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24화 (24/316)

24화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지! 선발투수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돈만 많이 받아 쳐먹는 빌어먹을 새끼들보다 훨씬 낫네!”

시간이 지날수록. 열광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남이 가져다주는 정보, 기껏해야 올라온 기사나 성적 좀 옮겨 적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주로 에이스를 무척이나 사랑하면서도, 작금의 상황이 진한 불만을 가진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이너 중계를 기꺼이 결제했고. 그런 그들에게 화면 속 고유석은 충만한 만족감을 선사해줬다.

“얘 경기 있는 날은 차라리 이거 보는 게 낫겠네. 최소한 속은 시원하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잘하는 건 맞지만, 구속이 좀 느리지 않아?”

“구속? X발 경기마다 삼진을 X나게 잡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물론 팬 커뮤니티나, 기사로 짤막하게 봤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구속이 느리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사실 좀 많이 느리긴 했으니까.

저조한 화질의 중계화면으로도 똑똑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허나 마운드 위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구속에 대한 아쉬움마저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7월 14일.

vs샌안토니오 미션스.

6이닝 1자책점 9K 4피안타 1볼넷 무사사구.

<아쉬운 실점, 하지만 여전한 KKK!>

<텍사스 리그의 보물, 디백스의 품에 안기나?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중!>

7월 19일.

vs코퍼스 크리스티 훅스.

6이닝 8K 4피안타 무볼넷 무실점 무사사구.

<끝나지 않는 돌풍의 연속! AA에는 A’s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

7월 24일

vs샌안토니오 미션스

7이닝 1자책점 10K 5피안타 1볼넷 무사사구.

<6월에 이어 7월마저 지배한 Go, 2달 연속 이달의 선수 조준!>

경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소문과 열기 역시 점점 더 번져나갔고.

그렇게 7월 말에 이르러, 트레이드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이제는 굳이 브라이언이 선동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확산되고, 재생산됐다.

단순히 오클랜드나 에이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과 팬덤 내에서도 이야기가 돌았으니까.

[#ARI]

[Go인가 걔 괜찮던데, 진짜 우리팀 오는 건가? 말은 많던데.]

[#ARI]

[성적 보면 당장 내년에 써먹어도 될 정도니까, 데려오면 좋겠네. 걔 입장에서도 우리팀 오면 데뷔하기 좋잖아?]

[#SDP]

[솔직히 오클랜드랑 트레이드한다 치면, 힐이나 레딕은 필요 없고. 진짜 메인은 You-Suck, 걔지.]

[#SDP]

[당연하지, 일단 데리고 오면 무조건 대박이니까. A’s가 미치지 않는 이상 안 팔 것 같지만 말이야.]

트레이드 거래대상으로 거론된 팀의 팬들 또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는 했고. 그런 말 하나하나가 에이스의 팬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줬다.

[#A’s]

[혹시라도 Go가 트레이드되면 유니폼에 불지를 거야.]

[#A’s]

[Sonny도 맛탱이가 갔는데, 이런 유망주라도 쥐고 있어야 기다릴 맛이 나지!]

[#A’s]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Go가 아직도 보호명단에 안 올랐어. 진짜 팔 생각인 거 아니야?]

[#A’s]

[그거야 로스터가 꽉 차 있어서 그런 거지. 근데··· 좀 걱정되기는 하네.]

팜에서 피어난 유망주.

여기저기서 흘리는 군침.

상황을 진정시킬 생각이 없는 건지, 그저 미묘한 답변만을 내뱉는 프런트.

그 속에서 에이스의 팬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진짜 줄다리기는 물밑으로 진행됐다.

####

‘끈질기게 버티는군. 이쯤 되면 슬슬 백기를 들어 올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브라이언은 울리지 않는 휴대폰에 입맛을 다셨다. 그가 저지른 방화가 이제는 대화재로 번지며, 팀을 활활 불태우고 있건만. 에이스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연락도 없다.

‘트레이드하려는 것 같지도 않아. 죄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내부적으로 이미 Not for Sale 결정이 났다는 건데···’

팔 생각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자신이 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그 정도 머리도 없다면, 한 구단을 운영할 자질이 없다는 거니까.

최소한 빌리 빈은 그런 멍청한 남자가 아니지. 그러니 뭘 원하는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걸까?

‘Go에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했지. 그냥 평소랑 똑같다고 말이야.’

어쩌면 자신을 제외하고, 고객과 직접 무언가 말을 주고받은 건 아닌지 염려됐지만. 딱히 그런 낌새도 없다.

혹시나 싶어서, 어제저녁, 고객과 통화를 했을 때도 평소와 똑같았으니까.

‘아니, Go를 설득하려고 해도, 그는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떤 게 자신에게 이득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애슬레틱스 내부에서는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건데,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고민하던 브라이언은 이내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끄는 거였군. 트레이드 마감 때까지.’

지금의 화제성은 계속 이어질 수가 없다. 팬들이 더블A 선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성적이 대단히 좋아서도 있지만. 그런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팔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됐으니까.

그렇기에 매일 같이 기사를 찾아보고,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트레이드가 결정된 건 아닌지, 정보를 찾았다.

그런데 만약 트레이드 기간이 끝난다면? 그래서 최소한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열기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가라앉는다. 빠르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잦아들겠지. 그렇게 꺼지고 나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만 갖춘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토록 무서운 적응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적용되고는 한다.

‘다시 불을 붙이기가 어려워져. 최근 들어서 심하게 소비됐으니까. Go라는 이름이.’

당장의 불안도 사라졌다.

그래서 초조함도 없다.

성적은 늘 좋기에 더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즉 이대로 시간이 끌려서, 점점 외부 여론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다 타고 남은 재만 남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여론을 움직일 수 있을까?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을까?

브라이언의 미간이 좁혀졌을 때. 그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브라이언,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링크) - 라이언 캐시디]

동료가 보낸 메시지였는데. 다급한 말과 함께 웬 링크를 같이 전송했다.

<‘선을 넘는 에이전트들의 행보’, 선수를 위해 구단을 위협하는 행위를 용인해야 하는가?>

링크를 타고 넘어가자, 기사 하나가 나타났고, 그것을 본 순간 브라이언의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래, 이걸 노렸군. 이제야 알겠어, 아예 자리 깔고 장기전으로 가시겠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저격한 기사다. 친 애슬레틱스 성향의 기자였으니까.

이런 식으로 서서히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거지. 이번 사태는 그저 한 에이전트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이렇게 되면 나중에 다시 기회를 잡아, 팬덤을 흔들더라도, ‘또 시작이네’같은 반응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애슬레틱스의 노림수를 알아차린 브라이언은 이를 빠득 갈았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 선례를 남기기 싫다는 거군. 일개 에이전트에게 프런트가, 구단이 패배했다는 선례를.’

업계의 소문은 빠르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지. 마치 호흡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처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일개 에이전트에게 패배하여,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다른 에이전트들이 가만히 있을까? 이미 한 차례 패배한 적 있는 구단에게?

스몰마켓인 애슬레틱스이기에, 이런 문제에선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와 에이전트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수가 없는 구단이니까.

‘상대가 필사적이지만, 여기서 게임을 못 끝내면 반대로 역풍이 불 거야.’

입술이 바짝 말랐다.

물론 아직은 이쪽이 유리하다. 파상공세를 퍼부으며 분위기를 확 휘어잡았고, 구단을 한계까지 밀어 넣었으니까.

‘주도권을 잡았지만, 결국 끝내질 못했으니까. 우린 이미 공세종말점에 도달했고.’

허나 끝내지는 못했다.

미친 듯이 공격을 지속하며, 이쪽 역시 마지막 남은 여럭까지 탈탈 털어서 썼는데도 말이다.

그전에 승부를 마쳤어야 하는 건데, 쉴 새 없이 얻어맞은 상대는 비틀비틀 거리면서도,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2%, 딱 2%만 더 채우면 되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끌고 간다면, 달아오른 팬들이 펑- 터져버려, 결국 더 버티기 전에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을 테지만.

‘시간이 부족해.’

트레이드 마감까지 남은 경기는 딱 하나. 그 경기에서 판을 끝낼 만한, 마지막 한방이 터져야 했다.

####

“아···”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니, 따스한, 아니 좀 뜨거운 아침햇살이 반겨준다.

‘커튼 치는 거 까먹었네.’

내내 햇빛을 내리쫴서 그런지,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아주 뜨끈뜨끈하다.

괜히 텍사스가 아닌 건지, 햇빛 한번 끝내주네.

‘몸이 좀··· 좋은데?’

대충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니, 이상하게 몸이 좋다.

리그 개막하고 세 달이나 지났고, 보통 이 시기쯤 되면 슬슬 괜히 피곤하거나, 어깨가 좀 뻐근하거나 뭉치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그냥 맑고 개운하기만 했다.

묘하게 몸이 후끈후끈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뭐지? 혹시 커튼을 안 치고 자서 그런 건가? 나 태양열로 충전하는 방식이었나?

‘뭐, 컨디션 좋아서 나쁠 건 없지.’

좀 과하게 좋다는 느낌이긴 한데, 그냥 잠을 좀 잘 잤나보다, 생각하며 곧장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오~ 이달의 선수께서 오셨구만. 간밤에 잠은 좀 잘 자셨나?”

“내 잠자리까지 다 걱정을 해주고, 참 고오맙다.”

들어가니, 오늘따라 일찍 나온 보 테일러가 반겨주는데. 그가 오늘 경기의 파트너였다.

씨익 웃는 얼굴이 참 보기가 싫다. 저저 옆구리에 배트 꽉 끼고 있는 거 봐라.

저번 경기에서 프레이밍 실수로 볼넷 하나 내줬고, 결국 그렇게 나간 놈이 득점주자가 됐었다.

지도 양심이 있으면 포구 연습이나 할 것이지, 포수라는 놈이 매번 빠따에만 집중하고 말이야.

‘예전에는 그럭저럭 참고 던졌는데, 잘하는 포수 한번 겪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브라이언 앤더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트리플A로 올라갔다. 잘할 수 있을 때, 최고의 폼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조언까지 남겨줬었지.

아마 로스터 문제상 잠깐 내려왔던 것 같은데. 아예 호흡을 못 맞춰봤으면 모를까, 수준 높은 포수에게 던져보고 나니, 보 테일러로는 영~ 눈에 차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됐다, 뭘 바라겠냐. 공이나 잘 받아라.”

못 마땅한 눈으로 자신을 보니, 눈치도 없는 놈이 어깨나 으쓱거리는데, 괜히 심통이 나서 무시하고 유니폼으로 환복한 뒤, 천천히 루틴에 맞춰 몸을 풀었다.

오늘 경기 상대는 코퍼스 크리스티 훅스. 이번이 세 번째 경기인데, 지난 19일에는 꽤 쉬웠었다.

왜냐고? 무시무시한 놈이 드디어 하늘나라로 꺼졌거든.

아,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콜업했다고, 콜업. 알렉스 브레그먼 말이야.

지난 경기에서 로스터에 없길래, 뭔가 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달에 이미 트리플A로 콜업했더라.

그 사이 트리플A마저 폭격한 건지, 벌써 메이저 데뷔까지 했고.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빅리그 급이었네.

‘이번이 세 번째라, 내 공에 제법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제일 괴물 같은 놈도 빠졌고, 오늘은 컨디션도 죽여주니까.’

브레그먼이 없는 훅스는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다. 물론 J.D. 데이비스나 데릭 피셔처럼, 강력한 타자가 있기에.

여전히 타선이 꽤 준수한 편이기는 하나, 무게감이 확 떨어진 건 사실이지.

‘그러니 이번 경기도 좋은 성적 찍어보자고.’

기분 좋게 워밍업을 마치니, 개운했던 몸에 한층 더 활력이 돌았다. 최소한 더블A에서는 이 만큼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부디 이게 단순히 기분만 이런 게 아니라, 피칭에서도 효과를 보여주길 바라며 연습투구를 위해 불펜으로 향했다.

“Go, 등판할 준비 됐어? 컨디션은 어때?”

“엄청 좋아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흐음··· 안 좋다고 말한 적이 없어서···”

불펜에 들어가니, 존 와스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줬고, 먼저 도착한 건지, 보 테일러도 멀찍이 앉아 있었다.

컨디션을 물어보는 말에, 그저 사실대로 이야기했는데, 영 믿는 눈치가 아니다.

“오늘은 진짜로 좋아요.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그래그래, 90마일 찍을 거라는 말은 왜 빼먹어? 그래도 입 나불거리는 거 보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

억울함에 열변을 토했지만, 여전히 시큰둥하게 넘겼다.

거참, 코치라는 양반이 선수를 믿고, 사랑으로 보듬어줘야지 말이야.

“자세 잡고, 천천히 하나 던져 봐.”

“보고 놀라지 마십쇼. 장난 아닐 거니까.”

왠지 좀 서러워서, 괜히 퉁명스럽게 말한 뒤, 공을 꽉 쥐었다.

‘자, 어디 한번 멋지게 들어가서, 내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해줘. 날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말라고.’

공에게 살며시 속삭이고 그립을 잡자, 코치가 미친놈 보듯이 보는데, 애써 무시하며, 평소처럼 서클 체인지업을 가장 먼저 던졌는데···

‘제대로 채였다.’

느낌이 달랐다.

공을 뿌리는 순간 알 수 있을 만큼, 평소보다 조금 더 끈적하게 공이 채였고. 팔에 들어간 힘 역시 강력했다.

왼손에서 발사된 공은 이것이 단순히 기분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평소보다 약간 더 역동적으로 회전하고, 꺾이며, 제 위력을 과시했고.

빠악- 하는 소리를 내며 포수 글러브로 박힌 공. 순간의 정적이 불펜에 감돌았다.

“허?”

“어··· 와우!”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보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놀란 기색이 역력한 존 와스딘의 모습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컨디션 좋다니까요.”

“그러게··· 진짜로 좋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긁히는 날 말이다.

영점도 평소보다 잘 잡히고, 힘도 넘쳐나고, 공의 위력도 강력하고. 보통 신체의 시간이 정점, 딱 12시를 가리킬 때 이렇게 되는데.

아무래도 오늘이 그 날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훅스 새끼들, 오늘 X됐네.”

보 테일러가 간신히 내뱉은 말이 공허하게 불펜을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