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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28화 (28/316)

28화

<리치 힐, 조시 레딕, 다저스로 전격 트레이드!>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반겨준 기사였다. 결국 트레이드 되는구만.

브라이언 덕분에 갑자기 주가를 올린 내가 빠졌다고는 해도 결국 이 두 사람이 메인 매물이니, 당연히 팔리겠지.

‘근데 두 사람 팔면서 누굴 데려온 거야? 투수 데려왔으면 골 때리는데···’

대충 기사 타이틀만 확인하고, 전날보다 조금 괜찮은 몸아 스트레칭이라도 할 겸 방을 나왔다가 문득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로 아주 구단에 눈도장을 콱 찍었을 텐데, 띠껍다고 투수만 왕창 데려온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자세히 내용을 살펴볼까, 싶었지만. 어차피 클럽하우스가 코앞이고, 또 내 입지가 제법 단단해졌기에 고개를 젓고서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양손 가득 챙긴 아몬드 봉지와 함께. 말했잖아, 완봉하면 아몬드 10배로 갚겠다고. 진짜로 완봉했으니, 누군진 몰라도 갚아줘야지.

“Go? 어제도 끙끙 앓더니, 오늘은 좀 괜찮나보네? 그런데··· 흐흐, 뭐 그런 걸 다 사오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 테일러가 반겨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가져온 간식거리를 반기는 거겠지.

“그래, 너도 공 받느라 고생했으니까, 한 봉지 먹어라.”

“오, 그냥 한 말인데, 진짜 주려고? 웬일이야? 네가 이런 걸 다 사주고.”

노골적으로 군침 흘릴 때는 언제고, 누굴 쫌생이로 몰아? 저번에 타코벨 사줬을 때도 맛있게 처먹어 놓고.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대충 한 봉지를 쥐어준 나는 주변에 물어물어, 저번 경기에 먹었던 아몬드의 주인을 찾았는데···

“···”

“···”

왜 하필 너냐.

“요즘 잠잠하더니, 쟤들 또 뭐야?”

“몰라, Go가 갑자기 다가가던데? 이상한 놈이라니까.”

“자기 완봉했다고 능욕하려는 거 아니야? 저거 봐, 아몬드 던지려는 거야.”

커다란 봉지를 들고 내가 다가가자, 코리 왈터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봤고.

주변은 내 행동을 예측하며 숙덕숙덕 거렸다.

그 말을 들은 듯 코리 왈터는 한층 더 짙어진 눈빛으로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는데. 수군거리던 놈들은 은근히 우리에게서 멀어지며 사태를 관망했고. 우리는 서로 눈빛만 주고받는지라, 주변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더럽게 어색하네.

“뭐야?”

“어? 아니, 그. 저번 경기에서 아몬드 있길래 먹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네 거 더라고. 덕분에 잘 던졌···”

“꺼져.”

넵. 심기가 불편 해보이는 코리 왈터에 냉큼 꺼져드렸다.

하긴, 쟤 입장에선 완전히 능욕하는 거나 다름없긴 하지.

자기 자리 뺏어간 놈이, 갑자기 완봉까지 하더니, 아몬드 잘 먹었다며 견과류를 주는데.

‘진짜 능욕인데? 이 정도면. 완전히 노린 수준이네. 한 대 안 맞은 게 다행이야.’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아니, 누가 알았나? 그 아몬드 주인이 얘라는 거 알았으면, 나도 손 안 댔지. 퉤퉤.

“아몬드 먹을 사람? 선착순 9명, 아니 8명 준다.”

어차피 줄 놈도 없고, 보한테 주고 남은 9봉지 중, 한 봉지는 내 걸로 따로 챙긴 뒤 소리치자, 수군거리며 나를 쫒던 놈들이 벌떼처럼 달려왔다.

“오오, Sir Suck, 이런 하사품을 다 내려주시고···”

“그래, 맛있게 먹거라.”

무릎까지 꿇는 놈들에게 아몬드 봉지로 대충 이마랑 어깨 두들겨 준 뒤 하나씩 하사하자,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품에 꽉 안는데···

“아몬드! 아몬드다! 간식이다!”

“Suck- 아니, Go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다 꺼져! 이건 내 거야! 내가 받은 거라고!”

“나눠먹으라는 거야! 너 혼자 먹으라고 준 게 아니라고! 어서 봉지 뜯어!”

아니, 인간적으로 마이너리거들 너무 불쌍한 거 아니냐? 그래도 명색이 프로선수인데, 무슨 아몬드 하나에 무릎을 꿇어.

‘이 거지새끼들··· 그래, 이거라도 많이 먹어라.’

그 꼴을 보니 괜히 울컥해졌지만, 그래도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보기는 좋다.

그런데···

‘그치, 너도 돈이 어딨겠냐. 어차피 다 같은 처지인데. 빡쳐서 거절했지만, 막상 좀 아쉽지?’

바글거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왠지 코리 왈터도 서성거렸다.

지금이라도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지 번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고.

대충 한 봉지 던져주자, 화들짝 놀라면서 받더니, 고개 푹 숙이고 사라졌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너도 완봉하고. 까짓거 다른 놈들 몰아내버리면 되는 거지. 안 그러냐?

내가 흐뭇하게 웃자, 코앞에 있던 녀석, 맷 채프먼이 슬쩍 속삭거렸다.

“저 Sir Suck. 제가 여덟 번째인 것 같은데···”

“···옛다. 맛있게 먹고 앞으로도 타구를 잘 잡아주길 바라마.”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얘는 돈도 많은 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저번 완봉에서 얘도 잘해줬기에 어쩔 수 없이, 내 몫으로 꼬불친 걸 넘겨주자, 황송하다는 듯 받고 사라진다.

1라운드 출신의 보너스 베이비인 새끼가 자기 돈으로 사먹을 것이지···

그렇게 한바탕 견과류를 뿌린 뒤, 그제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나는 머릿속의 생각도 정리하고, 조언도 얻을 겸, 존 와스딘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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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생각은 어때요? 가능성 있어 보여요?”

“으음··· 글쎄,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론이라고 해서 다 통하지는 않잖아?”

두 가지의 서클 체인지업.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들은 존 와스딘은 불펜피칭을 지도하던 투수를 잠시 내버려둔 뒤,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까리하고, 애매한 거지.

이게, 힘든 것 같으면서도, 또 막상 엄청 어렵지 않아 보이거든. 가능성도 있어 보이거든.

‘말로는 쉬우니까. 구위가 올라갔다는 전제하에, 힘만 약간 덜 주면 된다는 건데··· 이게 말이 쉽지. 직접 확인인 할 수 있으면 금방 알겠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니, 그럴 수도 없고.’

틀린 생각이라면, 검증하면 되는 건데, 당장은 검증을 못 하다보니, 나도, 존 와스딘도 확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가능성은 충분하니까.

그렇게 가만히 생각하던 존 와스딘은 문득 눈썹을 씰룩였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된다고 치면, Go 너는 체인지업만 세 개를 던지는 거네?”

“세 개? 아, 쓰리핑거.”

그러고 보니, 이전부터 갈고 닦았던 체인지업도 하나 있다. 존 와스딘에게 직접 배운 쓰리핑거 말이다.

사실 굉장히 간단한 그립이기에, 배웠다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열심히 터득했지. 제법 손에 익었고.

확실히 서클이 둘로 나뉜다면, 그것까지 포함해서 내가 던지는 체인지업만 세 가지가 되는 건데.

“괜찮겠어? 체인지업 비중이 너무 높아지는 것 아니야?”

그건 확실히 고민이긴 하다.

체인지업,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데 특화된 구종이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구사율이 높을수록 오히려 위력은 떨어진다.

타이밍만 익숙해지면, 솔직히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도 넉넉하게 넘길 수 있는 게 체인지업이니까.

‘물론 내 서클은 단순히 타이밍을 흔든다기보다는, 일종의 브레이킹볼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위험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거기다가 그러면 포심, 체인지업 세 개. 슬라이더. 파이브 피치가 되는 셈인데··· 컨트롤은 가능하고? 또 만약에 힘줄이다가 자칫 잘못해서 실투라도 나오면···”

“저도 그 점이 걱정이긴 한데, 숙련되면 되겠죠.”

“너무 낙관적이네. 뭐,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발전하는 거니까.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니야. 다만 혼자서는 절대로 안 되고. 누군가 아주 제대로된 트레이너나 코치에게 지도를 받아야겠지.”

시원하게 까다보니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 건지, 마지막에 뒷말을 붙이는데, 이미 늦었어 이 양반아.

그래도 덕분에 하나 더 실마리를 얻었다. 제대로 된 코치나 트레이너라는 거지?

‘트레이너야 브라이언이 알아서 구한다고 하지만. 나 같은 마이너 애송이가 바란다고 해서, 뭔가 어마어마한 사람이 올 리는 없고. 그냥 딱 전문적인 정도겠지. 하지만 인스트럭터는 구단에서 직접 고용하는 거니, 얘기가 달라.’

몇몇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로 가르침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릎 꿇고 빌어도 될만한 사람들이 말이다.

‘브라이언에게 연락 좀 해야겠어.’

그리고 하나 더.

‘확실히 된다고 해도, 체인지업만 주구장창 던지기는 조금 그렇긴 하지. 지금은 슬라이더가 괜찮지만, 빅리그를 기준으로 잡으면 부족하고. 뭔가 하나를 더 갈고 닦아야 돼. 서클만큼은 아니더라도, 주력구 중 하나가 될 만한 구종을.’

빅리그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건 참 기쁜데, 아무래도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들도 더 많아졌다.

뭐, 준비한다고 해도, 어차피 브라이언이나 구단이 다 알아서 하겠지만 말이야.

‘서클 다듬어주고, 가르쳐주고. 거기에 다른 구종까지 가르쳐주면서, 충분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목표는 생겼다.

모셔올 사람도 생겼고.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브라이언이나 구단이 알아서 하겠지. 안 되면 별수 없고.

‘브라이언한테 연락 좀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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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무슨 일입니까?”

늦은 오후. 브라이언은 그가 ‘아끼는’ 고객의 연락을 받았다. 이번 트레이드를 걱정하는 건가?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고객, 고유석이 꺼낸 이야기는 예상과 달랐다.

“인스트럭터를 원하는 사람으로 고용할 수가 있느냐고요?”

그를 개인적으로 지도해줄 인스트럭터의 역할은 꽤나 중요했다. 물론 시즌 준비야, 트레이너야 자신이 직접 선별한 사람을 붙여줘서 완성시킬 테지만, 시즌 전에 피칭을 다듬어 주는 건 인스트럭터의 역할이니까.

어차피 구단에서도 승낙했으니, 아마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찾고 있을 텐데. 누굴 원한다는 걸까?

‘흐음··· 사실 마땅히 확 떠오르는 사람은 없지.’

듣기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작년에 은퇴했던 마크 벌리다. 은퇴 이후로 조용히 지내는 지라,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고유석을 위해 이만한 멘토는 없었다.

비슷한 구속을 가졌고. 피칭 스타일도 비슷하며. 그러면서도 메이저에서 오랫동안 준수한 커리어를 보냈으니.

배울 게 많았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장 적합한 사람이기는 한데, Go의 생각은 조금 다른가 보군.’

하긴, 아직은 젊으니까.

가늘고 길게, 아니, 14년 연속 10승-200이닝이니, 가늘다고 말하는 건 우습지.

대단히 굵고 긴~시간을 보냈지만, 사이 영 컨텐더가 될 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 마크 벌리보다는, 여러 레전드들을 더 원하기는 하겠지.

브라이언은 그저 젊은 선수의 욕심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어진 고유석의 설명은 제법 진지했고, 타당성 역시 가지고 있었다.

또한 놀라운 말도 했고.

“서클··· 말입니까?”

서클 체인지업. 그게 더 성장하고, 또 두 가지 종류로 나눠서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건 꽤 중요한 사안이다.

값어치가 확 뛸 테니까.

‘확실히 지난 경기의 서클은 남달랐지. 그것과 기존의 서클. 두 가지를 모두 던질 수 있다면, 진지하게 빅리그 급이야.’

그것을 더 가다듬는다는 발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다른 구종도 배우거나,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 역시도 타당한 이야기고.

“그렇다면 Go가 바라는 건 누굽니까?”

그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빌리 빈을 협박해서라도 모여와야겠지.

조금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브라이언이 물었고, 곧 스피커너머로 새어나온 이름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흐음··· 네, 그라면 확실히, 가능하긴 하겠군요.”

정확하게 찝었다.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일 사람을. 다만 모셔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그쪽으로는 마크 벌리보다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겠지.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구단에 정식으로 요청하도록 하죠. 다만 확신할 수는 없으니, 웬만하면 큰 기대는 가지지 말고, 마음 편히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결정되면, 제가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통화는 끝났지만, 브라이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여전했다. 솔직히 기대됐으니까.

만약 정말로 서로 잘 맞아서,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그 결과물은 애슬레틱스는 물론 브라이언 자신의 기대마저 아득히 뛰어넘겠지.

물론 짧은 시간 동안 특별강사에게 배운다고 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조금 있겠지만, 왠지 그려졌다.

‘아름답겠군.’

그 모든 것이 완성된 고유석의 모습이.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도 더 노력해야겠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곧 브라이언의 눈에 묘한 열망이 씌워졌다. 고유석, Mr. Go.

처음 그를 봤을 때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한 걸음의 디딤돌 정도로 생각했다.

자신이 그의 꿈을 도와주는 대신, 브라이언 스스로도 충분한 이득을 취하는 것 말이다.

물론 그 전제는 여전히 변함없다. 그것이 비즈니스니까.

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야망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그를 완성시키는 것, 그것을 돕는 것으로 조금 더 무게가 실렸으니까.

왜인지는 모른다.

구단과의 지난 줄다리기에서 느낀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서 일수도 있고. 혹은 계약 이후 꾸준하게 보았던 피칭에 홀린 걸 수도 있겠지.

멍하니 바라보고, 그저 감사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지난 경기의 형상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결국은 그게 에이전트의 일이니까.’

결국 Go라는 선수를 완성시키고, 완벽하게 피워냈을 때.

그에게 돌아올 결과물과 보상은, 처음 바랐던 것과 똑같을 테니까.

그저 야망의 시작점 정도로 예상했던 선수가 자신의 간판스타가 된다는 게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좋아, 그럼 바로 일을 해보자고.’

밝은 미래를 그리며, 옅은 미소를 띤 브라이언은 전화기를 집었다.

아마 빌리 빈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학을 떼겠지만, 어쩌겠는가? 어제의 협상으로 서로 동반자가 되어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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