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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7화 (17/316)

17화

회의실 안. 사람들은 저마다 옆에 앉은 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들이 이곳에 모인 건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들의 이해를 돕겠다는 듯 내려온 빔 프로젝터에서는 한 선수의 경기 영상이 재생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의문을 낳았다.

“Go? 이미 결정이 난 거로 아는데요. 플루크입니다.”

“당장은 타자들이 흔들리고 있지만, 적응을 마친다면 다시 예전의 성적을 찾겠죠.”

트레이드 매물로 소모하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이 난 선수였으니까.

그렇기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지만, 돌아온 질문이 입을 막았다.

“확신합니까?”

“예?”

“확신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지금 Go의 성적이 플루크라는 걸.”

“···”

애초에 운동선수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방법은 없다.

최소한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침묵했고, 그것을 본 빌리 빈은 이마를 쓸어내렸다. 답답했으니까.

“으음···”

“솔직히 나는 저번에 봤을 때부터 플루크가 아닐 것 같았는데···”

“잘만 다듬으면, 5선발 정도로는 쓸 만하지 않아?”

“글쎄, 무브먼트가 너무 약해. 요즘 추세를 보아 타자들이 점점 더 타구의 발사각을 높이려고 할 텐데, 빅리그 밟는 순간 홈런 제조기가 될걸?”

“나도 같은 생각이야. 마이너에서는 어떻게든 되겠지만, 빅리그에서는 안 통할 가능성이 높아.”

그런 빌리 빈 단장의 묘한 모습에 다시금 의견이 분분해졌고. 이전에는 분명 거품일 거라고 이야기했던 이들조차 제 생각을 의심했다.

어쩌면 빌리 빈 사장이 자신들은 모르는 방법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한 걸 수도 있었으니까.

현재까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지탱하는 머니볼이 태동했던 십수 년 전처럼.

“6월 26일. 샌안토니오 미션스 전입니다.”

가장 최근 경기의 영상까지 모두 재생된 뒤 다시 회의실에 불이 들어왔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제가 이렇기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Go의 룰 5 드래프트 지명 가능성 때문입니다.”

“룰 5?”

“룰 5 드래프트요?”

“Go가 룰 5 대상자야?”

룰 5 드래프트.

오랜 기간 마이너에서 활동했으니, 40인 로스터에 등재되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선수보호 방안이다.

계약 당시 나이를 기준으로 18세 이하는 5년, 19세 이상은 4년을 마이너에서 보낸 선수가 지명 대상자가 되고 40인 로스터를 채우지 못한 구단들은 대상자들을 그해 정규시즌 성적 역순으로 지명할 수 있다.

단 선수보호를 위해 구단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만큼, 선수의 원소속팀에 1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설마 지명하겠어?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한데.”

“그래봤자 5만 달러, 아, 올해부턴 10만 달러인데. 복권 긁는 셈 치고 긁을 수도···”

“만약에 저랬다가 플루크가 아니면, 쓸 만한 투수 하나 다른 팀에 공짜로 선물하는 거야.”

의견은 다시금 나뉘었다.

섣불리 판단이 서지 않았으니까. 분명 훌륭한 피칭이기는 하나, 빅리그급이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애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룰 5 드래프트로 지명된 선수는 이듬해 정규시즌 동안 25인 로스터에 등록되어야 하는데. 고유석은 분명 레귤러 멤버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으니까.

“트레이드 매물로 쓸 수도 있고, 영 아니다 싶으면 마이너로 보낼 수도 있잖아?”

“그럼 차라리 올해 안에 우리가 트레이드로 사용하는 게-”

다만 트레이드 매물로서의 가치는 확실하니,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지명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트레이드는 각 구단이 룰 5 지명자를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겨난 탓에 회의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다만 그토록 소란스러운 동안에도 신중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빌리 빈 사장과 데이비드 포스터 단장이 그런 이들 중 하나였고.

‘40인 로스터에 등록해서, 보호명단에 올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건데···’

문제는 현재 팀의 40인 명단은 꽉 채워져 있다는 것. 고유석을 보호하려면 누군가를 지명할당 해야 한다.

40인 로스터에 들어갈 정도면 대부분 팀의 주축이다.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들이고.

당장 고유석이 그런 선수 중 한명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조금 애매했다.

다만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 본인은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그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졌지만. 역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아, 이마를 감싸 쥐었다.

‘사장님은 무슨 생각이시지?’

깊어지는 고민에 그는 흘끔 빌리 빈 단장을 훑었고. 마찬가지로 심사숙고 중인 듯 양손을 꽉 쥐고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보죠. 만약 지금 Go의 활약이 플루크가 아닐 경우의 기대치 말입니다. 이미 기존의 평가는 소용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맞는 말이다.

기존의 평가대로면 고유석은 애초에 더블A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선수이고. 올라간 게 신기한 수준.

‘그런데 해냈잖아? 더블A도. 살아남기도 했고. 거기다 성적까지 죽여주지.’

하지만 지금의 성적을 봐라.

5경기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고, 6월 29.1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한 점도 내어주지 않으며, 사실상 한 달 동안 리그를 지배했다.

아니, 아직은 지배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니까.

‘실링 역시 당연히 재조정해야겠지.’

자연스럽게 회의실 안의 이들의 눈빛이 스카우트 팀으로 향했고, 빌리 빈 사장의 무언의 압박에 스카우트 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의 기록이 플루크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새롭게 실링(최대치)을 예측한다면··· 3~4선발입니다.”

“플로어(최소치)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역시도 롱릴리프는 가능할 겁니다.”

“당연히 빅리그 기준이겠죠?”

“네, 어디까지나 지금 성적이 플루크가 아니라면 말이죠.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활약이 일시적인 플루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카우트 팀장의 말에 다시금 웅성거렸지만, 빌리 빈은 손을 드는 것으로 간단히 진정시킨 뒤 답변을 요구했다.

그에 잠시 목을 가다듬은 팀장은 도리어 다른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는 어립니다. 이제 겨우 스물셋이죠. 가지고 있던 잠재력이 빛을 발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꽃을 피우기 아주 적절한 시기라고 볼 수 있겠죠.”

‘맹점이군.’

데이비드 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 갓 하이스쿨을 졸업한 아주 따끈따끈한 선수다.

그러니 마이너 5년차라고 해도, 겨우 스물셋일 수밖에.

2014년 신인 드래프트 기준 대학리그 출신인 선수들과 같은 나이니. 아직은 어리다.

그렇기에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더라도, 오히려 나이만 따진다면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지금까지는 아예 발전의 여지조차 없었기에 플루크라는 의심이 뒤따른 것이고.

“지난번에는 분명 플루크라는 의견을 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스카우트 팀과 전력분석팀 내에서의 공식적인 의견입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제 사견이고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특이한 일은 아니다.

팀장이라고 해도, 공식적인 의견을 낼 때는 팀 내부에서 결정된 의견을 내야 하니까.

‘그러니 팀의 의견과 팀장의 생각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을 수밖에 없지.’

이번이 그런 경우고.

스카우트 팀장이 포문을 열자, 그제야 다른 이들도 줄줄이 입을 열었고. 플루크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종합적인 평가는 대체로 스카우트 팀장과 비슷했다.

그렇게 한바탕 토론이 끝난 뒤, 데이비드 포스트는 다시 눈을 돌려 빌리 빈을 봤다.

곧 결정이 날 것 같으니까.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종합하자면, 그는 현재 ‘대단히’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고. 아직 그의 나이는 충분히 어리며. 지금 상황에서는 향후 팀의 3~4선발을 맡길 정도의 잠재력이 보인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이제까지 나온 말을 모두 종합한 것에 불과하니, 당연히 반대의견은 없었다.

조용한 장내 분위기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빌리 빈은 이번엔 본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선수를 보호명단에 올리는 게 상식적인 방안이지 않습니까? 특히나 우리처럼 투수를 자체적으로 수급해야 하는 팀이라면 말입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이번에도 반대의견은 없었다.

“그럼 그렇게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분석 팀과 스카우트 팀에서는 최대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40인 로스터 내에서 지명할당 처리할 선수를 선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 건데, 부디 다음에는 이번처럼 결정이 뒤바뀌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싸늘한 말과 눈빛이 잘 벼려진 비수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찔렀다.

‘그’ 빌리 빈이 경고한 것이니까. 만약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그땐 선수가 아니라, 스카우트 그리고 분석 팀이 모조리 지명할당 되겠지.’

빌리 빈이 먼저 나간 뒤, 여전히 얼어붙은 장내의 분위기에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뒤따라 나갔다.

‘뭐, 난 원래부터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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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이 너 겨울에 한국 올 거지? 엄마가 패딩 하나 사놨는데.

“당연히 가야지. 리그 끝나면, 내가 어딜 가겠어.”

-재작년에는 비시즌 훈련한다면서 안 왔었잖아?

“그래서 작년에는 갔잖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침 댓바람부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 저긴 저녁이겠네.

듣기로 패딩 하나 사놨다며,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입고 다니다가, 미국에도 가지고 가라고 하는데···

‘혹시 엄마 나 텍사스에서 뛰고 있는 거 모르는 거 아니야?’

텍사스와 패딩이라.

살은 쫙쫙 빠지겠네.

노폐물도 싹 사라질 거고.

아니지, 그전에 일사병으로 죽으려나?

그래도 간만에 쇼핑 좀 한 것 같은데, 기분을 망칠 수도 없으니, 얌전히 들었다.

용돈까지 보내주셨는데, 밥값은 해야지.

아, 참고로 재작년의 비시즌 훈련은 계약이 끝난 에이전트의 마지막 선물이다.

쭉 방치해놓은 게 본인도 미안했던 건지, 마지막까지도 그런 건 꼬박꼬박 챙겨주더라고.

‘그래봤자 플로리다에 여관방 하나 잡아주고, 훈련장 좀 알아봐 준 게 전부지만.’

과거를 기억할수록 더욱더 의심이 든다. 그 양반 진짜로 에이전트가 맞긴 맞았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머리 좀 굵고 나서 돌이켜보니, 사기꾼 기질이 가득하다.

‘아무튼 올해는 그런 에이전트 아닌 에이전트도 없으니. 한국이나 가야지. 간만에 감독님 좀 뵙겠네.’

한국에서 보내는 겨울은 말이 비시즌 훈련이지 모교 방문기다.

마이너리거라도 미국에서 야구한다는 게 약발이 먹혀서, 애들한테 사발 좀 풀면서 의지를 불어 넣어주는 대신, 야구부 훈련장에 꼽사리 끼는 거지.

가난한 미국보단 차라리 한국이 낫다. 고기라도 실컷 먹잖아? 덕분에 비시즌 동안 벌크업 못했던 적은 없다.

늘어져 있다가 너무 쪄서 문제가 된 적은 있지만.

-···아, 유석아. 너 내 말 듣고 있어?

“어? 어어, 듣고 있으니까, 계속 얘기하셔.”

-그 정신에 야구는 어떻게 하는 건지··· 미국에서 잘 하고 있는 거 맞지?

“맞다니까, 엄마 아들 이번 달에 뛰는 리그에서 제일 잘한 선수야. 나중에 상도 받을 거라고.”

-허풍은··· 아무튼 밥 잘 챙겨 먹고, 혹시 용돈 더 필요하면 바로 전화해.

“알았어.”

그렇게 통화가 끝난 뒤, 일어난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세수를 했다.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드니, 그제야 배가 꼬르륵거리는데.

‘모처럼 휴식일인데,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야지. 반찬은 있지만··· 직접 차리기는 좀 귀찮은데.’

막상 밥을 차리려니 귀찮다.

반찬은 집에서 보내준 게 저번에 도착해서 풍족하게 있지만, 그걸 또 꺼내서 차리고 뭘 하고 하려니까, 좀 귀찮네.

또 어제 공까지 던졌는데, 굳이 팔을 움직이는 것도 좀 그렇지.

이건 자기합리화다.

그래봤자 굽고, 먹는 게 단데, 뭔 팔을 움직이겠어? 그냥 귀찮은 거지.

‘저번에 고셋이 말했던 곳이 어디더라?’

동료들에게 들었던 식당의 주소를 되새기며 대충 겉옷을 챙겨 입고 밖을 나가니.

아주 햇빛이 대단하다.

여름은 여름인가 보네.

슬슬 조금만 더 지나면 선크림을 피부가죽처럼 덮어야 하겠어.

‘뭐야? 저 차는. 높으신 분이라도 오셨나? 때깔 죽이네.’

숙소를 빠져나가는데, 주차장 한편에 서 있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보기 드문 외제차, 미국 기준으로도 외제차인 차가 한 대 떡하니 서 있는데, 확실한 건 선수 차는 아니다. 코칭스태프 차도 아니고.

선수고 코치고, 죄다 박봉이라. 저런 거 살 돈 없으니까.

‘아, 채프먼 정도는 가능하겠네. 걔는 1라운더니까. 보너스 베이비면 가능하지.’

왠지 빤히 보면 좀 쪽팔릴 것 같아서 흘끔흘끔 훔쳐보며 가던 길을 가는데, 덜컥 차 문이 열렸다.

‘들켰나? 너무 대놓고 쳐다봤나? 아니, 차 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나 때문인가 싶어서 괜히 민망한데, 정말로 나 때문인지 차에서 내린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Mr. Go?”

“아, 예, 졸라게 죄송합니다. 차가 멋있어서 저도 모르게- 아니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뭐야, 진짜 구단 관계자야? 뭐, 프런트? 혹시 데이브인지 베이비인지,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는 단장?

‘내가 콜업이라거나?’

그럴 리가 있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혹시 Mr. Go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의심스럽게 남자를 쳐다보니, 걱정 말라는 듯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 장을 건넸고.

그것을 본 나는 생각했다.

‘엄마한테 한국 못 간다고 말해야겠네.’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진짜가 미끼를 물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라···’

그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

####

브라이언은 앞에 앉은 남자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영상으로는 이미 몇 번이나 봤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많이 다르군.’

못생겼다거나, 잘생겼다거나.

그런 종류의 말이 아니다.

그저 영상 속 피칭을 할 때의 모습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마운드에 섰을 때의 분위기가 마치 타자를 황소 삼아 요리조리 농락하는 노련한 투우사 같았다면. 직접 마주한 모습은 그보다는 조금 헐렁했으니까.

‘평소에는 가볍다가, 마운드 위에서 쏟아붓는 스타일인가?’

“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데,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운드 위의 철저함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보통의 마이너리거들은 대형 에이전시가 접촉해오면 일단 펜부터 꺼낸다.

약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자신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눈앞의 사내 역시 비슷한 감정을 표출하기는 했으나, 약간은 더 신중했다.

“일단 첫 번째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데. 대체 왜 보라스 코퍼레이션 같은 대형 에이전시가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겁니까?”

“Mr. Go는 엄청난 잠재력을 보였고, 저희 회사의 여러 분석가들과 스카우트들은 그것을-”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잘한 거야 알고 있죠. 내가 직접 만들어낸 결과인데. 설마 모를까. 제 말은 왜 이런 대형 에이전시가 당장 돈도 안 되는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느냐는 뜻입니다.”

이것 봐라, 역시 머리가 좋지 않은가? 시작부터 정확하게 모순점을 찔렀다.

당장 내년에 콜업하더라도 연봉조정이나 FA가 되려면 한참은 걸린다.

그전에는 에이전트 계약을 해봐야 푼돈이나 좀 같이 나눠 먹는 수준이고.

그 푼돈마저도 고객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여러 가지 지원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장사겠지.

그가 평범하게 북중미나, 미국 출신이었다면 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Mr.Go의 나라인 코리아는 부유한 국가입니다. 쿠바, 도미니카, 멕시코, 북중미 국가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죠.”

“그런데요?”

“그리고 메이저리거가 적죠. 적은 만큼, 새로운 선수에 언제나 열광하고요.”

하지만 일본과 대한민국 출신은 다르다. 소수의 메이저리거와 부유하고 야구의 인기가 높은 모국.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사실상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다.

광고며, 스폰서며. 선수가 원한다면 그야말로 온갖 곳에서 다 달려드니까.

즉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가정하에 절대적으로 남는 장사였다. 부수적인 수입에서 발생할 수수료만 생각하더라도, 지원을 수십 번도 더 해주고도 남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를 설득하기 위해, 타당성을 찾으려는 말이고.’

진짜 이유는 브라이언의 야망이었다.

‘나라고 슈퍼 에이전트가 되지 말라는 법 없잖아? 이렇게 차근차근 선수를 모으다 보면 기회가 오는 법이지.’

수많은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존재하고, 매년 몇 개의 에이전시가 새로 생겨난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에이전트들이, 각자 자신의 고객을 데리고 독립을 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고객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뤄야 한다.

대형 에이전시를 버리고서라도 끝까지 함께할 정도의 신뢰 말이다.

‘Go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 지금 당장은 준수한 유망주 수준이지만. 약간의 지원만 주어지더라도, 그대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겠지.’

끈끈한 유대관계, 어려운 말이지. 세상은 제리 맥과이어처럼 낭만적인 영화가 아니니까. 브라이언 자신도 톰 크루즈가 아니고.

이미 완성된 스타들은 그의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

어리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망주들은 이미 다른 이들이 선점한지 오래고.

브라이언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지.

‘그런 점에서 볼 때, Go는 지금 내 상황에서는 가장 이상적이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면서, 에이전트가 없고. 다들 눈치만 보고 있으니까.’

신뢰관계를 만들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하고, 위기의 순간 남들보다 빠르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이 최적의 기회지.’

브라이언은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마이너리거,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순간이다.

그런 때에 누군가 손을 내밀어 함께 가자고 말한다면.

“일단은 믿어보죠. 계약 조건부터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이건 표준 계약서의 사본입니다.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고, 혹여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법률 자문을 구하셔도 좋습니다.”

신뢰는 생각보다 쉽게 쌓인다. 관계는 보다 더 단단하게 엮이고.

“2년 안에 당신을 메이저리거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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