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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32화 (32/316)

32화

‘뭐야? 다들 왜 저래?’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더니, 먼저 온 놈들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반겨줬다.

구단 직원이 나눠주는 아침식사를 맛있게 즐기면서도 한쪽 눈으로는 흘끔흘끔 내 얼굴을 보는데, 조금 묘했다.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선발 등판하는 사람 기분 맞춰주지는 못할망정 왜 야리고 지랄이야?’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아, 괜히 불쾌했지만, 그보다는 일단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했기에 얌전히 나도 식빵 하나를 받아서 뜯어먹고 있으니, 다른 놈들도 하나,둘 클럽하우스로 들어오는데. 죄다 비슷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혹시 내가 뭐 잘못했나?’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고, 그런 황당함을 풀어준 건 아침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들어온 앤디 파즈였다.

“Suck? 빨리 왔네?”

“네가 늦은 거지. 포수라는 놈이 투수보다 늦게 와서 되겠냐? 것도 오늘 나랑 같이 뛰는 놈이.”

오늘 경기 함께 호흡을 맞추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표정이 밝았다.

“흐흐흐, 들었어? 너도 알다시피 보가 썩 좋은 포수는 아니잖아? 감독님도 이제야 깨달으신 거지.”

슬쩍 주변을 훑더니, 보 테일러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저런 망발까지 내뱉었다.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어이가 없네.

“너도 그렇게 좋은 포수는- 아니다, 빵이나 먹어라.”

보가 프레이밍이 별로인 게 문제라면, 얘는 포구가 불안하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거지.

그래도 간만의 선발출장에 기분이 좋아 보이기에, 꾹 참고 고개를 절레저었다.

아주 콧노래까지 홍홍거리며 마찬가지로 빵과 잼을 받아온 녀석은 내 앞에 앉더니, 마치 마약거래라도 하듯 나직하게 쓰윽 물었다.

“그나저나, Suck, 너 혹시 미리 연락은 받았어? 아, 그런 건 나중에 몰래 통보해주나? 언제야?”

“뭔 소리야? 무슨 연락?”

연락? 통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앤디는 오히려 자기가 더 섭섭하다는 듯 굴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까지 비밀로 할 거야? 솔직히 나한테는 말 해줘야지. 우리가 같이 호흡 맞춘 시간이 얼만데.”

“우리가 무슨 사인데? 아니, 그보다도 뭔 소리냐고?”

“콜업말이야, 콜업. 언제 올라가냐고. 이번 경기 끝나고 바로? 아니면 리그 종료 후에?”

아, 콜업.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이해가 됐다. 왜 다른 놈들이 나한테 미묘한 눈빛을 보내는지 말이야.

‘사정을 모르면 이렇게 생각을 할 법도 하네. 에이스는 투수진이 별로니, 딱 좋기도 하고.’

메이저리그는 9월에 되면 확장 로스터를 시행해, 기존에 25명으로 제한된 선수단을 40명까지 늘릴 수 있게 된다.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치열한 팀들은 트리플A에서 즉전감을 올리는 편이고.

아닌 팀들은 더블A, 간혹 하이A에서 유망주를 올려 경험을 쌓게 해주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8월을 좀 조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인 나는 그런 9월 콜업의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지.

자뻑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텍사스 리그에 한해서는 현시점에서 최고의 투수다. 당장 탈삼진 1위에 ERA도 저번 경기로 다시 내려가서, 2.80이니까.

그러니 곧 올라갈 예비 메이저리거라는 생각에 괜히 흘끔흘끔 쳐다본 건데, 부러울 만도 하지. 과도한 착각은 아니다. 실제로 가능성이 높으니까.

‘내가 원했다면 말이야.’

“그런 거 없으니까, 오늘 경기에나 집중해.”

“에이, 알 만한 사람끼리 왜 그러실까? 혹시 나중에 올라가면, 투수들이랑 코치한테 내 얘기 좀 해줘. 락하운즈에 괜찮은 포수가 있다고.”

아니라고 말해줘도 은근하게 부탁하는 앤디 파즈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용할 방법이 있었다.

“잘 생각해봐. 앤디 니가 투수라면 경기 직전에 딴생각 하는 포수랑, 어떤 상황에서든 경기에만 집중하는 포수. 둘 중에 누가 더 좋은 포수 같겠냐?”

“그야··· 당연히 후자겠지.”

“그렇지, 니가 정말로 좋은 포수면 나도 당연히 얘기해주지. 아까운 녀석이 미들랜드에서 썩고 있다고. 네 말처럼 우리 둘이 호흡 맞춘 시간이 얼만데.”

“···열심히 할게!”

긴장이 빡 들어갔네.

거짓말은 아니다. 정말로 오늘 잘하면 위에다가 잘 말해 줄 거니까.

내년에 스프링 트레이닝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말이야.

‘아니, 그보다도 갓 콜업한 애새끼가 야부리 좀 턴다고 들어줄 리가 있나?’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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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볼! 오늘 진짜 좋은데? 타자들 손도 못 대겠어.”

“그래그래.”

대충 먹은 거 소화시키고 불펜에 들어가니, 쫄래쫄래 따라 들어온 앤디가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며 공을 받았다.

아직은 조금 서툰 영어로 아주 알랑방귀를 뀌는데, 립서비스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구만.

“오늘은 어떻게 갈까? 미션스 타선 별로 안 좋은데, 강하게?”

“일단은 그렇게 가야죠.”

포스트시즌은 결승에 진출하지 않는 이상, 일정상 시간이 애매하니 제외하면.

이번 시즌 나한테 남은 경기는 둘.

그중 첫 번째 경기인 오늘 상대는 샌안토니오 미션스로 존 와스딘의 말처럼 만만한 놈들이다.

원래도 리그에서 최하위를 달렸던 팀이기는 한데, 최근 들어서는 그냥 아예 폭삭 주저앉았거든.

‘7월까지만 해도 사우스 디비전 꼴등이었지만, 지금은 노스까지 합쳐도 압도적인 꼴등이지.’

이유는 두 가지다.

저조한 투수진. 기괴한 타선. 그래, 공격 수비 둘 다 안 된다는 뜻이지.

원래 꼴찌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텍사스 리그가 겨우 여덟 개 팀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리그라고 해도.

그중에서 제일 아래를 차지하려면 이 정도로 못해야 한다는 거지.

‘수비야 어차피 나랑 관계없으니 무시하고, 중요한 건 타선이지.’

미션스의 타격이야 원래도 안 좋은 편이지만, 지금은 더욱더 처참하다.

팀 타율, 출루율, OPS는 꼴찌. 장타율은 뒤에서 2등이라는 아주 멋들어진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

경기당 득점은 3.66으로 꼴찌인 아칸소 트래블러스보다 간신히 0.02가 높고.

이것만 보면 아, 그냥 X나게 못하는 팀이구나 싶겠지만, 틀린 말은 아닌데,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중간 순위 정도인 팀 2루타, 3루타, 그리고 적당히(?) 뒤에서 3등 정도는 하는 팀 홈런인데. 이게 무슨 뜻일까?

‘치는 놈들만 쳤다는 거지.’

타자들 간의 성적차가 극심하다는 거다. 2루타든, 3루타든, 홈런이든. 치는 놈 따로 있고, 평균 깎아 먹는 놈들도 따로 있다.

아니, 대다수가 그런 놈들이다.

‘그나마 잘 쳤던 그놈들 중 대부분은 위로 올라갔으니까 말이야.’

현재 미션스에서 그나마 가장 위험한 타자는 단 두 명. 타율만 봐도 딱 보인다.

2할 8푼 하나에 3할 하나.

나머진 죄다 2할 5푼 이하다.

“슐츠랑 코데로는 조금 주의해야겠죠?”

“그렇겠지. 둘 다 파워도 제법 괜찮고, 타격감이 좋은 녀석들이니까.”

닉 슐츠랑 프랜치 코데로.

각각 좌타자랑 우타자인데.

이 둘이 사실상 나머지를 일곱 명을 끌어가고 있다.

특히나 코데로의 경우 OPS도 .834로, 8할이 넘기에 가장 요주의 인물인데, 방법은 간단하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시즌 막판인데, 어차피 성적 잘 쌓아 놓은 거. 쉽게 가자.’

“거르죠, 걔네 둘은.”

“음··· 확실히 그러면 편하긴 하겠네.”

거르면 그만이지.

걔네가 주자로 나간다고 해도, 나머지 놈들이 못 불러들이니까.

“첫 타순은 똑같이 갔다가, 두 번째부터 적절하게 거르면 될 거 같은데.”

“오케이, 그라운드 상황 보고, 내가 사인 낼 게. 그런데 첫 타석은 어떻게 가려고?”

“그거 섞죠.”

“그거? 아~ 그거. 누구한테 쓰려고?”

“코데로죠. 얘 쪽이 더 까다로우니까, 쓸 수 있는 방법 죄다 동원해서 잡고. 슐츠는 알아서 잡을 게요.”

“포수 빼고 둘이서 뭘 속닥거리는 거야?”

“넌 어차피 들어도 몰라. 알아서 공이나 잘 받아. 중간중간 사인 낼 거니까, 놓치지 말고.”

그렇게 대략적인 경기 계획을 잡은 뒤, 다시금 불펜피칭에 집중했고, 느낌은 좋았다.

‘몸이 제법 올라왔어.’

불펜피칭이라도, 공을 던져보니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제법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135이닝 던졌던가?’

135이닝.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가 마이너 커리어 중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시즌이다.

하이A에서 뛰었던 저번 시즌이 아마 104이닝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31이닝쯤 더 뛴 셈이지.

‘그런데 생각보다 몸이 괜찮단 말이야.’

적은 숫자는 아니다.

9월쯤 되면 체력이 다 떨어져서 피로감이 찌드는 게 보통이니까.

물론 진짜 금강불괴 같은 양반들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쌩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건 상식에서 벗어난 아웃라이어니 제외하고.

그러니 9월쯤 되면 헉헉거리는 게 정상이고, 심지어 나는 아직 2경기가 남았는데도 작년보다 31이닝을 더 뛰었으니, 그보다도 더 헉헉거려야 맞는 건데. 딱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약간의 피로감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아.’

긴 이닝을 뛰어 봤어야 뭘 알든지 하지, 이 정도로 풀시즌을 뛰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기에, 뭐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하고 말아야지.’

나쁠 건 없잖아? 내 몸이 튼튼하다는 건데.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지. 마지막까지 타자들을 조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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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션스 타선은 강한 1번과 약한 2번, 더 약한 3번, 평범한 4번, 강한 5번, 평범한 6번, X나게 약한 8번과 9번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잘하는 놈들 붙여 놓을 줄 알았더니. 코데로는 1번에 슐츠는 5번. 뭔 타선이야 이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쪽 팀 감독이 갑자기 좌우놀이에 빠졌다는 거다. 타자들이 좌우좌우우좌우좌우니까.

무슨 격투게임 필살기 커맨드도 아니고.

대충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제일 잘하는 두 놈의 사이가 뚝 끊겨 있으니···

‘고맙게 받아먹어야지.’

마운드에서 자세를 잡고 있으니, 타자가 배트를 붕붕 돌리며 타석으로 올라왔다.

입이 닳도록 말했던 요주의 이물, 프랜치 코데로. 파워도 준수하고, 선구안도 썩 괜찮은 편이지만. 어차피 계획이 있기에 별로 상관없다.

‘큰 거 한방을 노리시는구만. 연습스윙이라도, 각도가 달라.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말이야.’

거기다 오늘은 눈에 띠는 약점도 보인다. 몸을 풀 듯이 배트를 휘두르는데, 약간은 각도가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살짝 높다고 해야 하나?

3할이라는 타율과 OPS에서 드러나듯, 전형적인 거포와는 거리가 먼 타자다.

기본적인 파워가 준수하기에, 장타력이 좋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교타자에 가깝지.

그런 녀석이 왜 거포처럼 높이 스윙을 하고 있을까? 이유야 뻔하지.

‘확장 로스터. 시즌 끝날 때가 됐으니, 두각을 보이시겠다?’

미션스는 파드리스의 산하구단이다.

그런데 그 파드리스가 이번 시즌을 아주 대차게 말아먹어서 탱킹 모드에 들어갔다. 내년 드래프트를 위해서.

이만한 기회가 없지. 잘하면 빅리그를 밟을 수도 있으니까.

그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거고.

‘잡기 딱 좋네.’

물론 거를 거다.

상황 봤다가 다음 타석부터. 그래도 첫 타석은 잡고 가야지. 방법도 하나 있으니까.

“플레이볼!”

주심의 우렁찬 선언.

헬멧을 고쳐 쓴 타자는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저번 경기에서 다시 반등했다고는 하나, 최근 기세가 안 좋은 투수이니, 적당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건가?

‘성적이라는 껍질을 벗겨놓고 보면, 대단히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리그에서 제일 홈런 날리기 좋은 투수를 꼽는다면 아마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다.

괴랄한 서클과 제구력 때문에 맞추기가 어렵다뿐이지, 정타가 나오면 굳이 거포가 아니더라도 넘길 만하니까.

‘그러니 타자가 노릴 건-’

가벼운 심호흡.

힘을 느슨하게 유지하며 초구를 던졌다. 체인지업. 구속은 많이 느릴 거다. 타이밍도 느릴 거고.

“스트라이크!”

‘초구밖에 없지.’

쓰리핑거니까.

저 녀석도 알 거다.

머리싸움으로 가면 제구력이 받쳐주는 내 쪽이 까다로울 거란 걸.

그러니 초구를 노렸겠지만, 느릿한 쓰리핑거 체인지업은 배트가 이미 지나간 자리를 유유히 날아갔다.

‘쓰읍, 타이밍을 못 흔들었네.’

전형적인 영웅스윙.

극단적으로 어퍼로 휘둘렀고, 타격폼도 제대로 닫혔다.

차라리 어느 정도 컨택이 되는 스윙이었다면 타자의 타이밍이 망가졌겠지만.

오히려 제대로 보지 않고 막 휘둘렀기에 스트라이크만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문젠데. 원래는 한번 참는 놈이지만, 오늘 스윙을 봐선 또 아니란 말이야.’

눈 감고 또 휘두를까?

아니면 한번 숨을 고를까?

준수한 출루율에서 드러나듯, 침착할 줄 아는 타자지만, 과연 그 침착함이 눈깔이 뒤집힌 오늘도 유지될지가 의문이었다.

‘스윙을 봐서, 어설프게 넣었다간 스치기만 해도 넘어가겠고. 살짝 뺄까? 그럴 수야 없지.’

나 같은 놈이 기세에 밀려 공을 빼기 시작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안 된다. 밥은커녕 죽조차 안 된다고.

‘과감하게 가자.’

조준점은 몸쪽으로 꽉 찬 곳.

사인을 보내자, 오늘은 착한 애완견이 되기로 마음먹은 앤디 파즈가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만 해라. 괜히 머리 쓰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해. 난 그 이상 안 바란다.

‘어이쿠.’

그대로 와인드업하며 공을 던지자, 아니나 다를까 배트가 나왔다. 이번에도 박력 있는 어퍼스윙.

“스트라이크!”

하지만 또다시 헛돌았다.

좌타자 상대로 몸쪽 서클 체인지업. 말려들어가는 공이 배트에 걸릴 수도 있고, 자칫 타자의 몸을 때릴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쁜 짓도 해준다.

이제 투 스트라이크.

머리를 조여왔던 긴장감이 한순간 탁 풀렸다. 여기까지 오는 게 어렵지, 이제부턴 쉬우니까.

‘널 위해 준비했어.’

사인을 내려고 포수를 보자, 먼저 손짓한다. 저 녀석 머리에서 나왔을 리는 없으니, 존 와스딘이겠지.

확실히 코치가 다르긴 다른 건지, 내가 무슨 생각인지 딱 아네. 하긴, 슬슬 쿨타임이 찼으니까.

연달아 헛스윙한 것 때문인지, 조금 눈빛이 탁해진 타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저 화난 고릴라처럼 씩씩거렸다.

‘벌써 화나면 쓰나, 이번 타석을 최대한 음미해야 할 텐데 말이야.’

그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투구폼을 취했고, 크게 와인드업 하며 공을 던진 순간 타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차분해졌다.

연기였던 건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뭘 유도한 건지는 몰라도, 최소한 투 스트라이크 잡히기 전에 했어야지.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너 어차피 모르잖아.

‘축하한다, 한 달에 한번 룰렛의 세 번째 당첨자가 된 걸. 앞으로 지금 이 순간을 두고두고 돌이켜보며 후회하고, 쪽팔려 하도록.’

나 커브 던지는 거.

64마일짜리 슬로우 커브. 역시 조커 카드로 이거만한 게 없단 말이야.

타자의 배트가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깔끔한 헛스윙 삼진.

6월에 한번 써서 삼진 잡고, 7월은 건너뛰었다, 8월엔 썼다가 안타 맞았는데. 오늘은 삼진이니, 이 정도면 제법 쓸만하다. 다시 푹 묵혀둘 가치가 있겠어.

이번 시즌은 곧 끝나니까, 다음 시즌쯤에 한번 꺼내면 되겠네.

‘저게 연기면 지금이라도 야구 때려치우고 할리우드 가야겠는데?’

세번 연속 헛스윙한 프랜치 코데로는 이제 겨우 첫 타석이건만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타석에서 물러나며 자기 헬멧을 집어 던졌다.

저것마저도 연기라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아깝지 않으리라. 그것을 보며 경기 계획을 살짝 수정했다.

‘다음 타석에는 안 걸러도 되겠네. 멘탈 터졌어.’

이것으로 요주의 인물은 넘겼으니, 이제 남은 건 마음 편히 조지는 것뿐.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여섯 개. 타자 두 명 치워버리기엔 충분한 투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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