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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1화 (11/316)

11화

코리 왈터는 미션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 4차에서 복귀 이후 첫 등판을 선보였다.

선발투수였던 라울 알칸타라가 생각보다 이르게 무너지면서, 긴 이닝을 막기 위해 4회에 마운드로 올랐는데.

“왈터 자식, 쉬고 오더니 더 잘해졌는데? 엄청 빠르네.”

쉬는 동안 체력을 제대로 회복한 건지, 원래도 빠른 구속이 더 빨라진 느낌이네.

찍히는 구속은 같으니, 공에 힘이 더 실렸다는 거겠지.

“스트라이크 아웃!”

“으아아아!”

이젠 아주 노골적으로 구네.

복귀 후 첫 이닝을 삼진 두 개를 포함한 깔끔한 삼자범퇴로 마친 녀석은 마치 보란 듯이 고함을 질렀고. 그에 상대팀은 불쾌한 듯 녀석을 노려봤지만. 사정을 아는 우리 팀 애들은 피식피식 웃기 바쁘다.

“왈터, 오늘 피칭 좋은데? 경기력이 빨리 올라왔나 봐?”

“하하, 겨우 한 이닝인데요 뭘. 이쯤은 별것도 아니죠.”

벤치에 돌아오고 나서도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치는데, 아주 꼴보기가 싫다.

경쟁자라서가 아니라, 쟤 말마따나 겨우 1이닝 잘 막아놓고 저게 뭐하는 개짓거리야.

‘자기 딴에는 어필하는 거겠지만. 탈탈 털린 라울 앞에서 저 지랄 하는 건. 좀 자제해야지. 나도 지 강판당했을 때, 입 안 털었구만.’

오늘의 선발투수께선 수건 뒤집어쓰고 고개 푹 숙이고 계신데. 예상대로 심기가 불편해 보이신다.

자기 생각에 빠진 왈터는 그걸 미처 캐치하지 못한 건지, 여전히 자신만만한 모습을 유지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자기자신에게만 집중해서 그런 건지, 경기력은 상당히 좋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제 세 개째. 힘을 있는대로 끌어다 쓰는 구만.’

이후로도 줄줄이 타자들을 손쉽게 잡아내며, 계속해서 기세를 올렸으니까.

역투라고 지칭해도 좋을 만큼 힘 있는 피칭에 미션스 타자들은 나와 맞붙었던 1차전 때처럼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고. 그렇게 코리 왈터는 3이닝 3탈삼진, 1피안타라는 기록을 올리며 복귀 경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Suck, 너는 조금 난감하겠다? 선발 자리 지키려고 별 쇼를 다 했는데. 다시 귀찮아졌네.”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벤치로 돌아오는 녀석을 보며, 간만에 앤디 파즈에게 자리를 넘겨준 보 테일러가 옆에서 주절거리는데.

“그럴 리가.”

솔직히 쪼오끔 쫄리긴 하지만. 큰 위협감은 없었다.

왜냐고?

“오~ 자신만만하네? 하긴, 지금까지 네가 보인 게 얼만데, 겨우 저 정도로 쪼는 것도 좀 우습긴 하지.”

얘는 자꾸 헛다리를 짚네.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긴 하다.

좋은 성적은 내 발판이자, 코리 왈터를 압박할 카드니까.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번 선발 경쟁의 진짜 키 포인트는 상대방, 즉 코리 왈터다.

‘이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니까, 제대로 보이네.’

이틀 전, 내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가.

강력하고, 폭압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한.

미션스를 썰어 넘길 때의 내 모습이 딱 저랬겠지.

옆에서 지켜보니, 뭐가 문제인지 확실하게 보였다.

“얼마 못 가겠네.”

“저주야? 동양의 신비, 뭐 그런거? 기왕 코리한테 저주 거는 거, 애슬레틱스 포수들 한테도 걸어서 나가리 시켜주면-”

“그런 거 아니니까, 좀 조용히 해라. 아니, 너는 타자한테도 안 하는 트래스 토크를 왜 나한테 해.”

한바탕 쏘아붙이니, 삐진 건지 투덜거리면서 멀어지는데. 괜찮아, 저러다가도 또 말 상대 해주는 사람 없으면 슬그머니 다가오니까.

‘경쟁,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나겠네.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상대 파악을 마쳤으니.

이젠 나한테 집중할 시간이다.

####

“고셋, 니 노트북 세 시간만 빌리자.”

“노트북? 노트북은 갑자기 왜? 뭐, 볼 거라도 있어?”

“좀 필요해서. 빌려주면 내가 식사 한끼 대접할게.”

“Suck 니 지갑 사정이야 뻔히 아닌데, 내가 어떻게 얻어먹어. 그냥 빌려줄 테니까, 엄한 거만 보지 마. 바이러스 안 걸리도록.”

3차전이 있었던 날 저녁.

나는 옆방 ‘친구’인 고셋에게 노트북을 빌렸다. 나도 예전에 한 대 사놓기는 했는데, 고장난지 오래거든.

대가로 밥이라도 한 끼 사려고 했더니, 거절하는 걸 보아, 좋은 녀석이 확실하다.

그렇게 고셋에게서 노트북을 빌린 채,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시디 하나를 넣어, 영상을 재생했다.

‘제대로 한번 봐야지.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

바로 지난 경기 영상.

마이너라고 해도, 중계도 있고, 또 구단에서 경기를 녹화해 두기도 하는데. 그걸 간신히 사정사정해서 빌렸다.

잘한 거 되돌아보면서, 자기위안 하려는 건 아니고. 확인할 게 있거든.

지난 미션스와의 경기는 나한테 여러 가지 교훈을 줬다. 첫 번째는 코리 왈터를 보며 다시금 마음에 되새긴 ‘조급해지지 말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인터벌 하나만 빨라져도, 타자들이 생각보다 맥을 못 추린다는 것. 지난 경기 후반부에 폭주가 가능했던 건, 쭉 전력투구를 했던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평소보다 훨씬 간격이 좁혀진 피칭도 컸어.’

의도적으로 인터벌을 조절하는 선수들은 많다. 빠른 인터벌은 그것만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흔들기도 하니까.

때때로 극단적으로 느린 인터벌 역시 타자에게 다른 의미의 고통을 선사하기도 하고.

‘그동안은 생각은 했어도, 시도는 못 해봤지. 인터벌을 빠르게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인터벌은 생각보다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걸 의되적으로 빠르게 하는 건 쉽지 않다.

인터벌이 빨라지려면, 동작도 빠르게 준비돼야 하고. 그만큼 공을 던지기 전, 바디 밸런스를 잡는 시간도 빨라져야 하니까.

‘괜히 피칭 간격 인위적으로 좁히다간, 밸런스가 망가져서 슬럼프가 찾아오는 게 훨씬 빠르겠지.’

그러니 충분한 준비와 노력. 그리고 적응 과정이 필요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더 신기하단 말이야.

-스트라이크 아웃!

마치 이제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굉장히 편안하게, 공을 미친 듯이 던지는 영상 속 내 모습이.

‘4회부터 평균적인 투구 간격은 대략 16~7초 정도인가?’

이닝이 끝나기까지 공 11개를 던지는 동안 소모된 시간은 3분쯤 가량.

그러는 동안 제구 역시 일정하다. 이게 왜 가능한 거지?

‘공의 위력도··· 이전과 차이가 없어. 날림으로 던진다거나 하는 거 없이, 꾸준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나?’

영상 속에서 나는 그야말로 쉴 틈 없이 타자들을 몰아붙였다.

공을 던지자마자, 투구폼을 준비하다시피 하며 짧은 투구 간격으로 타자들을 압박하는데.

인터벌이 빨라진 거야, 눈 돌아가서 던졌으니 그렇다고 쳐도. 제구와 공의 위력이 일정한 게 가장 이상했다.

투수라는 게 예민한 동물이라서, 평소랑 동작이 조금만 달라져도 제구가 개판이 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게 의아해서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돌려봤고, 곧 이유가 드러났다.

‘일단 영상에서 보기에는 스트라이드 간격이 균일하고. 투구폼도 거의 비슷해. 릴리스 포인트나 팔의 각도도 마찬가지고. 말 그대로 속도만 빨라졌어.’

물론 이 정도 영상으로 세세한 동작까지 확인할 수는 없으니. 아마 깊이 들어가면 여러 가지가 조금 다르겠지만.

최소한 확인 가능한 동작들은 이전과 균일하다.

‘심지어 그러면서 손안에서 공 굴리는 것도 꼬박꼬박하네.’

인터벌은 인터벌대로 빨라지고, 나머지는 이전과 같거나 아무리 못해도 비슷하다는 거잖아?

‘이것도 서클과 제구, 슬라이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축복인가?’

아니면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않은 탓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 재능?

‘이 만큼 자신감 있게 공을 던져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만약 이게 원래부터 내 몸안에 있었던 재능이라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성적이 더 좋았을지도 모를 텐데.

‘괜히 좀 아쉽네.’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입안이 씁쓸해졌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효과가 없다면 모를까, 이미 한번 직접 경험했고, 또 몸이랑 잘 맞는데, 굳이 버려둘 이유는 없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잖아?

‘이 정도면 구종 하나 새로 긁히는 것보다 훨씬 낫네.’

혹시라도 미처 캐치하지 못한 게 있을까, 몇 차례 더 영상을 돌려봤지만. 딱히 눈에 보이는 문제점은 없었다.

그나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저날 평소보다 금방 과부하가 걸렸던 어깨인데.

그것 역시 인터벌이 빨라서라기보다는 계속 전력투구한 것 때문이겠지.

‘일단 감부터 잡아보자.’

그렇게 분석을 마친 뒤, 노트북을 주인에게 고이 돌려줬고.

“이상한 거 본 거 아니지? 노트북에 뭐 묻어있다거나 하면···”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잠이나 잘 자라.”

“으음··· 일단은 믿을 게. 너도 잘자, Suck.”

야밤의 관람회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게 막을 내렸다.

####

다시 돌아온 코리 왈터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내 선발등판 또한 예정됐다.

‘아마 온전하게 등판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만.’

막 부상에서 복귀한 투수이고, 또 이미 며칠 전에 롱릴리프로 등판까지 했으니. 선발 로테이션에 맞춰 내가 등판하지만.

이후 일정에 따라 왈터에게도 몇 차례 정도는 기회가 돌아가겠지.

“쯧···.”

‘본인은 그것조차 불만인 것 같지만 말이야. 욕심도 많다, 지난 시리즈에 3이닝 던진 놈이 말이야.’

하지만 왈터는 그저 나한테 기회가 더 주어진 것만으로 몸이 닳는 듯.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멀~리서 나를 쳐다보는데, 쟤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고개를 절레 저으니,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표정이 더 일그러지는데. 계속 그러고 있어라. 나는 불펜으로 갈 테니까.

‘러프라이더스, 얘들도 솔직히 좀 만만하긴 한데.’

왈터에 대한 관심을 잠시 꺼버리고, 불펜으로 들어가며, 상대팀 정보를 떠올렸다.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의 더블A팀이자, 일단은 리그에서 잘나가는 팀이다.

성적은 우리랑 엇비슷한데. 리그 내에서의 인기가 다르지. 레인저스 산하라니까? 여긴 텍사스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도 텍사스를 연고지로 하고 있고. 최근 성적으로 따지면, 레인저스보다 훨씬 잘나가지만. 주 내에서는 여전히 레인저스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애초에 이름 앞에 텍사스 달고 있잖아, 그럼 뭐 말 다 한 거지.

그렇기에 당연히 그 산하인 러프라이더스 또한 미래의 레인저스라며 인기가 많은 편인데. 그건 뭐 사실 중요하지 않고.

‘구즈만이랑 코델, 얘네 둘 파워는 무시 못 하지.’

그런 인기와는 별개로, 타격 자체는 미션스랑 또이또이한 게 가장 중요하다.

텍사스 리그 내에서 하위권이니까.

그나마 좀 다른 게 있다면, 확실한 중심타자는 있다는 것 정도.

그래도 한방은 있는 만큼, 최대한 조심해야 겠지만, 그거야 언제나 그런 거고.

경기에 앞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오히려 그 이전의 불펜피칭이었다.

“Go, 오늘도 잘할 자신 있지? 저번처럼 무리 안할 자신도 있고?”

“물론이죠.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쇼.”

몸 풀려고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존 와스딘이 반갑게 맞아줬다.

약간의 주의도 곁들여서.

경쟁자인 왈터가 잘하는 걸 보고, 혹시나 내가 자극받아서 또 난리치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것 같은데.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럴 일 없다며 손을 휘저으니,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일단 먼저 코치한테 의견 좀 구해볼까?’

“코치, 저번 경기 영상 보다가 괜찮은 거 하나 찾아냈는데요.”

“인터벌?”

진짜 귀신이네.

이 양반,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능한 거 아니야?

아니, 사람 마음을 이렇게 잘 읽는데, 현역시절에는 왜 성적이···

“왠지 좀 불쾌한 생각을 한 것 같은 표정인데, 하지 마.”

“안 했어요, 그런 거. 그나저나, 딱 아시네요. 그때는 경황도 없고, 어깨도 무거워서 그냥 넘어갔는데··· 쓸만하죠?”

“쓸만하지. 투구폼도 평소랑 거의 같고. 약간의 교정만 거치면, 마크 벌리가 따로 없을 거야. 보아하니, 너도 대충은 파악한 눈치고.”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데.

아마 이 양반도 입이 많이 근질거렸을 거다.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먼저 부탁하기 전에는 뭐라도 가르치려들거나, 혹은 뭔가 고치려고 들었다간, 미국 특성상 바로 옷 벗어야 될 걸?

이런 거 보면 코치도 참 X같은 직업이야.

아무튼 코치도 알고 있으니, 이야기는 더 쉬워졌다.

“그렇게 한번 던져 보려고 하는데, 혹시 뭐 잘못되는 건 없나, 좀 봐주실래요?”

“지금 하려고?”

“맛만 보는 거죠.”

“두 사람 뭐해요? 불펜피칭 안 할 거면 저도 그냥 가고요.”

우리끼리 속닥거리니, 공 받아주려고 앉아있던 보 테일러가 짜증낸다.

저거 분명히 내가 저번에 벤치에서 한소리 한 것 때문에 꿍해서 저러는 거야. 척보면 알지.

“미안미안! 뭐 좀 상의하느라! 좀만 기다려줘. 아무튼 코치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 인터벌이 빨라지면 생기는 이득이야 많겠지만. 문제는 갑작스럽게 동작을 빨리했을 때 뒤따라올 부상 위험도 무시 못 하지.”

저렇게 말하니 괜히 나까지 불안해지네. 초를 치는 것 같아도 타당한 말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최대한 주의하며, 먼저 테스트 해볼 겸, 의식적으로 지난 미션스 전을 따라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공을 던졌고. 지루하게 기다리던 보 테일러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공을 받았다.

그런데···

“으음, 뭔가 좀···”

“아닌 것 같죠?”

맛이 안 산다.

이 느낌이 아니야.

영상에서 봤던 대로, 휙휙, 공을 기계로 찍어내는 것처럼 동작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안 들었다.

“투구 간격은 몇 초 찍혔어요?”

“20초. 평소랑 똑같아.”

투구 간격 역시 평소랑 똑같고.

이후로도 몇 차례 던져봤지만, 역시나 시간이 크게 단축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거지? 동작은 다 똑같은데. 뭐가 문제인 거야?

새로운 무기 하나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대로 나가지가 않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네.

“그때 혹시 허리나 관절이 불편하다거나,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은 없었어?”

존 와스딘 또한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인지, 조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숨기는 건 아니고?”

“제가 그럴 놈으로 보여요?”

“어. 충분히 그럴 놈이지. 아무튼 네가 불편함을 몰랐다면, 투구폼 자체는 차이가 없었다는 건데.”

“코치가 볼 땐 어땠어요?”

“내가 봐도 똑같았어. 그때 정말 아무 느낌 없었던 거 맞아?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하려고 자세를 틀었다거나.”

곰곰이 생각해도 역시 딱히 다를 건 없었다. 어깨의 과부하야 전력투구 때문이고.

그렇다면···

“집중력 혹은 경기감각의 차이겠네.”

“집중력이요?”

알 것 같았다. 뭐가 다른지.

코치도 딱 집어줬고.

“Go, 네가 그때 4회부터 갑자기 스퍼트를 내기 시작했었지? 그대로 6회까지 쭉.”

“네, 그랬었죠. 4회면 경기 중반에 접어들 때니, 경기 감각이 딱 좋을 때네요. 집중력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바로 그거야. 이거 말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쉽게 말해서, 의식하면 안 된다는 거다. 충분할 만큼 집중력과 경기감각이 올라오면, 알아서 빨라진다는 건데.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무아지경도 아니고, 거참 조건 한번 까다롭네.

하지만 이해는 된다.

간혹 경기 초반보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더 공이 좋아지는 투수들이 있으니까.

흔히 슬로우 스타터라고 불리는 유형들 말이다.

진짜로 몸이 늦게 풀렸다는 의미는 아니고. 마인드의 차이인 거지.

‘그럼 지금까지 못 알아차린 건, 충분하게 경기에 집중을 못 했다고 봐야 하나?’

그런 거라면, 왜 이제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도 설명된다.

마냥 경기에 집중하기에는, 스치면 넘어가는 솜털 같은 구위를 가진 터라, 잡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온전히 경기에만, 스스로의 피칭 자체에만 집중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하위타선 상대로는 조커 카드처럼 쓸만하겠네.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다른 투수가 올라온 느낌일 테니까.”

“네, 투구 간격이 좁아지면서, 피칭 타이밍도 달라지니까요.”

만족할만한 결과물은 아니나.

그래도 실마리는 얻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애써 아쉬움을 접어뒀고.

우리가 열심히 떠드는 사이 지루하게 앉아있던 보 테일러에게 다시 일거리를 줬다.

궁금증도 풀렸으니.

이젠 진짜 경기에 집중할 차례였으니까.

‘귀찮은 선발경쟁. 금방 끝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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