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생각보다 반응이 거셌다.
코리 왈터가?
아니, 다른 사람들.
“Suck, 너 지금 홈페이지 대문에 실려 있는데? 기록이랑 같이.”
“나? 내가 대문에 실렸다고?”
세 경기 연속 10K에, 23이닝 연속 무실점. 좋은 기록이긴 하잖아?
그래서 마이너리그 홈페이지 대문에 딱 뜬 거지.
휴대폰 요금도 아끼는 처지라, 인터넷 할 일이 없어서.
이틀 뒤, 클럽하우스에서 고셋에게 전해 듣고서야 알게 됐는데.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엄청 난리야. 웬만한 팬 커뮤니티에도 다 올라갔어.”
“난리는 무슨···”
잘하는 마이너리거가 한,둘도 아니고. 겨우 최근 몇 경기 잘한 거 가지고, 무슨 큰일이 나겠어?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니, 그게 못마땅했던 건지, 고셋이 아예 자기 휴대폰을 내 눈에다 들이밀었는데. 반응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A’s 더블A 유망주가 10K했다! 세 경기 연속으로! 심지어 23이닝 연속 무실점이야!]
[#A’s 와우! 그거 정말 놀라운 일인걸? 근데 X발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A’s 우리 팜이야.]
[#A’s 그러면 또 말이 다르지. 상세하게 설명해봐. 하나도 빼먹지 말고, 아주 자세하게.]
[#A‘s 우리 팜에 그런 선발투수가 있었어? 더블A에? 그럼 거의 즉전감 아니야?]
[#A’s 역시 죽으란 법은 없다니까! 이거 봐! 꾸준하게 투수 뽑으니까 벌써 하나 터졌잖아!]
“어때? 난리 맞지? 아래 댓글이 몇 개가 달린 줄 알아? 다 네 얘기야.”
“으음···”
단순히 팜에서 잘하는 유망주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 팀을 구원해줄 구세주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까.
즉전감 아니냐며 호들갑 떨기도 하고.
‘하긴, 미친 성적이기는 하지.’
세 경기 연속 10K.
23이닝 무실점.
마이너라서 그렇지, 내 팀 선발투수가 했다면 미쳐 날뛸 만한 일이기는 하네.
‘거기다가 지금 에이스 상태가 말이 아니니, 더 주목받는 것도 있겠지.’
<머니볼 2기는 ‘대실패!’>
<빌리 빈의 몰락?>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떠드는 이야기다.
재작년 야심찼던 대권도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에 대한 리바운드가 확실하게 찾아왔던 최악의 2015년.
그리고 올해 전반기도 대차게 말아먹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특히나 투수진이 문제고. 불펜이야 항상 안 좋았지만. 올해는 선발까지 대차게 흔들렸지.’
에이스인 소니 그레이는 개막전부터 식중독 걸려서 거르더니.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나마 그를 대신해서 에이스 노릇 해주는 리치 힐은 단년 계약이고.
윈나우를 노리는 상황이 아니니, 트레이드 기간이 끝나기 전에 무조건 팔려나가겠지.
그 외의 선발투수들은 죄다 고만고만하다.
‘어? 생각보다 상황이 좋네? 지금 같으면 불펜보다 선발이 콜업하기 더 쉽겠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 입장에선 엄청 좋은 상황 아니야?
왈터 자식, 기를 쓰고 선발에 뻐기려는 이유가 있었구만.
메이저 팀 선발이 망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지.
원래라면 언강생심이겠지만.
지금 성적을 유지한다 치면···
‘진지하게 내년에 콜업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오클랜드니까 FA로 선발 모셔오진 않을 거고. 또 기존에도 투수는 웬만하면 팜에서 충당하는 스타일이니···’
뭐가 됐든지 나한테는 좋다.
성적도 좋은데다, 겸사겸사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어놨으니까.
‘아쉬울 때마다 종종 내 얘기가 나오겠지. 한번 써보기나 하자고.’
한국도 그러잖아?
1군 성적이 개판이면, 팬들이 2군 선수들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거 말이야.
미국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고, 야구 보는 사람들인데,
아쉬울 때마다 마이너에서 잘하고 있는 놈들이 괜히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거지.
이제 나도 그 아른거리는 얼굴 중 하나가 된 거고.
‘엄마한테 이번에는 진짜라고 했던 게, 진짜로 진짜가 됐-’
“길 쳐 막지 말고 비켜.”
“오, 젠틀맨 퍼스트. 들어가시지요.”
호들갑 떠는 고셋과 사람들의 반응에 행복한 망상에 잠길 때쯤. 때마침 누군가 딱 깨줬다.
코리 왈터, 아주 표정이 X같아 보인다.
‘다 들은 것 같네. 표정 X같은 거 보면.’
은근~하게 엉큼하니까.
아닌 척 듣다가, 배알이 꼴려서 튀어나온 걸 거다. 애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쟤 부쩍 성격이 더러워지지 않았어? 원래는 좀 시니컬해도 나쁜 애는 아니었는데.”
코리 왈터는 부쩍 예민해졌다. 내 지난 등판 이후로 정점을 찍었고.
사람 좋은 고셋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남들이 보기에도 정상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런다고 바닥이 깨지겠냐? 힘 좀 더 줘봐, 금이라도 가게.’
나와 고셋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 왈터는 뒷모습만으로 알 수 있을 만큼 대단히 불쾌해 보였다.
땅을 내딛는 발에는 필요이상의 힘이 과하게 들어가는데.
그런 거야 내 알 바 아니고.
가장 주목한 건 어깨다.
‘힘이 빡 들어갔네. 부담감에 제대로 쩔어 있어. 해내겠다는 욕망도 보이고.’
예상대로다.
임펙트, 제대로 남기긴 했나 보네.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도, 저 녀석에게도.
그게 어떤 효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머지않아 일이 터지리라.
난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고.
“대니, 오늘 내가 저녁 한 끼 살 테니까, 오늘 경기 끝나고 바로 숙소가지 말고, 테일러랑 같이 기다려.”
“웬일로 대니라고 다 부르네? 그리고 저녁? 노트북 빌려준 거 때문에 그래? 안 그래도 된다니까.”
“그냥 성적도 좋고, 겸사겸사 용돈도 좀 들어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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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바로 터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만큼 정신적으로 몰렸다는 건가?’
왈터는 4차전에 등판했다.
6회부터 올랐는데. 이번에도 롱릴리프. 복귀전 성적은 좋았지만. 이제 부상 이후 두 번째 경기니, 한 번더 숨을 고르는 거지.
“스트라이크 아웃!”
6,7회 2이닝 동안 시원스러운 피칭을 보여줬고. 삼진도 세 개나 잡았으니까. 거기까지만 했으면 본인에게도 참 좋았을 텐데.
문제는 8회부터 시작됐다.
‘흔히들 착각하지. 구속이 빠르면 삼진을 잘 잡을 거라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절반쯤 정답이니까. 절반은 오답이라는 뜻이니, 맞는 말도 아니지만.
‘구속이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게 삼진 잡기 편한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것도 피칭 스타일이 받쳐줄 때의 이야기야.’
비슷한 걸로는 구속이 느린데 성적이 좋은 투수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맞춰 잡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나도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었다. 더블A에 처음 올라왔을 때도 존 와스딘은 나를 땅볼투수 생각했거든.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나는 맞춰 잡을 수가 없는 투수니까.
구위가 구려서, 스쳐도 장타인데, 뭘 맞춰 잡아? 이판사판 그냥 삼진 노리는 거지.
최대한 배트 피하면서.
이렇듯 투수는 저마다 재능과 장점이 있는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가르는 자신만의 ‘개성’도 가지고 있다.
투수의 피칭 스타일은 그런 재능과 개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만들어지고.
그런데 투수가 갑자기 정 반대 성향의 피칭 스타일에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피칭에 홀려서 말이다.
‘개박살 나는 거지. 안 어울리는 옷 입고 소개팅 나간 건데. 잘 먹힐 리가 있나. 기량이 엄청나게 좋다면 또 모를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별건 아니고,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거든.
그런 씁쓸한 광경이.
“또 맞아? 쟤 갑자기 왜 저러냐. 잘 던지다가 뜬금없이 털리네.”
“제구가 심하게 몰리는데? 손톱 깨진 건가?”
“부상 재발한 거 같은데? 염좌 그거 한번 터지고 나면, 그 뒤에도 계속 재발하잖아.”
덕아웃이 어수선할 만큼, 마운드의 코리 왈터는 처절하게 털리고 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일 정도로.
‘아니지, 이 경우는 사실상 내가 부추긴 건데, 다행이라고 하면 너무 싸이코 같겠네.’
반성하는 사이, 또다시 안타가 나왔다.
3루 주자 홈인. 타자는 2루까지.
점수는 이제 7대3.
참고로 우리가 3이다. 상대가 7이고. 많이도 털렸네. 빠따도 안 좋은 애들한테.
더 놀라운 건 저 7실점 중 4점이 이번 이닝에 나왔다는 거겠지.
‘이제 ERA도 슬슬 나랑 비슷하겠네. 아니, 이젠 쟤가 더 높을 수도 있겠는데?’
자책점은 오늘로 비슷하거나, 왈터가 살짝 더 낮겠지만.
녀석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내가 선발로 나가면서 서로 간에 이닝수가 심하게 벌어졌기에 어쩌면 이제는 ERA조차 내가 더 앞설지도 모른다.
‘코치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네. 하긴, 딱 보이니까. 뭐 때문에 저러는 건지’
존 와스딘은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투수 하나가 스스로 망가지고 있는데. 그는 투수코치이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겠지.
그걸 보니 이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의도했던 나이기에 괜히 미안해졌지만. 어쩌겠어, 결국 다 코리 왈터 본인의 선택이지.
‘내 삼진에 꽂히셨구만. 내가 좀 많이 잡긴 했지만,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내가 생각한 건 좀 무리하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정도였는데 말이야.
자기 혼자 이상한 거에 빠지더니, 예상보다 훨씬 일찍 무너지고 있다.
현재 코리 왈터의 문제점은 간단하다. 삼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
‘구속은 빨라도, 성향 자체는 애초에 맞춰잡는 스타일이니까. 좋은 스터프를 바탕으로 해서.’
평소에는 맞춰 잡는 녀석이, 갑자기 삼진에 눈을 뜨더니, 거기에 집착하는데, 결과가 좋을 리가 있나.
‘어깨에는 힘이 빡 들어갔는데, 머릿속에서는 자꾸 내 삼진이 아른거리고. 그러다 보니 제구는 계속 몰리고. 아주 총체적 난국이네.’
물론 코리 왈터 본인도 의식적으로 삼진을 노리는 건 아닐 거다. 애초에 불가능하지, 모든 볼배합은 투수코치가 주관하는데.
다만 머릿속 한편에 남아 있는 거지. 계속 시선이 가는 거고.
‘초반부터 달리면서, 뜻밖의 삼진도 제법 잡았으니. 욕심은 더 커졌을 거고.’
제 아무리 러프라이더스 타자들이 못한다고 해도, 싵투를 놓치지는 않는다.
실투‘만’ 던지는 투수를 공략 못 하지도 않고.
‘거기에 이번 이닝 들어서 한 눈에 봐도 구위가 훅 떨어졌어. 무리하게 던지면서 체력소모도 훨씬 빠르게 진행된 거지. 그래도 한, 두 경기는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첫 이닝에서 패스트볼 최고구속만 일곱 번 찍었고. 그 뒤로는 쭉 전력투구.
그나마 경기가 잘 풀릴 때는, 지치는 줄 모르고 눈 뒤집고 던지겠지만,
한방 얻어맞는 순간 최면은 풀린다. 그간 누적된 피로감이 한번에 몰려오고.
그 결과가 지금 상황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동앗줄은 투수교체라도 해서, 멘탈이라도 보존하는 거지만···
“왈터, 교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보는 내가 다 안 쓰러운데.”
“교체해야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이라니, 무슨 뜻이야?”
같은 생각인지 옆에 앉은 앤디가 조잘거리는데, 내가 묘한 말을 하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포수라는 녀석이, 기본적인 상황 돌아가는 것도 모르네.
“오늘 왈터 역할이 뭐야?”
“그야 오늘도 롱 릴리프지.”
“정상적인 교체 타이밍은?”
“길게 맡기려고 했으니까, 이번 이닝까지 딱 3이닝 던지고··· 9회에 안드레스가 클로저로 올라가는 거겠지.”
“안드레스는 불펜에 언제 들어갔는데?”
“그야··· 지난 이닝 중간쯤에.”
“어깨가 풀렸을 것 같아?”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을까?”
“그럼 대체 지금 왈터랑 교체할 수 있는 투수가 누군데?”
말문이 막힌 앤디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투수코치를 봤다.
존 와스딘은 몸을 달싹거렸지만, 방법은 없다. 아직 교체투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불펜이 들어가 있기는 한데. 제대로 어깨가 달아오르려면 아직 한참 더 걸리지.
지난 경기에서 불펜을 제법 소모한 탓에 오늘 왈터를 롱 릴리프로 세운 것이고.
그러니 원래 계획은 코리 왈터가 이번 이닝까지 잘 막아주는 것이었는데. 대차게 망했다.
다른 투수도 없다. 차라리 메이저리그였다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투수를 대충 투입 시키고 막았겠지만. 여긴 마이너잖아? 그것도 더블A. 있는 투수라곤 죄다 유망주라고.
한 명 한 명이 구단의 소중한 미래자산인데, 일개 마이너 코치가 함부로 소모할 수가 없지.
‘졸라 게 고독하겠네. 저 기분 나도 잘 알지.’
딱 보면 느껴진다.
어떤 기분일지가.
아마 자기가 믿고 있던 세계가 모조리 산산조각난 것 같겠지. 나도 그랬었으니까.
싱글A에서 개처럼 털렸고. 하이A에 올라갔을 때도 똑같이 털렸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적응했고.
그러면서 내성이 생긴 건지, 더블A에서 털렸을 때는 훨씬 나았다. 정신도 금방 차렸고. 그런데··· 쟤도 그럴까?
‘이번이 처음이겠지. 최소한 옆에서 본 입장에서는, 엘리트 코스였으니까.’
드래프트 이후 2년만에 더블A. 이거면 말 다 한 거지.
아마 처음일 거다. 이렇게 털려본 건.
“아···”
“갔네, 저건.”
곧 빠악-하는 타격음이 울리며.
마지막 한방이 터졌다.
로날드 구즈만. 상대팀 최고의 타자는 최상의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굉음을 내며 날아간 타구는 펜스를 넘었고. 타자와 주자는 유유히 베이스를 돌았다.
투런 홈런.
그제야 코리 왈터는 처음으로 고개를 떨궜다.
‘끝났네, 선발 경쟁.’
불쌍하지만, 뭐 어떡해.
팀워크? 동료애? 마이너에 그딴 게 어딨어. 어차피 다 밟고 올라서야 하는 머리들인데.
그 외의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인 건, 최소한 25인 로스터에 콱 박힌 뒤에 해도 안 늦으니까.
그저 감사해야지. 또다시 누군가를 끌어내려서, 한 계단 더 올라갔다는 것에.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 좀 가까워졌잖아? 최종 목적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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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졌다.
대차게 털렸는데 어떡해.
우리팀 타자들이 제법 잘 친다고 해도, 그 정도 점수차는 못 뒤집지.
교체투수가 준비되자마자 강판된 코리 왈터는 도망치듯 덕아웃을 나가더니,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경기가 끝난 뒤, 나는 병아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온 녀석들과 함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그래, 참 대단하네. 저녁 한 끼 대접하겠다더니, 겨우 타코벨이야?”
“난 불만없어.”
“나도.”
“꼬우면 숙소가서 스팸이나 퍼먹-”
“어우, 그럴 리가. 그냥 해본 소리지. 자자, 어서 들어가자.”
마이너리거들의 주 식사는 세 가지다. 빵, 계란, 스팸. 탄수화물이랑 지방, 단백질을 골고루 갖춘 식단이지.
맛있어 보인다고?
한 달, 아니 한 시즌 내내 먹어봐라. 냄새만 맡아도 토 나올 걸?
거기에 챙겨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살면서 운동밖에는 안 해본 놈들이 뭔 요리를 하겠어? 대충 다 기름에 굽는 거지.
기름 살 돈도 없으면 그냥 맨 후라이팬에 살살 굽고. 그마저도 귀찮은 놈들은 대충 계란만 삶은 뒤 나머지는 그냥 퍼먹는다.
그거랑 비교하면, 값싼 패스트푸드라도 진수성찬이지.
저거 봐, 보 테일러 자식, 간판보고 투덜거리더니, 코 박고 흡입하잖아?
“천천히 좀 먹어라.”
“천천히 먹는 거야. 최소한 씹기는 하잖아? 평소에는 그냥-”
“그래, 알았으니까, 입 좀 닫아. 거북해서 못 보겠네.”
다니엘 고셋과 보 테일러.
그리고 자기는 쿠바 사람이고, 쿠바나 멕시코나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라며.
간만의 고향음식 먹고 싶다는 개소리를 핑계로 꼽사리 껴서 합류한 앤디 파즈.
그나마 팀 내에서 나랑 친한 놈들 다 모였네.
“그나저나, 오늘 왈터는 갑자기 왜 그런 거야? 갑자기 훅 털리던데. 혹시 또 부상?”
“몰라, 계속 공이 존안으로 몰리더라. 뭐에 홀린 것처럼.”
오늘 경기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코리 왈터.
이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지.
둘은 투수고, 나머지 두 놈은 포수니까, 더욱더 그렇고.
직접 공을 받았던 보 테일러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같이 호흡 맞춘 투수가 갑자기 털렸으니, 기분 참 더럽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선발자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겨우 한 경기 못 한 거니까. 아직은 확신 못 해. 다만···”
보 테일러가 슬쩍 나를 본다. 나 좋은 일이니, 내가 직접 말하라는 눈치네.
“내 성적이 X나게 좋은 게 문제지. 코치도 아마 머리 엄청 아플 거야.”
“성적대로면 이제는 Suck, 네가 압승 아니야?”
사실 선발투수였던 놈이 한 경기 잠깐 못했다는 이유로 자리를 뺏기지는 않는다.
최소한 쓰리아웃은 주는데. 문제는 경쟁자가 X나게 빡세다는 것.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워낙 잘했어야지. 오늘 경기로 그나마 앞서던 ERA도 역전됐을 테니.
성적을 놓고 보면, 모든 부문에서 내가 압도한다.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나마 왈터가 어필 가능한 건, 우월한 구속과 준수한 구위 덕분에, 아직까지 실링 자체는 본인이 더 높다는 것 정도?
‘아마 한 두 경기쯤 더 기회를 주겠지만··· 나갈 때 얼굴 보니까, 멘탈이 완전히 터졌던데, 후유증이 최소한 한 달은 가겠지.’
그러니 선발 경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금 허무하지만, 야구가 그런 거지.
마이너에서 한순간 주저앉는 선수가 한 둘인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이제 슬슬 올스타 아니야?”
“퓨처스? 7월 10일이니까, 곧 이기는 하지.”
그렇게 왈터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불쑥 앞으로 있을 가장 큰 이벤트가 주제거리에 올랐다.
올스타 퓨처스 게임.
쉽게 말해서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데. 마이너리거로서는 콜업 다음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행사 중 하나다.
저기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미래의 올스타라는 뜻이니까.
뭐, 우리랑은 관계없지만.
“Suck 너도 5월부터 잘했으면 노려볼만 했을 거 같은데. 지금은 힘들겠지?”
“힘들지. 지금쯤이면 선수 선정 거의 끝났을 텐데. 늦어도 한참 늦었어.”
“우리 팀에서 나갈만한 놈이 있나? 그나마 채프먼?”
“3루에 잘하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걔도 좀···”
우리팀, 적당히 잘한다.
팀 성적도 좋고, 타자들과 투수들의 성적도 무난하니까.
하지만 퓨처스에 들어갈 정도의 선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전멸이거나, 기껏해야 한 명 정도 간신히 뽑히겠지.
6월부터 바짝 잘하기 시작한 나는 애초에 논외 대상이고.
그나마 팜을 기대하고 있을 에이스 팬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듯 마이너리거로서 가장 영예로운 퓨처스 게임은 안 되겠지만, 그 대신 내가 노릴 만한 게 하나가 있기는 하다.
“Suck 너는 퓨처스는 힘들어도, 이달의 선수는 가능하지 않나? 이번 달 엄청 잘했잖으니까.”
“잘하긴 했지. 엄청나게.”
“이젠 부정도 안 하네.”
텍사스 리그 이달의 선수.
원래는 생각도 안했는데. 막상 들으니까, 구미가 당겼다.
6월이 끝나기 전에, 한 경기 더 등판할 텐데.
거기서도 잘한다면, 사실상 확정이겠지.
물론 마이너에서 이달의 선수 해봤자 아무런 가치도 없겠지만.
사실, 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
영양가 없어 보여도 막상 하나 받으면 괜히 기분 좋고, 간지도 나고.
‘한번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