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3화 (13/316)

13화

6회까지 볼넷 하나에 피안타 하나.

무실점 이닝은 22이닝까지 늘어났다.

이만하면 만점짜리 피칭은 좀 그렇고, 98점 정도는 되겠네.

“오늘은 10삼진 못 찍겠는데?”

“아직 한 이닝쯤 더 남았으니까, 노려봐야지.”

다만 오늘은 적당히 페이스를 조절해서 그런지, 탈삼진도 7개로 평소보다 조금은 줄었지만, 사실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대단한 페이스다.

이렇듯 오늘도 훌륭한 성적을 올렸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표정이 안 좋기는 한데, 저건 그냥 기분 나쁜 거고. 압도됐다는 느낌은 아니야. 확실한 임펙트가 필요해.’

오늘 경기의 진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거든.

코리 왈터. 얼굴에 아주 불쾌함이 팍팍 담겨 있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내가 바란 건 녀석이 아예 선을 넘어버리는 거니까.

‘슬슬 힘이 빠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직 한 이닝은 더 던질 수 있어.’

투구수도 넉넉하고, 체력도 충분하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며 존 와스딘을 보자, 그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한 이닝 더.

‘조금 더 힘 내보자고. 왈터 녀석도 저렇게나 열심히 지켜보는데.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에 다시금 의지를 다지며 한 이닝을 더 욕심냈는데.

올라가자마자 생각했다.

‘내려갈 걸 그랬나?’

슬슬 힘이 빠진다 싶더니.

7회가 시작되고 곧바로 하나 얻어맞았다.

깔끔한 중전 안타.

타자는 라이언 코델. 요주의 인물이 결국 일을 냈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

타자는 얌전히 1루에서 멈췄지만. 벤치에서 존 와스딘이 몸을 움찔거린다.

그래도 나오지는 않는 걸 봐선 아직까지 더 두고보겠다는 건데···

‘문제는 얘가 좀 찝찝하단 말이야. 로날드 구즈만. 오늘 타격감이 안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껄끄러워.’

4번타자 로날드 구즈만.

오늘 내가 잡은 삼진 7개 중 두 개가 얘 몫이다.

러프라이더스 타선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맥없이 털린 거지. 그래서 더 불안한 거고.

털리면서 차근차근 쌓은 타이밍이 슬슬 터질 때가 됐으니까.

그저그런 선수라면 모를까.

얘도 재능은 확실하기에, 안일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체인지업 네 개에 슬라이더를 하나. 나머지는 죄다 포심.’

앞선 두 타석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는데. 이제 뭘 던져야 하지?

‘일단 한 구 빼자. 먼저 타격감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확인해야겠어.’

내 쪽에서 먼저 사인을 내니 보 테일러가 고심하는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굿 보이, 말은 참 잘 들어.

길게 숨을 뱉으며 타자를 보자, 타자도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똑같이 나를 바라봤다.

아주 씹어 먹을 기세라 솔직히 좀 쫄렸지만. 그래도 뺄 생각이라서 마음이 편하다.

‘바깥쪽으로 낮게. 얻어 걸려도 빗맞을 정도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제구해서 던졌는데.

“아···‘

‘낮은 거 기다렸네.’

바로 걷어 올린다.

이거 넘어가나?

상당한 대형 타구에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다행히 넘어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각도가 살짝 낮았으니까.

“세이프!”

예상대로 펜스 앞에서 떨어진 공.

다행히 좌익수 스포트먼이 빠르게 대처해준 덕분에 1루 주자였던 코델은 3루에서 멈췄다. 그렇게 실점은 면했지만···

‘무사 주자 2,3루. 난감하네.’

진작 내려갈 걸 괜히 더 뻐겨가지고 난리났네. 괜히 왈터 기만 살려줬어.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겠지?

벤치에서 코리 왈터가 나를 비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배알이 꼴렸다.

‘코치가 올라올 것 같은데··· 이대로는 못 내려가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간만에 얻어맞은 대형 타구에 철렁거렸던 심장이 오히려 조금 진정됐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 성격은 아니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투쟁심이 불타오르는 걸 보면.

‘오늘은 그래도 페이스 조절을 잘해서, 어깨는 아직 쌩쌩해. 투구수도 90개 정도고. 위기 상황인 건 맞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야.’

허나 나랑 다른 생각인지, 예상대로 존 와스딘이 마운드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Go, 오늘도 충분히 잘했으니까, 뒤는 동료들에게-”

의례적인 말을 뱉으며 살살 달래면서 교체 시키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지.

“딱 이번 이닝까지만 제가 막을게요.”

“하아··· 무리하지 말라니까,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벌써 말 바꾸는 거야?”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니, 이번 한 번만 믿어주세요.”

진심을 가득 담아 간곡하게 부탁하니 길게 한숨을 쉰다.

나쁘지 않다. 한숨 쉰다는 건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거거든. 아니면 단호하게 끌고 내려갔겠지.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투구수도 아직 좀 남았잖아요? 하나 맞으면 제 발로 내려갈 게요.”

“어차피 하나 맞으면 2실점이잖아··· 혹시라도 흔들린다 싶으면 바로 내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역시나 설득은 성공.

신신당부를 남긴 채 존 와스딘은 다시 내려갔고, 다시 마운드에 홀로 남겨진 나는 어깨를 살살 풀었다.

‘무사 주자 2,3루. 상황만 보면 이보다 나쁠 수가 없겠지만. 솔직히 할 만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 팀에서 나한테 위협적인 타자는 이미 출루한 두 명이 전부다. 그러니 나머지는 쉽지.

‘갑자기 뜬금포 얻어 맞는 것만 아니면, 틀어막을 수 있어.’

다시금 호흡을 고르며 정면을 보니, 불안한 듯 보 테일러의 눈동자가 흐렸다.

존 와스딘과 마찬가지로, 혹시나 내가 무리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거겠지.

허나 이미 말했듯이 지금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다.

내 성격을 그렇게 모르나?

충분히 해볼 만하니까 개기는 거지. 아니면 진작에 내려갔지.

‘일단 조 잭슨 얘부터.’

5번타자 조 잭슨.

오늘 경기 삼진 하나와 땅볼 하나. 타격감이 좋아보이지는 않아.

그럼 얘도 이제 감 잡은 거 아니야?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얘는 가망 없어. 타이밍을 읽기는커녕, 아예 갈피도 못 잡고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 레퍼토리 좀 바꾸자. 이제까지는 과감하게 잡았으니, 그걸 토대로 속이는 거야.’

무사 주자 2,3루. 굳이 타자가 조급하게 초구를 타격할 이유는 없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스트라이크!”

과감하게 집어넣은 포심.

구속은 85마일.

예상대로 타자는 참았다.

‘그리고 멀게 하나 더.’

2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상당히 멀게 던졌다.

넉넉하게 볼이 될 만큼.

“스트라이크!”

허나 이제까지 빠르게 승부를 가져갔고, 또 초구도 과감하게 넣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예상한 타자는 스윙했고. 당연히 닿지 않았다.

그렇게 투 스트라이크.

슬슬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참다가 투 스트라이크 몰렸으니, 몸이 근질근질 거리겠지.

여기서 한 방이면 영웅되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높게 하나.’

손안에서 가볍게 굴린 공을 꽉 쥐어, 다시금 쏘아 보낸다.

높은 하이 패스트볼.

구속이 겨우 87마일에 불과하니, 흔히 생각하는 시원시원한 느낌의 하이 패스트볼 아니다.

아니, 하이 패스트볼이라기 보다는.

“스트라이크 아웃!”

폭투에 가깝겠지.

보 테일러는 거의 일어나다시피 하며 공을 캐치했고, 결국 높은 공을 참지 못한 타자는 그대로 헛스윙 삼진.

‘일단 아웃 하나.’

이렇게 하나씩 잡아가는 거지. 그러다 보면 쓰리아웃 되는 거고.

‘어깨는 아직 멀쩡해. 공의 위력도 크게 떨이지지는 않았고.’

후속타자가 올라오는 동안 몸 상태를 점검했는데, 다행히 이전과 비슷하다.

물론 전체적으로 피로감에 찌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알렉스 버그. 생각보다 공을 잘 골라내는 편이지만···’

6번타자 알렉스 버그.

성적은 그다지 안 좋은데, 의외로 선구안은 준수하다.

당장 오래간만에 올라간 볼넷의 주인공이 얘고.

나한테 볼넷 얻어낸 건 대단한 업적이다.

홈런을 쳐맞더라도 웬만하면 볼넷은 안 주는데, 그걸 해냈다는 거니까.

이렇듯 선구안도 좋은 녀석이 왜 성적이 나쁘냐면···

“스트라이크 아웃!”

‘떨공삼이지.’

흔히 떨공삼이라고 말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거든.

내 서클은 역회전까지 가미된 훌륭한 떨어지는 공이고.

차분하게 몰아넣고 서클을 던지니, 여지없이 배트가 헛돌았다.

그것으로 투 아웃.

‘그래도 생각보다 길게 버텼어. 투구수 여섯 개. 좀 힘드네.’

이제 마지막이다.

알베르토 트리언펠(Alberto Triunfel).

유격수인 걸 감안하더라도 성적이 처참하다. 과하게 생각이 많은 타입이지. 스윙이 신중한 정도를 넘어서, 우유부단한 수준이니까.

‘어차피 마지막 타자. 남은 체력 너한테 다 쏟는다.’

그렇기에 최대한 안전하게 잡기 딱 좋다.

“볼.”

“볼.”

“스트라이크!”

“파울!”

“볼.”

가진 것을 탈탈 털어 넣어서 완성시킨 풀 카운트.

타자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똑같이 침을 삼켰고.

기세 좋게 끌고 오기는 했는데, 더럽게 쫄리네.

삐끗하면 만루. 맞으면 2실점.

손 떨려서 살겠나.

“쓰읍- 하.”

진정할 겸 길게 숨을 들이마시니, 건조한 공기가 폐를 뒤집어 놓았다.

처음에는 적응 안 돼서 괜히 목이 좀 까끌까글거렸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이제는 상쾌한 느낌마저 든다.

다시 맑아진 정신으로 공을 내려봤다.

‘딱 한 번, 딱 한 구만 잘 들어가줘, 그러면 끝이니까.’

갑자기 시간을 끄니,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보 테일러가 사인을 보내는데. 눈치가 너무 없네.

감성 좀 잡다가 던지려고 했더니, 제대로 초를 쳤다.

‘뻘짓하지 말고, 그냥 던지자.’

와인드업 후 길게 내디딘 다리를 지지대 삼아 상체를 끌어당겼다.

그 반동 그대로 팔을 휘두르며 손안 가득 꽉 담긴 공을 뿌렸고. 그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마쳤기에 그저 얌전히 지켜봤다.

‘제발 들어가라!’

기도까지 살짝 곁들여서.

세 번째 타석에, 풀카운트라서 그런지.

이제는 공이 눈에 익은 듯, 곧바로 코스를 확인한 타자는 배트를 내밀다가, 그대로 멈췄다.

체크 스윙.

바깥쪽으로 깊은 코스이니.

제아무리 오늘 주심이 바깥쪽을 잘 잡아준다고 해도, 무조건 볼이라고 생각했겠지.

틀린 판단은 아니다.

서클이나, 포심이라면 볼이었을 테니까, 그러면 만루가 되는 거고. 힘이 빠질대로 빠진 내 입장에선 꽤나 난감했겠지.

서클이나 포심이라면 말이야.

“스트라이크 아웃!”

“What The- 지금 제대로 본 거 맞아? 볼이잖아! 볼! 나갔다고!”

급격하게 꺾여 들어간 공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며 포수 글러브로 들어갔고. 설마설마하는 표정을 짓던 타자는 루킹삼진을 알리는 주심의 요란한 삼진콜에 격하게 항의하는데.

‘애매하긴 하지. 거의 스치듯이 들어갔을 테니까.’

어쩌겠어?

지금까지 잡아줬는데 이제와서 안 잡아주면, 그거야말로 진짜 오심이지.

꼬우면 돈 벌어서 직접 스트라이크 판독 기계라도 개발하든가.

“KKK!”

“KKK!”

타자의 분노와는 별개로 열광에 휩싸인 경기장은 곧 삽시간만에 광기에 휩싸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같은 단어를 뱉었고. 심지어는 내 허리춤에도 안 올 것 같은 어린아이조차 하늘 높이 팔을 들어 올렸다.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세 타자 연속 삼진.

그리고 세 경기 연속 10K.

그 압도적인 화려함에 매혹된 이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미친새끼···”

“알아, 쩔어주지?”

“네가 사람이냐? 드디어 좀 쳐맞나 싶었더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보 네가 그런 말하면 안 되지. 포수라는 놈이.”

관중들만 그런 게 아닌 건지. 덤덤한 척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가니 보 테일러 또한 극찬을 내뱉으며 나를 반겨주는데, 직접 공을 받은 주제에 많이 놀란 것 같네.

보 테일러뿐만이 아니라, 야수들과 벤치의 다른 녀석들 또한 누가 보면 진짜 대기록이라도 세운 것처럼 놀란 눈치고.

허나 얘들 반응 따윈 필요 없다.

내 시선은 오로지 딱 한 사람에게만 고정됐으니까.

‘자, 이제 니 차례야. 어디 한번 열심히 해봐.’

코리 왈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 녀석에게 말이다.

####

숨통이 조여든다.

마치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경기가 시작한 이후로 서서히 조금씩 조여들었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 연이어 안타가 나오며 다시 숨구멍이 트이나 싶었는데.

“스트라이크 아웃!”

또 다시 울리는 삼진콜에 다시금 턱 막혔다.

코리 왈터는 저도 모르게 목을 매만졌지만,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왜일까?

목을 밧줄로 꽉 묶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누군가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뭐냐고 대체···’

10마일의 차이가 나는 구속.

스터프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거의 배팅볼 수준이니까.

스카우트 100명에게 물으면, 아마 95명은 자신의 손을 들어주겠지. 더 실링이 풍부하다면서.

그중 절반 이상은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다며 혀를 찰 거고.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로 코리 왈터 자신이 더 나은 투수인지가.

“스트라이크 아웃!”

어떻게 의심이 안 생기겠어.

눈앞에서 이런 걸 봤는데.

압도적인 삼진 능력.

녀석은 마치 볼이라는 것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 건지, 집요하게 존안으로 쑤셔 넣으며 삼진을 노렸다.

그 모습에 홀린 것처럼 저절로 빠져들었고, 몇 번씩이나 입술이 떨어졌고. 그 절정은 마지막 7회였다.

드디어 몰렸구나 싶었는데, 끝내는 위기를 뚫고서, 당당하게 자기 손으로 이닝을 마치는 모습은 그저···

공포스러웠다.

나는 할 수 있을까?

저런 걸 보여줄 수 있나?

재능으로 따진다면, 내가 훨씬 더 높지 않나? 근데 왜···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삼진.

이전과 다르게 힘겹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고.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놓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벤치로 돌아왔다.

지난 경기, 다시 돌아온 마운드와 훌륭한 기록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내려갔던 코리 왈터 자신과는 다르게.

아무런 제스처나, 세리머니 없이. 그저 뚜벅뚜벅.

헌데 아이러니한 것은, 동네 마실 나가듯 볼품없는 모습인데, 그 위압감은 이쪽이 더 컸다는 거다.

뒤따르는 환호성 역시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오늘도 최고예요!”

“너 때문에 야구 볼맛 나!”

“나중에 우리 가게 와라! 내가 한 끼 대접해줄 테니까!”

그렇게 덕아웃으로 걸어오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바라보면 저절로 압도되어 머리가 멍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벽.

20이닝 무실점. 31탈삼진 1볼넷. 피안타 6개.

세 경기 연속 10K.

세 번의 선발등판으로 완성시킨 압도적인 성적.

그것에서 비롯된 위압감이 어깨를 짓누르자, 그와 동시에 코리 왈터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반항심이 함께 피어올랐다.

‘나라고 못할 게 뭔데?’

너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애초에 원래 내 자리니까.

‘네가 하면, 나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인지.

아니면 그저 어린 아이와 같은 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기에 코리 왈터는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으려 고개를 쳐들었다.

‘그깟 삼진, 나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수많은 경쟁자들을 쓰러뜨렸고. 무수히 많은 이들을 밀어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꿈에 그리던 빅리그에 도달하는 이곳에.

그러한 과정 속에서 도태되는 이들을 보고 조소를 흘리며. 나는 다르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이번이 자신의 차례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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