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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314화 (313/316)

314화

“오늘은 특별히 평소보다 더욱더 조심스럽게 체력을 관리하셔야 합니다.”

4차전 등판을 위해서 준비를 갖추는 내내 대니얼은 그 점을 나에게 강조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거라고. 피로나 경기 중 체력 저하 등. 모든 것들이 훨씬 급격하고, 가파르게 이어질 거라고 말이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에,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듣기에 거슬린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보통 정석적인 5인 선발 로테이션의 경우 4일 정도의 휴식이 주어진다.

등판 이후 4일간 쉬면서 재정비하고, 5일째에 다시 등판한다.

중간중간 휴식일이 끼여 있으면, 이번 정규시즌에 그랬던 것처럼 구단에서 5~6일 이상의 휴식을 주기도 하지.

그런 점에서 볼 때, 고작 3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휴식은 평소의 절반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피지컬 트레이너로서, 내 몸 건강과 컨디션 관리가 가장 최우선인 대니얼로선 당연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처음엔 괜찮을 겁니다. Go는 불가사의한 수준의 체력을 갖췄으니까요. 어쩌면 경기 초반은 평소처럼 수월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일정한 한계치를 넘긴 뒤에는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제 인터벌처럼요?”

“네, Go의 인터벌처럼.”

대니얼은 오늘 나한테 이자가 붙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평소에 10을 던졌을 때, 정직하게 10의 체력이 깎인다면. 오늘은 20,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30, 그 뒤로 내가 체력을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더욱더 파멸적인 이자가 붙을 거라는 거지.

마치 경기 중반부터 가속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내 투구 동작처럼 말이야.

“물론··· 멀쩡하실 수도 있고요.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최대한 조심할 게요.”

“예, 조금이라도 힘들다 싶으면, 바로 Mr.에머슨에게 신호하십시오. 괜찮은 것 같아도, 그때부터는 훅 떨어질 테니, 미리 불펜을 준비해야죠.”

“대니얼도 이제 코치 다 되셨네요. 경기 운영까지 이야기하시는 걸 보면.”

대니얼의 신신당부에 농담처럼 중얼거렸지만, 그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3일 휴식이야 이미 결정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최대한 안전을 도모하고 싶겠지.

어째 점점 더 대니얼에게 부담을 안기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내가 미울지도 모르겠네.’

이러다가 시즌 끝나자마자 휙 떠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구만.

그렇게 대니얼의 근심과 걱정 속에서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다.

선수단과 함께 다시금 다저 스타디움에 입성하니, 아주 엄청난 환영인파(?)가 반겨줬지.

“우우우우우!”

“어제 경기 봤지? 너도 오늘은 그렇게 X같이 털릴 거야.”

“X같은 새끼, 언제까지 그렇게 실실 쪼갤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다저 스타디움의 앞에 바글거리는 다저스 팬들은 나를 미워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내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를 혐오하고 있지.

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꺼이 욕을 박을 정도로.

“어제만 하더라도 우리 팬들이 신사답지 못하고, 야만적이라면서 욕하더니, 다저스도 별 거 없네.”

“월드시리즈잖아?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시간이지.”

올해 잘 나가면서, 욕먹는 건 일상이었기에, 나는 물론 다른 동료들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저 정도면 오히려 약과지. 조금 더 강성 팬덤으로 유명한 레드삭스나, 날 진심으로 증오하는 레인저스랑 비교하면 말이야.

“넌 네가 무슨 커트 실링이라도 되는 것 같아?”

“고작 3일 쉬는 걸로 다저스를 이기겠다고? X이나 까라!”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마치 1차전의 커쇼처럼, 나도 부족한 휴식에 무너지길 바라는 거지.

그런 기대와 희망, 그리고 두려움을 조금은 거친 방식으로 표현한 야유 앞에서 나는 여전히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다저 스타디움에 입성했다.

솔직히 나도 조금 궁금했거든.

과연 3일밖에 휴식이 주어지지 않은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가.

####

4차전을 맞이한 월드시리즈의 시구와 시타는 어쩌면 다저스의 노골적인 의도를 담고 있었다.

“커크 깁슨, 30년 전, 다저스 영웅이 다시 한번 다저 스타디움의 그라운드 위에 올라섰습니다!”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커크 깁슨이었다. 다저스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1988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부상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이탈한 뒤.

월드시리즈 1차전 9회 말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대타로 교체되어.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렸던 주인공의 등장에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다저스 팬들은 기꺼이 기립했다.

“휘이이이이익!”

“커크! 후배들한테 기운 좀 나눠줘!”

다저스 마지막 우승이자, 기적적인 역전승의 주인공이었기에, 부디 오늘 경기에서도, 그와 같은 영웅이 새롭게 탄생하길 기원하면서.

그렇게 마운드로 올라간 커크 깁슨이었지만, 그는 시구자가 아니었다. 잠시 마운드에 머물다, 이내 타석으로 내려갔으니까.

“데니스 에커슬리가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다저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데니스 에커슬리.

애슬레틱스 최고의 수호신이자, 앞서 커크 깁슨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던.

그리고 마찬가지로 1989년 애슬레틱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장식한 투수의 등장은 다저스의 의지를 가득 담고 있었다.

기적적인 역전으로 무적의 클로저를 꺾었던 그날처럼.

오늘도 그런 기적이 발휘되어, 불패의 에이스가 쓰러지길 바라는 기대감을 말이다.

‘다저스 놈들, 은근히 음흉하다니까.’

그런 노골적인 행위에 이용당한 데니스 에커슬리는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비록 그날의 홈런은 가슴속 깊이 쓰리게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다 좋은 추억이 되었고.

결국 그 직후 다음 시즌에 월드시리즈 우승도 차지했기에, 딱히 해묵은 미련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커크 깁슨도 모자라 자신까지 이용하여, 자신들의 의지를 드러내는 다저스의 모습에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이 시구를 받아들였다.

‘결국은 애슬레틱스가 웃을 테니까.’

결국 오늘도 웃는 건 애슬레틱스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목도했으니까.

현재의 다저스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녀석, 후배의 실력을.

400K를 달성했던 그날, 똑똑히 지켜봤지.

“아직 살아있네? 코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의자에 앉아서 입만 떠들기는 아까운데. 그때도 이렇게 던지지 그랬어?”

“그때 이렇게 던졌으면, 자네가 대타로 교체되기도 전에 강판됐겠지. 그나저나 자네야 말로 슬슬 현장 복귀해야지? 나야 이미 그라운드 떠난 지 오래지만, 자네는 아직도 감독 제안 들어오지 않아?”

“수십 년 동안 그라운드에서 맴돌아서 그런지, 이젠 나도 바깥에서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고 싶더군. 야구인이 아니라, 관객으로서.”

“해설자의 자세는 아니군.”

그렇기에 부담 없이 조금은 웃으면서 시구를 마쳤고, 커크 깁슨의 농담에도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Go말이야, 정말로 괜찮겠나? 고작 3일 쉬고 등판이라니. 그것도 완투하고. 아무래도 무리하는 것 같은데. 다저스 애들도 슬슬 기세가 올라왔으니, 조금 위험하지 않나? 대단한 녀석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되는데 말이야.”

“글쎄. 한번 두고 봐야지.”

후배, Go를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다저스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지. 은근히 속삭이는 말에도 그저 피식 웃고 말았고.

물론 힘들 거다.

그 말처럼 무리하는 걸 수도 있고. 우승이라는 욕망에 휩싸여서,

완투 직후 3일만 쉬고 다시 선발등판이라니. 그가 활동했던 80년대, 클로저라는 포지션이 막 태동했던 시절이나, 그 이전에도 드문 일이니까.

‘평범한 녀석이라면 절대로 못 버티겠지.’

다저스의 기대처럼 무너지거나, 혹은 그보다도 더 심각하게 박살 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항상 예외는 있거든.”

언제나 아웃라이어는 존재한다.

그런 일을 꿋꿋하게 견디고, 더욱더 날아오른 괴물들 역시 제법 많고.

데니스 에커슬리가 보기에, Go, 고유석은 예외 중의 예외였다.

그렇기에 그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시구를 기꺼이 받아들인 뒤, 미소를 머금은 채 지정된 좌석으로 향했다.

어쩌면 커크 깁슨의 말처럼, 그 역시 온전하게 즐기고 싶었으니까. 한 명의 관객이자, 팬으로서.

“아웃!”

모든 행사가 끝난 뒤, 첫 번째 이닝에는 오늘 다저스의 선발투수인 리치 힐이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투수로서 그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애슬레틱스와 월드시리즈에서 그 상대 선발투수로서 마주한 모습은 그 나름대로 주목받을 만한 묘한 장면이었지만.

더욱더 지대한 관심을 끌어모은 이가 있었기에, 조금은 애석하게도 그는 가려졌다.

1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쳤는데도, 환호성이 조금은 옅을 정도로.

경기장 바깥에서부터 숱한 야유와 욕설을 던졌던 이들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리고, 기다렸으니까. 조금은 초조한 시선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주목의 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됐군.’

데니스 에커슬리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기울였던 상체를 뒤로 눕히며,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콧수염이 살짝 펄럭거릴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스트라이크!”

조금 다른 공간에서 또 한 번 마운드로 오른 투수는 그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물론 그것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겠지만.

“스트라이크!”

적어도 지금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는 순수하게 경기를 즐기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여지없이 나타난 원정팬들, 레이더스와 함께 힘껏 소리쳤다.

“스트~~~라이크 아웃!”

“You Suck!"

또다시 그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

“세이프!”

2회 말에는 안타를 하나 허용했다. 짧은 휴식의 여파인지 제구가 살짝 몰린 공을 4번타자 매니 마차도가 잘 받아쳤지.

“볼!”

“볼!”

곧이어 5번타자 코디 벨린저에게 연이어 볼을 허용하면서 다시금 제구의 문제를 보였고 말이야.

그에 다저스 홈팬들은 혹시나 내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아웃!”

어림도 없지!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제구는 약간 애매했지만, 구위는 오히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기에.

과감하게 공을 집어넣으며, 연달아, 5번타자 6번타자 야시엘 푸이그를 범타로 때려잡은 뒤.

마지막 7번타자 크리스 테일러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그들의 야심 찬 꿈을 다시 한번 꺾어줬다.

“오늘 평소보다 좀 어긋나네. 아직도 영점이 잘 안 잡혀?”

“영점은 잡혔는데, 마지막에 살짝 오차가 나네. 던지다 보면 올라오겠지.”

“문제는 없는 거지? 혹시나 지치면-”

“너도 그 소리냐? 힘들다 싶으면 바로 사인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평소보다 컨트롤이 살짝 덜한 것은 사실이기에, 브루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구가 흔들리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충분할 만큼 피칭 감각을 올릴 시간이 없었으니, 컨트롤이 살짝 미스가 날 수밖에.’

결국 제구도 감각의 영역인데, 그걸 확실하게 채울 시간이 부족했잖아?

준비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왔으니, 약간 흔들리는 게 정상이지.

오히려 브레이킹볼이나 오프스피드 감각이 멀쩡한 게 다행스러운 거고.

뭐,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대니얼의 경고대로 점점 망가지기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몸이 풀릴 수도 있고. 일단은 두고 봐야지.’

그렇게 마운드로 돌아온 뒤, 나는 푹 쉬는···게 아니라 빠따를 쥐었다.

“참 X같은 룰이야. 투수가 타석에 서야 한다니. 시대착오적인 내셔널 리그 놈들도 하루빨리 지명타자제를 도입해야 할 텐데.”

“뭐, 그거야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얌전히 룰에 따라야죠.”

“부탁하는데, 사고치지 마. 제발.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으니까.”

마음 같아선 의자에 앉아서 탱자탱자 놀면서 타자들이나 까고 싶었지만, 여긴 다저스의 홈이잖아.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지.

스콧 에머슨은 투수타석에 오를 날 보면서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3일 휴식만으로 이미 충분히 불안한데, 거기에 또 내가 타석에서 괜한 지랄을 할지도 모른다고 여긴 거겠지.

“코치 걱정하지 말라고 새로운 타격 스타일 떡하니 장착한 건데, 이젠 저를 좀 믿을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니까, 그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가만히 서 있기만 해! 아니지, 혹시나 다저스 놈들이 Go 네가 미워서 헤드샷을 날릴지도 모르니까 공 날아오면 피해.”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터무니없는 망상까지 하는 코치를 잘 다독여준 뒤. 공수교대가 이뤄졌을 때, 나는 대기타석으로 향했다.

“우우우우우우!”

“대가리에 하나 맞아라!”

“배트 휘두르다가 왼쪽 손목도 같이 뒤틀리면 소원이 없겠네!”

“혹시 타석에서까지 개지랄 떨면 진짜 뒈질 줄 알아!”

내가 얼굴을 드러낸 것만으로 아주 못 마땅해하시는군.

그들 중 우리 팬들만 찾아서 대충 손을 흔들어준 뒤, 얌전히 기다렸다.

“아웃.”

그렇게 내 차례가 왔을 때, 곱지 못한 시선과 함께 타석에 오르자 포수 오스틴 반스도 조금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나를 반겨줬다.

“음···”

“별짓 안 할 테니까, 그냥 냅다 던져.”

“로키스 포수한테도 그딴 소리 했겠지. 아니야?”

“잘 아네.”

자기네들을 조지고 있는 내가 껄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타격도 무서운 것 같군.

1홈런 1완봉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로키스전 때문인가? 로키스 포수를 운운하는 걸 보면.

그날 엄청난 파워를 보여줬기에, 혹시라도 이번에 그런 뽀록샷이 터진다면, 이미 벼랑 끝에 몰린 다저스에겐 정말로 KO펀치가 될 테니 걱정스러울 만 하긴 하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힘들지.’

나도 다시 손맛을 보고 싶긴 한데, 아직은 손색이 많았다. 만약 투수의 실투가 있다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살벌하네. 거, 재작년까지는 우리 팀에서 몸 담으셨던 양반이, 아주 이를 꽉 무셨어.’

투수, 리치 힐의 눈빛을 보아 실수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투수타석이라고 설렁설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빡세게 나를 잡을 작정인 것 같았으니까.

월드시리즈가 대단하긴 한가 봐. 평소라면 공짜타석이나 다름없는 투수타석에서까지 저렇게나 집중하는 걸 보면.

아마 다른 다저스 투수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오늘은 빠따질로 재미 보긴 힘들겠어.

“스트라이크 아웃!”

스콧 에머슨이 간절히 바라던 것처럼, 투수타석에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얌전히 구경이나 했고, 리치 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강력한 패스트볼을 냅다 쑤셔 넣었지.

“크하하, X신 새끼!”

“왜? X같이 느린 너랑 다르게, 강속구를 보니까 오줌이라도 지렸냐?”

그대로 삼구삼진으로 물러나자 다저스 팬들이 비꼬듯 나를 조롱하며, 억지로 악다구니를 지르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그건 그대로 마운드에서 갚아줬다.

나 역시 리치 힐을 삼구삼진으로 잡아내고, 곧이어 1번타자 데이비드 프리즈.

11년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제패를 사실상 홀로 만들어냈던 타자까지 잡아내면서.

3회가 나란히 종료됐다.

그렇게 3이닝, 대니얼이 예고했던 평소처럼 좋을 ‘수도’ 있는 경기 초반이 지났을 때의 내 몸은.

“어때? 괜히 변명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팀을 위해서라도.”

“좋아요, 오히려 시작할 때보다 나은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게요.”

아주 좋았다.

진짜로 몸이 풀렸는데?

‘3일 휴식, 솔직히 좀 걱정했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할 만하네.

대니얼이 말했던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이번에도 나한테 터졌구만.

다저스로선 희박한 희망마저 완벽하게 짓밟힌 셈이고.

아니, 짓밟힐 예정이지. 아직 완전히 짓밟은 건 아니고.

“스트라이크 아웃!”

이제부터 꾹꾹 밟을 거니까.

####

“스트라이크!”

다저스 팬들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고 해도, 진짜로 멀쩡하겠는가?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라고 믿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틈이 생기리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직전 경기에서 완투를 한 투수가 3일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선발로 등판했으니.

제 아무리 위~대하고 대~단하신 투수라고 해도, 당연히 조금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상식적인’ 믿음을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스트라이크!”

상식은 이번에도 무너졌다.

90마일조차 던지지 못하는 투수가, 461개의 삼진을 잡은 것처럼.

분명 3회까지도 안타 하나를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굳건한 모습을 보였던 투수이나, 4회를 기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1차전, 다저스의 모든 희망을 지워버렸던 그날의 모습이.

오히려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욱더 가뿐한 모습으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듯. 더욱더 타자들을 몰아붙였으니까.

“제대로 코너라인에 찍혔습니다. 경기 초반만 하더라도, 평소와 달리 불필요한 볼도 조금 내주면서, 컨트롤이 흔들리는 것 같았던 Go인데, 4회부터는 다시 돌아왔네요.”

감각적으로도 완벽하게 올라온 건지, 다시 정확하게 공을 집어넣는 모습에 해설자는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흔들렸던 제구마저 다시금 재정비한 모습은 이 사람이 정말로 3일밖에 쉬지 않은 투수가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으니까.

“아웃! Go가 크리스 테일러에게 3루수 땅볼을 유도하면서, 5회 말 역시 손쉽게 막아냅니다.

“지금 89.1마일이 찍혔는데, 믿기지가 않네요.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3일 쉬고 돌아온 투수가 여전히 최고구속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Go는 오히려 현대가 아니라, 데드볼 시대나, 라이브볼 초창기에 더 어울리는 투수일지도 모르겠네요.”

“예, 전설 속의 시대에서나 볼법한 투수죠. 그런 투수가, 오늘 다저 스타디움마저 완전히 불태우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본인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는 모습은 허탈한 한숨마저 자아냈고 말이다.

“투수타석이지만, 대타가 나오지 않네요. Go를 유지하겠다는 애슬레틱스의 생각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Go가 또다시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나마 투수타석에 올라 삼구삼진을 당하는 모습이 다저스 팬들을 위로해줬지만. 사실 그마저도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증오스러운 투수가 꼴사납게 삼진 당하는 모습이 그리 기쁘거나 즐겁지도 않았고.

대타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다음에도 그가 마운드에 오를 것이라는 걸 미리 예고해줬으니까.

“맷 채프먼, 안타! 2루에서- 세이프! 애슬레틱스가 득점 기회를 잡습니다!”

“제드 라우리, 쳤습니다! 하지만- 좌익수에게 잡힌 타구! 2루 주자 맷 채프먼이 3루를 돌아서 홈으로~~ 세이프! 애슬레틱스가 선취점을 올려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취점이 애슬레틱스에서 먼저 터지고. 점수판에 1이라는 숫자가 올라간 상황에서, 고유석이 다시 마운드로 올라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도 아주 조금,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땅 위로 솟아난 새싹 한 줌처럼.

희박하게 품었던 다저스의 희망은 그런 걸 품었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울 정도로 손쉽게 제거됐다.

“스트라이크 아웃!”

희망 같은 밝고 아름다운 것을 계속 마음속에 품기에는, 머릿속에선 오직 패배라는 어두운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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