난이 아닌데? 진짜 빅리그가도 되겠는걸?”
그렇게 끝나버린 6회 초.
마운드를 내려가자, 앤디가 실실 웃으며 호들갑 떨었다.
듣기는 참 좋지만, 그 의도가 뻔했던 터라 고개를 절레젓고서 대충 어깨를 두들겨줬다.
“괜히 아부하지 마.”
“티 났나?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심이야. 한 이닝 더 갈 거지?”
“그거야 코치가 판단하겠지.”
6회까지 총 투구수는 94개.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아직 100구도 넘기지 않았으니, 한 이닝 정도는 더 막을 수 있는 정도다.
다만 애매한 정도면 칼 같이 끊는 지라,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존 와스딘의 눈치를 살폈는데, 조금 묘했다.
“Go, 오늘도 수고했어. 딱딱 계획대로 되는데?”
“뭐, 그만큼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니까요. 그런데···”
“한 이닝만 더 해봐. 아직 교체투수 준비 안 됐으니까.”
“어, 예. 감사합니다?”
뭔가 스무스하다?
원래라면 잔뜩 걱정하고,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샅샅이 캐묻고, 심사숙고를 거친 뒤에야 허락해주는데. 오늘은 조금 쉽게 허락이 나왔다.
‘뭐, 나한테 나쁠 건 없지만··· 뭔가 느낌은 오늘이 마지막이니 하고 싶은 만큼 해라,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코치의 눈치를 살폈지만, 딱이 무언가를 캐내지는 못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세이프!”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이후 7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피안타를 하나 허용하긴 했지만, 삼진도 두 개를 더 잡으며, 7이닝 무실점 10K 2피안타 2IBB(고의사구)로 9월의 첫 경기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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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문의가 제법 많아요. Go를 콜업하는 게 아니었냐고요. 텍사스 리그가 종료되는 즉시 콜업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잘나가는 팀의 팬들은 9월만큼 흥미로운 시간이 없다.
가을야구를 결정짓고, 이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한 달이니까.
반대로 망한 팀의 팬들에게도 9월은 흥미로운 시간이다.
어차피 망했으니, 팀의 새로운 유망주도 확인하고, 눈여겨보던 루키의 콜업도 지켜볼 수 있으니까.
간혹 새로운 신인이 혜성같이 등장해, 다음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기도 하고.
에이스 팬들에게 그런 선수는 고유석이었다.
대단한 성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며. 이미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잡았고.
마침 부진을 떨치고 일어난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빅리그에서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품었으나.
그런 반응을 전해주는 마케팅 팀장의 말에 빌리 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전에 협의된 거 아실 텐데요?”
“네, 그렇지만 팬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팬들의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어차피 끝난 시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점점 수익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Go의 콜업은 소소한 반등을 일으킬 수 있을 거예요. 아시아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네, 당장의 이득은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올해 그의 콜업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못박는 그의 말에 마케팅 팀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개 에이전트와의 약속이 대체 뭐길래, 저조해진 흥행에 새로운 화제성을 낳을 수도 있건만. 또한 ROK 출신이니, 잘하면 스폰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걸 다 마다하는 빌리 빈의 선택은 그녀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팬들 역시 이해하지 못할 테고.
“사장님, 그의 에이전트와 협상을 가진 건 구단 내부에서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팬들은 확실한 이유를 요구할 거예요. 어째서 그를 콜업하지 않느냐는 것에 대한 이유를요. 자칫, 구단이 좋은 유망주를 이유없이 마이너에서 썩힌다는 오명이 생길 수도 있고요.”
프로 스포츠. 결국은 마케팅 장사다. 이미지를 팔아서, 팬들의 주머니를 터는 게 일이지.
그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오명이 붙거나, 루머가 생긴다면, 당장의 이익추구는 물론, 미래의 이미지 구축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그것을 걱정하는 팀장의 말에 빌리 빈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듯 피식 웃으며 자료를 건넸다.
“이대로 발표하세요. 구단과 우호적인 언론사를 통해서 은근하게 흘리면, 다들 납득할 겁니다. 선수의 미래를 망친다는 오명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에 흔들리지 않으며, 유망주를 보호할 줄 아는 팀이라는 이미지도 생길 테고요.”
“흐음··· 버두치 효과?”
버두치 효과.
칼럼니스트인 톰 버두치가 2008년 발표한 이론으로, 버두치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한데.
쉽게 설명하자면, 어린 투수들의 경우 시즌 100이닝 이상을 기록했을 때, 작년보다 30% 이상의 이닝을 더 소화할 경우, 부상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이론이었다.
여러 가지 허점이 존재하기는 하나, 투수 유망주를 관리할 때, 각 구단에서 적당히 참고 정도는 하고.
“작년 Go는 104이닝을 기록했고, 올해는 142이닝을 기록했죠. 38이닝을 더 피칭한 건데, 보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시즌 고유석 역시 그런 버두치 효과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빌리 빈의 말과 자료에 마케팅 팀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이 정도면 팬들도 납득을 하겠네요. 네, 이렇게 발표하겠습니다.”
단순히 팬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이유는 아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할 테니까.
투수의 부상확률과 내구성은 단순히 이닝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영향을 끼친다고는 하나, 아직은 젊은 선수이니, 최대한 관리를 해줘야겠지.
‘정말로 넘어왔단 말이지··· 무려 매덕스가 말이야. 절반의 수락이라고는 하나, 긍정적인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서 무언가 특별함을 봤다는 뜻이야.’
또한 이제는 단순히 이슈몰이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토록 위대한 매덕스라고 할지라도, 전문적인 분석가나 스카우트가 아니기에. 전문성은 오히려 그들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고, 같은 투수이기에 무언가 느꼈겠지.
물론 단순히 매덕스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대하는 건 아니다.
‘러프라이더스, 그리고 미션스. 두 경기에서 증명해냈어. 단순히 플루크가 아니라는 걸.’
충분한 분석을 거쳤다.
자주 만난 상대들이 아니라, 생소함이 큰 힘을 발휘했지만, 어쨌든 번뜩이는 재능은 있다는 거겠지.
아직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이라고는 하나, 그 작은 가능성조차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지금 자신의 자리였다.
‘그러니 아껴야지. 그 에이전트, 왜 그런 요구를 하나 했더니···’
어째서 당장의 콜업을 마다했던 건지, 이제는 이해가 갔다.
자신들보다 한발 앞서서 이런 가능성을 보았으니, 그 이상을 노릴 수밖에.
‘마이너 역시 이젠 의미가 없겠군. 남은 건 내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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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래, 너무 아쉬워하지 마. 솔직히 Go 지금 네 수준에, 더블A 경기 하나 못 뛴다고, 별문제 없잖아?”
“뭐, 그렇긴 하죠.”
미션스 전 다음날.
존 와스딘이 통보했다.
내 시즌이 끝났다고.
원래 로테이션 대로면, 러프라이더스와 한 경기를 더 치러야 했겠지만. 구단의 지시라니까, 어쩔 수 있나.
‘많이 뛴 건 사실이니까. 구단에서 관리할 시기이기는 하지.’
이해는 가지만, 조금은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번에 러프라이더스랑 붙었을 때, 쓰리핑거 안 아끼는 건데.
다시 붙을 줄 알고, 비장의 무기로 남겨뒀더니, 괜히 아꼈다가 똥 됐네.
“브라이언, 얘기 들었-”
-네, 들었습니다. 연락해드리려고 했는데, 먼저 전달됐나 보군요. 타당한 말이기는 합니다. 지난 시즌 대비 이닝이 상당히 증가하긴 했으니까요.
“아, 네··· 알고 계셨네요.”
브라이언에게 연락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다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보아하니, 경기 하나 날린 내가 빈정 상했을 줄 알고 진정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트레이닝 계획은 어떻게 잡혀 있습니까?”
난 이쪽이 더 중요하다.
존 와스딘의 말처럼 지금 내가 더블A 경기 하나에 연연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보다는 다음 시즌이 더 중요하지. 그 다음 시즌을 위해서는 오프시즌 동안 원하는 만큼의 발전을 이뤄내야 하고.
그렇기에 트레이닝에 대해서 묻자, 브라이언은 조급해지지 말라는 듯이 더욱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휴식을 가져야겠죠. 이번 시즌 풀타임을 출장했으니, 충분히 쉬어야죠. 텍사스 리그가 종료되는 대로, 두 달간 휴식을 취한 뒤, 12월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너무 늦지 않을까요?”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신체에 과도한 피로를 줄 수 있으니까요.
시즌이 끝나면. 나는 보통 11월부터 서서히 몸을 만들기 시작하기에, 12월은 너무 늦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뭐 이쪽이 좋다고 하니, 말 들어야지.
-트레이닝 장소는 애리조나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닉스가 괜찮을 것 같은데, Go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건 당연한 선택이다.
시범경기인 선인장 리그가 애리조나에서 열리고, 스프링 캠프도 애리조나에 차려지니, 미리 가서 준비하는 셈이니까.
“저야, 브라이언을 믿는 거죠. 어디든지 괜찮습니다. 더 성장할 수만 있다면.”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그럼 미리 준비하고 있을 테니, Go는 휴식만 취하십시오. 아, 그리고 Go는 Korea로 돌아가실 예정이시겠죠?
“그래야죠, 딱히 지낼 곳도 없으니까요. 혼자 숙소에 있기도 좀 그렇고. 또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요.”
그러고 보니, 결국 올해도 한국에 들어가기는 하네. 윈터리그를 뛰는 것도 아니니까.
트레이닝 때야 숙소를 알아봐 주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지내야겠지.
이런 걸 보면 엄마가 선경지명이 있었어. 패딩 새로 산 거, 결국은 입는구만.
“적응을 위해서 미국에서 지내는 게 나을까요?”
-아뇨, 저도 한국에서 지내닌 걸 추천드립니다. 익숙한 곳에서 지내야, 더욱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오프시즌 동안 주의해야 할 것들을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한번 읽어 보시는 걸 추천 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12월까지 그냥 쉬어요? 웨이트라거나, 필라테스? 아니면 재활훈련 그런 거라도 해야···”
앞으로 한 세 달은 백수처럼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조금 불안했다.
휴식이 중요하다는 거야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잘 알지만, 너무 오래 쉬는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특히나 다음 시즌은 메이저 캠프에, 시범경기까지 뛰는데··· 진짜 그냥 쉬어도 되나? 웨이트나, 필라테스. 하다못해 재활 훈련 같은 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세 달을 그냥 날려먹어도 되는 걸까?
그런 감정을 담아 조심스럽게 묻자, 브라이언은 다 이해한다는 듯 옅게 웃었다.
-조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무리할수록 오히려 돌아가는 법입니다. 지금 Go에겐 휴식이 최우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시고, 나머진 저와 트레이너들에게 맡기십시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말.
여전히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음직스러웠기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죠.”
서로 목적은 달라도, 목표는 같으니, 나한테 안 좋은 일을 하지는 않겠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Go.
그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고, 시즌도 끝났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 야구인생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시즌이겠지.
이 정도로 잘했던 적은 없으니까. 마이너는 물론 고등학생일 때까지 통틀어도 말이야.
그런 시즌이 오늘로써 사실상 막을 내린 거지만, 딱히 아쉽다거나, 후회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제 시작이지.’
다음은 더 밝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142이닝 42자책점 ERA 2.66
175탈삼진 17볼넷 104피안타 10피홈런.
압도적인 성적을 남긴 채, 2016시즌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