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마이너리거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건 총 세 가지가 있다.
열악한 클럽하우스와 더럽게 짠 봉급. 그리고···
“X같다, 진짜.”
“Suck, 넌 버스 볼 때마다 그 소리더라.”
“그럼 너는 저 차가 괜찮아 보이냐?”
“그럴 리가. 우리 쿠바에서도 저런 버스는 바로 폐차 시켜.”
구닥다리 원정버스.
일단 외형부터 2차대전대 뽑은 건지, 폐차되기 일보직전인데, 실내는 더 대단하다.
먼저 비좁아 터진 좌석. 이거 한번 경험하면, 물리적인 고통도 크지만, 정신적인 고통도 아주 심하다.
생각해봐라, 운동선수라 한 체격 하는 사람들이 저 비좁은 좌석에 서로 부대껴서 몇 시간 동안 달리는 모습을. 심지어 다리도 제대로 못 피면서.
아주 뒤지는 거지.
또한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와서, 덥기도 엄청 덥다.
혹시라도 살이 붙으면 옆에 앉은 놈을 죽여 버리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면, 현타감이 확 온다.
내가 왜 이런 대접까지 받아가면서 여기서 야구를 하는 건가, 싶거든.
“앤디, 너 6피트지?”
“아니야, 좀 더 자랐어. 0.5인치 더.”
“눈높이가 그대론데, 지랄하지는 말고. 아무튼 너 나랑 같이 가자. 옆에 앉아.”
“미안하지만, 먼저 예약이 돼 있어. 나 9일에 출장하거든. 그래서 라울이랑 같이 가면서 얘기 좀 나누려고.”
“이 배신자 새끼야!”
“Suck,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마.”
그나마 작은 놈이랑 같이 앉아야 좀 덜한데, 그런 의미에서 눈독 들였던 앤디 파즈는 야속하게 버스 안으로 사라졌다.
제길, 팀에서 가장 작은 축에 드는 녀석이라 옆에 앉히기엔 딱이었는데···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녀석을 뒤이어 버스에 올라탄 나는 가장 먼저, 탑승한 이들의 면면을 쭉 훑었다.
‘코리 왈터··· 없어! 이번 시리즈에 포함 안 된 거야.’
코리 왈터. 녀석의 얼굴이 안 보였다. 뒤늦게 올 수도 있겠지만, 클럽하우스에서도 보지 못했으니. 정말로 이번 원정에서는 제외가 된 것 같았다.
부상자 명단에 오른 건가?
나쁘지는 않았다. 자리가 확실하게 비었다는 뜻이니까.
‘수학여행 간다고 생각하지 뭐. 클래식 한 게 나름 분위기 있네.’
괜히 기분이 좋다. 400마일? X같은 마이너버스? 뭔 상관이야~ 이번 시리즈에 선발등판 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중요한 거지.
“Suck, 쟨 또 왜저래? 기분 나쁘게 웃네.”
“왈터 없잖아. 선발 한 자리 비었으니, 자기가 등판한다는 거지.”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얼굴에 감정이 드러난다니까.”
해맑은 표정으로 착석하니, 다들 왠 미친놈 보듯이 보는데, 마음껏 욕해라. 아주 행복해 죽겠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대충 빈 좌석 하나를 차지하자, 조금 뒤 누군가 슬쩍 다가왔다.
“자리 비었어? 뭐, 예약자가 있다거나.”
“이 버스가 내 거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마음대로 앉아.”
“그렇긴 하지.”
‘채프먼? 얘 정도면 나이스지. 은근히 떡대가 좀 있지만, 그래도 낫배드야.’
맷 채프먼(Matt Chapman).
락하운즈의 주전 3루수.
얘 정도면 중상위권이다.
앤디랑 키가 비슷하거든.
6피트 정도?
체격은 앤디보다 더 크지만, 그래도 덩치 산만한 투수가 아닌 게 어디야?
참고로 투수들은 대부분 꽝인데, 고셋처럼 작은놈들도 있기지만, 대다수는 돼지새끼들이거든. 투수 두 명이서 옆에 딱 앉으면, 그땐 진짜 서로 멱살 잡는 거지.
‘확실히 없어. 로스터에서 빠진 거야. 부상자 명단에 오른 건가? 뭐든 간에, 이번 시리즈에는 안 나온다.’
그렇게 모두가 탑승한 뒤, 버스는 길을 떠났고, 역시나 코리 왈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남몰래 주먹을 꽉 쥔 나는 차분하게 일정을 계산했다.
‘선발 로테이션 대로면, 왈터는 10일에 등판하지?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마침 같은 날 등판했으니, 내가 걔 대신 로테이션에 들어가기도 딱 알맞다.
여러모로 나한테 유리하게 이어지는 상황에 흐뭇한 표정으로 창밖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울 무렵. 아주 귀가 찢어지는 듯한 코골이가 옆에서 들려왔다.
‘자나? 얘는 불편하지도 않은가봐. 난 버스에서는 도저히 못 자겠던데.’
더럽게 덜컹거리고, 자리도 비좁고, 시끄럽기도 제법 시끄러운데. 옆자리에 앉은 맷 채프먼은 아주 코까지 골아가며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침도 조금 새는 것 같은데, 이 모습만 보면 좀 모자란 앤가 싶겠지만···
‘얘도 벨린저처럼 재능은 진짜배기지. 수비는 당장 메이저가도 손색없을 정도고, 타격 쪽도 잠재력이 풍부해. 그러고 보면, 얘도 체격은 좋은 편이 아닌데, 파워가 좋단 말이야. 이런 것도 요새 트렌드인가?’
실력은 뛰어나다.
수비력도 좋은데, 타격도 좋아서, 현재 락하운즈 타자들 중 가장 성공할 녀석을 뽑는다면, 얘를 꼽을 정도로.
내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라, 실제로 구단에서 가장 기대하고, 주목하는 유망주다.
‘애초에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이니까. 나랑은 종자 자체가 다른 셈이지.’
재작년, 2014년도 MLB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5픽.
이것만 봐도 재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드래프트 뽑히고 2년 만에 더블A에 있다는 것도 대단한 거고. 이번 시리즈 상대팀엔 더한 녀석이 있지만, 아무튼 얘도 참 부러운 놈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곧 드래프트네. 하, 그 전에 뭔가 보여줘야 할 텐데··· 이번 시리즈에 무조건 등판해야 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완전히 다른 입지.
바로 옆자리인데, 이 녀석과 나에게는 머나먼 격차가 존재했다.
어쩌면 그러니, 저 녀석도 저렇게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거겠지. 큰 부상만 아니라면, 메이저까지는 그저 뻥 뚫린 고속도로일 테니까.
‘···잘하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좁혀가면 되는 거지.’
코리 왈터의 부재로 하늘 높이 치솟았던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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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퍼스 크리스티 훅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의 더블A팀이자, 앞으로 4연전을 맞붙을 팀.
걔네들의 홈인 코퍼스 크리스티는 흔히 생각하는 황량하고, 삭막한 텍사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먼 곳이다.
해안도시에,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때문에 대단히 건조하지도 않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여기도 텍사스 특유의 황량하고 건조한 분위기가 감돌기는 하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사막이나 다름없는 미들랜드랑 비교하면 훨씬 낫다.
특히 훅스의 홈구장, 와타버거 필드(Whataburger Field)는 경기장 코앞에 바로 바다가 있어서, 꽤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딴 게 무슨 소용이야. 색다른 느낌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경기를 뛰는 게 최우선이지.’
뭐, 사실 내가 여기 관광 온 것도 아니니, 도시 풍경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고. 선발 등판이 제일 관건이다.
가능성은 높아 보이는데, 확신은 못하니, 나는 최대한 밑밥을 던졌다.
“Go? 일찍 나왔네? 경기도 안 뛰는 녀석이.”
“하하, 몸이 힘이 남아돌아서요, 코치. 경기를 안 하더라도 훈련은 항상 성실하게 해야죠.”
가장 먼저, 원정지에 도착하고서 다음 날. 마이너 버스의 여파인지, 몸이 좀 뻐근한데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출근했다.
조금이라도 코치 눈에 띄려면, 쌩쌩한 모습을 보여줘야하니까.
“아~ 요즘 따라 컨디션이 너무 좋단 말이야. 타자들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후로 계속해서 투수코치 주변을 알짱거리며 자신만만한 말로 나 자신을 열심히 어필했고.
“어, Suck? 일찍 나왔네? 매번 원정 때마다 힘들어 죽겠다고 앓는 소리하면서 늦게나오-”
“어허, 이 에너자이저님께서 앓는 소리라니.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지금 당장 공 던져도 무방한 사람이야. 당장이라도 선발등판해도 된다고.”
“어제, 같이 저녁 먹을 때는 분명히 다리가 뻐근하다면서-”
“쓰읍, 조용히 안 해? 앤디 너 인마, 괜히 유언비어 퍼트리지 말고, 몸이나 풀어.”
뒤이어 나타난 앤디 파즈가 소소하게 태클을 걸기도 했지만, 금방 내쫓았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존 와스딘의 주변을 배회하며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거나, 몸에 힘이 가득하다거나, 구속이 한 95마일은 나올 것 같- 이건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개소리네. 아무튼 열심히 조잘거렸는데.
쓰읍, 이게 잘 먹히는 눈치가 아니란 말이야.
‘아까 인사한 거 말고는 아예 신경도 안 쓰네. 진짜 앞에서 엉덩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그래도 지난 경기는 잘했는데, 관심이라도 좀 주지.’
나한테 관심도 없어 보이는 투수코치가 야속했지만. 이해는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미친놈이지. 경기가 코앞인데, 괜히 코치 귀찮게 하는 거니까. 심지어 오늘경기도 안 뛰는 놈이.
‘어? 생각해보니 이거 좀 민폐 아니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 같은데.’
번뜩 제정신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얌전한척 하긴 너무 늦었다.
어떻게든 눈에 띠려, 더욱 알랑방귀를 뀌는 찰나, 드디어 존 와스딘이 반응을 보였다.
“다니엘 불펜 피칭 보러 가세요? 하하, 언제나 성실하십니다, 코치, 오늘따라 더 잘생기셨고요. 그나저나 요즘 참 야구하기 너무 좋죠? 제가 만약 이번 시리즈에 등판한다면 완봉도 가능할 것 같-”
“Go,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겠는데. 보는 내가 다 어색하니까, 좀 그만해라.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아··· 예. 죄송합니다.”
“괜히 조잘거리면서 엄한 곳에 힘 빼지 말고, 체력이나 비축해둬.”
“체력 비축이라면···”
“내일쯤이나 말해주려고 했더니··· 4차전에 선발 등판 예정이니까. 준비하고 있어..”
아주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젓는데, 벌레가 된 기분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토록 원했던 말을 들었으니까.
“하하하, 제가 꼭 그런 건 아니고, 어우, 진작 말씀해주시지. 충성충성! 그럼 쇤네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문제없도록 몸조심하고. 컨디션 관리 잘해. 웬만하면 이닝도 길게 갈 거니까.”
“그럼요~ 조심하고말고요! 그럼 오늘도 수고하십시오!”
4차전 선발 확정.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머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얄미웠던 투수코치는 천사처럼 보였으니까.
‘오케이. 그렇다면야 얌전히 기다려야지. 사람이 말이야, 그런 기쁜 소식이 있으면 진작 말해줘야지! 그러면 나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자기도 옆에서 쫑알거리는 소리 안 들으니. 얼마나 좋아?’
존 와스딘의 말대로, 몸에 맞지도 않는 어색한 알랑방귀를 집어치운 채, 얌전히 행복하게 늘어지지-는 않았다.
‘선발등판은 시작이고, 진짜는 성적이지. 훅스, 어떻게 조져야 하나.’
선발출장하면 뭐해? 자신만만하게 나갔다가 얻어터지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데.
빈자리 넙죽 채간 건 기쁘지만, 이젠 그 다음 계획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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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스와의 1차전 경기가 시작될 무렵, 투수코치 존 와스딘은 감독과 이야기를 잠깐 대화를 가졌다.
정확하게는 라이언 크리스텐슨 감독이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일방적인 질문을 던진 거지만.
“굳이 4차전 선발로 Go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브라이스웰이 나은 것 같은데요.”
“감독님 생각은 그렇습니까?”
“브라이스웰은 시즌 내내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고. 어차피 긴 이닝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니, 체력적인 문제도 없겠죠. 어느 쪽으로 보든지, Go보다는 안정적인 선택 같습니다만? 물론 지난 경기에서 Go가 보여준 피칭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째서 존 와스딘이 시리즈 마지막 경기, 4차전의 선발투수로 고유석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건지를.
“예, 저도 동의합니다. 브라이스웰은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냈으니까요. Go는 아니고요. 또한 비록 Go가 지난 경기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폼일 가능성이 높죠.”
“그렇다면 왜···”
사실 존 와스딘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감독이 완벽하게 납득할 만한 논리나 확신도 없었고.
겨우 한 경기 반짝 호투한 것 가지고 너무 과한 선물을 주는 건 아닌지, 스스로도 의심스러웠으니까.
‘그래도 안 봤으면 모를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똑똑히 지켜봤는데, 이대로 보내는 건 아쉽잖아. Go한테도, 나한테도.’
그냥··· 조금 아쉬웠다.
이대로 그냥 보내버리기에는.
“명단 정리는 거의 끝났죠?”
“···네, 드래프트 직후에 교통정리가 있을 겁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 Go도 있을 테고요.”
“성적만 놓고 본다면, 당연한 수순이죠.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그게 우리의 비즈니스지 않습니까? 결국 선수는 성적을 내야-”
“예예,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애초에 제 의사도 들어갔잖습니까? 그냥··· 한번만 더 보고 싶다는 겁니다. 마지막 기회, 뭐 그런 거죠.”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어차피 그 한 경기를 어중간하게 잘하는 정도로는 이미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감독의 말처럼 예정된 수순대로 흘러갈 거고. 그러니까, 어차피 큰 영향이 없을 테니까.
‘딱 한번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겠지.’
물론 마이너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자격이 없으면 내려가야 하고, 거기서도 부족한 모습만 보이면, 결국 방출된다.
그게 프로의 세계다.
허나 그렇기에 희박하게나마 보인 가능성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일이지. Go가 갑자기 엄청나게 성공해서, 내 커리어가 되어줄지. 스카우트들은 올스타급 한 명 발굴하면, 그 선수 은퇴할 때까지 철밥통이라고 하던데··· 마이너 코치도 따지고 보면 스카우트나 다름없으니까.’
개인적인 욕심도 조금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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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에게 등판에 대한 확답을 받은 뒤. 나는 얌전히 체력일 비축하며 상대 타격감을 관찰했고. 그런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잔혹한 학살극이었다.
‘여전하네. 무자비하게 터는 거 보면. 나한테도 그러더니.’
가장 먼저 1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다니엘 고셋이 6실점을 올리며 탈탈 털렸고.
뒤이어 2차전에도 똑같이 6점을 올려, 연승을 챙겨갔으며.
그리고 3차전에서는 지난 경기들보다 딱 1점을 더 내며, 7대0의 시원한 승리를 챙겨갔다.
‘게임이 안 되네. 게임이 안 돼. 이 정도로 체급차가 심한가?’
도합 19득점.
아무리 야구라고 해도, 세 경기 동안 낸 것 치고는 좀 심한 점수긴 하다.
그래서인지 선수단에는 우울한 분위기가 흘렀고. 특히 투수코치의 낯빛은 잿가루처럼 썩어 문드러졌다.
우리 코치님 고운 얼굴이 일그러진 거 보니까, 내 마음이 다 아프네.
‘알렉스 브레그먼··· 쟤가 훅스의 중심이지. 가장 X같은 놈이고.’
그토록 막강한 훅스의 타선.
그 중심에는 유격수, 알렉스 브레그먼이 있었다.
‘쟤는 지한테 맞지도 않는 리그에서 대장놀이하네. 트리플A든, 메이저든, 여기 있지 말고 빨리 위로 꺼지라고.’
11타수 5안타 2타점 2볼넷.
이번 시리즈 쟤가 올린 성적이다. 이것만 봐도 참 대단한 놈인데, 문제는 시즌 내내 이런 성적을 찍고 있다는 거지.
성적만 놓고 보면, 저번 경기에서 내가 그렇게나 극찬했던 벨린저조차 고개 숙여야 할 정도로.
‘이제 대충 OPS가 10할 뚫었겠네, 십할. 타율도 3할 넘겼고. 이게 사람새끼야? 마이너에서 본즈놀이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저 악랄한 새끼 저거.’
벨린저도 그렇고, 채프먼도 그렇고. 요새는 작은 놈이 대세인 건지, 쪼꼬만한 놈이 힘이 좋아서 홈런도 잘 친다. 훌륭한 선구안 때문에 웬만한 건 다 캐치하고.
그야말로 텍사스 리그의 모든 투수들의 악몽이자, 리그 폭격기인데.
더욱 놀라운 점은···
‘작년 드래프트 출신이란 거지. 이건 뭐, 브라이스 하퍼도 아니고···’
2015년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픽.
작년에 막 프로가 된 녀석이라는 거다.
같은년도 드래프트 출신 동기들은 싱글A, 기껏해야 하이A에나 있을 텐데.
저런 게 재능일까?
이쯤 되면 부럽지도 않다,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뿐.
원래 건물주 정도면 모를까, 재벌은 부럽지도 않잖아?
엄마가 자주 그런 말을 하고는 했는데,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내일 저런 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원래대로라면 게임이 안 되겠지만···’
그토록 바랐던 선발등판이거만, 막상 눈앞에 적을 마주하니, 그저 한숨만 나오는 상황.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 싫었고.
‘그래도 저번에 털렸을 때랑 다르게, 나도 제법 파워업 했으니까. 크게 꿀릴 건 없지.’
쟤는 우타자고, 나한테는 기가막힌 서클 체인지업과 그걸 잘 넣을 수 있는 제구럭이 있으니. 그쪽으로 잘 해본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내일도 저번 경기처럼 던질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최소한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 같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고 싶진 않았다.
‘정 안 되면 쟤 거르고 딴 놈들만 상대하면 되겠지.’
투수에겐 언제나 보험이 하나 있으니까. 영 아니다 싶으면 그쪽으로 가도 되고.
OPS가 10할이고 나발이고, 내가 고의사구 하겠다는데, 지가 어쩔거야?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승리에 환호하는 상대팀을 보니.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